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이 끌고 가는 방식 안 돼...노동당·녹색당이 먼저 제안하면 더 좋다”
“10명·20명 모임도 N분의 1...100인 선언·원탁회의도 가능”
“당을 지킬 생각 말고 판 바꿔야...2028년 하나의 새 진보정당이 목표”
구로구 정의당사에서 양경규 대표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참세상 박도형 기자.
“3당 통합은 불가능합니다”
양경규 정의당 대표가 잘라 말했다. 노동당·녹색당·정의당 지도부가 만나 세 당을 합치는 방식으로는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들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세 당이 각자 살길을 찾자는 얘기도 아니다. 양 대표의 목표는 오히려 분명하다. 2028년 총선을 ‘하나의 새로운 진보정당’으로 치르는 것. 다만 당을 먼저 합치는 것이 아니라 당 밖의 정치적 힘부터 다시 모아 “판을 바꾸겠다”고 했다.
“10명, 20명이 되는 조직도 이 운동의 하나의 단위이자 N분의 1로 참여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지역의 작은 노동자 모임도, 기후·여성·장애·인권운동도, 노동정치를 고민하는 산별노조도 새 판의 동등한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10개, 20개 조직일 수 있고, 그것이 ‘100인 선언’이나 연석회의·원탁회의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
더 뜻밖의 대목은 그다음이었다. 정의당 대표가 만들겠다는 새 정당인데, 정작 정의당이 앞장서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다.
“노동당이나 녹색당이 중심이 돼서 가줬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따라가는 모양새였으면 좋겠습니다. 도와줄 수 있는 일은 다 도와주고, 내려놓을 수 있는 게 있으면 다 내려놓겠습니다.”
양 대표는 14일 서울 구로구 정의당 중앙당사에서 진행한 참세상 인터뷰에서 “정의당을 지킬 생각을 하지 말고 판을 바꿀 생각을 하자”고 당원들에게 말한다고 했다.
양경규 대표는 지난 8월 29일 정의당 제9기 당대표 선거에서 신임 대표로 선출됐다. 당선 직후부터 “더 크고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을 내걸었다.
“3당이라는 프레임은 무망하다”
양 대표가 말하는 ‘새 길’은 정의당의 재건과는 조금 다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의당의 복원이 아니라 진보정치의 재구성”이라고 했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당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중심에는 대공장과 조직노동이 있었다. 지금은 비정규직과 플랫폼노동자, 돌봄노동자, 이주노동자, 프리랜서가 크게 늘었다. 노동자의 삶에서 주거·젠더·돌봄·기후를 떼어내기도 어려워졌다.
“과거 민주노동당으로 돌아가는 길도 아니고, 지금의 정의당을 조금 확대하는 길도 아닙니다.”
변화한 노동과 사회운동이 함께 정치의 주체가 되는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래서 ‘진보 3당 통합’이라는 익숙한 공식에도 선을 그었다.
“3당 통합은 불가능합니다. 역사적 경험과 정체성에 비추어서 3당이라는 프레임으로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시도는 무망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세 당을 곧장 합치려 하기보다 그 사이에 “수많은 기둥”을 세워야 한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3당을 연결시킬 수 있는 수많은 기둥들을 중간에 배치해야죠. 진보정치를 염원하는 사회단체, 개인, 사회운동, 아직 노동정치를 통한 노동자 진보정당을 꿈꾸는 산별노조들을 묶어 세우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양 대표는 당분간 자신의 일은 “사람을 만나는 것”, “단체를 방문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했다.
사진. 참세상 박도형 기자.
“노동당·녹색당이 먼저 제안하면 얼마나 좋겠나”
그 과정에서 정의당은 어느 자리에 서는가.
양 대표는 정의당이 한때 진보정치의 주류였지만 다른 진보세력에는 “비판의 대상이자 미움의 대상”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런 정의당이 완성된 통합안을 만들어 들고 나서는 순간 다른 세력들의 경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의당이 추동해가는 방식으로 이 운동을 하는 것은 효과적이지 못할 수 있다고 봅니다.”
오히려 “예를 들면, 노동당이 제안해서 이 그림이 모인다면 얼마나 좋겠냐”고 했다. 녹색당이 먼저 제안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정의당의 과거 의석수나 당원 수, 인지도가 새 당의 기득권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노동당의 체제전환 문제의식, 녹색당의 생태정치, 정의당이 축적한 노동·의회정치와 사회운동의 경험을 각각 새 정치에 내놓아야 한다고 했다.
정의당 자체의 존속도 전제가 아니다.
새 정당 건설을 위해 필요하다면 정의당을 해산하는 것도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양 대표는 “가능할 수 있죠”라고 답했다. 하나의 당 안에서 서로 다른 정치세력의 독자성을 인정하는 ‘당내 당’ 방식 등 조직형태도 열어놓고 논의할 수 있다고 했다.
“10명짜리 모임도 N분의 1”
양 대표가 강조한 것은 유명한 몇몇 조직을 모으는 ‘상층 통합’이 아니었다.
“민주노총을 염두에 두고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불가능합니다.”
과거 민주노총이 국민승리21과 민주노동당 건설을 추동하던 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양 대표는 1997년 국민승리21을 만드는 과정에서 정치위원장으로 100여 개 단체를 찾아다녔다고 회고했다. 산별노조와 지역본부, 서로 노선이 다른 정치세력과 사회운동을 직접 만나 진보정당 건설을 설득했다.
