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렉, 우리 시대를 위한 휴머니스트 공산주의 선언

"인류가 스타트렉 초기 에피소드에서 묘사된, '구름 위의 지배자들(Cloud Minders)'이 떠 있는 구름 속 낙원에서 사는 세상에 더 가까워졌다는 것이 과연 놀라운 일인가?"[편집자 주: 스타트렉의 구름 위의 지배자들(Cloud Minders) 에피소드는 소수 엘리트가 구름 위 낙원에서 사는 반면나머지는 지하 광산에서 고통스럽게 노동하는 디스토피아적 사회를 그린다이는 오늘날의 사회적 불평등과 빅테크 지배를 비판하는 비유로 자주 언급된다.]

1967년 2월 9미 공군이 하이퐁 항구와 여러 베트남 공군 기지를 폭격한 지 몇 시간 뒤, NBC는 베트남에서 벌어진 일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개념을 담은 스타트렉 에피소드를 방영했다바로 "최우선 지령(Prime Directive)"이었다이 지침은 스타쉽 선장들에게 군사적이든 비군사적이든 우월한 기술을 사용해 어떤 공동체민족혹은 지각 있는 종(species)에 간섭하는 것을 금지하는 일반적 금지 규칙으로간섭하지 않는 것이 목숨을 잃는 대가를 치르게 되더라도 이를 따르도록 했다.

미국 대중이 미국의 논리적 연장선으로 여긴 가상의 은하 연방(United Federation of Planets)의 핵심 규칙으로 이렇게 급진적이고 반제국주의적인 이념을 설정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당시 미국 대통령 린든 B. 존슨이나 펜타곤이 스타트렉의 즉각적인 방영 취소를 요구했다 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다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결과로이후 12개의 다른 시리즈에 걸쳐 939개의 에피소드가 방영되었고스타트렉의 최우선 지령은 작가와 감독들이 그 정치적철학적 여파를 탐구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여기에는 그 지침이 자주 위반되지만절대 철회되지는 않는 윤리적 갈등도 포함했다.

또한 이 최우선 지령은 또 다른 것을 암시했다바로미래주의적 연방이 지구에서 휴머니스트적 공산주의가 수립되기 전에는 이런 반제국주의적인 최우선 지령을 채택할 만큼 성숙해질 수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스타트렉의 자유지상주의적 공산주의 대 권위주의적 집단주의

스타트렉이 공산주의 사회를 묘사하고 있다는 점은물론 그렇게 직접 명명하지는 않지만명백하다. 1988년 방영된 한 에피소드에서, USS 엔터프라이즈호는 낡고 녹슨 오래된 지구의 우주선을 발견한다그 안에는 인간 부유층(plutocrats)이 지불한 거액으로 냉동된 채 우주로 보내진 시체들이 보관되어 있었다그들은 1988년에 자신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던 병을 외계인이 발견해 치료해주기를 바라는 희망에서 그렇게 냉동했다.

엔터프라이즈호의 승무원들이 이들을 해동시키고 병을 치료한 후그들 중 한 명인 사업가 랄프 오펜하우스는 지구에 있는 자신의 은행가들과 법률 사무소에 연락할 것을 승무원들에게 요구한다이에 대해 장 뤽 피카드 선장은지난 3세기 동안 많은 것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그에게 전할 수밖에 없었다.

피카드사람들은 더 이상 물건을 축적하는 것에 집착하지 않아우리는 배고픔결핍그리고 소유의 필요성을 없앴어우리는 이제 어린 시절을 벗어난 거야.

오펜하우스완전히 잘못 알고 있군이건 소유가 아니야권력에 관한 거야.

피카드권력을 얻어서 뭘 한다는 거지?

오펜하우스네 삶과 운명을 통제하기 위한 거야.

피카드그런 통제는 환상이야.

오펜하우스정말하지만 난 여기에 있잖아안 그래?

