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한미FTA, 그리고 국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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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여정부’의 자기평가와 국가

   ― ‘참여정부’는 성공적이었다


누군가 한 사람은 연단 앞에서 발을 구르고 주먹을 휘두르며 횡설수설 격정적인 사자후를 토하고, 그 앞에 모인 사람들은 그 사자후에 따라 역시 격정적으로 울다가 웃다가 발을 구르면서 무언가를 연호하는 광경. 바로 광신적 종교의식의 전형적인 모습인데, 지난 2일 오후의 이른바 ‘참여정부평가포럼’의 집회가 비슷한 광경을 연출했던 것 같다. 오죽 했으면, 그 집회를 위해 며칠 밤낮을 걸려 연설문을 썼다는 대통령의 말을 초들어, “대통령이란 일분일초도 민생을 위해 쪼개고 또 쪼개 써야 하는 법”인데 “노 대통령에게는 민생과 국정은 관심 밖인 셈”이라고 쓸 만큼 순진하고 관념적인 한 기자가 “한국정치사상 초유의 전무후무한 원맨쇼를 가졌다”(정경희 기자, <viewsnviews.com> 07. 06. 03.)고 쓰고 있을까만, 사실은 ‘원맨쇼’가 아니라 집단적 광기 비슷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4시간여에 걸쳐서 별의별 얘기가 다 쏟아졌지만, 제도언론이 주로 다룬 것, 즉 대통령 노무현이 한나라당이나 이명박․박근혜 씨에 대해서, 혹은 손학규․정동영․김근태 씨 등에 대해서 무슨 말을 했든, 그것은 우리의 관심 밖의 일이다. 제도언론이야 ‘대선’이라는 일대 흥행의 성공을 위해서도, 또 종파적 목적에서도 그 부분을 띄우겠지만, 사실 그런 얘기들이야 전체 논지에서 보면 지엽적인 것일 뿐 아니라, 서로 차지하고, 서로 많이 물어뜯겠다고 으르렁거리는 것이야 조금도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니까 말이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참여정부’의 맹장들이 벌이는 ‘참여정부평가포럼’ 집회답게, “참여정부의 성과를 파탄이니, 실패니 공격하는 것”에 대한 공격과 ‘참여정부’야말로 성공적이었다는 자화자찬, 그리고 남은 임기 동안에도 기존의 정책방향을 굳건히 견지하겠다는 것이 이날 연설의 주요 요지요, 열광의 주요 근거였다.

평가를 받아야 할 당사자의 그러한 자화자찬의 자기평가에 대해서는 여러 말이 많을 수 있겠지만, 나는 “성공적이었다”는 그 평가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독점자본주의 시대의 국가란 독점자본의 국가이며, 그 현실적인 인적 담당자로서의 정권의 역할이란 모름지기 독점자본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기준으로 ‘참여정부’를 평가할 때, 저들의 자화자찬도, 저들의 열광도, 약간의 과장과 주관적 소망이 담겨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타당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역시 국가, 즉 독점자본의 이익을 위해서 역대 어느 정권 못지않게 성공적․효율적으로 일해 왔으니까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 그 연설에서 이렇게 얘기하고 있지 않은가.


참여정부의 국가발전전략은 21세기형 국가전략의 모범이다....

국가 발전 전략의 핵심은 시장을 넓히는 전략,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전략, 지속 가능한 기업환경을 만드는 전략, 그리고 시장친화적인 사회, 이렇게 크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시장이 넓어야 우리 기업들이 경제적으로 성공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

우선 기업의 경쟁력이 높으면 시장이 넓어집니다. ...

그리고 개방은 시장을 넓히는 전략입니다. ...

이제 우리 한국은 적극적 해외 전략을 채택하고 추진하고 있습니다. 제가 체계적으로 조직적으로 정부에다 지시해서 기업과 함께 이렇게 추진하고 있습니다. ...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

그리고 규제는 적을수록 좋습니다. ...

