일터

[11년 2월 | 최도은이 쓰는 이 달의 노래] 연대투쟁가

연대투쟁가

연대의 깃발을 올려라 총 진군이다
머리띠 묶어 주며 어깨 걸고 일어서자
우리는 패배를 모른다 후퇴도 모른다
강철같은 연대투쟁 전진뿐이다
그래 너희에겐 외세와 자본이 있고
폭력집단 경찰과 군대 있지만
우리에겐 신념과 의리로 뭉친
죽음도 함께하는 동지가 있다

보아라 연대의 깃발 들어라 단결의 함성
너희의 마지막 발악 투쟁으로 화답하리라
(윤민석 글, 곡)


‘연대투쟁가’는 1991년 윤민석이 발표한 노래입니다.

90년대 초반 노동가요의 창작과 보급에 앞장섰던, 작곡가 김호철과 ‘끝내 살리라’의 작사가김애영이 중심이 되어 활동한 노래패 <노동자노래단>에서 발표한 4집 음반 <민중연대전선으로>테이프를 통해 ‘연대투쟁가’는 발표되었습니다.

제목이 반을 먹고 들어간다고 ‘연대투쟁가’라는 제목이 담고 있는 함축적 의미가 커서인지 이 노래는 발표 이후 지금까지 20여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매 시기 살아 숨 쉬는 노동자 단결의 노래로 집회현장에 울림을 전하고 있습니다.

시대를 초월해 호흡하고 있는 노래의 생명력은 어디에서 비롯될까라는 궁금증을 갖고 창작자 윤민석에게 이 노래의 창작배경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너무나 간단했습니다. 1991년 초 서노협(민주노총의 전신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산하 서울지역노동조합협의회)에서 나

온 자료집을 보고 만들었다는 한 마디의 대답이었습니다. 20여년이나 불린 노랜데, 창작배경이 너무 간단해서 뭐 좀 더 없냐고 재차 물었지만 윤민석의 대답은 그게 전부였습니다. 나름 의아했지만 그간의 윤민석이 만들어낸 노래들을 더듬어 보면서 매 시기마다 시의 적절하게 노래를 창작해 내는 재질을 갖고 있는 그의 창작 특성이 바로 이런 한마디에 숨어 있는 거였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그의 재질에 대해 다시 한 번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습니다.

80년대 후반부터 발표된 윤민석의 노래는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힘을 주었습니다. ‘전대협진군가’ ‘백두산’ ‘반미출정가’ ‘서울에서 평양까지’ ‘결전가’ ‘꽃다지2’ 등... 기존의 행진곡풍 노동가요와는 또 다른 호소력을 가진 윤민석의 노래는 웅장함과 비장함, 그리고 명쾌함을 특징으로 사람들과 호흡했습니다.

풍부한 호소력을 갖고 있는 윤민석 노래의 특성을 그의 성장과정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윤민석은 1964년 경북영주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가 영주에서 제일 큰 학원을 운영하시는 덕에 부유한 유년기를 보낼 수 있었다 합니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든든한 후원 덕에 피아노와 기타를 배울 수 있었는데, 그 시절에는 흔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윤민석이 오늘날 의미 있는 위치의 민중가요 작곡가가 된 배경에는 아버지의 조기음악교육의 영향이 컸음을 확인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80년 전두환정권의 과외금지조치에 의해 아버지의 학원사업이 실패해 가세가 기운 상황에서 대학에 들어간 윤민석은 1학년 때에는 무너진 집안을 일으켜 세우는 꿈을 간직하고 살았다 합니다. 입신양명 출세를 위해 도서관에서 고시공부에 열중하던 윤민석은 대학2학년 때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사진을 접하고 심한 양심적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 국민의 가슴에 총칼을 휘두른 학살자들이 권좌에 앉아 있는 기막힌 현실을 알게 된 이후 그는 원인에 대한 고민에 빠져들었습니다. 서점에 틀어 박혀 한국근현대사 책들을 탐독하기 시작했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사회 모든 악의 출발점은 친일파가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정리한 윤민석은 이후 우리사회를 옥죄고 있는 모든 악의 근원인 친일파 단죄를 위해 자신의 한 목숨을 바칠 각오로 학생운동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합니다.

1987년 KBS 방송국 점거 투쟁을 시작으로 전대협 의장 임종석 구출 투쟁, 1992년 ‘민족해방 애국전선사건’에 이르기까지 세 번에 걸친 옥고를 치루면서도 윤민석은 비타협적 투쟁을 통해 학살자를 단죄하는 전사로서의 삶을 살고자 했습니다.

조직운동가로 전사로 살고자 했던 윤민석이었지만, 그의 재능을 높이 사는 동료들의 권유에 의해90년대 초반에는 ‘노동자노래단’에서 활동을 하면서 많은 노동가요를 창작하며 현장에 영향을 끼쳤으나 1992년 ‘민족해방 애국전선사건’으로 3년의 옥고를 치룬 이후에는 반미, 반전, 자주통일을 주제로 한 민중가요 창작에 매진하게 됩니다. 1996년부터는 반미자주통일의 민중가요 제작과 보급 유통을 담당하는 ‘프로메테우스’를 만들어 운영하였으며, 2001년에는 인터넷 세대에 촛점을 맞춘 <송앤라이프>라는 음악전문 홈페이지를 만들어 ‘Fucking U.S.A’ 노무현 탄핵에 반대하는 ‘너흰 아니야’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제작 발표해 매 시기마다 자신의 정치적 색깔을 분명히 담은 노래를 창작해 대중을 선동하는 예술가의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렇게 맹렬한 활동을 했던 윤민석인데, 최근 들어서는 활동의 흔적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2007년 <송앤라이프>가 문을 닫은 이후 활동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던 윤민석은 병든 아내와 궁핍한 생활고를 감당하기 위해 현재는 서비스직 비정규노동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쳐다오 시퍼렇게 날이 설 때까지”라고 외쳤던 그의 노랫말처럼 양심을 따라 산 그의 삶과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벗들에게 다시 한 번 그가 창작자의 삶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조금만 더 힘을 내 주길 간절히 기원하면서 ‘연대투쟁가’를 2월의 노래로 정리 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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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 최도은 , 일터 , 연대투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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