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복원’ 위한 방송3법 개정,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긴급토론회. 출처: 민주언론시민연합
‘방송3법’ 개정안이 다시 정치권의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언론·미디어의 기본적인 기능이 국민의 알권리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법안이라 할 것이다. 법을 만드는 국회 역시 그 방향에서 접근해야 했다. 하지만 법안을 만드는 데 있어서 지나친 폐쇄성이 있었고, 결국 사달이 났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산하 법안심사소위(소위원장 김현)는 「방송법」, 「방송문화진흥회법」, 「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 이른바 ‘방송3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그동안 알려진 대로 공영방송 KBS와 MBC, EBS 이사 추천권 분산과 사장의 선출 방식 그리고 제작 자율성 확보를 위한 보도 책임자에 대한 임명동의제 등 폭넓은 내용이 포함됐다. 무엇보다 보수 정권에서도 통용될 수 있어야 하는 법안이어야 한다는 점도 중요했다. 그동안 법안 내용은 물론 절차에 대해 ‘설왕설래’가 거듭돼 온 이유다. 그런데 이날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한 법안은 ‘더불어민주당 과방위 방송3법 단일화’로 하루 전날 <공영방송 복원 위한 방송3법 개정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긴급토론회에서 최초 공개되면서부터 우려가 쏟아졌다.
그런데도 과방위 법안심사소위는 민주당 주도로 다음 날 회의 개의 1시간 10분 만에 법안을 통과시켰다. 법안심사소위원회란 무엇인가. 법률안의 조목조목을 따지는 축소심의를 통해 정부 부처 및 이해관계의 의견을 폭넓게 수용해 실효성을 높이고 결과적으로 완결된 형태의 법안을 만들기 위함이 아닌가. 그에 따른 제 역할을 다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방송3법’ 개정안의 내용은
현재는 KBS를 비롯한 MBC, EBS 등 공영방송 사장을 대통령이 원하는 인물로 내려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법 개선이 필요하다. 이 부분을 부인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방송3법’ 개정안에서 공영방송 사장을 뽑는데 주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이사의 추천권을 분산시킨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대표성이다.
‘방송3법’ 개정안을 보면, KBS이사회는 총15명으로 구성된다. 그러면서 이사 추천권은 ▲국회 교섭단체가 의석수 비율에 따른 6인, ▲KBS시청자위원회 2인, ▲공사의 임직원 과반수 이상이 방송 전문성과 방송 보도, 제작, 기술 등의 직종 대표성을 고려하여 추천하는 사람 3인, ▲활동기간, 주요 활동내역, 회원 수 등을 고려해 방통위규칙으로 정하는 방송미디어 관련 학회 3개가 합의한 2인, ▲활동기간, 주요 활동내역, 회원 수 등을 고려해 방통위규칙에 따라 정하는 2개의 변호사 단체가 각각 1명씩 2인으로 구성하도록 했다. 추천인의 수를 합하면 15인. 말이 ‘추천권’이지 사실상 ‘임명권’을 각 단체에 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
방통위는 법적으로 ‘임명제청권’을 가지고 있으되, 사실상 임명제청이 아닌 상황을 만들어버렸다. 이게 옳은가. ‘방송3법’ 개정안을 보면 방통위의 역할은 공백이다. 이사 추천권을 가진 단위들이 제대로 절차를 지켜서 추천했는지에 대한 감독 권한이 있는 것인가? 현재 개정안에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대통령의 임명권 또한 유명무실화됐다. 법안에 ‘대통령은 결격사유에 해당하지 아니하면 추천한 날로부터 14일 이내에 임명하여야 하고, 그 기간이 경과하면 즉시 임명된 것으로 간주한다’는 문구가 포함됐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법체계에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한국의 방송은 지상파방송(KBS·MBC·SBS·EBS·지역MBC·지역민방 등)과 종합편성채널(TV조선·JTBC·MBN·채널A), 보도전문채널(연합뉴스TV·YTN), PP(tvN 등 유료방송채널) 등에 따라 사회적으로 부여받은 공적책무가 다르게 통용되고 있다. 지상파방송사들은 ‘재허가’를 받아야 하고,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전문채널은 ‘재승인’ 대상이다. PP는 등록제로 운영된다. 그런데, 개정안을 보면 방송사 내 제작자율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인 ‘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를 KBS와 MBC, EBS 등 공영방송과 보도전문채널에만 의무로 뒀다. 보도전문채널보다 더 큰 책무를 부여받고 있는 민영방송 SBS와 지역민방 그리고 종합편성채널은 제외됐다. 이 부분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은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KBS 이사를 추천하는 ‘대표성’에 근본적인 문제도 존재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일찍이 기울어져 있는 ‘방송의 성평등 제고’를 위해 “공영방송사 이사 임명 시 특정 성이 10분의 6을 초과하지 않도록 관련 법령을 개정하기 바람”이라는 권고안을 냈었다. 그리고 21대 국회에서는 적어도 방송법 개정안에 성별 대표성을 넣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에는 이 부분이 완전히 빠져 있기도 하다.