이번에도 사람을 만나고 조직을 연결하는 것부터 시작한다는 생각은 같다. 하지만 주체는 달라져야 한다고 했다.
“10명, 20명이 되는 조직도 이 운동의 하나의 단위이자 N분의 1로 참여하는 구조들을 끊임없이 만들어가는 게 중요합니다.”
지역에서 진보정치를 고민하는 노동자 모임이나 작은 학습모임도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중앙조직이 있는 큰 단체든 지역에만 있는 작은 조직이든 상관없다고 했다.
“거대한 단체, 운동의 주류들을 묶어 세우는 것으로 한정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탈핵운동과 체제전환운동 등 여러 사회운동 단체도 “일일이 만나보고 고민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사진. 참세상 박도형 기자.
새 판에는 어떤 노동이 중심이어야 하나...“독립노조 고민도”
새 진보정당의 사회적 기반을 이야기하면서 양 대표는 조직 노동에도 날을 세웠다.
진보정당과 민주노총 사이가 왜 멀어졌는가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노동자와 진보정치가 왜 멀어졌느냐는 것이라고 했다.
그 원인의 하나로 “민주노조운동의 퇴행”을 들었다.
“조합주의가 확산되고 그 과정에서 노동의 양극화가 진행되고, 조직된 현장 조합원들이 우리 사회 20% 상위에 해당하는 구조는 필연적으로 민주당과의 친화성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민주노조운동의 전면적인 혁신”이 필요하다고 했다.
비정규직·영세노동자의 조직 방식에 대해서도 기존 노조에 편입시키는 방식만이 답인지 되물었다.
비정규·영세노동자 운동이 강하게 올라왔을 때 별도의 조직을 만드는 길도 있었을 것이라며 “그게 오히려 민주노총의 혁신에 도움이 될 수 있었다”고 했다. “독립노총, 독립적인 조직에 대한 고민도 필요했다”는 말도 꺼냈다. 이 문제의식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노동정치도 조직노동의 이해를 앞세우는 정치와는 다르다.
“노동정치는 페미니즘이고 노동정치는 생태주의이고 노동정치는 차별과 혐오에 맞서는 정치여야 합니다.”
플랫폼노동자, 돌봄노동자, 이주노동자, 프리랜서와 불안정 노동을 오가는 청년까지 오늘의 노동자로 보고, 젠더와 생태, 장애와 이주, 돌봄과 주거를 하나의 사회변화 프로젝트 안에서 연결해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보다 복지 10% 더 하자는 게 아니다”
새 정당을 만들어 무엇을 하려는가라는 질문에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꺼냈다.
양 대표가 설명한 민주적 사회주의는 “시장에 넘겨준 삶을 다시 사회가 찾아오는 정치”다.
주거·의료·돌봄·교육을 구매력에 맡기지 않고 권리로 보장하는 것, 정치에 머물러 있는 민주주의를 기업과 경제의 의사결정까지 확장하는 것이다.
“민주당보다 복지를 10% 더 하자는 것이 민주적 사회주의가 아닙니다.”
불평등이 발생한 뒤 이를 완화하는 데 그치지 말고, 누가 부를 소유하고 누가 경제를 결정하는지까지 묻자는 이야기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AI·반도체 중심 산업정책에도 같은 기준을 제시했다.
공공재정과 전력·물·토지를 대규모로 투입하면서 투자와 생산은 기업이 결정하고 이익을 주주와 기업이 가져가는 구조를 비판했다.
“공공의 돈과 자원이 들어가면 공공의 권리도 생겨야 합니다.”
공적 투자는 공적 소유와 사회적 통제, 노동자의 의사결정 참여로 이어져야 하며, 국가가 대규모 자금을 지원한다면 기업 지분을 확보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사진. 참세상 박도형 기자.
“2028년에 함께하려면 지금부터 함께해야”
목표 시점은 2028년이다.
양 대표는 다음 총선을 노동당·녹색당·정의당이 각각 치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그렇다고 선거를 몇 달 앞두고 후보와 비례명부를 나누는 식의 선거연합에도 반대했다.
“그것은 정치연합이 아니라 선거공학이 되기 쉽습니다.”
노동과 기후, 민주당과의 관계, 선거제도,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지에 대해 지금부터 함께 논쟁하고 공동사업과 지역실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2028년에 함께하려면 지금부터 함께해야 합니다.”
그 과정을 거쳐 “하나의 정당이라는 이름으로 2028년 총선을 치러내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아직 당 이름도, 창당기구도, 참여 세력도 결정되지 않았다. 노동당과 녹색당이 이 구상에 어떤 답을 내놓을지도 미지수다.
양 대표가 먼저 제시한 것은 조직도라기보다는 순서도다.
세 당 지도부가 합당부터 협상하는 것이 아니다. 작은 노동자 모임과 사회운동, 지역 정치세력과 개인들을 먼저 연결한다. 그 안에서 함께 싸우고 논쟁하고 정책을 만들면서 정치적 공동체를 만든다. 기존 정당들은 그 판에 들어온다.
그리고 정의당도 그중 하나여야 한다는 것이다.
“당을 지킬 생각을 하지 말고 판을 바꿀 생각을 하자.”
양경규가 정의당 대표가 된 뒤 던진 첫 승부수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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