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대선

― 거기에 노동자계급은 없었다

이십 여 회에 걸친 감상과 토론을 끝낸 지금 내가 과연 브레히트에 대해 얼마나 이야기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는 손가락 하나 하나가 천근만근 무겁기까지 합니다.

이제 브레히트를 처음 알게 된, 호기심에 가득 찬 어린 아이의 일기처럼 첫 번째 세미나의 후기를 올려봅니다.   


다양한 예술적 분야에 관심이 많은, 혹은 일부는 업으로 삼고 계신 팀원분들로 인해 토론의 주제는 작품분석을 기본으로 현대의 음악, 미술, 공연문화 등 다양한 주제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한스 아이슬러(Hans Eisler), 쿠르트 바일(Kurt Weil), 로테 레냐(Lotte Lenya) 등 브레히트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음악인들의 다양한 LP들을 턴테이블의 정겨운 잡음 혹은 바늘 튐 현상과 함께 감상할 수 있었다는 사실 또한 훈훈함을 더해 주었습니다.


브레히트와 쿠르트 바일의 공동작품 “Alabama Song(Whisky Bar)" ― 록 밴드 도어즈(Doors)의 버전으로 더 잘 알려졌죠 ― 으로 시작된 세미나는 브레히트의 작품들을 연대별 혹은 사상의 변천(혹은 강화)별로 감상,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작품감상 중간에는 이론(놋쇠 사기, 브레히트의 연극이론)과 사상적 배경(교육극)에 대한 토론을 병행하며, 작품감상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더해갔습니다.

맑시즘을 공부하던 시기의 날이 번득이는 교육극 작품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극을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파격적인 이론, 연극기법 등과 함께 완성한 서사극까지, 브레히트는 체제를 뛰어 넘는 최고의 작가라는 점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비록 그 ‘브레히트적 기법’ 이라는 것이 현재성이 있느냐라고 하는 점은 논외로 치더라도 우리가 최초에 세미나의 목표로 삼았었던 ‘어떻게 창작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적어도 ‘생각하는 원칙’에 대한 방향을 잡아 주었다는 점에서는 어느 정도는 목표달성을 이루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브레히트의 작품들이 실제로 어떻게 무대에 올려졌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도 했습니다. 브레히트의 작품을 각색한 <달수의 저지 가능한 상승>(극단아리랑)은 우리가 예상했던 ‘브레히트’적 기법(현재성을 가지고 있는)이나 사건의 역사화와는 거리가 먼 신파적인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 작품이었지만, 브레히트의 작품들이 반동적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경우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아, 연극은 재미있었습니다. 브레히트는 훌륭한 이야기꾼이니까요.

노동자 뉴스 제작단에 찾아가서 진행한 브레히트가 각본을 쓴 최초이자 마지막 영화 ‘쿨레밤페’의 감상도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접하기 쉽지 않은 30년대 흑백영화이고, 한글자막의 불완전한 번역으로 인해 영화가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점은 아쉬운 점이었지만.


세미나는 반복되는 당대의 사회적 문제를 첨예한 시각으로 바라봤던 뷔히너, 페터 바이스 등의 작품 감상과 토론을 거쳐, 브레히트를 비판적으로 계승했다고 평가받고 있는 동독의 하이너 뮐러의 작품들로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브레히트가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설득력 있는 언어로 좀 더 쉽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다가왔다고 한다면 뮐러는 압축된 문장 하나 하나에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문제제기를 하면서 독자들을 극도의 혼란 속으로 몰아넣는 타입의 작가였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무시하고 늘어놓은 퍼즐을 맞춰야만 했고, 그 퍼즐을 맞추고 나면 그 의미를 여러 가지 관점으로 해석해 다시 끼워 맞추는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구서독 시절부터 활동한 인더스트리얼(기계적인 효과, 악기 등을 사용하는 음악) 밴드인 아인쉬튀르첸데 노이바우텐(Einsturzende Neubauten. ‘무너지는 새 건축물’이라는 뜻)이 해석한 ‘햄릿기계’도 실타래처럼 얽힌 머릿속을 정리해주지는 못했습니다. 하이너 뮐러에 대한 연구는 아마 계속 될 것 같습니다.


이상 두서없이 그냥 끄적여본 첫 번째 미학세미나의 후기입니다. 세미나가 거의 끝날 즈음 어느 뒷풀이에서 팀원 분 중 한 분이 그러시더군요. 이론만으로 공부하는 건 정말 어려운데 이렇게 작품으로 공부할 수 있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고. 저 역시 그 말에 고개가 끄덕여 지더군요. 이 시대의 작가들이나 예술가들이 해야 할 일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상투적이지만 브레히트의 시 중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졸필을 마칠까 합니다.


나는 지빠귀란다.

얘들아, 먹을 것이 하나도 없구나.

여름 동안 한결 같이 이웃집 정원에서

새벽녘에 노래 부른 것이 바로 나였단다.

조금만 도와다오.

        지빠귀야. 이리로 오너라.

        지빠귀야. 여기 네가 먹을 낟알이 있다.

        좋은 일을 해주어서 참으로 고맙다!


브레히트의 시집 [살아남은 자의 슬픔] ‘새들이 겨울 창밖에서 기다리네’ 중.


<노사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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