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나누기

나는 유세용 트럭에서 소음과 허상만이 넘쳐나는 하이퍼-정치를 보았네

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 2010년 19호 밥보다 문화


나는 유세용 트럭에서 소음과 허상만이 넘쳐나는 하이퍼-정치를 보았네

 

김성윤

(문화연대 회원)

 

이번 선거는 월드컵보다 재미있었다. 개표방송은 마치 스포츠 경기 중계와도 같았다. 실시간 뉴스를 보면서 흥미진진한 건 정말로 오랜만이었다. 다만, 딱 한 가지 재미없는 게 있었다. 선거운동이었다. 엄청난 물량 공세에 도시는 어지러웠다. 철마다 야단법석이더니 이번도 예외는 아니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후보들이 더 많았다. 투표를 여덟 군데나 해야 했으니 더 시끄럽고 번잡했다.

 

투표일이 가까워질수록 도시는 축제 현장 같았다. 물론 선거운동원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이다. 서울에 한정해서 말해보자. 디자인 수도 서울이라 한다. 그런데 적어도 내가 다니는 동선에서 서울은 디자인 수도라기보다는 마치 디자인 지옥이었다. 지치다 못해 고통스러웠고 고통스럽다 못해 권태로웠다.

 

어느 동네를 가도 <무조건>을 개사한 노래들이 흘러나왔다. <DJ와 함께 춤을>로 히트를 친 김대중 정권 이래로 선거철이면 어김이 없다. 이 무슨 노가바(노래가사바꾸기)도 아니고. 듣는 사람 취향은 아랑곳하지 않고 행인들 귀마다 트로트로 마사지했다. 동네방네, 거리곳곳, 골목골목 평안한 쉼터는 없었다. 조악한 유니폼을 입고 13인의 아해마냥 도로를 질주하는 선거운동원들. 경쟁적이다 못해 식별불가능할 정도로 도배된 현수막들. 이 난장판의 창조자는 누구인가. 다름 아닌 주민들을 위하겠다는 사람들이다.

 

현수막, 전단지, 명함, 로고송…. 그 중에서도 압권은 선거운동용 불법개조 트럭이다. 한도 없는 데시빌로 우리의 청각을 마비시켰던 전령사. 이 유세용 트럭을 한국의 독특한 선거문화라고도 할 수 있을까. 아니, 이것을 두고 과연 ‘문화’라고 할 수 있을지조차 나는 잘 모르겠다. 내 짧은 경험에 비춰보면 총통 암살 미수/자작극이 있었던 대만에서도 유세용 트럭을 봤던 것 같기는 하다. 과한 비유임이 맞긴 하지만, 어쨌든 한국정치의 외설적 수준이 그에 버금간다는 이야기이다.

 

아시다시피 정식 선거운동 기간인 약 2주 동안 시민들은 시달려야만 했다. 단지 그들의 축제를 위해서 말이다. 좀 조용히 할 수 없냐고 따질 수도 없었다. 잘못 따졌다간 선거운동 방해죄로 기소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세용 트럭이 지나갈 때면, 교실의 수업 중인 학생들은 펜을 놓고 쉬어야 했고, 야간근무를 끝내고 잠을 청하는 사람도 볼멘 표정으로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말하고 소리칠 몫은 다른 사람에게 있었으니 말이다.

 

지방선거운동의 과열 양상을 두고 굳이 품격 운운할 필요까진 없다. 품격보다 좋은 것은 활발한 정치활동일 테니 말이다. 그런데 그 활발함이 정작 시민들의 일상생활을 소외시키는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알맹이 없이 소음과 허상만이 넘쳐나는 정치는 그만큼 오늘날의 정치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반증할 뿐이다. 하이퍼-정치는 이도저도 아닌 정치의 파멸 그 자체를 알려준다.

 

문제는 대한민국의 선거문화가 이렇게 될수록 사람들의 정치 혐오증이 더 커진다는 사실이다. 시끄럽기에 그 후보를 보게 된다. 관심이 아니라 짜증이 나서. 그들의 진정성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시민을 위한 정치를 시작하기도 전부터 시민을 배반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 중 누군가가 후보자의 명함을 받았다면 그것은 그 후보를 잊어버리기 위한 의도였지 싶다. 특히 정치에 대한 권태로움을 선사한 이번 같은 경우에는 더더욱 말이다.

 

트럭 없는 선거운동이 보고 싶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니 무턱대로 트럭 안 된다고 말하긴 모양이 서질 않을 것 같다. 다만 문제는 거기에 시민이 적재되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제 아무리 소용량 1톤 트럭이라 하더라도 시민을 위한 상상력과 진정성에는 무게 제한이 있을 수 없을 텐데 말이다.

 

끝으로 사족을 첨한다. 그 와중에도 몇몇 후보들은 소음 걱정 때문에 자전거 타고 선거운동을 했고, 도시의 디자인을 고려해 선거사무실 간판에 공공예술 개념을 도입했다고 한다. 와, 이들의 도전은 조용했지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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