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을 건 GM대우 부평 고공농성 투쟁

― 비정규직 투쟁의 불꽃이 되리라

반복되는 고공농성



반복되는 고공농성, 그러나 더욱 절박하다.


근래의 고공농성 투쟁만 열거한다고 해도 한 둘이 아니다. GM대우 창원공장1), 코스콤, 뉴코아, 이랜드, GS칼텍스 ... 노동운동이 변혁성과 전투지향성을 점점 유실하고 투쟁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산발적으로 진행되고 있기에, 낭떠러지에 몰린 노동자들이 고공을 거점으로 투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처럼 되어 버렸다. 그리고 또 하나 GM대우 부평공장에서도 비정규직 동지의 고공농성이 벌어지고 있다. 금속노조 GM대우자동차 비정규직지회(이하 ‘GM 비정규직지회’, 혹은 ‘지회’) 조직부장 박현상 동지는 12월 27일부터 고공농성을 지속하고 있다. 체력이 아니라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다는 의사의 진단에도 최장기 고공농성기록을 깨며 투쟁을 지속하는 데에는 그만큼의 절박함이 있음은 당연한 것이다. 





2001년 투쟁의 쓰라린 패배


김대중 정권하에서 정권퇴진구호를 전면화하면서 전국을 뒤흔든 계급투쟁이 바로 부평에서 있었다. 대우의 2000명 희망퇴직 이후 1750명의 정리해고 발표가 있자, 전선은 대우로 집중되었다. 부평일대는 준전시 상황을 연상케 하였다. 대우자동차 투쟁은 정리해고자들만의 투쟁이 아니라 노동운동⋅학생운동이 결합하였고 제 사회단체들이 투쟁을 엄호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뼈아픈 패배였다. 투쟁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2001년 투쟁이후 공권력에 의해 노조집행부와 공장의 노동자 대중을 분리하며, 사측은 사조직을 육성하여 회사 살리기 이데올로기를 유포하였다. 심지어는 회사가 희망퇴직 방법 등으로 노력하였는데 노조가 이를 거부하였기 때문에 대량정리해고 사태가 벌어졌다는 호도가 있었다. 이는 대우자동차정상화추진위원회(정추위)와 같은 사측의 사조직을 중심으로 유포되었다. 결국 투쟁하는 집행부가 아니라 협조주의 지도부가 들어서게 되고2), 400명 복직에 400명 비정규직 고용합의 식으로 사측과 거래를 하는 작태를 자행하게 된다. 이전의 합의보다 심각하게 후퇴한 합의라는 것이 분명한데, 더 큰 문제는 400명 복직에 800명 비정규직 고용 합의 식으로 계속 뒷걸음을 쳤다는 데 있다. 정리해고 노동자는 순차적으로 재고용되었지만 비정규직 양산이라는 비극이 자라나고 있었다. 그나마 정리해고자 복직에 있어서도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우선순위에서 배제하는 식으로 자본은 현장을 잠식해갔다. 어용 사조직은 작업장 배치 산재신청 등에 있어 자신들을 통해야지만 문제를 쉽게 처리할 수 있게 하는 방식으로 노동자대중들에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노동강도 강화와 산재사망자 발생 등으로 공장에는 더욱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계급투쟁의 신호탄


지난 1월 29일 이명박은 민주노총 방문을 취소하고 GM대우 부평공장을 방문하였다. 법과 질서의 준수, 파업이나 시위 엄단의 의지를 천명한 이명박은 일말의 기대라고 품고 있었을지 모를 소위 국민파 지도부에 경종을 울렸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전 노동계급에 전쟁을 선포한 셈이다. 비정규직 노조는 “이명박 당선인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규를 들어라”라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시위하였다. 이명박은 상당히 단촐한 인원으로 인천 부천 지역의 전경의 호위 하에 공장에 신속하게 진입한다. 전경의 장벽으로 피켓을 가리는 치졸한 방법이 동원되었다. 공장에서 이명박의 망언은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일자리가 있으면 서민이 아니다”. GM대우의 ‘노사화합’은 이명박이 제시하는 청사진에 가장 가까운 사업장인 셈이다. GM비정규직 지회에서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한마디라도 언급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와 관련해서는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단지 ‘서민’ 문제 해결을 위해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그 일자리가 비정규직이든 뭐든 이명박이 상관할 바는 아니다. 이명박 정권은 GM을 본보기로 노사협조주의라는 떡고물과 함께 비정규직을 더욱 양산하며 노동운동을 법의 이름으로 짓누르겠다는 의지를 천명하였다. 고공농성이 진행 중이던 바로 그 대우부평공장에서!



