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11년 4월 - 노안 활동가에게 듣는다] “최근의 관심사? 산재사망과 산재보험!”-노동건강연대 전수경 동지

“최근의 관심사? 산재사망과 산재보험!”


“최근의 관심사?


산재사망과 산재보험!”




노동건강연대 전수경 동지


▸ 인터뷰 & 정리 _ 한노보연 선전위원 흑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오늘 인터뷰를 당할(?) 전수경 동지가 어떤 이와 바쁘게 이야기 중이다. 산재, 건설, 사망, 통계, 공부 등의 단어가 오간다. 그 대화는 ‘사람들이 관심 갖지 않는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지요.’라는 어떤 이의 말로 끝이 났다. 궁금하지 않은가? 어떤 곳에 어떤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


인터뷰 중에 전수경 동지가 원두커피 가루를 즐겨먹는다는 동료 스즈키씨의 증언이 있었다. 원두 콩을 어쩌다 먹게 되었는데 정말 고소했고 그 후 원두커피 가루도 종종 먹게 되었다는 전수경 동지와의 인터뷰는 ‘원두커피 가루 먹는 여자’라는 것을 알고 ‘뭐요?’라고 되물었던 것처럼 ‘뭐라고요?’ 라고 되묻는 일이 종종 생겨났다. 물론 이 도입부는 독자들의 눈을 잡아두기 위한 낚시(?)일지도 모른다.




자, 노동건강연대 소개부터


“96년에 ‘노동과 건강 연구회’ 활동을 시작했다. 학생운동을 한 후 사회에 나와서 노동단체나 노동조합에서 일하고 싶었는데 한겨레 구인광고에서 ‘노동과 건강 연구회’ 구인 공고를 봤다. 그때만 해도 한겨레 신문에 보면 이런 단체나 조합의 구인 공고가 꽤 있었다. 사실 ‘노동’만 보고 왔다. 그 뒤에 붙은 ‘건강’은 잘 이해가 안 되더라. ‘건강이 뭐야...?’ 하면서 면접을 봤고 이 곳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보통 인터뷰의 시작에는 소속 단체(혹은 노동조합)의 소개가 자리한다. 그 익숙한 시작을 부탁했는데 전수경 동지는 본인이 어떻게 활동을 시작했는지를 설명해주었다. ‘아, 원두커피 가루...’ 라는 생각도 했지만 이것은 아마도, 그녀의 활동과 노동건강연대의 행보가 함께 였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단체의 소개가 이어진다.




“우리(노동건강연대)가.. (일하는 스즈키씨에게, ‘2001년이야?’) 이젠 막 기억이 잘 안 난다. 산재추방운동연합(이하 산추련)이 와해되고 2001년 노동건강연대(이하 노건연)로 재건축을 했다. 터는 그대로 쓰되 다른 재료로 집을 만든 것이다. 이전의 활동은 대기업, 남성, 정규직, 노동조합 중심이었고 당연히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할지를 고민했었다. ‘안전’이나 ‘건강’문제에 중심을 두기 보다는 대기업 노동조합의 지원에 힘을 쏟았다. 하지만 (산추련을 겪으면서) 대기업은 역량도 충분하고 나 같은 활동가들이 없어도 되는 구나, 라고 느꼈다. 그러면서 이전과 달리 비정규직, 영세, 여성, 이주라는 키워드를 쥐게 되었다. 노동조합이 포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끌어안는 문제에 대해서 말이다. 키워드를 바꿔 쥐고 골프장 경기보조원 노동자들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골프장 경기보조원은 노동자성도 인정받지 못하던 노동자들이었고 비슷하게 지역 인쇄 사업장 노동자들 사례도 있었다. 이 노동자들은 인쇄노조를 통해 만나게 되었고...


최근의 관심사는 산재사망과 산재보험이다. 산재로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이 문제를 사회이슈로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요즘 복지논쟁이 한창인데 노동과는 유리된 복지논쟁이다. 산재보험은 중요한 사회복지인데 그 중요성만큼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지 않는다. 노동자들도, 이들의 조직도 산재보험을 크게 문제로 삼지 않는 것 같다.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그나마 산재보험은 가까이 있다. 하지만 조직된 노동자 이외에는 이 제도가 있는 줄도 잘 모른다. 산재보험에 대한 인식은 크게 두 가지 인 것 같은데 하나는 ‘산재보험의 존재에 대해 잘 알지만 현실에서 인정받기 얼마나 힘든지는 모르는’ 거나, ‘산재보험에 대해 아예 잘 모르는, 예를 들어 비정규직도 산재가 되는 거야?’라고 하는.”




이전의 운동이 ‘대기업 지원’이었다는 것은 스스로의 활동을 지나치게 낮추어 보는 것은 아닌가.


