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11년 5월- 이달의노래] 인터내셔널가

인터내셔널가

민중가수 최 도 은


1절. 깨어라 노동자의 군대 굴레를 벗어 던져라 정의는 분화구의 불길처럼 힘차게 타온다
대지의 저주받은 땅에 새 세계를 펼칠 때 어떠한 낡은 쇠사슬도 우리를 막지 못해
들어라 최후 결전 투쟁의 외침을 민중이여 해방의 깃발 아래 서자
역사의 참된 주인 승리를 위하여 참자유 평등 그길로 힘차게 나가자

2절. 어떠한 높으신 양반 고귀한 이념도 허공에 매인 십자가도 우릴 구원 못하네
우리 것을 되찾는 것은 강철 같은 우리의 손 노예의 쇠사슬을 끊어 내고 해방으로 나가자
들어라 최후 결전 투쟁의 외침을 민중이여 해방의 깃발 아래 서자
역사의 참된 주인 승리를 위하여 참자유 평등 그길로 힘차게 나가자

3절. 억세고 못 박혀 굳은 두 손 우리의 무기다 나약한 노예의 근성 모두 쓸어 버리자
무너진 폐허의 땅에 평등의 꽃 피울 때 우리의 붉은 새 태양은 지평선에 떠 온다
들어라 최후 결전 투쟁의 외침을 민중이여 해방의 깃발 아래 서자
역사의 참된 주인 승리를 위하여 참자유 평등 그길로 힘차게 나가자
인터내셔널 깃발아래 전진 또 전진
(1871년 유진 포띠에르 글, 1878년 삐에르 드제베 작곡)


온 천지가 초록의 생동감으로 옷을 갈아입은 오월입니다. 나뭇잎 사이로 비춰지는 오월의 햇살이 주는 눈부심만큼 지나온 노동자계급의 역사 속에 오월은 아픔과 또 다른 희망의 공동체를 보여주었던 빛나는 시간이었습니다. 대륙의 서쪽 끝 파리에서 불어온 1871년의 오월의 바램과 1980년 광주의 오월, 그리고 1886년 시카고의 헤이마켓 집회장에서 쓰러져간 노동자의 오월을 생각하며 메이데이의 노래이며 전 세계노동자의 노래인 <인터내셔널가>를 소개하겠습니다.


