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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계기로 강습을 하게 됐나?
"전교조 포천지회에서 2000년 무렵 강윤심 선생님 등이 이주민,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교육을 했다. 교회를 빌려 진행했는데 그 분들이 학교를 옮기면서 중단됐다. 그러다가 성공회 나눔의 집에서 강사를 찾는다면서 이주민 지원센터 담당자가 포천지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당시 내가 지회장이었다. 성공회 나눔의 집 이주민 지원원센터는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한글강습이었다. 당시 지회 사무국장이던 이병준 선생님이랑 참실대회 갔다 오면서 우리가 해야지 않겠나 하고 뜻을 모았다. 매주 일요일 오후에 해 달라는 요청이었는데 2006년부터 시작하게 됐다."
- 외국인 노동자들을 가르치는 부담감은 없었는지.
"그 때 그 떨림을 잊지 못한다. 지금도 여전히 영어를 잘 못 하지만 처음에는 외국인과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게 부담스러웠다. 당시에는 스리랑카인을 중심으로 몽골인 등도 있었다. 어떻게 할지 막연해 부담 백배였다. 우리 말이 통하는 건가 싶은 생각도 들고. 처음 교직 발령 받을 때만큼 떨렸다."
- 교재는 어떻게 준비하나?
"처음엔 대학에서 외국인 학생들을 상대로 만든 교재를 복사해서 쓰기도 하는 등 이렇다 할 교재가 없었다. 무엇보다 교재가 실정에 안 맞았다. 이주노동자들은 토 · 일요일에도 야근과 특근을 하며 공장에서 일하는 데 책 내용은 유학생들이 어디 놀러가는 이야기였다. 결국 실제로 그들에게 필요한 교재가 있어야 할 것 같아 2006년 말쯤 직접 교재를 만들었다. 퇴근 후에나 휴일에 혼자 지역의 공장에 가서 사진 찍고 설명 붙여서 책을 만들었다. 그들이 일상생활을 하는 일터에서 소재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섬유회사에 가서 '건조기'를 찍어서 'ㄱ'을 가르치고 '망치'를 찍어서 'ㅁ'을 알려주는 식으로 교재를 만들었다."
- 이주노동자들은 주로 어떤 사람들인지?
"포천에는 섬유, 가구, 당면 생산 등 많은 공장이 있다. 대체로 그런 곳에서 일하는 분들이다. 스리랑카, 베트남에서 온 사람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캄보디아인들이 더 많다. 돈 벌러 온 사람들이라 대개 가정이 없다."
- 가장 어려운 점은?
"강사 문제다. 안정적으로 봉사해줄 사람이 없다. 작년에는 학교와 전교조에서 맡은 직책이 너무 많아 일요일마다 한글 강습에 나가는 게 부담스러웠다. 2008년에도 혼자하기 힘들어 김민림 선생님(포천여중 국어교사, 김 교사는 아내를 그렇게 불렀다)과 같이 갔다. 김선생님이 초급반 내가 중급반을 맡았다. 그러다가 인원이 줄어들면 다시 혼자하고. 포천 인구의 1/10인 1만5000명 정도가 이주노동자들이다. 포천 경제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 일부 교회가 이들을 돕고 있지만 선교 목적이어서 순수한 의미의 지원과는 거리가 있다. 사실 올해도 여러 가지 일이 많아서 힘들다. 나도 일요일에 쉬고 싶은데…. 그나마 힘이 되는 게 큰 아이다. 올해 중학생이 돼서 함께 데리고 간다. 가서 보조교사 노릇하며 그들과 이야기도 하고 글쓰기도 가르쳐준다. 아이랑 같이 가면서 대화도 하고 의미 있다. 갈 때는 힘든데 올 때는 뿌듯하다."
- 안타깝거나 마음 아픈 사연도 있었을 것 같다.
"고물상에서 일하는 분인데 거기 들어온 가방을 가져온 적이 있었다. 새것 같은 가방을 들고 와서 '선생님 드리려고 가져왔다'고 하더라. 지금도 그 가방을 들고 다닌다. 그렇게 2년쯤 나오다가 갑자기 안 나왔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봤더니 불법체류자가 돼서 스리랑카로 추방됐다고 하더라."
- 보람 있었던 일은?
"첫해에 있었던 일이다. 스리랑카인들이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높은 문화를 지니고 있다. 국민 70~80%가 불교를 믿는 나라여서 스님을 존경하는 것처럼 선생님들에 대한 존경심도 높다. 5월이었는데 내가 수업 준비하고 있는데 모두 나가더라. 한참있다가 신발과 장미 한 송이를 사와서 '모레가 한국의 스승의 날이라고 해서 준비했다'고 하면서 주더라. 기분이 묘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이나 학부모들의 선물을 모두 거부했는데 그분들한테는 그렇게 못했다. 존경의 의미를 담고 있구나 싶어 감동이었다. 또 하나 결혼 이민으로 온 베트남 여성인데 똑똑하고 한국말 잘 했다. 직장에서 발표할 게 있다고 글을 써 왔기에 봐줬다. 회사에서 발표했는데 사장님이 '어떻게 그렇게 잘하나'하고 물어서 '한국인 선생님이 잘 가르쳐줬다'대답했다며 고맙다고 하더라."
- 학교에서 하는 수업과 다른 점이 있다면?
"어른들이라는 거. 한국말과 문화 등을 알고 한국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한다는 생각에서 그들의 기본 태도가 좀 다르고 하나의 단어를 설명하려면 느낌을 전달해야 하는데 그게 어렵다. 이를테면 '세계'를 가르쳐야 하는데 '세상'은 뭐예요? 하고 묻는다. 그걸 명쾌히 답하기가 쉽지 않더라.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관용어도 잘 모르니까 티비에서 '바람 핀다'는 말이나 '미역국 먹었다'는 표현을 듣고 왜 시험 볼 때 미역국을 먹으면 안 되는지 묻기도 한다.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교육과정을 통해 배운 게 있으니 아는 게 있다고 전제하지만 이들은 모른다는 전제에서 진행해야 하는 점도 다르다."
- 언제까지 이 일을 할 건가?
"사실 좀 쉬고 싶다. 정말 힘들고 지쳤다. 다른 사람이 있으면 좋겠는데 안 나타난다. 관심 갖고 참여 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할 사람이 안 나타나면 내년에도 또 하고 있지 않겠나. 둘째가 초등학교 5학년인데 내후년엔 그렇게 둘째까지 합세해서 큰 아이와 셋이서 함께 하고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 끝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건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들이 한국에 대한 인상을 가지고 귀국하는데 공장에서 구박받았던 기억만 가지고 돌아가는 것과 괜찮은 한국인과 지냈다는 기억으로 돌아가는 건 다르다. 수업하면서 그런 느낌 받는다. 전교조 선생님들이 많이 참여하면 좋겠다. 더불어 다문화가정 아이들에 대한 교육과 연관해서도 우리 말글과 우리문화를 따뜻하게 알려주는 선생님들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