“희망이 없다는, 한계를 훨씬 더 많이 느낀다. 대기업에서의 건강권에 대한 관심사는 정부와 전문가가 맞춰놓은 시스템에 갇혀있다. 노동조합 간부들이 산업의학지식에 대해 알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 왜 그래야 하는가? 큰 공장의 경우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건강권은 그다지 돌보고 있지 않으면서 정부와 전문가들이 쳐놓은 틀에 갇혀서 노동안전보건에 대한 전문가들이 되고 있다. 산재인정기준에 대한 전문가, 특정 질환(근골격계, 뇌심혈관계 등)에 대한 전문가, 산재처리에 대한 전문가...


좁은 이 시스템을 벗어나야 한다. 전체의 동의를 구할 수 있는 활동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개별적으로 전문가가 되거나 정부와 전문가들이 쳐놓은 그림 안에서만 노니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건강할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을 해나가야 한다. 이러한 비판과 변해야한다는 요구는 거꾸로 내가 노동조합에 대한 기대가 몹시 커서 그렇기도 하다.”




시스템이라는 말이 좀 생소하다


“시스템을 벗어나도 모두가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어떻게 산재를 신청하는지를 비롯한 A-B-C를 알고 싶으면 내가 열심히 공부하는 게 아니라 근로복지공단 등을 기구를 통해 조직 노동자도 미조직 노동자도 알아볼 수 있고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로 자라고, 전문가를 키워내는 것이 아니라 통으로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거다. 노동조합에 힘이 있을 때는 그 힘으로 진전해나갈 수 있지만 힘이 없으면 후진하게 된다. 그러니 그 힘의 관계에 의존하지 않고 굴러가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요즘 다시 논의되고 있는 산재보험 개혁은 사회안전망을 세상에 요구하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골프장 경기보조원 노동자들과의 만남은 어땠나


“전국여성노동조합을 통해 만난 88CC 노동조합은 당시 처음 노조를 만든 상태였다. 조합 활동을 시작하면서 노동자성 인정을 요구하는 고리로 산재문제를 들고 나온 것이다. 노건연에 왔을 당시 88CC 노동조합에서는 타구(몸에 맞는 공), 잔디의 농약 문제 등을 상담하며 이런 문제들은 산재로 처리하는게 옳다고 스스로 주장했다. 또 100여명 정도 되는데 실태조사를 한 번 해보자는 제안도 했다.


전혀 생각지 못한 영역에서 사고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었고 또 이런 현실이 엄연히 존재했다. 이 문제는 노동운동 영역에도 사회에도 큰 놀라움을 가져왔다. 덧붙여 당시 캐디(골프장 경기보조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을 때였는데 사고, 산재 문제를 알림으로서 오히려 노동자성을 확인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것은 학교 급식조리원 노동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해도 도처에 노동자들이 존재하고 있고 또 애쓰고 있다는 현실을 드러내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새로운 주체를 만나고, 이 사회만이 아니라 그들 또한 스스로를 노동자라 인식하게 되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최근의 관심사 중의 하나가 산재사망이라고 했는데, ‘산재사망’이 최근의 관심사라는 것은 잘 이해가 안 된다. 이전에 관심이 없었던 것도 아닐텐데... 조금 더 설명해달라


“2005년, 정규직/임금노동자 중심의 산안법 체계가 바뀌어야 늘어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있으며 그를 위해 산안법을 개혁해야한다는 논의가 있었다. 지금은 뜯어고치자 하기에는 힘도 없고... 지금의 체계를 보면 숫자로 산재를 관리하고, 사업체에 들어가 보건관리대행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에 대한 관리만 있고 정작 실제 고용하고 있는 사업주의 책임에 대한 것이 별로 없다.


전체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장하고 있지 않은 이 제도의 문제, 그리고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기업의 책임, 죽음에 이르게 한 기업의 행태를 세상이 알게 하고자 한다.


특히 건설 노동자들의 산재사망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산재사망이 가장 빈번히 일어나는 곳이 건설현장이다. 건설 노동자들의 죽음은 계속되는데 세상은 이 죽음들을 잘 모른다. 이를 막을 수 있는 대책은 세워지지 않고, 기업에게 책임을 따져 묻지 않는다. 그래서 산재사망에 대해 기업주를 처벌하자는 주장을 했다. 이 주장에 큰 호응이 있었고 정부-노동부, 기업주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런데 그 뒤로 계속적인 흐름을 못 만들었다. 또 이 논의가 계속되면 사망자체의 심각성은 증발되고 부차적인 것에 집중되었다. 예를 들어 법적으로 이건 될 수가 없는 일이네, 아니네 하는 기능적인 논의들로 말이다. 지지부진한 상태가 이어졌다. 2008년에 민주노총이 산재사망 문제에 대해 대응전략을 만들어보려 했었고 ‘산재사망에 대한 기업주 처벌’에 대해 정책적으로 민주노총이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했지만 거기서조차 정책으로 받지 못했다. 그리고나서 다시 시도하지 못했고 현재는 살인기업 시상식만 남아있다.


