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 행동홈리스 뉴스

[52호-진단] 가난을 구경거리로 만들려는 중구청

누굴 가르치기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쪽방이 어떤 의미인가 먼저 깨닫기를!

[진단]은 홈리스 대중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된 정책, 제도들의 현황과 문제들을 살펴보는 꼭지

지난 6월 1일 서울시 중구청은 보도자료를 통해 「캠퍼스 밖 세상알기-작은방 사람들과 마음 나누기」라는 남대문 쪽방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표면적으로는 대학생들이 쪽방지역에 들어가 살게 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이해하도록 돕겠다는 목적이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자면 이처럼 함부로, 무례하게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구경거리로 전락하게 만드는 체험프로그램도 없을 것이다.


쪽방과 가난한 사람들을 체험상품으로 만든 중구청

이 프로그램은 총 3주 동안 남자대학생 총 12명(2인1조)이 쪽방에서 2박 3일간 숙식 체험을 하는 계획이 담겨 있었다. 동시에 남대문지역상담센터에서 하는 폭염대비 순찰, 물품 나눔 등 활동에 참여하게 할 계획이었다. 문제는 쪽방 안에서 긴 시간동안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면서 쪽방주민들에게는 이 체험에 대해 안내하고 의견을 받거나 사전 동의를 구하는 과정을 생략했다는 것이다. 쪽방지역 가난한 사람들의 고충을 듣고 개선하기 위한 활동도 아니고, 주민과 소통하려는 노력도 보이지 않았던 중구청은 ‘대학생을 위한 쪽방체험’이라는 이름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단순히 볼거리, 체험거리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아픔에 눈감아온 중구청, 누가 누굴 가르치려 하는가?

  지난 6월 14일 오후 2시, 중구청 앞에서 홈리스행동, 빈곤사회연대, 동자동사랑방, 인권운동사랑방 등의 반빈곤·인권단체가 모여 가난을 상품화하는 중구청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최창식 구청장은 “쪽방과 같은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웃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어루만져주는 체험을 통해 더 나은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구청이 그간 보여 온 행보는 가난한 사람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어루만져주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중구청은 ‘노숙’을 위기 사유로 하는 긴급복지지원조차 제대로 지원하지 않았다. 중구의 긴급복지지원 건수는 2012년 3월에서 2015년 12월 사이 단 3건에 불과하다. 이는 같은 기간 영등포구(172건), 서대문구(18건) 등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서울시 지자체 중 중구에 거리노숙 인구(392명)와 쪽방주민(840명)이 가장 많은데도 말이다(집계 인원 은 2014년 10월 기준).

또한 지난 2014년 2월, 서울 중구 수표동 화교사옥에 살던 가난한 사람들이 화재로 집을 잃었을 때도 중구청은 대책마련은 커녕 강제철거로 대응했다. 2015년 10월 말 서울시 중구 남대문로5가동 쪽방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퇴거당하는 일이 발생했을 때에도 중구청은 건물주와 주민간에 일어난 일이라며 뒷짐을 졌다. 결국 퇴거주민들은 도움을 요청할 곳이 없었고 본인의 의사와는 다르게 더 열악한 주거로 이동해야만 했으며, 또다시 쫓겨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려야만 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쪽방은 최후의 안식처이자 지역사회로 들어서는 발판의 역할을 하는 소중한 주거지라는 것을 중구청은 진짜 모르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누구를 가르치려 들기보다 가난을 이해하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삶과 쪽방이 이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주민에게서 먼저 배워야 하지 않은가?


체험 프로그램은 취소됐지만...

가난을 이용해 좋은 이미지만 뽑아먹으려던 중구청은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슬그머니 체험 프로그램 계획을 취소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우롱한 불손한 태도에 대한 반성과 사과는 없었다.

중구청이 정말 해야 할 일은 가난을 볼거리, 체험거리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겨울을 앞둔 시점에서 이윤을 위한 개발 앞에 대책 없이 쫓겨나야만 했던 가난한 주민들의 서러운 심정을 알 수 있어야 한다. 수년 살던 쪽방이 없어지고, 다른 살 곳을 찾아 헤매야 하는 어려움에 처한 주민의 상황을 알 수 있어야 한다. 가난으로 인해 쪽방에 찾아오는 사람들의 삶을 이해해야 한다. 쪽방에서 살지라도 안전하고 쾌적한 주거에서 살 권리를 보장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가난 때문에 쪽방에서조차 쫓겨날 걱정으로 살아가지 않도록 가난한 사람들의 편이 되어 그들을 지켜줄 수 있는 든든한 모습으로 변해야 한다. 앞으로 쪽방 지역의 가난한 사람들을 무시하지 말고, 소통과 공감으로, 아픔을 씻어주는 중구청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