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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산행에서

운이 좋게도 친구들과 지리산을 갈 수 있는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그리고 작년에 힘든 치료의 과정이 있어서인지 몸도 가뿐했다. 겨울의 지리산은 생각보다는 포근하게 반겨주었다. 등산로에는 뿌리가 반쯤 드러난 나무들이 곳곳에 보인다. 어떤 나무는 아예 옆으로 쓰러져 등산객들이 걸터앉아 쉬었다가기도 한다.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가지 않는다면 나무로의 삶을 영위하며 산의 푸른빛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었을 것이다. 혹은 산새들의 휴식처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예전부터 등산로의 나무들을 보면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이번 산행에서는 왜 불편할까를 생각해보았다. 대자연을 느낀답시고 산행을 통해 다른 생명체들을 괴롭힐 권리가 과연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 들었다. 그냥 이전처럼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한다고 편해지지가 않았다. 어쩌면 나는 나무들의 닳은 가지와 뽑혀 나온 뿌리가 불편할지 모르나, 나무의 입장에서는 아무렇지 않거나 나름대로 기쁨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쉽게 오르기 위해 나무의 가지와 뿌리를 밟거나 매달리거나 붙잡는 것을 안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이든 중요한 건 내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는 것이다. 그건 바로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 때문이었다. 경계를 짓고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 판단하는 마음을 내려놓기로 했다. 그래도 예전에 어렴풋이 들은 것 같은 나무의 비명이 자꾸 생각이 났다.

아무래도 내 존재가 다른 생명들을 괴롭히지는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산에 들면 커지기 때문에 불편해하는 것 같았다. 첩첩 산중에 있으면 오직 사람만 없으면 이 자연이 그대로 아름답게 유지가 될 것만 같다. 오직 사람만이 부질없고 하찮아보인다. 그래서 등산로가 패여 바위가 드러나고 나무의 뿌리가 드러나는 것도, 계단을 설치해놓는 것도 다 불편한가 보다. 등산을 하는 나의 존재도 그러한 훼손의 일부를 하고 있으니까 불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결국 나라는 존재가 다른 사람들, 다른 모든 생명들을 위해 보탬이 되는 것으로 보답하기로 다짐했다.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다.

천왕봉의 일출을 보려면 3대가 덕을 쌓아야한다고 했다. 첫 번째 산행에서 못보고 두 번째에서 보았으니 더 바랄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정성스레 마음가짐을 바로 하고 빌어보았다. 천왕봉까지의 새벽산행 전 잠을 청한 장터목산장의 밤은 너무나 추웠다. 옷을 껴입고 최대한 모포로 둘둘 말았건만 뼛속까지 찬기가 들어와 괴롭혔다. 잠을 뒤척이며 나의 불면을 천왕봉 일출을 위해 바쳤다. 그러다보니 점점 정신이 맑아지고 또렷해졌다.

문득 왜 매일같이 오는 일출의 모습을 분별할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매일같이 해는 떠오른다. 그 모습이 그대로 보이기도 하고 구름이나 다른 것에 가려져있을 뿐이다. 사실 처음 천왕봉에서 역시 눈앞에서 구름이 만들어졌다가 사라지는 진기한 체험을 대신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굳이 남들처럼 구름 없는 일출만을 바라는 것일까? 이런 생각들로 날을 지새우다가 내린 결론은 천왕봉 일출의 장관을 보려는 간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새해 소망처럼 얼마나 지켜질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해가 따사롭다고 느끼거나 먼 산의 푸른빛이 반짝거리면 간절하게 받아들인 이 시간들을 소중하게 사용해서 꼭 보탬이 되리라고 다시 한 번 다짐할 지도 모른다. 그렇게 조금 더 성장해 갈 것이다.
덧붙이는 말

필자는 평화인권연대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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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 평화칼럼 , 지리산 , 산 , 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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