지속가능한 기업환경을 말씀드리겠다. 당장의 기업환경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환경이 중요한 것이지요. 노사 신뢰의 문화가 있어야 되고 동반 성장과 상생의 경영, 다 말씀드린 것입니다. ...

그래서 사람이 경쟁력이다, 경쟁력 있는 국민을 만들자, ...

경쟁력을 저해하는 국민이 있을 수 있습니다. ... 운운.


결국, 한미 FTA도,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법률도, 철도공사 등 공기업이 앞장선 비정규직의 양산도, 민주노총을 위시한 조직노동자들과 그들의 투쟁에 대한 적대도 바로 ‘참여정부’의 이러한 ‘국가발전전략’에 따른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21세기형 국가전략의 모범”이라고 단언하는 것이야, 21세기야말로 독점자본과 그 국가가 그 생명을 다하고 조종을 울리는 시대요, 자신들이야말로 이른바 ‘좌파(?) 신자유주의’ 전략을 통해서 그 말로를 재촉하는 역사적 소임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리 없으니 하는 흰소리이겠지만 말이다.

참고로, 이날의 연설과 관련하여 한 가지 여담을 하고 넘어가자면, 노 대통령은 최근의 주가 폭등에 크게 고무된 듯 이렇게 외치고 있다.


그 정부의 정책성과는 주가를 보는 것이 훨씬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주식의 가격은 정책 자체를 평가하고 미리 예측해서 투자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체로 장차 발생할 성과를 앞당겨서 지금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것과 같은 주식의 전반적인 폭등이야말로 과잉생산과 그에 따른 이윤율의 전반적인 저하에 기인한 것, 따라서 경제위기 즉 공황이 임박해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철저히 백치인, 정말 뛰어난 경제이론이다!

대통령 노무현의 잔여 임기는 약 8개월. 혹시 이 기간에 요행이 공황이 폭발하지 않고 정권을 넘길 수 있으면, 그는 그 특유의 의기양양함으로 이렇게 소리칠 수 있을 것이다. ― “Voila! 그러니까 내가 뭐~라든!”

이렇게 얘기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지금 경제를 파탄이라고 얘기하고 7% 성장을 공약하는 사람들은 멀쩡하게 살아 있는 경제를 자꾸 살리겠다고 합니다. 걱정스럽습니다. 사실을 오해하고 있으니까 멀쩡한 사람한테 무슨 주사를 놓을지, 무슨 약을 먹일지 불안하지 않습니까? 무리한 부양책을 또 써서 경제위기를 초래하지 않을까, 좀 불안합니다. 잘 감시합시다. ...


참여정부가 계속 간다고 가정하면 우리 경제에 대해서 장담할 수 있습니다. 정권이 바뀌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제가 장담할 수 없습니다.


거리에 노숙자가, 노점상이 넘쳐나든 말든, 수백만 노동자가 실업,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든 말든, 승승장구하고 있는 재벌만이 관심인 대통령, 아니 국가의 관점에서야 당장은 당연히 “멀쩡하게 살아 있는 경제”일 게 분명하다. “지금 경제를 파탄이라고 얘기하고 7%의 성장을 공약하는 사람들”은 물론 한술 더 뜨고 싶은 충동에서 그렇게 떠들어대고 있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2. FTA 저지투쟁과 국가주의․애국주의


지난 5월 25일에 한미 FTA 협정문이 공개되었다. 그리고 “곳곳에 새 독소조항”이라는 지적이 지금까지 한미 FTA를 반대해온 사람들에게 나온 이구동성이었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곳곳에 독소조항이요, 우리는 한미 FTA를 반대한다.

그런데 반대투쟁의 과정에서 나오는 여러 발언들을 보면, 우리는 왜, 어떤 관점에서 ‘독소조항’을 얘기하고, 한미 FTA를 반대하는 것인가, 한미 FTA를 반대하는 투쟁을 벌이면서 노동자 대중이 어떤 일이 있어도 획득해야 하는 최소한의 성과는 무엇일까,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발언들이 여러 문제를 안고 있고, 또 어떤 것들은 해악스럽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한미 FTA가 체결되고 비준될 것이냐, 아니냐. 그 종국적인 내용은 어떤 것이 될 것이냐. 이러한 문제들은 결국은 힘, 즉 그것을 추구하는 독점자본과 그에 반대하는 노동자․민중 간의 계급역관계가 그것을 결정할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유동적이며, 더 적실하게 말하자면 독점자본의 의지대로 관철될 가능성이 대단히 농후한 것이 지금의 현실일 것이다.