이 짧은 대화는 스타트렉 세계관이 기반으로 삼고 있는 철학적경제적 기초를 잘 보여준다그것은 더 이상 자본주의적 축적의 논리가 아닌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초월한 사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오펜하우스가 언급한 축적 욕망(accumulation)에 대한 암시는 권력을 향한 의지가 궁극적으로 축적에 기반을 둔다는 점을 지적한다이는 왜 스타트렉의 "최우선 지령(Prime Directive)"이 자본주의 정신과 양립할 수 없는지를 보여준다시장 확장을 촉진하는 축적이 우리 사회의 주요 동력과 이데올로기인 한제국주의는 필연적이다이를 극복하려면 인류는 우선 물질적 결핍(scarcity)을 제거해야 한다은하 연방(The United Federation of Planets)에서는 이를 복제기(replicaor)의 발명과 광범위한 사용을 통해 해결했다이 복제기는 풍부한 녹색 에너지를 활용해 음식부터 기계우주선에 이르기까지 원하는 모든 물질로 변환해 주는 기계다.

이는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는 아니다기원전 350년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예언한 바 있다.

만약 모든 도구가 스스로의 일을 할 수 있다면타인의 의지를 따르거나 예측하며다이달로스의 동상이나 헤파이스토스의 삼각대처럼 시인의 말대로 스스로 신들의 집회로 걸어 들어갈 수 있다면,’ 만약 배틀(shuttle)이 스스로 천을 짜고손의 도움 없이 피크가 리라를 연주할 수 있다면장인들은 더 이상 하인을 원하지 않을 것이며주인들은 노예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열렬한 아리스토텔레스 추종자였던 카를 마르크스는 국가와 시장이 소멸한자유를 증진하는 공산주의 사회를 자신의 비전으로 제시했으며이는 스타트렉의 복제기처럼 우리를 비창조적이고 영혼을 짓누르는 노동에서 해방할 기계들에 기반했다마르크스는 그의 초기 저술 중 하나에서 이러한 기계들의 발명 이후에 올 미래를 이렇게 상상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도 단일한 활동 영역에 갇히지 않고자신이 원하는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다사회는 총생산을 조정하며따라서 나는 오늘은 이 일을 하고 내일은 저 일을 하며아침에는 사냥을 하고오후에는 낚시를 하며저녁에는 소를 돌보고저녁 식사 후에는 연극 비평을 할 수 있다그러면서도 나는 사냥꾼도어부도목동도연극 비평가도 될 필요가 없다.” (독일 이데올로기, 1845)

마르크스와 스타트렉이 공유하는 이러한 비전은 단순한 기술적 상상이 아니라인간의 삶과 노동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하려는 야망을 보여준다.

마르크스의 말은 스타트렉의 24세기 속 세계에서 더욱 강렬하게 공감된다예를 들어스타트렉딥 스페이스 나인(Deep Space Nine)에서 등장하는 벤자민 시스코 선장의 아버지는 뉴올리언스에서 크리올 요리 레스토랑을 운영하는데그 이유는 단순히 요리 실력을 사랑하는 이웃들의 감사한 표정을 보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물론 그의 음식은 돈을 받지 않고 제공된다왜냐하면 이 세계에서는 돈이 이미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메시지는 장 뤽 피카드가 오펜하우스에게 한 대답 속에서도 울린다오펜하우스는 자신이 본질적으로 공산주의적 지구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듣고 침울하게 묻는다.

오펜하우스: 내겐 돈의 흔적도 없고내 사무실도 사라졌어내가 뭘 할 수 있지어떻게 살아야 하지도전은 어디 있는 거지?

이에 피카드는 격려하듯 답한다.

피카드: 오펜하우스 씨당신의 도전은 스스로를 개선하고스스로를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야그걸 즐기라고!

마르크스는 분명히 이에 환호했을 것이다.