상식을 초월하는 GM의 비정규직 탄압


GM이 대우를 인수하였기 때문에 대우가 살아났다는 선전이 난무하지만 그것은 노동자들의 막대한 희생을 전제로 한 것이다. 애초에 GM이 김대중 정권과의 교감하에 대우를 인수할 수 있었음은 너무나 명백하다.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여하여 회사를 살려낸 후에, 또 노동조합 활동관련한 단서 조항을 달고서 GM은 대우를 인수하였다. 법인세 전액 감면이라는 특혜도 따랐다.

GM인수 이후 도급업체에서 비정규직을 채용하는 방식으로 본격적으로 비정규직을 양산하였다. 비정규직 개악법 통과는 GM의 계획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다. 1도급 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숫자만 약 1500여명(2006년도 지회 파악 수치)이다. 1차 하청업체가 16개이니 업체당 약 100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있는 셈이다. 2차 3차 하청까지 포함하자면 업체 숫자도 불분명해서 정확한 숫자 파악이 힘들지만 대략 2500여명이다. 조립라인에 비정규직 노동자가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으며 정규직 노동자보다 더욱더 높은 강도로 일하고 있다. 2007년부터 생산성 향상 15%정책으로 비정규직 공정 외주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물론 지능적인 GM자본은 노동자들의 반발을 고려하여 순차적인 방식으로 외주화를 진행하는 교묘함을 보였다. 사내하청을 통한 간접고용으로 전환됨에 따라 업체 계약해지가 바로 노동자의 해고로 이어지는 구조가 되었다. 2007년 7월 1일 닉 라일리 전 GM대우 사장은 GM대우 부사장 및 GM대우 아시아ㆍ태평양지역본부 사장으로 승진해서 한국을 떠났다. 그의 미소 뒤에는 2006년 창원에서 32일간의 고공농성을 진행한 권순만 동지를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피눈물이 있었다.

2007년 초 조립라인 하청업체 디와이티가 빠지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를 해고하자 이를 계기로 투쟁이 시작되었다. 조립라인 하청업체에서는 스피드 파워월드 관리자가 노동자를 폭행했는데 오히려 폭행당한 노동자를 해고하는 만행이 일어났다. 하청업체 진합, 욱산에서도 해고가 이어졌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산발적인 것에서 점화 조직적으로 체계적인 것이 되었다.

GM의 노동자 탄압의 방식은 간단히 요약할 수 있다. 정규직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분할 통치한다. 노동자들의 투쟁을 최대한 산발적인 것으로 제한한다. 투쟁이 진행된다면 징계, 공장출입금지, 해고 등으로 핵심투쟁대오를 외곽으로 내몰며 노동자대중과 고립시킨다. 업체는 공정이 빠질 때마다 이를 숨기고 외주화 며칠 전에 이를 발표한다. 업체가 바뀌는 경우에 고용승계를 해줄테니 걱정말라는 사탕발림으로 노동자를 회유한다. 그러다가 노동자의 뒤통수를 때린다.

여러 비정규직 사업장에서 그러하듯 기본적인 조합활동을 보장하지 않고, 교섭을 회피하는 것은 기본이다. 지회 설립이후 16차례에 걸친 교섭요청이 있었으나 이를 대부분 묵살하였다. 물론 단지 이 정도에서 끝난 것은 아니다. 식당 안에서 노무팀이 폭행을 가했으며, 심지어 노동조합 사무실 앞에서 집단폭행을 자행하기도 하였다. 노무팀, 안전과(Security team)의 폭력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사태가 이지경이니 관리자 눈 밖에 나서 남몰래 폭행을 당하는 노동자들의 수는 부지기수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것도 모자라서 용역깡패를 동원하고 있다.

