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이브 스미스)의 말] 영어권 언론과 싱크탱크는 아프리카의 막대한 자원에도 이 대륙을 소홀히 다룬다. 아프리카에서는 풍부한 자원 때문에 유혈 분쟁이 발생하고 장기화하는 일이 너무나 잦았지만, 언론과 싱크탱크는 폭력이 외면할 수 없을 만큼 극심해질 때를 제외하면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나 역시 르완다 집단학살과 그 배경에 깔린 투치족(Tutsi)과 후투족(Hutu) 사이의 적대 관계를 제외하면, 중앙아프리카 전쟁의 비극적인 역사를 위험할 만큼 무지한 수준으로 알고 있음을 고백해야 한다. 조지프 버스비(Joseph Busby)는 이 글에서 콩고의 풍부한 광물 자원부터 매혹적이지만 치명적인 키부호(Lake Kivu)의 중요성까지 폭넓은 배경을 설명한다.
Ⅰ. 비유를 넘어선 현실
키부호의 최북단에서 헤엄치다 보면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목가적인 풍경 가운데 하나를 엿볼 수 있다. 거대한 호수가 반짝이고, 부드러운 모래사장 곳곳에서는 야자수가 살랑거린다. 호숫가는 완만하게 높아지며 도시로 이어지고, 선명한 녹색의 언덕과 산들이 도시를 둥글게 에워싼다. 그 위로 누가 보아도 분명히 활동 중인 원뿔형 화산, 니라공고산(Mount Nyiragongo)이 홀로 우뚝 솟아 있다. 이곳에서 르완다의 도시 기세니와 차분한 분위기의 대도시 고마가 맞닿고, 그 사이로 르완다와 콩고민주공화국의 국경이 지난다. 이곳은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장소일지도 모른다. 인간과 대자연이 가하는 위협이 이토록 어김없이 겹치는 곳은 달리 없다.
호수는 말 그대로 반짝인다. 더 깊은 물로 걸어 들어가면 발밑의 모래가 흐트러지고, 끝없이 솟아오르는 기포가 눈에 보인다. 호수 깊은 곳에 갇힌 메탄가스다. 이 가스는 충분한 지질학적 충격으로 풀려날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화산에서 호숫가까지 이어지는 용암류가 호수 안으로, 심지어 호수 밑으로까지 뻗어 있다. 두 나라 주민들은 평생 자신들의 지역을 괴롭혀 온 폭력의 악순환을 잘 알면서도 호수에서 수영하고 물고기를 잡으며, 용암과 모래 위에서 쉬어 간다. 이곳은 아프리카 대전쟁의 진앙이다. 이 전쟁은 이제 30년을 넘겨 이어지고 있으며, 아래에서 설명할 이유로 끝날 가능성이 낮다.
고마는 르완다 국경에 자리하며, 킨샤사에서 약 1,600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파리와 모스크바 사이보다 먼 거리다.
니라공고 화산 아래에서 헤엄치는 내 주변으로 잔잔하게 기포가 솟아올랐다. 나는 그 기포를 보며 언제나 도사리고 있는 지질학적 위험을 떠올리는 동시에, 인간이 만들어 낸 폭력의 비유를 읽었다. 두 위험 모두 언제든 이 지역을 집어삼키며 파괴를 일으킬 수 있다. 민간인들은 이를 막을 힘이 없으며, 그저 견디는 법을 익혀 왔다. 키부호는 지구상에서 깊은 물 속에 막대한 양의 가스가 녹아 있다고 알려진 단 세 호수 가운데 하나이며, 메탄과 이산화탄소가 상당량 섞여 있는 유일한 호수다. 나머지 두 호수 중 더 깊은 호수와 비교해도 규모가 50배에 이르고 수심은 두 배다. 키부호의 막대한 물 무게와 수압이 가스를 호수 바닥에 가둬 두지만, 이 균형은 위태롭다. 지진이나 화산 분화처럼 충분히 강한 충격이 가해지면 균형이 무너지고, 메탄 약 60세제곱킬로미터와 이산화탄소 약 300세제곱킬로미터가 대기 중으로 쏟아져 나올 수 있다.