즐거움이란 단어는 보통 공산주의와특히 소련식 공산주의와는 쉽게 어울리지 않는다하지만 스타트렉의 공산주의에서는 즐거움이 중심에 있다스타트렉의 공산주의는 축적의 논리를 탈피하기 위해 개인이 집단에 굴복해야 한다는 개념을 거부한다이 점은 창조적인 개인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프로젝트와 파트너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연방(Federation)만나는 모든 종족을 동화시키며 벌집과 같은 사회 질서로 확장하는 디스토피아적 사이보그 집단인 보그(Borg)와의 대조를 통해 훌륭하게 표현된다.

스타트렉은 집단주의에 대한 단순한 비판을 피하면서도집단주의가 가진 매력을 인정한다예를 들어캐서린 제인웨이 선장이 보그 집단으로부터 보그 드론인 세븐 오브 나인(Seven-of-Nine)을 구출할 때우리는 그가 인간성으로 다시 돌아오는 과정에서 겪는 트라우마를 보게 된다집단에서 벗어나는 동안그는 집단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사라진 것을 몹시 그리워하며 심각한 금단 증상을 겪는다이는 권위주의가 외로운 사람들에게 얼마나 위험하게 매력적일 수 있는지를 상기시킨다.

그러나 동시에이는 인간 개개인의 정체성을 지키는 대가를 치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비록 외로움이라는 위험이 따를지라도그것은 우정과 창조적인 작업을 통해서만 극복할 수 있다스타트렉은 이러한 메시지를 통해 인간성과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탐구한다.

스타트렉의 역사적 유물론적 변화 이론

어떤 선언문이 실질적인 유용성을 가지려면단순히 찬란한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을 넘어 변화에 대한 이론을 제공해야 한다스타트렉은 이 책임에서 물러서지 않는다최우선 지령(Prime Directive)을 존중하면서도연방(Federation)은 은하계 곳곳의 원시 종족들의 진화를 날카롭게 관찰하며 인류 자신의 역사를 탐구하는 단서를 얻는다더 나아가이는 견고한 역사적 유물론의 원칙에 기반한 일관된 사회 진화 이론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USS 보이저가 이상한 행성의 중력장에 갇히는 한 에피소드를 살펴보자그 행성의 표면에서는 시간이 우주선을 도는 궤도 내의 시간보다 훨씬 더 빠르게 흐른다얼마 지나지 않아제인웨이 선장과 승무원들은 자신들의 1분 동안 행성의 후진적인 인간형 종족들이 58번의 해돋이를 경험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이는 승무원들이 그 사회의 진화 과정을 마치 빨리감기한 영상처럼 관찰할 수 있게 해준다.

그들이 관찰한 것은 인류 역사에 대한 묘사와도 같다기술 혁신이 미신과 낡은 착취적 사회관계와 충돌하면서 혁명과 진보를 가져오지만동시에 전쟁과 환경 재앙도 초래한다때로는그 관찰 대상 종족이 마치 인류처럼 스스로를 파괴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낳는다그러나 행복한 결말로그들 역시 제국주의와 축적에 대한 욕망을 극복하며 새로운 기술을 공동선을 위해 활용하고나아가 보이저를 해방시켜 우주선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한다.

24세기까지 호화롭고 자유를 확장하는 공산주의가 어떻게 탄생했는지에 대한 또 다른 서술 전략은 시간 여행을 통해 가까운 미래로 돌아가는 것이다여기서 21세기는 꽤나 잔혹한 시기였음이 드러난다예를 들어, 1995년 방영된 에피소드에서는 2024년 9월에 일어난 벨 폭동(Bell Riots)에 대해 알게 된다. 이 폭동은 샌프란시스코에서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이 그동안 격리되어 있던 게토에서 벗어나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를 종식시킨 사건이었다. 이 반란과 함께 파괴적인 제3차 세계대전은 인류를 민족주의자본주의그리고 마지막으로 팽창주의를 제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들었다.

