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인터뷰]"운동하는 이들도 결국 사람이다"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사람들> 출간한 이수일 전 위원장

'남민전 사건'이라는 게 있었다. 이름 하여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사건'. 박정희라는 이가 대통령으로 있던 시절, 대통령의 권한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었던, 이른바 유신헌법과 '긴급조치9호'가 위력을 발휘하던 시절에 일어난 최대의 공안사건이 바로 남민전 사건이다.
 
세상 사람들이 제법 알은체를 하는 고 김남주 시인, 파리의 택시 운전사 홍세화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실세(?) 국민권익위원장 이재오 등도 남민전 '관련자'들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 2005년 전교조 위원장이었던 이수일 교사. 그도 남민전 사건과 관련해 10년의 옥고를 치렀다.
 

그가 30여 년 전 그 때의 일을 책으로 썼다.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사람들'이다. 부제가 '남민전 사건으로 감옥에 간 교사 이수일의 삶, 사랑이야기'.
 
표지와 책 속 그림도 그 시절 감옥에서 직접 그린 것이다. 남민전 관련자들이 자신의 저서에서 당시를 간략히 언급한 적은 있어도 이렇게 실명을 거론하며 구체적 기록한 것은 사실상 최초의 일이다.
 
"내가 진실로 소망했던 건 괜찮은 한 사람의 시골학교 역사교사로 머리칼 희끗하게 늙어가는 것"이라며 "남민전 사건에 대한 선정적 호기심보다는 인간에 대한 사랑을 말하고 싶었다"고 강조한 그를 5·18광주민주화운동이 30돌을 맞던 18일 재직 중인 서울 고척고에서 만났다.
 
-책을 쓰게 된 계기는?

"1988년 출소하면서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나오자마자 교육운동을 했고 특히 전교조 활동하면서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출소 후 20여 년이 지났다. 그러다가 공안사건자료 접하면서 새삼스레 시간이 지나면 그것(공안사건자료)밖에 안 남겠다 싶어서 쓰게 됐다."

- 2006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았다. 공안사건의 주인공에서 민주화 인정까지 심정이 어땠나?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할 만큼 세상이 민주화됐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물론 우리 사건 관련자 모두가 신청하거나 인정받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역사적 정당성을 확인했다고 할까 그런 의미는 있다."

- 제목이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사람들'이다. 고 김남주 시인이 번역 · 출간했던 프란츠 파농의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원제 '검은 피부 흰 가면')'의 여운이 짙은데.
 
"처음 생각한 건 '기록, 학교 갔다 온 이야기'였다.('학교'는 감옥의 은어). 지금의 제목은 본문에 들어가는 소제목이었는데 출판사에서 제목으로 정했다. 파농은 알제리 민족해방전선의 대변인이었다. 그것과 우리 민족해방운동 동지였던 김남주 시인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고 본다."

- 책의 시작이 '내가 죽은 날'이라는 제목의 체포 당시 장면이다. 아직도 당시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았다는 증거로 봐도 될까?
 
"그런 셈이다. 내 자신도 미처 생각 못한 걸 글을 쓰면서 발견한 게 많다. 아무래도 한 인간으로서 충격이 컸던 것 같다. 그것이 내 인생에서 차지하는 의미나 비중이 컸구나 하는 걸 새삼 느낀다."

- 그렇다면 잠실고로 복직했을 때 트라우마의 현장인 시영아파트를 다시 찾아간 이유는?
 
무슨 운명일까, 잠실고 교무실에서 그 곳이 바로 건너다 보였다. 20년 만에 그 곳에 다시 서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 모든 일들이 교사로서의 수업과정이었다는 의미 부여를 스스로 해 보기도 했다. 말하자면 교사로서 내가 살던 시대를 몸으로 직접 겪어봄으로써 세상을 보다 넓고 깊게 아는 기회가 되었다고나 할까."

- 고문 기술자 이근안에게 고문을 받았다. 반성하는 듯 했던 그가 최근 다시 원래의 모습을 보이는 행보를 하고 있는데.
 
"'입장 바꿔 생각하면 우리가 반성하지 않은 것처럼 그가 반성하지 않은 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역사가 발전한 만큼은 그도 달라지길 바랐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희망사항일뿐, 그는 스스로 확신범임을 자부하고 있다. '한 인간을 변화시킨다는 게 이렇게 힘들구나' 싶다."

- 감옥에서 5·18 당시 관련 인사들도 만났다. 올해가 30돌이니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5·18은 역사적으로 큰 전환점이 됐고, 민주화유공자로 인정받고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이번에 기념행사가 파행으로 치러진 건 역사의 역행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5·18정신이 우리 사회에 제대로 자리 잡았다면 그런 일 있을 수 없다. "

- 남민전에 함께 했지만 지금은 다른 길을 가는 이재오 씨를 어떻게 평가 하나?
 
"일제시대 이래로 그런 사람들은 너무 많았다. 한 사람의 인생은 관 뚜껑 덮어봐야 안다는 말 있지 않나. 우린들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지 장담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재오가 다시 어떻게 돌아올 지 누가 알겠나."

- 학교생활은 어떤가? 교사로서의 삶을 돌아본다면?
 
"학교생활에서 아이들의 생명력으로부터 많은 에너지를 얻는다. 그건 교사로서 특권이고 행복이다. 반면 학교로 돌아온 행복감도 있지만, 교사로서의 고뇌와 좌절도 크다. 나 뿐만 아니라 모든 교사가 겪고 있는 문제일 것이다. 입시교육이 심화돼 교육적 상황이 어려워진 측면이 있고, 내가 교사로서의 개인적 역량이 부족한 탓도 크다. 퇴직이 가까워지면서 좀 덜 부끄러운 교사로 마무리하고 싶은데 그저 그런 교사로 끝날까싶어 초조하다. 내가 농촌 출신이다 보니 항상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 큰 편이다. 가능하면 농촌학교에서 근무하다가 퇴직하고 싶다."

- 전교조 위원장을 역임했다. 좌파·빨갱이 운운하는 이념 공세와 전교조 둘러싼 지금의 시국상황을 어떻게 보나?

"새삼스레 얘기할 필요 있겠나. 그러나 누구도 역사의 큰 흐름을 되돌릴 수는 없다. 강물이 때로는 역류도 하고 돌아가기도 하지만 결국 냇물은 강물로 강물은 바다로 흘러간다. 역사에 대한 믿음은 버릴 수 없다."

-이 책을 통해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
 
"'인간'이다. 운동하는 이들도 결국 사람이라는 것, 그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싶었다. 남민전이라는 특정 사건이나 감옥살이에 대한 어떤 정보나 지식을 주기 위한 게 아니다. 독자들도 여러 인간상들을 통해서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과 그에 대한 어떤 문제의식을 발견했으면 싶다. 운동도 결국 그걸 떠나서는 안 된다. 결국 이 책은 나와 동시대를 살았던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고, 동시에 내 스스로 미워하고, 가련히 여기고,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젊은 날의 내 모습이자 현재의 나의 초상화이기도 하다."

사진 유영민 기자 youngbitt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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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일 , 남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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