하청업체 욱산기업은 비정규직지회가 조합원 명단을 다 공개했다는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한 명 한 명을 개별적으로 불러 고문에 가까운 압박면담을 진행하고, 조합원으로 파악되는 노동자들에게는 온갖 협박과 회유로 탈퇴를 종용하는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하고 있다. 욱산기업, 대일실업 등은 조합활동에 대해 구두경고를 하거나 아예 서면 경고장을 남발하기도 하였다. 2007년 12월 13일 인천지방법원은 ‘조합활동 방해금지 가처분신청’건에 대해 ‘욱산기업, 파로스, 스탭포유, 대우제일 업체의 조합활동 방해행위를 인정하였다. 그러나 GM대우 원청을 상대로 한 부분을 인정하지 않는 모순된 판결을 내놓았다. 또 판결이후에도 욱산과 같은 하청업체는 조합활동 방해행위를 그치지 않았다.3)

노동탄압의 단골메뉴인 손해배상청구가 하청업체 디와이티, 스피드 파워월드 라인점거에 대해 자행되었다. 자본은 직접적인 이윤타격에 곧바로 반응하지 않을 수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이중 스피드 파워월드의 경우 투쟁을 통해 손해배상을 철회하게 만들었는데, 투쟁으로 적들의 공세를 정면 돌파해낸 전형적인 사례라 하겠다.

비정규직 지회에서 새로 전입한 북부지청 근로감독관을 만나러 경인지방노동청인천북부지청 사무실을 방문하였다. 근로감독관의 책상위에는 GM대우 전무이사 조○○ 노무담당 최고임원의 이름으로 난 화분이 놓여있었다. 근로감독관 전입일까지 챙길 정도로 꼼꼼한 GM자본이다.4) 일개 근로감독관의 전출일을 챙기는데 언론, 검경, 법조계에 떨어지는 떡값의 규모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비정규직 지회의 숨가뿐 투쟁 그리고 고공농성


2007년 9월 2일 하청업체 투쟁의 성과를 통해 비정규직 지회가 총회를 통해서 정식으로 출범하게 된다.5) 설립 이후의 투쟁은 결코 녹록치 않은 것이었다. 지회 설립 2주안에 35명이 해고되었다. 이는 지회 간부 표적 해고와, 보복성업체 폐업으로 인한 것이다. 한가위 명절에 20통의 계약해지 통지서가 배달되었다. 스피드파워월드는 보복성 업체폐업을, 욱산기업은 구조조정을 빌미로 조합원 2명에 대한 선별적인 정리해고 통보를 자행했다. 하청업체의 외면과 GM원청 시간끌기 전술. 더군다나 GM원청은 2007년 9월 20일 금속노조 정갑득 위원장과 약속한 ‘지회에 대한 폭력탄압 재발 방지 및 ’업체 변경시 인위적인 인원정리 금지‘ 약속을 이미 위반하였다. 또 하청업체 에이앤티텍은 GM 비정규직지회와 확약서까지 작성한 스피드 파워월드 해고자 10인에 대한 복직 합의서를 파기하고 단 3명만을 복직시켰다.

GM 비정규직 지회는 2007년 10월 30일 천막농성 돌입이후 쉴새없이 투쟁을 전개하였다. 하청업체 사무실 점거농성, 5개 거점 1인 시위(미대사관, GM대우자동차 전시장, 미상공회의소, 마이클 그리말디 사장 집,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노동청항의 집회를 이어갔다. 천막농성장을 시작하면서 농성장이 바로 지회 조합사무실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농성장 교육이 이어졌다. 노동운동의 역사,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경제, 신자유주의, 노동조합이란 무엇인가, 노동조합법, 비정규직이란 무엇인가,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투쟁사례 학습 ... 천막농성과 현장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투쟁의 원칙을 지켜내는 데 역점을 두었다. 조합원 1인은 곧 1선전 주체가 되었다. 각자가 플래카드, 소원띠 만들기, 피켓 만들기 등 선전작업을 분담하였다. 사탕에 꼬리표 붙여 선전물을 나누어주는 아이디어도 피어났다. 농성장 운영을 통해서 소모임도 육성하였다. GM 비정규직지회 홈페이지에 투쟁영상을 올리고 있는 영상소모임 아라도 (http://dwbi.nodong.net/)를 비롯하여, 기타연주, 바둑, ‘몸짓 선언’과 함께하는 몸짓 배우기, 족구와 같은 운동 등 지회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소모임을 꾸렸다. 지회 활동에만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이랜드 투쟁 등 연대투쟁에도 결합하였다.