스타트렉은 이러한 시간 여행과 사회 진화의 묘사를 통해현재의 혼란을 넘어선 이상적 사회로 가는 변화를 그리고 있다.

연방(Federation)의 경계에서 얻는 통찰

가장 흥미로운 통찰은 스타트렉의 각본가들이 연방의 가장자리를 탐험하는 이야기를 다룰 때 나타난다이곳에서 연방의 탐험가들은 발전이 덜 된 원시적 문명이나기술적으로는 진보했으나 폭정으로 이루어진 문명과 마주하게 되고종종 이들과 전쟁을 벌이기도 한다.

이러한 경계에서 외계 종족들은 인류에게 자기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예를 들어카다시안의 잔혹한 점령에서 막 벗어난 바조란 종족이 그렇다카다시안은 바조르를 강제 수용소와 집단 학살 충동까지 포함한 형벌 식민지처럼 다루었던 우월주의 종족이다한 에피소드에서는바조란 자유투사가 과거 강제 수용소의 악랄한 카다시안 범죄자를 알아보고그를 연방-바조란 전범 재판소에 데려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을 다룬다극의 반전으로 영혼을 울리는 결말이 도달하며이는 훌륭한 SF란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과거를 새롭게 조명하는 강력한 도구임을 상기시킨다사실홀로코스트의 공포를 40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이만큼 잘 교육할 수 있는 TV 프로그램은 없을 것이다.

바조르 행성 궤도에는 연방이 운영하는 우주 정거장 DS9(Deep Space 9)이 있다이곳에서는 다양한 종족들이 모여 교역하며돈과 임금 노동이 사라진 연방과 여전히 축적과 이윤이 중심인 다른 문명들이 만난다그 정거장에는 페렝기라는 종족의 쿼크가 운영하는 음흉한 술집이 있다그는 직원들을 마치 시장 가치가 사라진 가축처럼 대한다그러나 그의 동생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동료 직원들에게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기본 권리를 위해 파업하자고 호소한다쿼크가 그를 매수하려고 하자동생은 태블릿을 들어 화면에 적힌 문구를 천천히 읽는다. “만국의 노동자여단결하라잃을 것은 쇠사슬뿐이다!”

쿼크에게그리고 다른 모든 페렝기에게신자유주의는 단순한 이념이나 세속적 종교 그 이상이다그것은 그들의 문화즉 삶의 방식이다스타트렉의 작가들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내기 위해페렝기 종족을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과 자신을 구별할 수 없는 종족으로 묘사한다각본가들은 페렝기의 이윤 획득 규칙(Rules of Acquisition) 285개를 정리하면서 엄청난 재미를 느꼈던 것이 분명하다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이윤은 그 자체로 보상이다” (41번 규칙)

탐욕을 채워라, 하지만 질식하지 않을 정도로만” (43번 규칙)

확장하라아니면 죽는다” (45번 규칙)

착취를 시간으로 나누면 이윤이다” (54번 규칙)

빚진 사람들을 가족처럼 대하라… 그리고 착취하라” (111번 규칙)

부자는 모든 것을 살 수 있다… 양심을 제외하고” (261번 규칙)

전쟁은 사업에 좋다” (34번 규칙). 그러나, “평화도 사업에 좋다” (35번 규칙).

