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세계 각국의 반응은 예상한 대로였다. 가장 강하게 반응한 나라는 미국이었다. 미국은 스스로를 기존 체제의 수호자로 여겼고, 어쩌면 우크라이나가 궁극적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도록 보장하는 역할까지 자임했다. 유럽은 냉전 시절에도 대체로 그랬듯 미국보다 몇 단계 낮은 수위로 반응했다. 마지막으로 나머지 세계의 국가들은 러시아가 국제법과 UN 규범을 명백하게 위반했다며 대부분 비판했지만, 그다지 큰 우려를 나타내지는 않았다.
그러나 상황은 달라졌다. 변화는 이미 바이든 행정부 때부터 시작됐다. 바이든은 러시아를 매우 강하게 비판했고, 미국과 전쟁 중이 아닌 국가의 정부 재산과 민간 재산까지 압류하는 등 전례 없이 강력한 제재를 가했다. 그럼에도 냉전 시대부터 이어진 몇 가지 원칙, 즉 핵무장국과 불필요하게 긴장을 고조시키지 않는다는 원칙은 여전히 지켰다. 러시아 영토를 공격하지 못하게 한 바이든의 정책에서 이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이러한 정책을 점차 폐기했고, 결국 미국이 러시아 내 공격 지점을 선정하고 직접 표적을 지정하면서 사실상 전쟁에 뛰어들었다.
출처: Unsplash+, Alex Shuper
지난 2년 동안 상황은 더욱 달라졌다. 미국은 사실상 전쟁 당사자로 참여하는 정책을 이어가는 한편, 어떤 식으로든 전쟁을 끝내려는 의지도 보였다. 놀라운 점은 몇몇 유럽 국가에서 전쟁에 대한 갈망이 거의 채워질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는 사실이다. 특히 북유럽과 발트 국가들이 앞장섰고, 최근에는 독일도 여기에 합류했다. 1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장기적인 역사적 이유 때문에 영국도 오래전부터 같은 태도를 보여왔다.
지정학적으로 무책임하게 행동해 세계에 막대한 피해를 끼칠 수 있는 소국의 역할은 흔히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북유럽·발트 연합은 러시아와의 전쟁을 사실상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과거 러시아와 소련의 지배와 점령을 겪으며 생긴 공포와 트라우마를 그 근거로 내세운다. 이런 주장들이 완전히 일방적인 것은 아닌지에 관한 논의는 제쳐두자. 가령 러시아인들은 라트비아 소총병들이 러시아 혁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느냐고 반론할 수도 있지 않은가? 소국들이 벌이는 이런 종류의 전쟁 선동은 지극히 위선적이다. 자신들은 전쟁을 주장하면서도 그 전쟁이 초래할 결과는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깔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강대국의 이해관계와 소국의 이해관계를 가능한 한 서로 얽어놓으려 한다. 그렇게 해서 강대국들끼리 싸우고 수백만 명이 죽더라도, 전면전이 끝난 뒤에는 소국들이 자신들의 목표를 달성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 자체도 충분히 나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동유럽과 중동에서 이와 비슷한 정책이 세계적인 대재앙을 불러온 분명한 역사적 전례가 있다는 점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 세르비아는 러시아를 끌어들여 이용하려 했다. 폴란드와 헝가리는 체코슬로바키아 분할에 가담했고, 이는 나치 독일이 침략을 계속할 길을 열어줬다. 이스라엘은 수십 년 동안 중동에서 미국을 끌어들이는 전략을 구사해왔다. 지금이 가장 명백한 사례다. 미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 뛰어들었던 것과 매우 흡사하게, 왜 전쟁을 해야 하는지 또는 그 전쟁의 정치적 목표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이란과의 전쟁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이스라엘에 유리하다. 중동의 또 다른 강국을 약화시키고 역내 혼란을 더욱 심화시키기 때문이다.
