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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6월- 일터다시보기] 일터 5월호 <정말 피곤한 간 때문인가요?>를 읽고

슬픈 코미디
일터 5월호 <정말 피곤한 간 때문인가요?>를 읽고




일터독자 페루애

우석훈이 20대 청년 세대를 ‘88만원 세대’라고 정의했을 때, 사람들은 지나친 확대 해석이라며 경계를 표했다. 그래도 명색이 지식의 최전선인 대학 졸업자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대학 졸업 후 이력서를 백 장 넘게 작성하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이 악몽이 어쩌면 나의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자각이었다. 그리고 그 우려는 현실이 된다.
차 때고 포 때면 남은 것은 88만 원이 전부다. 사정이 이러하니, 자신을 위한 투자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허리띠를 더욱 졸라매는 수밖에 없다. 회사 근처에 얻은 비싼 원룸 월세를 줄이기 위해서 교외의 값싼 옥탑 전세로 옮긴다. 거주지 이동으로 인해 늘어난 출퇴근 시간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 생각하자. 대신 운동장처럼 넓은 옥상에 고추와 방울토마토를 심자. 반짝반짝 빛나는 별을 보자.
하지만 옥탑 방에서 살아본 사람은 이런 낭만은 TV에 나오는 옥탑이나 가능한 설정임을 알게 된다. 한해살이 동안 깨닫게 되는 것은 여름에는 무척 덥고, 겨울에는 너무 춥다는 사실이다. 프리미엄이 있다면 케이블 신청 없이도 TV 정규 방송을 볼 수 있다는 사실, 그 작은 위로가 전부!
그래서 한번 옥탑 방에서 살아본 사람은 다시는 옥탑 방에서 살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쩌랴. 현실은 냉혹한 법이다. 주인은 치솟는 전세 대란을 이유로 치솟는 전세 인상을 요구한다. 잔업 수당으로 모은 깨알 같은 통장 잔고로는 감당하기 힘든 것이어서, 보다 더 값이 싼 방을 위해서, 보다 더 먼 교외에 다시 옥탑을 얻는다. 그만큼 더 늘어난 출퇴근 시간은 고스란히 노동자의 몫이다. 교외 노동자는 남들보다 1시간 일찍 일어나서 출근을 하고, 남들보다 1시간 늦게 집에 온다. 피로는 간 때문이라고?! 내가 보기엔 정부의 부자를 위한 부동산 정책 탓이다.
개그 콘서트 <생활의 발견> 은 치솟는 집값 때문에 자신의 생활 터전을 빼앗긴 채 쫓겨난 가난한 외각 주거 노동자의 씁쓸한 풍경처럼 보인다. 우울한 88만 원 세대 비정규직 노동자의 풍경이다.
<생활의 발견>이 주는 웃음은 장소와 사연의 엇박자에서 오는 부조화 때문이다. 노릇노릇 구운 삼겹살과 마늘을 상추에 싸서 한 입 가득 입에 물고는 “우리 헤어져!”를 진지하게 말한다. 아, 심각한 이별 앞에 이 주체할 수 없는 왕성한 식욕이라니. 이별과 식욕의 관계는 마치 <금각사>의 미시마 유키오와 <인간실격> 의 다자이 오사무의 관계만큼이나 어색한 상극이다. 이별 앞에서의 왕성한 식욕이라니!
이 엇박자에 깔깔거리며 웃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삼겹살을 입에 물고 이별을 통보하는 것은 그 동안 함께 한 애인에 대한 배려가 아니지 않을까? 그것은 이별에 대한 우리들의 자세가 아니다. 적어도 사랑한 사이라면 이별 통보에 마음껏 울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창 넓고,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조명 낮은 그런 카페 말이다. 왜 하필, 왁자지껄한 식당이 배경이 될까 ?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들의 엇박자가 이해가 간다. 늦은 밤 탈수기처럼 탈탈거리는 버스에 지친 몸을 싣고 집 근처 식당에서 만났으리라. 마음 같아서는 좋은 음식점에서 밥을 먹고, 훌륭한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마지막으로 울기 좋은 카페에 들어가 이별을 이야기하고 싶지만, 도시 노동자들에게는 그럴 만한 시간의 여유도 없고 돈도 없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식당이다. 밥도 먹고 동시에 커피와 술도 마실 수 있는 곳이 바로 식당이 아니던가. 상황이 그러하니 그들은 전기장판 아래 자신의 엉덩이를 지지며 이별을 고하는 것이다. 이렇게 중요하고 심각한 이야기를, 이렇게 왁자지껄 시끄러운, 웃기는 짬뽕 같은 식당에서 고백하는 것이다. 정말, 정말, 정말 웃기는 짬뽕이다.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생활의 발견> 을 볼 때마다 나는, 내 마음 속에서 사는 찌르레기 한 마리가 찌르르르 울어서 마음이 아프다. 깨알 같은 동전을 모으기 위해 늦은 퇴근을 하는 이 밤에, 이별조차도 멋지게 할 수 없는 도심 변두리 식당에서 늦은 저녁과 술과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느린 이별 고백을 한다. 슬픔 앞에서도 침은 고인다. 침이,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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