전례가 없는 일도 아니다. 1986년 카메룬에서는 키부호보다 훨씬 작은 니오스호(Lake Nyos)가 어느 날 밤 가스를 분출해 거대한 이산화탄소 구름을 내뿜었다. 공기보다 무거운 이산화탄소가 호흡에 필요한 산소를 밀어내면서, 잠들어 있던 1,700여 명과 지상의 모든 동물이 질식했다. 키부호 주변 인구는 보통 200만 명으로 제시하지만, 이 수치는 한 세대 동안 갱신하지 않았다. 현재는 고마 한 도시의 인구만 해도 그 수준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한다. 호수 남쪽 끝의 도시 부카부에는 거의 150만 명이 살고, 두 나라의 호숫가 마을들과 콩고의 이쥐섬 주민을 합치면 여기에 200만 명 이상이 더해진다. 일반적으로 위험에 노출된 인구를 200만 명으로 잡지만, 실제로는 그 두 배가 넘는다.
호수는 안정적으로 보이며, 재앙을 향한 초읽기가 시작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위험은 재앙을 촉발할 계기에 있다. 호수 안으로 뻗어 있는 용암은 활화산인 니라공고에서 흘러나온다. 연기를 내뿜으며 붉게 빛나는 산꼭대기를 보면, 사람들은 매일 그림 같은 풍경 속에서 여전히 도사린 위협을 떠올린다. 대규모 분화는 대략 20년 간격으로 일어나며, 가장 최근에는 2021년 5월에 발생했다. 당시 연이은 지진으로 땅에 균열이 생겼고, 지하에서 솟은 용암이 그 틈을 채우며 주택과 상점, 호숫가 일부를 파괴했다. 용암이 아래에서 호수로 유입되면서 물이 눈에 띄게 끓어올랐고, 모래톱이 무너졌으며, 깊은 곳에 갇힌 치명적인 가스의 안정성도 위태로워졌다. 분화는 멈췄고, 키부호는 가스를 분출하지 않았으며, 사람들은 삶의 터전을 다시 세웠다.
1986년 가스를 분출해 1,700명 이상을 숨지게 한 니오스호에는 약 0.15km³의 물이 있다. 키부호에는 약 550km³의 물이 있다.
이 위협은 영원히 지속하며, 이를 완화할 방법도 없다. 실제로 최악의 상황이 벌어져 키부호가 가스를 분출하고, 생존자들과 다른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다시 세우기 전까지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기세니와 고마에서 수영하고, 물고기를 잡고, 일하고, 놀며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본 무고한 민간인들은 일상에서 또 다른 위협을 늘 마주한다. 인간이 만들어 낸, 훨씬 더 복잡한 위협이다. 중단됐지만 복수로 응징하지 못한 집단학살의 여파이자, 이제 발발한 지 30년을 넘긴 전쟁이다. 어쩌면 지구상에서 가장 풍부하면서도 가장 위험한 지하 광물 자원 때문에 이 전쟁을 해결할 수 없게 됐다. 이 자원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 지역의 두 번째 독특한 지질학적 특징이다.
