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19일은 30도가 넘는 더운 월요일이었습니다. 강북구청에 삼양사거리 노점을 치우라는 민원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강북구청은 삼양사거리로 용역반장 포함 3명을 내보냈습니다. 3시간 만에 노점에 대한 민원을 해결한다는 것이 강북구청의 자랑입니다.
단속반이라 불리는 그들은 삼양사거리로 출동한 뒤, 그곳에서 노점을 하고 있던 박단순님에게 “민원이 들어왔으니 빨리 치우라”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박단순님은 “치울테니 가달라”고 요구했으나 그들은 30kg이 넘는 얼음통을 발로 차면서 “치울 때까지 가지 않겠다! 얼른 치우라”고 몰아세웠습니다. 결국 박단순님은 함께 있던 지인들과 갈치 박스를 옮기고, 무거운 얼음통까지 옮긴 후, 잠시 쉬기 위해 계단에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그대로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박단순님이 쓰러졌음에도 용역들은 보고만 있었습니다. 용역반장이라는 사람은 에어컨이 나오는 차 안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동료들은 팔다리를 주무르면서 응급조치를 해달라고 애원했습니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뇌사판정을 받고 6월 25일 오후 3시 30분경 돌아가셨습니다.
유가족 우롱하는 강북구청
박단순님이 중환자실에 있던 어느날, 박겸수 강북구청장이 찾아왔습니다. 박단순님의 아들에게 “자네 나이가 몇 살인가?”, “어머니는?” 이 두 마디를 남기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구청 직원은 가족들에게 475만원을 줄 테니 합의하자고 했습니다. 어머니를 잃은 것에 대해서 위로와 사과의 말을 하는 것이 먼저인데, 법적 책임이 없다면서 사과조차 하지 않고서는 기초생활수급자면 받을 수 있는 긴급의료급여와 장제급여가 포함된 보상금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하는 그 태도에 기가 찼습니다. 두 아들과 유가족들은 구청 관계자들을 그 자리에서 쫓아냈고 이대로는 장례를 치를 수 없다며 노점상 동료들과 함께 도봉구 한일병원 장례식장 2호실을 지켰습니다.
▲ 고(故) 박단순씨 사건의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결의대회에 참석한 노점단체 회원들과 시민단체 활동가들 |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 서울북부권역(강북, 노원, 도봉, 성북)의 3개 노점단체가 모였습니다. 비록 고인이 회원은 아니지만 이 문제는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마음을 모았고,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였습니다. 시민사회 정당들과 함께 지역 대책위를 꾸리고, 전국적 범위의 대책위도 구성하여 강북구청을 향한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총 4번의 투쟁결의대회와 2번의 기자회견을 진행했습니다.
7월 7일에는 강북구의회가 개회하는 날이었습니다. ‘동료 노점상의 죽음을 외면하지 말아 달라’, ‘강북구청에 이야기해 달라’고 호소하러 구의회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구의원들은 노점상인들을 외면했습니다. 강북구의회의장은 면담을 하자며 자신의 방으로 노점상인들을 불러놓고는 “용역예산을 늘려야겠다”며 소리 지르고 자리를 떴습니다. 구의회 직원들은 “내가 당신들보다 높은 사람이다”, “화장실도 한명씩 가라”, “당신들은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며 모욕을 했습니다. 노점상들에게 용역예산을 늘리겠다는 말은 죽이겠다는 협박과 같은 말입니다. 용역 예산을 늘려서 다 없애버리겠다는 말이기에 노점상인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7월 12일. 박단순님이 장사를 했던 삼양동 사거리에서 강북구청까지 행진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날, 박단순 노점상이 돌아가신지 17일 만에 구청 측을 만났습니다. 강북구청장의 사죄,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대책, 유가족 보상과 관련한 합의를 했고, 합의서를 작성하였습니다. 그리고 7월 14일, 강북구청 앞에서 고인을 보내드리기 위해 함께 싸웠던 이들이 모여서 영결식을 진행하였습니다.
“노점상도 사람이다, 용역깡패 해체하라!”
강북구청과의 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많은 분들이 마음을 모아주셨기 때문입니다. 박단순님이 장사했던 삼양동 사거리에 추모공간을 만들어 시민들과 함께 고인을 추모하고 기억할 수 있게 해준 강북구 주민단체들, 기자회견과 투쟁에 함께하고 대책위원회에 함께해주신 많은 연대단위들, 고인의 죽음에 분노하고 제2, 제3의 박단순을 만들 수 없다며, 온 몸과 마음으로 함께해준 노점상분들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강북구청이 노점은 치워야하는 존재, 없애야 하는 존재로 여길 뿐 대화의 대상도, 상생의 대상도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투쟁으로 노점상은 함부로 해도 되는 물건이 아님을 저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박단순님이 거리에서 장사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 30도가 넘는 무더위에도 갈치를 가지고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는 먹고 살기 위해서입니다. 남편은 20년이 넘게 병원에 있기에 그 병원비를 대야 했고, 생활비를 벌어야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함부로 짓밟을 수는 없습니다. 다시는 가난하다는 이유로, 거리에서 장사한다는 이유로 삶 자체를 용역깡패에게 철거당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권력을 민간업체에 맡겨버리는 용역깡패를 없애야 합니다. 그것이야 말로 우리 남은 자들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