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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이 결정은 대부분의 법조인들이나 헌법학자들까지도 감쪽 같이 속여 넘기기에(?) 충분할 정도가 된다. 마치 비시각장애인이 안마업에 종사할 수 없는 이유가 이 안마사제도에 있는 것인 양 왜곡된 논리를 구성하면서 이런 법규정은 절대적 진입장벽을 형성하기 때문에 헌법상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게 된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추론은 형식적 법도그마로부터 충분히 그 근거를 확보할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진실과 정의는 이런 식의 추론을 용납하지 못한다. 비시각장애인이 안마업을 못하는 것은 안마사 제도 때문이 아니라 안마를 의료행위로 보는 현행 의료법의 태도 때문이다. 의료법에 의하면 마사지든 카이로프락틱이나 경락관리든 그 이름에 관계없이 모두 의료행위로 규정되며, 따라서 원칙적으로 물리치료사라고 하는 의료기사 자격을 가진 자만이 그 영업에 종사할 수 있다. 전국의 스포츠 마사지사들에게 의료법 위반의 혐의가 일상적으로 부과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리고 예의 직업선택의 자유는 여기서 문제된다.
그렇다면 안마사는 무엇인가? 그것은 물리치료사 제도의 특례에 불과하다. 노동상실률이 가장 큰 시각장애인은 각별한 배려와 보호를 필요로 한다. 이에 우리 선조들은 그 신체적 특성을 고려하여 생업의 수단으로 안마라는 직업영역을 그들에게 전속시켜 왔다. 그리고 일제에 의하여 공식화된 것을 1973년부터 의료법의 체계 속으로 편입시켜 물리치료사의 예외로 인정한 것이 바로 이 안마사 제도이다.
이에 안마사는 시각장애인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제도가 된다. 안마사는 오로지 시각장애인이 있음으로써 존재 가능한 것이며, 역으로 시각장애인에 대한 배려의 필요가 없다면 안마사 제도는 더 이상 존재할 필요가 없다. 관련업종에 종사하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물리치료사의 자격이 필요하되, 의료기사에 필요한 수준의 교육을 받기 어려운 시각장애인에 한하여서는 이를 보다 완화시켜 안마사 자격으로 충당할 수 있도록 한 것일 뿐이다. 그래서 안마사제도는 직업선택의 자유와는 일단 무관한 것이 된다. 그것은 시각장애인 배려의 차원에서 수용된 특례규정이지, 시각장애인이 아닌 사람을 그 직업에서 배제하기 위한 진입장벽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엄중한 비판을 면할 수 없다. 그것은 법도그마만을 맹목적으로 추종하였을 뿐 정작 중시해야 할 장애인 인권의 문제는 고려하지 못하는 왜곡된 법 판단을 행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 수많은 시각장애인의 생업과 생활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맹목이 위선을 넘어 해악으로 치닫는 것은 바로 이 부분에서일 것이다. 차별을 해소하고 인권을 실천하여야 할 헌법재판소가 불과 몇 명의 “보지 않는 사람”에 의해 장악됨으로써 결국 차별을 고착시키는 반인권기관이 되어버리는 이 시대착오적 현상을 어떻게 해야 할까나?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