다시 원래 질문으로 돌아와서, 몇 년 사이 건설현장에서의 사망사고가 계속되고 건설노조에서도 그에 대응한 경우들이 늘어나면서 이 문제를 노동조합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풀어내는 활동을 해야되겠다는 생각을 했고 작년 말부터 이런 시도들을 하고 있다. 건설 현장은 단일로는 규모가 제일 크기도 하고 책임소재가 명징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또 다르게 보면 물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처음에 ‘노동과 건강 연구회’에 들어올 때 ‘노동은 알겠는데 건강은 뭐야...’ 라고 했다했는데 지금은 어떤가?


“지금 노건연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노안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고용, 임금 다 제쳐두고 건강만 제일 중요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노동자 계급에 있어서 ‘건강’, 이 문제에 대한 명확한 자기인식, 계급의식이 필요하다. 무슨무슨 실(室)을 만들고 사람을 두고 하더라도 이 문제에 대한 자기 인식이 없으면 소용없는 일이다, 이는 민주노총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건강문제의 특성상 전문가 등의 외부 활동가에 대한 의존이 클 수 밖에 없는데 전문가들의 이해관계에 기반한, 거기에 맞춘 노동자 건강이라면 이 ‘건강’은 안 중요하다. 전체 노동자의 문제로 확장되는 것이 중요하다.”




학교 졸업 후 들어온 첫 직장에서 지금까지 활동해오고 있는 전수경 동지. 그녀는 처음 활동공간을 구할 때 ‘노동자가 세상의 주인이 될테니 나는 복사기라도 돌려야지’라는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 자리도 노동단체로만 한정해서 살펴봤고. 그렇게 시작한 ‘노동과 건강 연구회’ 활동이었는데 그 공간에 있는 것이 참 좋았고 논의되는 모든 의제들이 다 관심이 가더란다. 그리고 지금도 이 활동은 몹시 재미있다며 그녀는 신나했다.


긍정적인 편인 것 같다. “압박을 잘 느끼지 않는 편이다. 책 읽는 걸 좋아하고 혼자 영화 보는 것, 기차타고 맨 몸으로 어디든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뭘 준비 안 해도 여기저기 잘 돌아다닐 수 있는... 체질이 그렇다.”




요즘의 관심사는 “일은 하는 척만 하고 놀고 싶다.(웃음) 산재사망 활동의 틀을 만들어보는 것, 노동조합-단체-전문가-정부-사고현장의 관계를 살피고 사회 쟁점화할 수 있는 기획을 해보고 싶다. 사람도 만나러 다니고 자료도 보고.


일상에서는 사무실이 이사하면서 지하철을 타고 환승을 하는데 사람들이 너무 열심히 움직인다. 그렇게 바쁘게 움직이는 거 싫은데 치이는 게 싫으니 나는 더 빨리 움직인다. 아, 그리고 지하철에서 돈 얘기를 너무 많이 한다. 밤 10시에 퇴근하며 지하철을 타며 술 냄새가 진동한다. 월요일부터 술에 찌들어 퇴근하는 그 삶들은... (얘기를 들으니 산재사망은 저리가고 요즘 당신의 관심은 지하철과 환승통로인 것 같다) 아, 그런 것 같다.(웃음)”




마지막. 어떤 활동가로 기억되고 싶은가. “날 잊어달라. 나중에 보니 글 한 줄도 챙피하더라.”




그녀는 유머 있고 옷도 잘 입고 빈둥거려도 쪽팔려하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고 했다. “옷을 잘 입는?” 이라 되물으니 그녀는 지인의 말을 빌려 설명해주었다. 그 지인이 말하길, 자신은 지하철에서 활동하는(일명 운동권) 여성들은 다 찾아낼 수 있다고 했단다. 큰 가방, 어두운 계열 잠바, 등산화, 운동화. 각자의 삶이 다를 진데 비슷하고 닫혀있는 듯한 모습들이 싫다고 했다.


구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해방된 인간이고 싶다는 그녀는 솔직했다. 어쩌면 솔직한 그녀의 말을 내가 괜히 숨을 죽여 옮겼는지도 모른다. 공부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산재사망문제를 사회에 알리고 일부만이 아닌 전체 구성원의 건강을 세상에 요구하고 싶다는 그녀의 힘찬 걸음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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