연일 투쟁이 이어졌지만 생산라인 타격을 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자본을 직접적으로 압박하는 수단이 필요했다. 지회의 핵심 3대 요구안은 다음과 같다. ①외주화 저지 ②해고자 완전복직 ③비정규직 지회 인정. 비정규직 투쟁이 장기화되는 여러 사례를 통해 이를 연내에 해결하기 위해 적어도 해고자 완전복직의 과제만이라도 연내에 해결하자는 결의가 있었다. 12월 26일 에이앤티텍 점거투쟁 사무실 점거투쟁이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날 고뇌의 결단으로 고공농성투쟁을 결정하였고, 박현상 동지가 고공투쟁을 결의하게 된 것이다. 12월 27일 부평구청역 30M의 CCTV 관제탑에 박현상 동지가 올라갔다. 제대로 발 뻗을 공간도 없는 좁은 장소였고 처음 며칠간은 바람막을 비닐도 없는 상태였다. 농성과 동시에 용역깡패 150명이 투입되어 현재까지 장기간 공장을 점령하며 출입문에서 조폭식 인사, 상시적인 공장 사찰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며 인권을 유린하고 있다. 지방에서 오는 ‘아그들’을 데리러 터미널로 향하며, 바쁘게 전화통화하던 그들이었다. 일인당 일당을 ‘레벨’이 제일 떨어지는 10만원으로 계산한다 하더라도 하루 1500만원의 비용이 용역깡패 고용에 드는 것이다.6) GM대우 원청은 감시카메라까지 동원하여 천막과 고공농성장 주변 조합원을 24시간 감시하고 있다.7) 관제탑에 조금만 접근해도 바로 형사가 따라 붙는 삼엄한 상황이다.

2007년 내 해결을 목표로 고공농성을 돌입하였으나 GM은 지금까지도 노동자들을 벼랑끝으로 내몰고 있다. 1월 10일 추가고공철탑농성을 계획하였으나 실패하였다. 도청이 되었는지 당시 투쟁을 미리 감지한 경찰은 사다리를 다 자르는 방법으로 고공에 오르지 못하게 하였다. 이에 굴하지 않고 다음날 부평역 철탑에 올라 10시간 고공농성에 성공하였다. “해고자 전원 복직”, “GM대우는 비정규직 탄압 중단하라”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내걸며 부평에 투쟁소식을 전하였다. 1월 24일 한강대교에 5명의 노동자들의 목숨을 걸고 올라가서 고공시위를 벌였다. 노골적인 친자본 당선자 이명박을 향하는 절절한 투쟁의 외침이며 절규였다. 1월 25일에는 군산과 창원동지들에게 투쟁소식을 전하며 연대투쟁을 호소하였다. 2008년 1월 30일 하청업체 스피드 파워월드의 체불임금 배당 확정판결이 났다. 투쟁을 통한 작은 승리이다.

박현상 동지는 체력이 아니라 정신력으로 고공농성 투쟁에서 버티고 있다. 이미 농성 2주차 4주차에 농성탑에 올라간 의사는 박현상 동지는 근육퇴화의 위험이 있고, 체온저하로 인한 쇼크 위험이 있으니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고 하였다. 아직까지도 GM자본은 꿈쩍하고 있지 않으니 사람의 목숨도 자본의 이윤 앞에는 중요치 않다는 잔인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오히려 경찰과 용역은 안전펜스 설치를 꾀하며 강제로 고공농성자를 끌어내릴 궁리를 하고 있다. 이미 박현상 동지는 혼자서 내려 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사다리차로 실려 내려오게 된다면 바로 병원으로 후송해야 한다. 그런데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는데 강제로 끌어내릴 궁리를 하는 것인가!