아프리카 대전쟁으로 50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분쟁이다. 이 글에서는 그 전쟁이나 전쟁을 촉발한 르완다 집단학살의 역사를 서술하려는 것이 아니다. 분쟁의 근본 원인과 유엔이 사상 처음이자 지금까지 유일하게 평화유지 임무를 공격적인 군사력으로 전환한 이유, 그리고 땅속의 부 때문에 인간이 만들어 낸 폭력의 악순환이 영원히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려 한다. 1994년 르완다에서 벌어진 투치족 집단학살을 저지한 주체는 제삼자의 개입 세력이 아니었다. 153개국이 서명한 1948년 유엔 「집단살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에서는 그러한 개입을 요구했다. 실제로 집단학살을 저지한 이들은 고향을 떠나 떠돌던 투치족 병사들로 이뤄진 오합지졸 민병대였다. 이들은 비범한 군사적 천재성을 지닌 한 남자의 지휘 아래 르완다로 진격했다. 그 남자, 폴 카가메(Paul Kagame)는 오늘날까지 어떤 형태로든 르완다를 이끌어 왔다. 그의 반군은 집단학살을 저지하고, 막강한 지원을 받으며 중무장한 학살자들을 기세니와 고마 사이의 국경 너머 콩고 영토로 몰아냈다. 그곳에서 마침내 세계는 관심을 기울이고 행동에 나섰다. 그러나 그 행동이란 새로 피란민이 된 학살자들에게 식량과 거처를 제공하고 지원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피해자들은 그 어느 나라에서도 전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처참하게 파괴된 나라에서 자신들의 상황을 추슬렀다.
누구도 이 부당함을 온전히 바로잡거나 그에 대한 속죄를 하지 않았다. 이를 이해하면 지난 30년 동안 벌어진 사건들을 상당 부분 이해할 수 있다. 콩고 동부의 언덕 아래 묻힌 자원 때문에 상황은 훨씬 더 복잡해졌다. 이곳에는 금, 콜탄, 주석석, 철망간중석 등 지구상에서 가장 가치 있고 전략적으로 중요한 자원들이 매장돼 있다. 세계 강대국들은 이 자원에 눈독을 들이며 경쟁하고, 그 때문에 르완다와 콩고부터 유엔, 중국, 미국과 그 밖의 나라들까지 모든 행위자의 동기와 행동이 복잡하게 얽힌다. 가장 극악한 범죄에 대한 복수가 중단된 채 논쟁의 대상이 되고, 그 현장이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지는 자원 위에 자리하면서 끝없이 폭력을 재생산하는 기계가 만들어졌다. 여기에 관여하는 모든 당사자는 폭력의 악순환을 끝내기보다 유지할 동기를 지닌다.
Ⅱ. 집단학살의 전조
이 땅을 가르는 국경은 식민 지배자들이 자의적으로 그었으며, 사람들이 쉽게 넘나든다. 두 도시 북쪽에는 유명한 마운틴고릴라가 서식하는 비룽가산맥의 울창한 밀림이 있다. 이곳에서 국경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경계라기보다 관념에 가깝다. 국경 양쪽에는 같은 사람들이 산다. 이들은 키냐르완다어라는 같은 언어를 쓰고, 뿔이 긴 안콜레 소를 기르며, 때로 이름이 조금 다르기는 해도 같은 부족에 속한다. 벨기에는 1916년부터 콩고와 르완다를 모두 통치했다. 르완다는 독일에서 넘겨받았다. 국경은 독립 이후에야 확고해졌다. 수많은 지역 주민이 날마다 기세니와 고마 사이의 두 검문소, 라 그랑드 바리에르와 라 프티트 바리에르를 통해 국경을 넘나들고, 위험이 닥치면 대규모로 국경을 넘는다.