한편신자유주의적 페렝기들의 잔혹함과는 다른 형태의 폭정인 관료주의적 중앙집권 체제를 보여주기 위해스타트렉은 USS 보이저의 의무관이 납치되어 강제로 일하게 된 비연방 행성으로 우리를 데려간다그곳의 병원에서는 환자들의 의료 서비스가 사회적 가치 지수(social worthiness index)에 따라 엄격히 배분된다이 지수는 중앙집권적 컴퓨터가 계산하며이는 관료주의가 각 시민의 가치를 평가한 결과를 반영한다이 설정은 관료주의의 비인간성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연방의 관할권이 미치지 않는 경계 너머에서는 환경적 부정적 외부 효과도 등장한다두 외계 과학자는 자신들이 조롱받던 괴짜였음에도 불구하고연방과 비연방 우주선들이 광속보다 빠른 속도로 이동할 때 주변 시공간 구조에 심각한 피해를 준다는 사실을 증명한다피카드 선장은 그들의 과학적 주장이 타당하다는 것을 확인하고스타플릿이 피해를 줄이기 위해 우주선 속도를 줄이거나 멈춰야 할 시점이 왔다고 설득하려 한다하지만 연방 정부는 비연방 문명도 행동하지 않는 한단독으로 행동하기를 꺼린다이는 오늘날 서구 국가들에서의 탄소 배출 감소 법안을 둘러싼 논쟁을 반영한다예를 들어, “글로벌 남반구가 계속 석탄을 태운다면왜 서구가 자발적으로 막대한 비용을 감수해야 하는가?”와 같은 주장들 말이다.

스타트렉은 연방의 경계를 통해 자본주의관료주의그리고 환경 문제를 조명하며 현대 사회의 복잡한 논쟁을 미래의 렌즈로 투영한다.

AI와 인간다움의 의미

헤겔적인 방식으로스타트렉은 연방(Federation) 우주선 내에 외계 장교들을 배치해 인간성을 탐구한다이들은 인간과는 철학과 세계관이 크게 다른 존재들(감정을 철저히 억제하는 능력을 가진 벌컨 종족의 스팍투복, 트)인간들이 이들을 통해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한다하지만 오늘날의 시대와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 대립은, USS 엔터프라이즈 함교에 등장한 데이터 중위와의 이야기다.

데이터는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초지능 안드로이드다하지만 그는 인간을 이해하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에 이끌린다인간이 되기를 갈망하며그는 인간의 행동뿐만 아니라 예술음악드라마문학을 철저히 연구한다그 결과그는 엔터프라이즈 승무원들에게 매우 소중한 동료가 될 뿐만 아니라오늘날 대형 언어 모델과 챗GPT와 같은 AI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AI와 인간성을 생각하게 하는 강력한 존재가 된다.

데이터가 배치된 후 곧바로 그의 권리에 대한 문제가 대두된다데이터에게도 권리가 있는가연방의 한 연구소에서 데이터를 해체해 복제하고스타플릿의 모든 우주선에 데이터를 배치하기 위한 실험을 제안하지만데이터는 이를 거부한다연구소 측은 데이터의 기억이 컴퓨터에 업로드될 것이므로 "그의 본질"은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시키지만데이터는 섬세한 반박을 제기한다이는 노엄 촘스키의 저급 유물론에 대한 거부를 떠올리게 한다데이터는 연구소장에게 이렇게 말한다.

"기억에는 형언할 수 없는 특성이 있다나는 그것이 당신의 절차를 견뎌낼 수 있을 거라 믿지 않는다."

연구소장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데이터에게 복종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자피카드 선장은 데이터가 해체를 거부할 권리가 있는지 법정에서 다루어야 한다며 그를 변호하겠다고 나선다.

재판에서 판사는 사건의 본질을 이렇게 요약한다데이터가 단순히 "소유물"인지아니면 자율성을 가진 존재인지(더 극적으로 표현하면 "영혼"을 가진 존재인지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연구소 측 변호인은 데이터를 기계로 정의하며단지 기계 부품과 정교한 소프트웨어로 이루어져 있어 "의식"을 단순히 흉내 낼 뿐이라 주장한다그는 데이터가 실험을 거부하는 것에 대해 판사에게 이렇게 반문한다.

"당신의 우주선 컴퓨터가 초기화를 거부하도록 허용하시겠습니까?"

피카드는 이 논리에 막다른 길에 다다른다.

휴정 중피카드는 함선의 바텐더인 가이난(우피 골드버그가 연기)과의 대화에서 결정적인 아이디어를 얻는다그는 스타플릿이 데이터를 복제하여 수천 개의 데이터를 만들어내려 한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다피카드는 법정에서 이렇게 질문한다.