세계는 지금 이와 비슷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인구를 모두 합쳐도 중국의 2선급 도시 하나의 인구와 비슷한 수준에 불과한 몇몇 국가가 자신들의 좌절감과 트라우마를 해소하기 위해 전 세계를 문명 자체가 사실상 종말을 맞을 수도 있는 재앙으로 몰아넣으려 한다. 믿기 어려울 만큼 무책임한 정책이다. 다른 누군가, 이 경우에는 미국이 자신들을 대신해 싸워줄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는 점에서 위선적이기도 하다. 이들이 그토록 전쟁을 원하고 전쟁에 도덕적 가치가 있다고 확신한다면 왜 직접 참전하지 않는가? 왜 러시아를 직접 공격하고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지켜보지 않는가? 물론 그것도 광기 어린 행동이겠지만, 적어도 세계의 다른 사람들에게 무책임한 행동은 아닐 것이며 위선적이지도 않을 것이다.
물론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는 주장, 정확히 말해 다른 누군가가 대신 싸워주는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는 현재의 전선을 기준으로 휴전을 논의하면 침략자에게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논리라면 모든 전쟁은 끝까지, 모두가 파괴될 때까지 계속해야 한다. 어떤 협상도 해서는 안 됐을 것이다. 외교라는 것도 존재해서는 안 된다. 한국전쟁도 여전히 계속하고 있어야 한다. 사실 그럴 가능성은 없었을 것이다. 당시 북유럽·발트 연합이 오늘날 주장하는 정책을 그대로 따랐다면, 맥아더가 원했던 것처럼 상황이 흘러갔을 것이고, 우리는 애초에 태어나지도 못했을 것이며 우리의 부모나 조부모도 오래전에 모두 죽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북유럽·발트 연합은 또 하나의 사실도 잊고 있다. 현재의 실효 지배선을 따라 휴전선을 정하면 돈바스 등의 영토를 실제로 러시아가 통제하게 되겠지만, 세계 어느 나라도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독립국가연합 회원국 가운데 어느 나라도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들은 보지 못했는가? 심지어 벨라루스조차 인정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보지 못했는가? 물론 이런 평화는 불안정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벌어지는 살육을 끝낼 뿐 아니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장기적으로 해결책을 찾을 가능성도 열어둔다. 푸틴도, 젤렌스키도, 이들을 지지하는 사회 세력도 영원하지 않다. 러시아도 변하고 우크라이나도 변할 것이다. 10년이나 20년 뒤에 협상할 수도 있다. 적어도 그때까지 사람들이 죽지 않고 살아 있을 수 있다.
이들은 그렇게 하면 ‘동결 분쟁’이 생긴다고 말한다. 그러나 동결 분쟁이 실제 전투가 계속되는 분쟁보다 더 나쁜가? 사람들이 죽지 않는 상태가 살육을 계속하는 것보다 못한가? 키프로스에서 코소보, 서사하라, 말비나스, 카슈미르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에는 수십 건의 동결 분쟁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 모든 분쟁을 다시 전쟁으로 되돌려야 하는가? 이들은 이런 도덕적 질문에 답하기를 꺼린다. 이들이 우크라이나인의 생명에 암묵적으로 부여하는 가치는 0이고, 러시아인이 죽는 것에는 플러스의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의 관점에서는 끝없는 전쟁이 이득을 낳는 게임이다.
끝없는 전쟁이라는 발상은 부도덕할 뿐만 아니라 엄청난 핵전쟁 확전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기도 하다. 냉전 시대에는 두 강대국 모두 이러한 위험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양국은 법적 구속력이 있는 네 건의 핵 관련 협정을 체결했다. 지금은 그 협정이 모두 효력을 잃었다. 오늘날 사람들은 마치 핵무기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한다. 이는 전혀 타당하지 않은 가정이다. 설령 핵전쟁이 일어날 확률이 100만 분의 1에 불과하다고 하더라도, 핵전쟁은 통제할 수 없고 그 피해가 너무나 막대하기 때문에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를 피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한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재 상황에서 북유럽·발트 국가들의 전쟁 선동은 (1) 무책임하고, (2) 위선적이며, (3) 부도덕하고, (4)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재앙을 초래할 위험을 무릅쓰는 행위다.
[출처] On European hypocrisy and warmongering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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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랑코 밀라노비치(Branko Milanovic)는 경제학자로 불평등과 경제정의 문제를 연구한다. 룩셈부르크 소득연구센터(LIS)의 선임 학자이며 뉴욕시립대학교(CUNY) 대학원의 객원석좌교수다. 세계은행(World Bank) 연구소 수석 경제학자로 활동한 바 있으며, 메릴랜드대학과 존스홉킨스대학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