이곳의 주민과 가족, 상인, 노동자 대다수는 후투족과 투치족이라는 두 부족에 속한다. 전통적으로 각 집단에는 특정한 인종적 특징이 나타나지만, 제국주의 시대 이전에는 소속의 경계가 느슨했고, 소를 얻거나 잃으면서 소속을 바꿀 수도 있었다. 카가메 대통령은 인종을 언급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지하고 엄격하게 집행하지만, 각 민족의 전형적인 외모는 실제로 존재한다. 카가메 자신도 벨기에 식민지 관리라면 투치족의 전형을 완벽하게 보여 주는 인물로 여겼을 것이다. 그는 눈에 띄게 키가 크고 마른 체형이며, 후투족 동포들보다 코와 얼굴이 좁고 피부색도 조금 더 밝다. 전형적인 후투족은 키가 더 작고 피부색이 더 어두우며, 코와 얼굴이 조금 더 넓었다. 그러나 이는 양극단의 모습이었다. 서로 혼인하거나 재산 형편이 달라지면 다수 집단인 후투족의 일원도 소를 소유한 소수 집단인 투치족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과거에도 지금도 르완다 사람들은 뚜렷한 경계 없이 서로 섞여 살아왔다. 외모의 전 범위에 걸쳐 너무나 폭넓게 섞여 있었기에, 가장 극단적인 경우에만 인종과 부족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고마와 기세니는 하나로 이어진 도시권을 이룬다. 국경과 1.7킬로미터 간격으로 떨어진 두 국경 통과 지점이 이 도시권을 나눈다.
세 번째 집단인 트와족은 역사적으로 소외된 산림 주민들로, 과거에도 지금도 이 지역 인구의 약 2%를 차지하는 극소수 집단이다. 이들은 대체로 이 역사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지만, 집단학살의 여파는 이들에게도 똑같이 미친다. 르완다의 유연한 부족 구분은 지난 세기 유럽의 경직된 인종 구분과 양립할 수 없었다. 벨기에 식민지 관리들과 그에 앞선 독일 통치자들은 이러한 차이를 포착해 법으로 못 박고 신분을 규정하는 표지로 삼았다. 1933년부터 1935년 사이에 모든 르완다 주민에게 신분증을 발급했다. 신분증에는 각 주민의 인종을 후투족, 투치족, 트와족 가운데 하나로 고정해 명시했고, 자녀에게도 같은 분류를 적용했다. 더는 부족 소속의 문제가 아니었다. 인종이 곧 정체성이었다. 벨기에인들은 투치족 엘리트를 우대했다. 키가 더 크고 피부색이 더 밝은 목축민들이 본래 우월하며, 피부색이 더 어둡고 가난한 후투족을 지배할 운명을 타고났다고 여겼다. 60년 뒤인 1994년 집단학살 당시, 이 신분증은 누가 살고 누가 죽을지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벨기에 식민 당국은 처음에 소수 집단인 투치족에게만 교육과 기회, 사회적·정치적 지배권을 제공하며 나라를 철저히 갈라놓았다. 독립이 가까워지자 벨기에인들은 뒤늦게 민주주의를 받아들이며 지원 대상을 바꿨다. 투치족의 권력을 빼앗고 다수 집단인 후투족을 지원했다. 1959년 후투족이 봉기하면서 벨기에인들이 지원하고 부추긴 혁명이 시작됐다. 혁명 세력은 투치족을 권좌에서 몰아내고 투치족 왕정을 폐지했으며, 투치족 수만 명을 살해하고 수십만 명을 이웃한 우간다, 부룬디, 탄자니아, 콩고로 내쫓았다. 피란민 가운데는 걸음마를 갓 뗀 남자아이가 있었다. 남다른 의지와 천재성을 지닌 이 아이는 훗날 자신의 민족과 나라가 가장 큰 시련에 직면했을 때 그에 맞서 일어섰고, 이후 한 번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지난 30년 동안 현대 르완다를 대표해 온 폴 카가메이며, 참으로 비범한 인물이다. 1994년 4월 집단학살이 시작됐을 때 그는 서른여섯 살이었다.