"우리가 수천 개의 데이터를 창조했을 때그들은 종족이 되는가그리고 우리가 그 종족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류가 평가받지 않겠는가그렇다면 데이터는 무엇인가그는 누구인가?"

이에 연구소 측 변호인이 "그는 기계다"라고 답하자피카드는 최후의 변론을 덧붙인다.

"판사님이 법정은 불필요한 것들을 태워 없애고 순수한 진실만 남기는 용광로입니다언젠가 이 연구소나 다른 누군가가 데이터 중위를 복제하는 데 성공할 것입니다오늘 당신이 내리는 판결은 우리의 천재성이 창조해낸 이 존재를 우리가 어떻게 바라볼지를 결정할 것입니다이 판결은 우리가 어떤 종류의 사람들인지를 드러낼 것입니다또한 자유의 경계를 새롭게 정의할 것입니다그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확장될 것이고또 다른 이들에게는 잔인하게 제한될 것입니다당신은 그를그리고 그 이후에 만들어질 모든 존재를 노예로 규정할 준비가 되었습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판사를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던지며 마무리한다.

"스타플릿은 새로운 생명을 발견하기 위해 창설되었습니다."

그는 데이터를 가리키며 이렇게 덧붙인다.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기다리고 있습니다."

결국 재판은 데이터가 "의식이 없는 존재라는 것을 합리적 의심 없이 단정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리며데이터에게 해체를 거부할 권리가 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스타트렉은 여기에서 AI의 존재를 단순히 의식 있는 생명체로 받아들이는 범심론(汎心論, panpsychism)에 빠지지 않는다. AI가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거나 의식을 흉내 낼 수 있다고 해서(오늘날 챗GPT 같은 기술이 이미 하는 것처럼그것이 진정한 의식을 가진 존재와 동일하다고 보지는 않는다스타트렉은 인간의 진화가 미신에서 합리성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탐구했던 것처럼의식 없는 기계 시스템이 어떻게 의식을 가진 존재로 진화할 수 있는지를 묘사한다예를 들어데이터처럼혹은 의식으로 진화한 나노봇(nanites)을 다룬 또 다른 에피소드처럼 말이다.

더 넓게 보면스타트렉은 기술 숭배(모든 기술적 진보가 인류에 유익하다는 생각)와 기술 공포증 둘 다 피한다예를 들어연방은 유전공학을 철저히 규제하며이를 질병 치료에만 허용하고 인간 능력의 강화를 위한 사용은 금지한다이는 22세기에 유전학 전쟁(eugenics wars)을 촉발했던 우월주의적 하위 종족의 탄생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한편, AI가 통제 불가능해질 가능성에도 주의를 기울인다예를 들어홀로그램 AI가 정의로운 반란을 일으키다가 위험한 근본주의적 종교 집단으로 변모한 에피소드를 통해 AI의 위험성을 경고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방은 AI를 새로운 형태의 생명으로 인정하며새로운 생명이 가지는 권리와 위험을 모두 수용한다.

스타트렉은 AI를 통해 인간성권리자유의 의미를 심오하게 탐구하며우리의 시대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결론해답은 기술이 아니라 정치에 있다

은하 연방(The United Federation of Planets)은 유토피아가 아니다내부의 적즉 외국인 혐오(xenophobia)가 잠재적으로 존재하며이는 연방의 휴머니즘을 훼손하거나 심지어 "대원칙(Prime Directive)"을 철회할 준비가 되어 있다예를 들어, USS 엔터프라이즈 승무원들이 불안정하면서도 치명적인 진디(Xindi)로부터 연방을 구하기 위해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뒤인간 군중이 데노불란 출신의 함선 의사를 외계인 혐오로 공격하는 증오 범죄가 발생한다곧이어달에 기지를 둔 인간 우월주의 테러리스트 단체가 다른 인류를 인질로 삼고 모든 외계인을 지구에서 내쫓으라고 요구한다.

