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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5월- 이러쿵저러쿵] 선생님, 아줌마 그리고 감독님

선생님, 아줌마 그리고 감독님

한노보연 운영집행위원 송 윤 희


반복적인 일상을 살다보면, 자극 없고 무미건조한 다람쥐 쳇바퀴를 벗어나고픈 생각이 꿈틀댑니다. 활동하는 분들, 매일 매일이 스케쥴이 꽉 짜여져 있는 분들이야 그런 마음이라도 생겨봤으면 하겠지만 말이죠. 저는 2009년에 그랬던 것 같습니다. 레지던트 과정 4년 후 전문의는 되었고, 이제 더 ‘논문 써라, 보고서 내라, 대학원 과정 이수해라’하는 것도 없고, 매일 50명 정도의 지극히 건강한 노동자들 몸무게, 혈압 얘기만 하루 5시간 동안 말하는 일 외에는 제 시간을 쓸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역시나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 탓에 두리번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렇게 다른 또래 의사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네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으니 말입니다. 지난 6개월 정말 빨리 지나갔습니다. 그 시간 중 족히 두 달은 맥 컴퓨터 앞에서 눈이 빠져라 모니터를 보며 편집을, 두 달은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사람 만나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또 몇 달 간 정말 고혈을 짜내는 시나리오와 줄거리 구성 작업 끝에 「하얀 정글」이라는 다큐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참 신기한 건 정말 일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제도 동이 트는 것을 보며 또 수정작업을 했답니다. 앞으로도 최소 5월 한 달간은 또 끊임없이 작업이 이어질 것 같습니다. 남편과 제 월급으로 다큐를 만들고 있어서 웬만한 건 다 스스로 하고 있습니다. 휴~
살아가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남이 나를 부르는 호칭에서 찾을 때가 있습니다. 2년 전 여기에 썼던 글에는 “아줌마”라는 호칭이었죠. 또 그 글을 쓰기 6년 전에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이었구요, 그리고 지금 2011년에는 “감독님”이라는 호칭입니다. 3월 영화제에 갔을 때 그 호칭이 어찌나 어색하던지요. 진득하게 한 우물을 파지 못하는 삶으로 보이지만, 아직 33년 살았으니 조금 더 두고 봐야겠습니다. 다만 희망이 있다면, 계속해서 환자들로부터 따뜻하고 이웃집 색시(아줌마 말고)같은 선생님이고 싶고, 아줌마라는 단어에 들어 있는 희생을 조금씩 삶 속으로 끌어들이면서도 꿈을 계속 꾸는 그런 멋진 아줌마이고 싶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생각과 감정을 진솔하게 영상으로 옮기며 사람들과 교감하고 세상을 더 따스한 곳으로 만드는 데 일조하는 감독 혹은 작가이고 싶습니다. 다 쓰고 나니, 핑크빛이 도는 너무 착한 글이 되어버렸네요. 저답지 않습니다. 저다운 게 뭐냐구요? 영화 보세요. 하얀 정글 보시면 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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