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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현장
강제 철거로도 꺾을 수 없는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 투쟁 대추리 도두리 황새울 지킴이 한종현
5월 4일 야만적인 대추분교 철거, 황새울 들판에 설치한 철조망, 그리고 그 안에 막사를 친 군부대. ‘군사시설보호구역’이라는 일방적 선포… 절대농지로 지정된 285만평의 평택 평야를 군사시설로 만든 이 사건은 1980년 5월 광주 이후로 처음 일어난 민간인 상대 군사작전이었으며 이는 국민을 상대로 한 명백한 쿠데타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날 이후 대추리, 도두리 초입에서 경찰의 불법검문이 시작되었습니다. 무작정 사람을 막고 신분증을 요구하고, 요구에 응하던 응하지 않던 간에 주민이 아니면 들여보내지 않습니다. 비무장지대도 신분증을 제시하면 들어갈 수 있는데, 이곳은 그렇지 않습니다. 8월이 되자 국방부는 본격적으로 빈집철거를 하겠다며 압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주민들과 지킴이들은 그에 굴하지 않고, 더욱 더 일상생활을 열심히 하였습니다. 김장을 위해 배추와 무를 심었고 마을잔치를 열어 투쟁의 의지를 높였습니다. 지킴이들은 철거를 대비하여 매일 대책 회의를 하였습니다. 평화를 지키고 오기성 지킴이의 석방을 위한 ‘지킴이 선언’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평화전망대’를 만들어 주민들과 지킴이들이 올라가 황새울에 펼쳐진 국방부의 만행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8월 말이 되면서부터 국방부의 강제철거가 피부에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철거용역업체 차량이 마을을 돌아다니며 조사를 하였습니다. 철거 이틀 전에는 사람이 사는 집에 몰래 들어가다가 주민들에게 발각되기도 하였습니다. 국방부 헬기와 경찰 헬기는 마을과 들판을 저공비행하며 자신들의 ‘작전’을 위한 사진을 찍었습니다. 지킴이들은 강제철거로 예정된 9월 11~13일 동안 밤잠을 자지 못하고 순찰을 돌았습니다. 12일 새벽엔 군부대의 병력 이동이 있었습니다. 새벽에 줄지어 보이는 차량들의 불빛에 우리는 긴장감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폭풍 전야인 듯 고요한 12일을 보낸 뒤 13일 새벽, 대추리와 도두리 양쪽에서 끝없이 전경버스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30, 40대 정도 세어보다가 차량 숫자 세기를 그만두었습니다. 수백에 달하는 경찰차량들은 보기만 해도 긴장과 공포가 느껴졌습니다. ‘과연 우리가 저렇게 많은 병력을 이겨낼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마을 안에는 주민들과 지킴이들이 아무리 많이 잡아도 200명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경찰들은 1만 8천명이나 되었고 철거 용역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들의 집을 부술 포크레인이 있고 우리들을 진압할 봉과 방패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맨 몸과 현수막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평화를 외치고 강제철거를 중단하라고 할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집을 지키고 주민들을 향한 철거협박을 이겨내려고 했습니다.
지킴이들은 집을 지키기 위해 평화전망대에 쇠사슬로 몸을 묶었습니다. 집집마다 지붕에 올라가 몸을 묶고 평택을 지켜달라는, 강제철거를 중단해달라는 피켓과 현수막을 들었습니다. 지붕에 올라가지 않은 지킴이들과 주민들은 사방에서 몰려오는 경찰들을 저지하기 위해 맨몸으로 저항했습니다. 비록 숫자는 적었지만 우리의 의지를 일방적인 폭력으로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경찰은 전망대에 몸을 묶은 지킴이들을 연행하고 주민들과 함께 지키던 지킴이들을 연행하였습니다. 또한 대추리, 도두리로 들어오려는 지킴이들도 연행하였습니다. 철거용역들은 경찰의 비호 아래 집을 하나하나 부수어 나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킴이들이 지붕에 올라가 지키는 집은 차마 부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용역들은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을 두 채나 부수는 만행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행위는 그들의 철거행위에 부담을 주었고 마을을 지키려는 주민들과 지킴이들의 더욱 거센 분노와 저항을 일으켰습니다. 오후가 되자 경찰들과 용역들이 물러나고 주민들과 지킴이들은 40여 채의 집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비록 부서진 집들의 잔해는 남았지만 주민들과 지킴이들은 더욱 더 열심히 싸워 끝까지 가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국방부는 강제철거를 하며 주민들에게 ‘나가지 않으면 이렇게 된다’고 협박했지만 그들은 실패했습니다. 주민들의 의지는 오히려 더욱 강해졌습니다. 이 땅을 절대 줄 수 없다는 마음과 평화를 지키기 위한 마음이 커졌습니다. 마을은 곧 일상을 되찾았습니다. 배추와 무에 비료와 물을 주었고 고추를 말리기 시작했습니다. 창고에서 쉬던 농기계들을 정비하여 철조망 바깥쪽에 있는 벼들을 수확하기 시작했습니다. 언제 다시 철거가 들어올지 몰라도 주민들과 지킴이들은 더 이상 공포로 떨면서 지내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이곳에서 벼를 수확 하고, 11월이 되면 배추와 무를 수확할 것입니다. 그리고 겨울을 보내고 다시 봄이 오면 씨를 뿌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철거가 끝나고 이주 뒤, 서울 시청 광장에서는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를 위한 평화대행진이 있었습니다. 주민들은 버스 두 대에 나누어 타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손에 손에 ‘미군기지 확장반대’ 깃발을 들고 왔습니다. 청소년들의 연극을 보고 눈시울을 붉히기도 하고, 평택 싸움을 지지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고 감격하기도 하셨습니다. 마지막에는 모두 무대로 올라가 대추리, 도두리를 지켜달라고 외쳤습니다. 9월 26일부터는 추석을 앞두고 4일 동안 평택구치소 앞에서 김지태 이장님과 오기성 지킴이의 석방을 위한 촛불문화제가 진행되었습니다. 차츰 날이 싸늘해져 조금은 추운 감이 있지만 주민들은 여러 차량에 나눠 타고 와서 계속 촛불을 들었습니다. 오기성 지킴이는 면회에서 촛불문화제의 모든 소리가 생생하게 들려 큰 힘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김지태 이장님도 분명 촛불의 함성을 듣고 많은 힘이 되였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정당한 싸움을 하고 있는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과 대화를 하자고 하면서 학교를 부수고 주민대표를 구속시키고 주택강제철거까지 진행한 국방부를 신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들이 조금이라도 진실되게 주민들에게 다가갔다면 이렇게 분노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주민들은 이제 마지막 싸움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고 느끼고 계십니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은 분명히 잘못된 것입니다. 미국이 원한다고 해서 다 주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을 위한 미군기지 확장을 이제는 온 국민이 나서서 거부해야 합니다. 팽성 주민들의 생존권을 보장해야 합니다.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절절한 목소리들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에 동참해 주십시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