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사람 사는 곳, 쪽방
가로, 세로 약 180cm 가량 되는 방을 흔히 쪽방이라 일컫는다. 이러한 쪽방들은 실상 약 1평(3.3m²)을 약간 넘기도 하지만, 1평도 채 안 되는 직사각형 혹은 비정형이기도 한다. 230인치 정도의 작은 발도 다 디디지 못할 가파른 계단이나 건장한 체격의 남성은 게걸음으로만 지날 수 있는 좁은 통로, 혹은 굴 같이 어두운 지하에 있는 쪽방은 춥고 더운 계절의 온기를 솔직하게 받아들인다. 어른 손바닥 두 개만한 크기의 창문이라도 있으면 다행이지만 없다면 한여름엔 찜질방에 사는 것과 다름없다. 취사시설이 없어서 방 안에서 위험하게 휴대용가스로 조리하며, 화장실은 공동으로 사용하지만 그 수도 부족하여 기본적인 생리욕구 해결도 쉽지 않다. 게다가 얇디얇은 가벽을 통해 이웃의 작은 숨소리까지 들어야 하는 열악한 공간이다. 비용은 보통 월20~25만원 수준으로 보증금을 마련할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겐 다행일수도 있다. 이렇게 최저주거기준(1인 14m²=4.2평) 규모에도 못 미치는 좁고, 낙후된 주거환경에서는 고령·장애를 가진 주민이 살아가기엔 최악의 조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거리에서 살지 않기 위해 혹은 거리노숙을 벗어날 유일한 공간이기에 쪽방을 찾아온다. 그리고 쪽방에서 희노애락의 삶을 살아간다.
▲ 저렴 쪽방 중 복도 : 올해 초 입주한 주민이 천정에서 비가 새는 천정 수리를 요청했지만 12월까지도 고쳐지지 않아 바닥에 통을 놓았다. |
최근 들어 가난한 사람들의 최후의 보루인 쪽방지역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세련된 도시화, 이득을 위한 상업화를 이유로 개발되거나 용도가 변경되는 등 더 이상 쪽방이 아니게 되는 모습이 진행되고 있다. 2015년 10월 말 남대문쪽방지역 약 100여명이 건물주의 안전진단을 이유로 한 퇴거 요청에 뿔뿔이 흩어진 일이 있었다. 당시 주민들은 이주대책, 이사비 등 권리보장에 대한 대책도 받지 못하고 두려움에 서둘러서 나가거나 일방적으로 쫓겨났다. 심각한 건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을 때 개발인허가권자인 중구청은 ‘건물주와 합의’하에 일어난 일이라며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 공공에서 외면한 쪽방 주민들은 힘 없이 쫓겨났다. 그런데 이런 쪽방개발은 남5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주요 역사 주변에 위치한 쪽방은 도시환경정비사업 등 개발로 인해 이미 없어졌거나(영등포, 남대문, 동자동, 전농동 쪽방 등 일부) 퇴거 위협을 받을 위치에 있어 ‘언젠가는 여기도, 우리도..’라는 불안감을 갖게 한다. 결국 이 문제는 주민 개인이 풀 수도 없으며, 개별 구청도 대응하기 어렵다. 대안이라고 해도 임대주택이 있겠지만, 소득에 큰 변화가 없는 가난한 이들로서는 임대보증금 마련도 하기 어렵다. 혹은 갈 수 있더라도 기존 유지해오던 공동체가 깨져 외로움이 증폭되거나, 방문간호사나 쪽방상담소 지원으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에 큰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이런 복합적인 문제를 먼저 이해하고 서울시 차원에서 개발 승인 이전 쪽방지역 주민에 대한 사전 대책을 수립할 수 있도록 매뉴얼 등의 실질적인 지원방안을 먼저 마련해야 할 것이다.
5년짜리 시한부 쪽방보다 안정적인 공공쪽방을!
2013년 서울시는 ‘저렴 쪽방 임대지원 사업’에 대한 계획을 갖고, 쪽방 주민들의 주거비 부담 완화 및 지속가능한 주거공동체를 마련하고자 기존 쪽방을 임차하고 개보수하여 주변 시세보다 저렴하게 재임대하는 사업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임차 후 최소 5년간 임대료를 유지하는 것으로 기존 월세 23-28만원을 월16-18만원으로 낮춰 부담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새꿈하우스(서울시가 보증금/리모델링 등 모든 비용 지불) 4개소 91호와 디딤돌하우스(민간 기업에서 보증금,공사비,운영비 등 비용전액 후원) 2개소 32호를 운영하고 있다. 애초 계획보다는 20만원까지 임대료를 받는 곳도 있었지만 기초생활수급자의 기존 주거비 부담을 낮추고, 비수급 빈곤층의 노숙위험을 방지하는데 어느정도 긍정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 5년 후(13년 7월 개소한 새꿈하우스 1호는 18년 중순 즈음)엔 어떻게 될까? 시가 최소 5년 동안은 지원금으로 쪽방주민의 생활안정을 도모하겠다지만, 실질적인 이득은 건물주에게 가게 된다. 게다가 계약만료 후 연장계약은 불투명하고 주민들의 삶도 불안하기는 매한가지가 될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고 건강한 쪽방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려면 시가 최소한의 공공개입이 아니라 지금보다는 적극적인 방법을 마련해야 된다. 가난한 쪽방 주민이 안정적인 주거, 쾌적한 환경에서 살 권리를 보장할 수 있도록 공공성을 담보한 쪽방을 시에서 직접 매입, 운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쪽방 건물들은 너무 낡았고 환경도 매우 불편해서 주민들의 삶은 만족스럽지 않다, 하지만 그 쪽방마저 없어진다면 가난한 사람들의 삶도 송두리째 뽑히듯 불안하고 주거를 상실할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다. 도시계획에 따른 개발로 쪽방이 없어지고, 가난한 사람들을 흩어버리는 위기 속에서 쪽방도 가난한 사람도 세련된 이 도시에서 어울려 살아갈 수 있게 계획을 다시 짜는 지혜와 책임있는 실천이 서울시에게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