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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숙 전 위원장(5-6대)을 만난 날은 공교롭게도 29돌을 맞는 5·18광주민중항쟁 기념일이었다. 매서운 바람과 함께 거센 빗줄기가 퍼붓고 난 후, 쨍하게 맑은 하늘과 바람 덕분에 신록이 더욱 눈부셨다.
정 전위원장은 1999년 정년이 단축되는 바람에 복직 1년 만에 퇴직을 해 교육 현장을 떠났다. 그러나 여전히 교육계의 원로이자 '현역'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정 전 위원장에게 전교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려고 광주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정해숙 전위원장을 만나러 가는 기차가 예정된 시간보다 30여 분이나 연착하는 바람에 점심을 함께 하기로 한 약속이 하마터면 어긋날 뻔 했다. 교육계의 원로요 선배 교사에게 무례를 범하게 될까 하는 조바심이 생겨났다.
선생께서는 옛 군사정권 시절 상무대가 있던 곳에 자리한 무각사(無覺寺)라는 사찰로 기자를 불렀다. 잠깐 고민한 끝에 '깨달음이 없다'는 황량한 풀이보다는 '무한한 깨달음의 경지'라는 미려한(?) 풀이를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경내 찻집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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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온화한 미소로 기자를 반갑게 맞았다. 근황을 굳이 묻지 않아도 될 만큼 기운이 충만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미 칠순을 넘긴 연세인데도 걸음걸이가 '활보(闊步)'라 해도 손색이 없었다. "중고교 시절 운동을 한 덕분"이라고 했다. 점심을 먹고 난 후 이야기가 이어졌다. 93년 10월 15일 해직교사의 복직을 수락하는 기자회견 당시 이야기를 먼저 꺼내셨다.
"조합원 선생님들이 복직 문제를 위원장에게 위임해줬기 때문에 내가 역할을 했다. 각계 원로들을 비롯해 김수한 추기경까지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결심을 하고 수락 기자회견을 해야 하는데 참교육 실현 위해 돌아가신 열 두 분과 살아있는 동지들에게 미안해서 자꾸 눈물만 났다. 결국 당시 이수호 부위원장 등이 내 옆에 한참 서 있다가 기자회견을 30여분 연기했던 것으로 안다"며 선탈퇴 후복직이라는 정부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심정을 전했다.
전교조가 이룩한 성과에 대해서도 자부심이 컸다. "전교조는 어떤 조직에서도 할 수 없는 일을 했다. 국방비 절감하고 통일교육(반공교육 아니라)을 하자고 앞장섰다. 툭하면 간첩 운운하던 시절에 통일 이야기를 누가 하나? 전교조나 되니까 하지. '노동=빨갱이, 노동=천한 것' 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던 시절에 전교조가 있었다. 언론사 기자들도 인터뷰가 끝나면 '전교조가 부럽습니다'라고 하던 시절이었다"라고 회고했다. "전교조 없는 교육현장을 생각해 본 적 있나? 그 어려운 속에서도 조합원 선생님들이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지 않나? 인정할 건 인정하자"는 것이 선생의 전교조 예찬론이다.
그러나 전교조에 대한 칭찬에만 그치지 않았다. 선배로서의 매운 충고가 이어졌다. 전교조가 통일문제·노동문제를 참교육 실현의 투절한 의지로 실천한 것은 훌륭한 성과이지만 이제 성년이 됐으니 내적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조합원 수를 늘리는 데 연연하기보다 과거처럼 일 당 백의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한다. 내·외부의 타이트했던 연수와 노력이 느슨해졌다. 끊임없이 성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전교조 선생님들이 입시 위주로 수업을 하지 않는다며 보수 세력들이 담임 거부 운동을 하는 건 슬픈 일이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을 일러 '공동체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한 꾸짖음은 냉정했다. "경기도교육감 선거 결과가 이명박 교육정책에 대한 평가였다. 대통령 후보들 가운데 사형제가 존속돼야 한다고 한 사람이 지금 대통령이다. 다른 후보들은 다 반대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말하는 우리 조직과는 상당히 다른 차이가 있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은)공동체 와 공동체의 삶을 파괴하는 일이다."
전교조의 '초심' 운운하는 세간의 말들에 대해서는 "고마운 지적이지만 전교조가 초심을 잃기를 바라는 말"이라고 일축했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이 한 걸음 내딛는 자세를 추구하는 곳이 전교조다. 능력이 따르지 못한다고 젖혀두는 건 있을 수 없다. 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다."고 말했다.
선생은 지난 봄부터 참교육을 위해 헌신하다 돌아가신 분들의 묘지를 순례하고 있다. "비합법 시절, 버스 토큰 몇 개만 넣어서 다니면서도 열심히 살았던 선생님들, 그들을 통해 인간이 빵만으로 사는 게 아니라 꿈을 먹고도 살 수 있다는 걸 배웠기 때문"이라고 했다. 선생의 순례는 올 하반기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안팎에서 위기를 말하는 가운데 20살 성년이 된 전교조의 오늘을 지지와 염려로 지켜보는 선생의 눈빛은 여전히 깊고 투명했다. 선생은 인터뷰를 마치면서 "남이 아닌 나를 돌아보는 자세로 아이들과 사회 변혁을 꿈꾸어야 한다. 정부와 일일이 맞서는 것보다 형이 동생한테 하듯이 협상력 발휘하라. (혼잣말로 '정부가 협상을 안 하려 해서 문제지'),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으니 우리 것만 고수해서는 안 된다."는 애정어린 충고를 빠트리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