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11년 4월--현장의 목소리]“땅이 솟았다 꺼졌다한다.” - 죽을 수밖에 없는 공무원 노동자

현장의 목소리 ①


“땅이 솟았다 꺼졌다한다.”



죽을 수밖에 없는 공무원 노동자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대구경북지역본부 상주시지부 왕 준 연




“아니, 그쪽으로 말고 이쪽으로”
“그쪽 문 닫고”


우루루 몰려다니는 소떼들을 예방접종할 수 있도록 모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왁자지껄 들린다. 소 한 마리 접종시간은 3~4초로 순식간이다. 소들은 평소 보지 못한 하얀 옷을 입고 들어온 이방인들이 두려워 이리 저리 불안한 듯 연신 뛰어다닌다.
2월14일~16일 실시된 2차 예방접종이 끝나면 이들 공무원들에게는 구제역 발생으로 그동안 중단되었던 추곡수매업무(상주시는 2월14~18일)가 기다리고 있다. 추곡수매가 끝날 즈음에는 이틀이 소요될 돼지 예방접종이 이들의 손을 요구한다. 다음으로 기다리는 것은 1주일 간격으로 돌아오는 2교대(12시간) 방역초소 근무와 열흘마다 돌아오는 당직이 기다린다. 그러는 동안 담당 고유 업무는 산더미같이 밀려 아파도 쉴 수가 없다. 공무원도 사람인데, 이렇게 혹사당하다 보니...
‘구제역 방역활동 중 쓰러진 경북고령군 보건소 박석순(46·여·7급)씨가 1월 16일 오후 3시 30분께 숨졌다.’(뉴스엔 2011.1.18)
‘구제역 밤샘근무에 동원됐다가 최근 과로로 순직한 의정부시 공무원 고(故) 원영수(49)씨에 대한 영결식이 18일 오전 의정부시청 주차장에서 시청장으로 열렸다’(경인일보 2011.1.19)


‘불교계는 구제역 방역 과정에서 안타깝게 순직한 공무원 고 금찬수, 고 김경선 유가족들과 아픔을 함께 나눴다.’(BBS 2011.1.18)
‘A시의 30대 임산부 여공무원 3명은 구제역 발생 이후 초소 근무와 약품 배부로 밤샘근무를 하다가 심한복통을 호소했다. 이 중 1명은 지난해 12월 6일 병원에서 유산됐다는 통보를 받았고, 1명은 유산 위기에 처해 가료 중이다.’(연합뉴스 2011.1.10)
‘군위군 김운찬 농정과장(54)은 최근 얼굴근육 마비와 함께 과로로 쓰러져 입원했다.’(연합뉴스 2011.1.10)
‘구제역 방역과 관련해 업무상 과로로 숨진 경북 상주시청 공무원 고(故) 김원부씨(45ㆍ7급)에 대한 장례식이 31일 오전 7시30분 상주적십자병원에서 상주시 장(葬)으로 거행됐다.’(서울경제 2011.1.31)
‘영천시는 14일 시청 앞마당에서 구제역 방역 및 업무 추진 과정에서 과로사한 고 김현범(54) 청소행정담당의 고별식을 열었다.’(한국일보 2011.2.14)


구제역 방역 작업 중 피해를 입은 공무원들에 대한 뉴스가 이틀이 멀다 하고 나왔다. 구제역으로 인한 공무원 인명피해는 8명이 사망하고 15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렇게 구제역 방역작업 중 많은 공무원 사상자가 나오는 이유 중에 하나는 ‘몸으로 때우는’ 구시대적인 방역 작업이며 이것은 피해를 가중시키고 있다. 방역 현장에서는 15년 만의 강추위로 방역초소 근무자들이 ‘어는 것’과의 전쟁을 치르는 상황이다. 방역기계를 작동하면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노즐부터 시작해 배관까지 순식간에 얼어버린다. 도로도 예외는 아니어서 초소 근무공무원들은 쉴 틈 없이 제설작업을 해야 한다.
안전사고 대책도 미흡하다. 영양군청 김경선 공무원은 경북 영양군 입안면 신구리 구제역 방역초소에서 1t 트럭을 몰고 제설작업을 하다가 얼어붙은 노면에 트럭이 뒤집히는 사고로 숨지기도 했다.
무리한 인력감축도 한 역할을 했다. 경북 상주시의 경우 2007년도에 2,000여개의 업무가 지역특화 사업 및 관광산업으로 신설된 기구와 복지‧환경‧방역‧재난 등 신규 업무가 현재는 10% 가량 증가된 2,181개로 늘었다. 인력은 반대로 1,175명에서 6.3%감소된, 1,101명이다. 산술적인 계산만으로도 체감 부담 업무는 180여 명분의 일이다. 일상 업무 수행에도 벅찼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구제역 발생으로 인해 노동 강도가 급격히 상승하여 과로로 인해 1월29일 상주시 보건소에 근무하는 김원부씨가 죽음으로 내 몰렸다. 안동 3%, 고령5% 등 공무원과로사가 있었던 대부분의 지자체의 공통점은 무리한 인력감축이다. 위기 상황에 대처할 자그마한 인력의 여분까지 줄이다 보니 이러한 사태가 발생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느 지방자치단체장은 자신의 치적을 쌓기 위해 1,100여명이 넘는 공무원들을 999명으로 줄이겠다는 산술적인 숫치를 제시한다. 인구 1천 명당 OECD 공무원 수는 70.3명이고, 대한민국은 23.5명임에도 불구하고, 4자리 숫자의 공무원수를 3자리로 줄였다고 자랑거리를 만들고 싶어하는 이에게 공무원은 다만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상주시의 고 김원부 주사는 구제역근무초소에서 얼음을 제거하다 넘어져 10일간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다가 다 낫지도 않은 상태에서 퇴원해 업무에 복귀했다. 그동안 밀린 일을 4일 동안 밤 11시까지 하다가 5일째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시고 결국 다시는 오지 못할 곳으로 가셨다.


1월 17일과 18일 양일간 경북도는 구제역 백신 예방접종을 했다. 상주시의 경우 24개 읍면동에 7만2천두의 소를 11명의 공수의가 이틀간 접종하기에는 불가능해 공무원들이 접종에 동원되었다. 난생 처음 접종을 하는 공무원들은 30분간의 짧은 접종 교육을 두려움으로 마쳤고, 2ml씩 자동으로 투입되는 자동접종기가 턱없이 부족하여 주사기로 일일이 접종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30여 시간 동안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기온에 쉬지도 못하고 살처분에 임하는 게 공무원들이다. 부족한 공수의 인력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공무원이었고, 재래식 장비로 접종을 담당해야 할 사람들 역시 공무원들이었고, 30여 시간 현장을 떠나지 못하고 벌벌 떨며 살처분을 해야 했던 것도 공무원이다. 충분한 전문 인력과 현대화된 장비가 있었다면 공무원들 몫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최악의 상황을 커버하는 것은 언제나 공무원들이었다.


무리한 인력감축의 더 큰 문제는 구제역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평상시 업무에서 야근을 밥 먹듯이 해야 하는 빠듯한 일상에서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공무원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과로라는 것이고, 이것이 사망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걸음을 걸으면 땅이 솟았다 꺼졌다, 뒷목은 뻐근합니다. 그러나 견뎌 봅시다. 징용갔다 생각하고”라는 상주시청 공무원 신인석씨의 말은 이들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잘 대변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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