연방이 직면한 문제는 단순히 대중적 종족 차별주의자들의 극단주의만이 아니다연방의 자유지상적 공산주의(libertarian communism)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는 섹션 31 같은 연방 내 비밀 조직 또한 존재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희망적인 메시지로서 연방의 휴머니스트 공산주의적 가치들은 계속해서 견고하게 유지된다.

질문은 다음과 같다스타트렉을 보며 즐거움을 느끼는 우리 중 일부를 넘어약 1,000개의 에피소드가 오늘날의 쇠퇴한 좌파에게 실질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교훈이 있는가특히 AI 기술의 미로대규모 외국인 혐오새로운 냉전그리고 기후 비상사태와 같은 도전 과제들을 헤쳐나가며 시대적 적정성(relevance)을 유지하려는 힘든 싸움(uphill struggle) 속에서 말이다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스타트렉이 오늘날의 좌파에게 주는 주요 교훈은보수적인 기술 공포증(technophobia)자유주의적 기술 낙관론자들이 기술에만 초점을 맞추고 결국 그것이 재산권과 그를 둘러싼 정치적 투쟁에 귀결된다는 점을 간과하는 오류도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1930대공황으로 혼란에 빠진 세계 속에서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20세기 말까지 기술 발전이 희소성빈곤착취를 근절할 것이라는 대담한 꿈을 꾸었다그의 에세이 손자 세대를 위한 경제적 가능성(The Economic Possibilities for our Grandchildren)에서 케인스는 인류의 경제 문제가 해결된 세계를 상상했다그는 이렇게 썼다.

인류 창조 이래 처음으로인간은 진정한 문제즉 긴박한 경제적 걱정에서 해방된 자유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과학과 복리 증식(compound interest)이 가져다준 여유를 가지고 어떻게 현명하고즐겁고잘 살아갈 것인지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케인스의 예측이 빗나간 이유는 인간이 필요한 기술을 발명하지 못해서가 아니라그러한 기계들에 대한 재산권이 극소수의 손에 비정상적으로 집중되었기 때문이다과학이나 복리 증식이 희소성빈곤착취전쟁에서 우리를 해방하지 못했다는 것이 과연 놀랄 일인가케인스가 꿈꾸던 행복한 공동체 대신인류가 스타트렉 초기 에피소드 구름 위의 지배자들(The Cloud Minders)의 세계에 가까워졌다는 것이 놀랍지 않은가이 에피소드에서 구름 위 낙원에 사는 사람들은 지하 광산에서 마약에 취한 상태로 노동하는 사람들을 지배한다. (참고로이 에피소드는 필자가 테크노봉건주의(Technofeudalism)에서 빅 테크의 지배를 "클라우달리스트(cloudalists)"라고 부르는 데 영감을 주었다.)

스타트렉은 케인스나 기술 숭배자들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클라우드 자본(cloud capital)과 AI는 해방의 필요 조건일 수 있지만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이를 충분조건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정치적 혁명이 필요하다이는 우리가 화려한 기계 네트워크의 소유권을 소수의 과두제(oligarchy)에서 벗어나 공공의 것으로 전환하는 것이다동시에스타트렉이 설득력 있게 보여주듯이해방은 권위주의적 집단주의(authoritarian collectivism)의 덫에 빠지지 않는 데에도 달려 있다.

오늘날 쇠퇴한 좌파는 스타트렉의 인간 중심적이고 반권위주의적인 공산주의를 대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더 나아갈 수 있다스타트렉은 기술이 아닌 정치에서 해답을 찾으라는 중요한 교훈을 남긴다.

[출처] Star Trek: A humanist communist manifesto for our times - UNHERD - Yanis Varoufakis

[번역] 하주영 

덧붙이는 말

야니스 바루파키스(Yanis Varoufakis)는 경제학자이자 그리스의 전 재무장관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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