왜 이렇게 됐을까
더불어민주당이 개정안을 만들며 논의를 폐쇄적으로 가져간 데에 원인이 있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건이 있었다. 지난 미디어스는 지난 1일 민주당 과방위의 ‘방송3법 단일 안’을 단독으로 입수해 보도했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 최민희 과방위원장은 본인의 SNS에 “유출경로 모름”이라고 적었다. 국회라는 공론장에서 논의되는 법안 내용은 검증이 필요한 것인데, 그것을 ‘유출’이라고 표현하는 게 옳은가. 그리고 “방송3법은 한두 해 논의한 법이 아닙니다. 내용도 뻔합니다”라고 적었다. 그렇다면, 더더욱 숨길 이유가 없었던 게 아닌지 묻고 싶다.
출처: KBS 뉴스 갈무리
방송법 개정안은 미디어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현행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의 필요성을 부인하는 사람도 없다. 오히려 법 개정안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더 좋은 법안’을 만들도록 조언을 해왔던 이들도 있다.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강형철 교수는 누구보다 공개적으로 구체적인 의견을 제시한 인물이다. 그는 최근 경향신문 <[미디어세상]‘방송 3법안’, 시한 정해 숙의해야> 칼럼에서 “그간 ‘알려졌다’ 식의 보도로만 개정 내용이 흘러나올 뿐 공론이 부족했던 게 사실”이라고 우려하며 “‘전문가 의견수렴과 숙의’를 통해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유능한 리더십 제고에 도움 될 길을 다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정부·여당이 명확한 시한을 제시한 뒤 공론과 숙의를 통해 방송법 개정안을 검토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런 고견은 속도전에 밀리고 말았다. 법의 완결성보다 우선 처리가 더 중요하다는 소리인가.
그동안 국회에서 만들어지는 방송법 개정안에 대해 여러 연구자를 비롯해 시민단체, 시청자단체, 협업인들이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왔다. 그렇다면 ‘더불어민주당 과방위 방송3법 단일화’에 대해 법 처리에 앞서 실질적으로 조언할 이들을 만나 의견수렴을 거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방송3법’ 개정안이 ‘정치적 후견주의’를 씻어내지 못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에 “1930년대를 황폐화한 평범한 악인”(채영길 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장)이라고 몰아세웠다. 문제를 제기하는 게 왜 문제인가.
방송3법 개정안, 이대로 처리해도 괜찮을까
‘방송3법’ 개정안은 지금, 이 순간도 수정되고 있다. 과방위 법안심사소위에서 1시간 10분 동안 회의하면서 공영방송 사장을 뽑는 데 있어서 ‘사장추천국민단 100명 이상 구성’ 내용이 추가됐다. 그만큼 공영방송 이사회의 역할은 축소되는 셈이다. 그동안 ‘옥상옥’이라고 지적해왔던 이유다.
상황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은 정말로 필요한 법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부침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법이 통과되는 게 옳은지는 다른 문제다. 언론연대가 ‘정비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냈던 이유다. 신속하게 하되 그 과정에서 완결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또한 새로운 당대표가 선출된 이후로 법안 처리를 미룬 상태다. 그렇다면, 그 시간만이라도 의견수렴을 더 거치는 게 옳은 게 아닌가. 만일, 이번에도 방송법 개정안 처리가 좌초된다면 그것은 ‘평범한 악인들’ 때문이 아니다. 폐쇄적으로 모든 논의를 끌어온 이들 때문이라는 걸 명심하길 바란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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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택은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