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애들'이란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원래 그렇진 않을 텐데 샘들이 이 말을 쓸 때는 통상 우리를 똥오줌 못 가리는 갓난 아이 취급할 때죠. 청소년들의 자율성, 의지, 고민을 깡그리 뭉개기 위해 우릴 낮춰 부르는 단어쯤으로 해두면 될까요? 다시 하던 얘기로 돌아와서 우린 학교에선 조용한 듯 보이지만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눈에서 광선이 나오는,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청소년입니다. 학생이 아니라 청소년인 이유는 우리 중에는 학생도 있지만 탈학교 청소년도 있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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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친구 몇몇을 소개할게요. 광우병 촛불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던 지난 해 고3이라는 특수 상황에도 불구하고 몇 달을 시청에서 보낸 지인이는 정치경제 교과서의 '국가의 정당성은 국민의 지지로부터 나온다'는 대목을 읽는 순간 전율했대요. 더 나은 사회를 위해 투쟁하며 살아온 사람들의 노력과 변화에 무임승차하지는 않을 거라더군요.
학교에선 얌전한 리인은 요즘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를 들락거립니다. 띵(십대 동성애자를 말하는 은어)이거든요. 리인은 여기서 십대프로젝트를 담당하며 전문가 선생님이 띵을 상담할 때 돕기도 하고 띵을 위한 커뮤니티 관리도 해요. 리인은 장래희망이 동성애 청소년 상담가인 띵이 분명해요.
매주 토요일 모여 지역 공부방 아이들의 형·누나가 되어주는 '햇살' 친구들도, 10년 넘게 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을 기획하고 세상에 내놓는 일을 하는 청소년문화공동체 '품'의 세 마리의 개와 강아지 한 마리(청소년 주체 4명의 별명)도, 아기 스포츠단만 있는 줄 알았던 YMCA에서 청소년의 정치 참여를 고민하는 창숙이까지 우린 지금 여기에서 내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답니다. 우리가 대견하시죠?
일제고사 반대 기자회견에서 자주 만나는 따이루는 가출 청소년입니다. 벌써부터 얼굴을 찡그리시는군요. 청소년의 가출 권리를 인정하면 가출 이후 청소년들이 지낼 수 있는 공간 문제나 알바 청소년들의 노동권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레 생기실텐데 말이죠.
여진이는 촛불 집회가 한창이던 지난 해 5월 배후설 운운하며 집회 참여를 막아달라고 학교에서 보낸 가정통신문을 보며 배꼽을 쥐었대요. 청소년을 인정하지 않는 어른들의 뒤통수에 보내는 우리들의 냉소를 기억해주기 바라요.
여전히 우리가 대견하신가요? 솔직히 조금은 불편하신가요? 샘은 눈치 채지 못하셨을지 모르지만 모두 샘이 정말로 사랑하는 샘반 35명 아이들의 다른 이름이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