패배주의? 아니다. 현실의 역관계를 지적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한미 FTA가 체결되고 아니고가 결코 최종적인 승패를 결정하는 것은 아닐 터이니까, 그 투쟁과 어쩌면 어쩔 수 없는 경과적 패배가 최종적 승리를 향해 가는 디딤돌이게 하기 위해서 투쟁과정에서 무엇을 획득해야 하는가를 중시하는 것이다.

먼저 명확히 해야 하는 것은, 한미 FTA를 둘러싼 전선의 성격이며, 특히 국가의 본질과 기능․역할에 관한 것이다. 한미 FTA 반대투쟁은, 현재의 계급역관계상, 그 저지 여부라는 당장의 승패보다는 그 투쟁을 통해서 노동자․민중의 정치의식을 발전․고양시키는 것이 특히 중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미 FTA를 둘러싼 전선은 명확히 재벌을 위시한 내외 독점자본과 노동자․농민을 위시한 민중 간의 투쟁이다. 연구소의 논쟁을 눈여겨 본 사람이면 기억하겠지만, 한미 FTA는 자유무역을 확대하는 것으로서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의견도 개진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이미 여러 번 밝힌 대로, 시대․사실에 대한 착오로서, 현재의 그것은 결코 19세기 전반에 노동자계급의 ‘원칙적인 지지’를 받던 자유무역의 문제, 즉 반동적인 (반[半])봉건세력 대 자본 간의 전선이 아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반동적인 독점자본 대 노동자․민중 간의 전선인 것이다. 그리고 이는 독점자본의 이익과 착취․수탈의 자유를 최대화하고 있는, 공개된 협정문 내용에 의해서도 충분히 입증되고 있다.

따라서 한미 FTA에 대한 투쟁의 관점은 그것이 어떻게 반노동자․반민중적이며, 자유무역이 아니라 독점자본의 자유, 독점자본의 착취와 수탈의 자유를 강화하는 것인가를 폭로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투쟁과정에서의 선전선동은 바로 노동자․민중이 이를 명확히 심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국가의 문제에 대한 태도와 이해는 특히 중요하다. 노동자․민중의 대대적인 반대․저지투쟁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보았듯이, “국가 발전 전략의 핵심은 시장을 넓히는 전략,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전략, 지속 가능한 기업환경을 만드는 전략, 그리고 시장친화적인 사회, 이렇게 크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운운하며 예컨대 한미 FTA나 비정규직 확산을 위한 입법 등을 강행하고 있는 데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국가 그것은 명백히 독점자본의 지배도구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초계급적이고, 계급 간의 이해를 조정하는 기구인 것과 같은 관념, ‘우리’의 공통의 이해를 지키는 기구인 것 같은 관념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국가주의․애국주의이다.

노동자계급의 생존권 투쟁에 대한 국가의 억압과 더불어, 노동자․민중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이고 있는 한미 FTA는 국가의 본질과 기능․역할에 대한 대중의, 사실은 대중에게 심어진 그러한 잘못된 관념을 바로 잡고, 국가주의․애국주의의 계급적 본질․역할을 폭로할 수 있는 좋은 소재일 것이다.