 


반복되는 정규직 노조의 외면


자본의 분할 전략에 고통받는 것은 비정규직/정규직 모두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차별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상대적’인 안정성을 보장받는 정규직 노동자는 현 상태에 만족하고 순응하는 듯하다. 더군다나 GM대우 정규직 노조는 적극적으로 사측에 협조하며 비정규직 투쟁을 외면하고 있다. GM대우 내수부진이라는 진단에 ‘단종된 GM의 캐딜락과 독일의 오펠사로부터 주문받아 생산 중인 SUV `안타라`를 내수시장에 내놓자’는 아이디어까지 제공했다. GM 본사의 릭 왜고너 회장은 이남묵 GM대우 노조지부장과 만난 자리에서 "GM대우에 대해 매일 보고를 받고 있다. 내수시장 확보와 신차출시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8) 고공농성이 진행 중이던 지난 1월 29일에는 이명박, 마이클 그리말디 사장과 이남묵 GM대우 지부장은 파안대소로 악수하며 노사화합을 결의하였다. 비정규직 투쟁에 최소한의 ‘성의’조차 보이지 않았음은 물론이다9). 그러나 비정규직을 방패막이로 삼아 정규직 노동자들의 상대적 안정성을 보장받는 것조차 앞으로 결코 녹록치 않을 것이다. 



<대우자동차 재무 및 순익상황10)>

(단위: 백만원)

구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매출액

614,296

4,276,923

7,531,273

9,604,122

영업 이익

-96,300

-255,098

-28,843

335,642

당기순 이익

-130,559

-222,635

65,464

592,757

위의 표에서 2005년도부터 대우자동차의 영업이 온전한 순이익을 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만큼 비정규직을 늘리고 노동강도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또 ‘내수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고용을 확대하는 대신, 2007년부터 ‘생산성 매년 15% 향상 운동’을 전개하며 더욱더 노동자를 쥐어짜기에 바쁘다. 생산 편성 효율을 최대치로 높여서 투입 인원을 최소화하는 것인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일상적인 해고와 전체 노동자들의 노동 강도 상승은 필연적인 결과이다.11) 뿐만 아니라 사실상 미국 경제가 공황에 돌입하고 있고 이것이 전세계적인 연쇄반응의 도화선이 되는 것이 시간문제이다. 엄혹한 시기에 제1차 공격대상은 노동계급이며 정규직이 결코 예외가 될 수 없음은 역사가 가르쳐 주는 바이다. 이미 지금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이 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강도 강화로 이어지고 있다. 자본은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전환배치마저 입맛에 맞게 진행하려 하고 있다. 또 GM대우 경영진이 단물만 빨아먹고 중국으로 갈것이라는 소문이 있는데 이는 전혀 근거없는 것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원상회복 투쟁동지회(정원투)와 같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불씨가 되어 확장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대우 정규직뿐만 아니라 산별노조의 공동투쟁이 절실하다. 진정한 산별정신은 비정규직 현안문제부터 함께 결의하고 공동투쟁하는 것이다.



연대투쟁으로 승리하자


이명박의 행보가 GM으로 향했다는 것에서 이미 GM대우 비정규직 투쟁이 단사의 투쟁이 아니라 전국적 계급투쟁의 핵심임이 명확해졌다. 그렇다면 더욱더 GM 비정규직 동지들만의 절규와 몸부림으로 투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의식적으로 투쟁에 결합하고 선전하는 것부터 투쟁기금을 지원하고 지지선언을 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자발적인 연대투쟁이 필요하다. 지금 바로 지회 홈페이지(http://dwbi.nodong.net/)에 들르길 바란다. 동지의 지지글 한자 한자가, 동지가 모아준 투쟁기금이 승리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 인터뷰 요청에 흔쾌히 응해주신 동지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사측에서 노동자들과 분리하기 위한 ‘학출’ 거짓선동으로 졸지에 ‘이대 나온 여자’가 된 GM 비정규직지회 선전부장 김명희 동지, 노동사회과학연구소에서 왔다고 하니 ‘2001년 당시 정리해고 일부수용을 주장한 한노사연 아니냐’고 경계하시던 익명의 정규직 활동가에게 연대와 투쟁의 인사를 전한다. 글을 마무리하는 순간까지 고공농성을 지속하고 계시는 GM 비정규직지회 박현상 조직부장 동지께 부끄러운 글을 바친다. <노사과연>


1) 최상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