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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호-세계의 홈리스] 화려한 실리콘밸리, 내가 살 집은 없다

[세계의 홈리스]는 미국, 유럽 등 세계의 홈리스 소식을 한국의 현실과 비교하여 시사점을 찾아보는 꼭지

  도로변에 주차된 캠핑카의 행렬. 창문은 커튼으로 가려져 있어 안을 들여다 볼 수가 없다. 최근 실리콘밸리는 이런 캠핑카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출처: 더머큐리뉴스 7월 13일자]
실리콘밸리의 캠핑카 거주자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한 도로변. 커다란 캠핑카 30여 대가 줄지어 주차되어 있습니다. 늦은 여름휴가를 떠나온 사람들일까요? 사실 여기는 여행지도, 캠핑장도 아닙니다. 여기는 판교 ‘테크노밸리’라는 이름의 원조, 미국 실리콘밸리입니다.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업들이 들어선 미국 최고의 부촌이죠. 그런데 최근 이곳에 캠핑카를 집으로 삼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아파트 임대료를 감당할 수가 없어 중고 캠핑카를 구입해 이곳에 주차해 두고 1년째 살고 있어요.” 멕시코 출신 카를로스씨의 말입니다.

이들은 캠핑카에서 잠을 자고, 인근 마트와 공원의 화장실을 이용합니다. 전기를 만들기 위해 소형 발전기나 배터리를 쓰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 ‘캠핑카 거주자’들은 실리콘밸리 일대에 최소 수백 명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캠핑카 거주자’들은 왜 출현한 걸까요? 바로 실리콘밸리의 값비싼 주거비 때문입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임대료에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부자 동네에 늘어난 홈리스

최근 이곳의 임대료가 오른 배경은 실리콘밸리에 입주한 애플 같은 대기업들이 고용을 늘린데 있습니다. 실리콘밸리로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주택에 대한 수요가 커졌지만, 주택 공급은 그만큼 늘지 않아 임대료가 오른 겁니다.

이렇게 임대료가 상승하면 가장 어려움을 겪는 건 당연히 임금이 낮은 사람들입니다. 식당, 마트, 건설 현장 등에서 일하는 이곳 사람들은 최저임금으로 한 달에 약 180만원을 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리콘밸리의 원룸 임대료는 200만원이 훨씬 넘습니다. 한 달 내내 일해 번 돈이 월세를 내기에도 부족한 것이죠. 이런 이유로 실리콘밸리는 미국에서 홈리스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라고 합니다.

결국 이 상황에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은 따로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그 땅의 주인과 건물주, 그리고 고용을 늘려 더 많이 이익을 창출하는 기업주일 겁니다. 이런 사람들이 이득을 챙기고 있는 동안, 실리콘밸리의 평범한 사람들은 홈리스 상태에 빠지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나라와 꼭 닮은 광경이 아닌가요? 재개발로 집값이 올라 땅주인은 함박웃음을 짓지만 원래 살던 집에서 쫓겨나고, 한 달 수입으로 도저히 월세를 감당할 수 없어 거리를 떠돌아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 전국민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헌법 조항, “모든 국민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가진다”는 말이 무색한 현실 말입니다. 하지만 이건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전세계 어디서든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보는 당국의 태도는 어떨까요. 외신에 따르면, 최근 실리콘밸리 일대에서는 캠핑카 단속이 심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주차 시간이 72시간을 넘으면 벌금을 물리는 식으로요. 하지만 캠핑카 거주자들을 엄격하게 단속하면 이들이 거리홈리스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게 지방정부들의 고민이라고 합니다.

부자 동네에 오히려 홈리스들이 늘어나는 역설. 문제의 본질인 임대료 상승과 낮은 임금을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은 채, 그저 캠핑카 단속에만 초점을 맞추는 모습. 캠핑카 거주자를 둘러싼 일련의 소란이 우리에게 보여준 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