그러나 한미 FTA를 반대하는 투쟁의 과정에서, 그리고 그 협정문을 분석․평가하면서 나오는 지도적 인사, 지식인, 단체들의 발언은, 많은 경우, 국가에 대한 그러한 몰계급적 관념, 국가주의와 애국주의를 청산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구차하게 여러 예를 들 필요도 없을 것이다. <조․중․동> 등과 같은 독점자본의 신문과 달리 한미 FTA 반대투쟁에 일조하고 있는 <한겨레>의 지난 5월 26일자, 그러니까 협정문이 공개된 다음날의 1면 머리기사 제목은 “‘FTA 이행’ 감독할 17개 위원회․작업반, 미국과 협의 의무화...정책주권 흔든다”이다. 정책주권 흔든다! 전형적으로 국가주의적․애국주의적인 시각․접근이다. 그뿐이 아니다. <동아일보>가 ‘한미FTA 저지 범국본’을 향해서 ‘정당하게도’ “명백히 국민을 사칭”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는 사실은 지난 번(「정세와 노동�� 제23호)에 소개한 대로이지만, ‘범국본’은 협정문에 대해서도 여전히 “국민검증”을 다짐하고 있다. 하다못해 ‘국민학교’라는 명칭도 폐지된 지 오래인 마당에 도무지 국가․국민에 대한 계급적 문제의식이 전무한 것이다.

한미 FTA를 반대한다면서 문제를 독점자본 대 노동자․민중 간의 전선으로 제시하는 대신에 ‘한국 대 미국’으로 제시하면서 ‘경제주권’ 운운할 때, 그것은 어떤 실천적 의의를 가질까? 그것은 다름 아니라 노동자․민중을 들어서 한국의 독점자본의 대리전을 수행하는 것이다. 사실은, 한미 FTA는 한국과 미국이, 양국의 정부가 그것을 체결하기로 작정했을 때 이미 거기에 독점자본과 노동자․민중 간의 전선이 설정된 것이고, 그 구체적 조문화를 위한 협상이란 주로 독점자본 간의 이해다툼, 그 조정일 뿐이다. 따라서 그걸 두고 유․불리를 따진다는 것 자체가, 하물며 한국에 유리하니, 불리하니 하고 따지는 것 자체가, 실제로는 어느 독점자본인가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일 뿐인 것이다.

물론, 여러 사람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협정문의 내용엔 ‘한국’에 불리하고 ‘한국의 (경제)주권’을 제약하는 내용, ‘독소조항’이 곳곳에 있을 것이다. 패권국 미합중국과 사실상 그 절대적인 ‘영향력’ 하에 있는 대한민국 간의 협정이기 때문에 그것은 사실 애초부터 예정되어 있던 것이고, 불문가지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기본적으로 한국의 노동자․민중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의 독점자본’의 문제, 대한민국의 문제이다. 그들 스스로 감수하고 형성해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격(格), 혹은 품격(品格)의 문제인 것이고, 그것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일 뿐이지, 노동자․민중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일부에서 “노무현 정권의 모욕”이라고 표현하는 이른바 ‘재협상’의 문제 역시 물론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이 재협상과 관련하여 한 가지 언급해두어야 하겠다.

저들은 협정에 이른바 ‘노동․환경 기준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을 재협상의 주요 필요로 내세우는 모양이다. 그러나 물론 우리는 거기에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다. 주지하는 것처럼, 문제를 그렇게 제기하고 있는 미국이야말로 예컨대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교토의정서의 비준을 거부하는 등 가장 반환경적인 국가, 독점자본집단이며, ILO 협약이라는, 부르주아적 기준의 노동자 권리협약에 대해서도 가장 거부감이 강한 국가, 독점자본집단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사실, ‘노동․환경 기준을 반영’하기 위한 재협상은 노동자․민중의 반FTA 전선을 교란하기 위한 미국의, 그리고 어쩌면 한․미 간에 묵계된 상투적 수법일 뿐이다. 1990년대 초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때에도 클린턴 행정부는 전임 부시 행정부가 서명했던 그것을 같은 명분을 내세워 재협상하는 소동을 벌인 적이 있다. 그것이 멕시코나 미국․캐나다의 노동자계급에게도, 그들의 환경문제에도 아무런 긍정적 역할을 한 바 없음은 물론이다. <노사과연>


‘참여정부’, 한미FTA, 그리고 국가주의



채만수 |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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