1871년 5월 28일에 무너진 파리코뮌의 마지막 바리케이트 (글,사진=오마이뉴스 임승수)
이 노래는 1871년 5월 파리꼬뮨이 패배한 후 베르사이유 정부에 의해 수배 생활을 하던 꼬뮨의원 유진 포띠에르가 남긴 글을 1878년 삐에르 드제베가 우연히 발견하고 곡을 붙인 것으로 이후 인터내셔널의 노래로 불렸으며, 오늘 날에도 전 세계 130여 개국 노동자들의 입에서 불리는 단결의 노래이며, 노동해방 세상에 대한 진군의 노래입니다.
부르조아지와 농민층의 지지로 1848년 프랑스 사회의 지도자로 등장한 나폴레옹3세(나폴레옹 1세의 조카)는 언론 및 집회 결사의 자유를 금지하고 폭압적으로 노동운동을 탄압하면서 20여 년간 독재 지배체제를 구축합니다. 나폴레옹3세의 독재치하에서 프랑스 자본주의는 크게 발전하여 자유무역체제가 확립되고 식민지 침탈전쟁의 중심에 섰지만 1870년의 9월 보불전쟁에서 패배한 것을 계기로 무너지고, 독일군에 포위된 상황에서 채권자들과 지주들은 파리를 빠져 나간 상항에서 의회는 그간 연기 하였던 모든 부채와 임대료를 당장 지불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전쟁으로 포위된 파리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었던 노동자들은 그 명령의 피해자였습니다. 식량은 마침내 떨어져 말이나 개, 쥐의 고기도 식량이 되었고 1870년 12월 30일에는 동물원의 코끼리 두 마리가 사살되어 코끼리고기 1파운드가 40프랑에 팔려 나갈 만큼 처참한 상황에 처했는데 어찌 집세를 낼 수 있었겠습니까. 마침내 파리 시내 전선을 지키고 있던 박격포 마저 퇴각하려 하자 분노한 파리의 노동자계급은 1871년 3월 18일 베르사이유로 피신 해 간 프랑스 정부에 전쟁을 선포했고, 정부군이 쥐새끼처럼 파리를 빠져나간 그 자리에 꼬뮨이 세워졌습니다. 파리꼬뮨은 1871년 3월 18일∼5월 28일까지 존재했던 세계 최초의 노동자계급의 정부로 입법, 사법, 행정 등 정부의 모든 직책을 노동자계급이 직접 선출하고 소환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정부였습니다. 구체적인 실천으로는 노동자들에 의한 공장경영 계획과 협동조합들을 연합체로 조직할 계획, 국가와 교회 분리, 제빵공의 야간노동 폐지, 집세 전액 면제와 전당포 저당품에 대한 매각 중지, 직업소개소 폐지, 책 지도 종이 등 모든 교재 무상지급, 창녀의 폐지 등 꼬뮨 사회의 모든 결정 사항은 노동자계급의 편에 선 것이었습니다. 두 달여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꼬뮨은 노동자계급의 직접적인 이해관계 속에서 구사회 질서를 끊어내는 포고령을 발표해 노동자계급정치의 전형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베르사이유로 피신한 프랑스 정부가 다른 나라 군대의 힘을 빌어 꼬뮨정부를 공격해 옴으로써 물리력의 한계에 밀려 파리꼬뮨 최후의 전사들은 1871년 5월 28일 동부 방돔 요새에서 패배하여(항복 당시 3만 명이 총살을 당했고, 이 후 베르사이유 군법회의에서 80명의 어린이와 132명의 부인들과 270명의 꼬뮨 주동자가 사형 당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평등과 정의를 실천한 꼬뮨정부의 투쟁은 이후 노동자계급이 처한 억압과 차별의 장벽을 허무는 희망의 시원으로 자리한 것 입니다.

‘인터내셔널가’는 꼬뮨 의원이었던 유진 포띠에르가 130여년 전 지금은 우리가 패배하지만, 노동자계급의 힘으로 착취의 쇠사슬을 끊어 내고 파리 꼬뮨의 바리케이트 곳곳에 휘날리던 인터내셔널의 붉은 깃발이 멀지 않은 장래에 다시 펄럭이길 바라며, 인터내셔널의 깃발아래 단결·전진하는 길만이 노동자계급의 해방임을 전하는 소망의 메시지입니다. 꼬뮨이라는 공간은 노동자계급에게 그 어떠한 차별과 장벽을 허물기에 충분했기에 이후 전 세계 노동자들은 파리꼬뮨을 기념하며 인터내셔널을 조직하였고, '인터내셔널가'를 불렀습니다. 1944년까지 소련의 국가이기도 했던 ‘인터내셔널가’는 1920년대 우리나라에 알려져 노동운동단체를 통해 5· 1 노동절과 3·18 파리꼬뮨 기념일을 기리며 불러진 역사가 있습니다만 해방이후 오랜동안 군부독재라는 역사의 질곡 속에서 이 노래는 대다수의 노동자의 입에서 불러지지 못했습니다. 1987년 7·8·9 노동자대투쟁을 통해 노동자의 정치경제·문화·사회적 지위가 확장 된 이후 노동운동가들에 의해 부활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도 현장 곳곳에서는 비정규직, 정규직 가릴 것 없이 노동자에 대한 착취는 강화되고 있지만 자본과 노동자의 상생을 부르짓는 구호와 물신 주의가 더욱더 요란한 괴력을 발휘하는 오늘의 현실을 바라보며 오월을 맞아 파리꼬뮨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유진 포티에르의 “인터내셔널 깃발아래 단결 전진”의 외침을 새겨 보았으면 합니다.

일터


※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최도은이 쓰는 이 달의 노래」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좋은 글을 독자들께 전해주신 최도은님께 감사드리며
연재되었던 글은 한노보연 홈페이지(www.kilsh.or.kr)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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