Ⅲ. 중단된 집단학살
르완다에서 쫓겨난 투치족은 30년 동안 돌아오지 못했다. 많은 이에게 이 세월은 귀환을 향한 초읽기였으며, 그 순간을 중심으로 삶을 꾸리고 준비했다. 젊은 카가메는 요웨리 무세베니(Yoweri Museveni)가 우간다 지도자 밀턴 오보테(Milton Obote)에 맞서 승리한 반란에 가담했고, 결국 1986년 무세베니의 군 정보 책임자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카가메와 우간다군에 속한 르완다 망명자 동료들은 자신들만의 조직인 르완다애국전선(RPF)을 결성하고 있었다. 망명 생활이 30년을 넘겼는데도 조국이 여전히 투치족 망명자들을 받아들이지 않자, 르완다애국전선은 후투족 지도부를 전복하려고 르완다를 침공했다. 카가메는 이 침공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는 미국 캔자스주에서 미 육군이 운영하는 훈련 과정에 참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불운한 침공 작전의 지휘관이 작전 개시 이틀째에 사망하자 훈련을 중단하고 비행기를 타고 돌아왔다. 카가메는 패잔병들을 지휘해 산악 지대로 철수한 뒤, 규율을 갖추고 효율적으로 싸우는 전투 부대로 재편했다. 이 부대는 집권 후투족 정부와 싸워 교착 상태에 이르게 했고, 결국 3년 뒤 정부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냈다.
1993년 아루샤 협정으로 두 세력은 위태로운 평화를 이뤘다. 그러나 키갈리에서 집권한 ‘후투 파워(Hutu Power)’ 정부는 투치족의 귀환을 보며 과거 투치족의 지배에 대한 역사적 두려움을 떠올렸고,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쥐베날 하비아리마나(Juvénal Habyarimana)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는 협정 체결 이전부터 마체테 수만 자루를 사들였고, 국내에서 투치족을 인간 이하로 묘사하고 공포를 조장하는 대대적인 선전 운동을 시작했다. 후투족 주민들에게 상대를 죽이거나 노예가 되는 것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전국에 걸쳐 빈틈없이, 끊임없이 이러한 압박을 가했다. 1994년 4월 6일 저녁, 하비아리마나 대통령을 태운 비행기가 키갈리 상공에서 격추돼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자 긴장은 폭발해 행동으로 이어졌다. 지금까지 누구도 이 공격을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불과 몇 시간 만에 수도와 전국 곳곳에서 투치족 민간인을 조직적으로 살해하기 시작했다.
후투 파워 정권은 100일 동안 80만 명에서 100만 명을 살해하는 일을 체계적으로 조직하고 실행했다. 희생자 대다수는 투치족이었다. 가해자들은 대부분 가까운 거리에서 희생자들을 살해했고, 정부가 제공한 마체테를 휘두르는 이들은 서로 알고 지내던 이웃인 경우가 많았다. 가해자들은 집과 학교에서 사람들을 죽였고, 달아나려는 사람들을 거리와 검문소, 교회에서 살해했다. 낯선 사람이 살해할 때는 신분증에 적힌 인종이 생사를 결정했다. 목숨을 건진 사람은 드물었고, 방송은 참상의 상당 부분을 텔레비전으로 내보냈다. 세계는 멀리서 지켜봤고, 유엔은 르완다 안에서 지켜봤다. 범죄가 명백하고 세계 각국이 집단학살을 막아야 할 법적 의무를 지녔는데도 어느 쪽도 개입하지 않았다. 모든 당사자는 이것이 분명한 집단학살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키갈리 현장의 유엔 지휘관은 몇 주 동안 앞으로 벌어질 일을 서면으로 보고하고 경고했다. 그러나 돌아온 조치는 병력 감축과 비개입 임무 지침 강화뿐이었다. 미국은 ‘집단학살’이라는 말을 쓰면 행동에 나서야 할 법적 의무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고, 관리들에게 그 단어를 쓰지 못하도록 했다. 누구도 행동하지 않았다. 폴 카가메와 그의 반군만이 예외였다.
카가메의 르완다애국전선은 르완다 북서부 산악 지대에서 쏟아져 나와 후투 파워 정권의 군대를 제압하고 학살자들을 도주하게 했다. 오직 이것만이 집단학살을 멈췄다. 집단학살 가해자들은 국경을 넘어 달아났으며, 대다수는 콩고로 향했다. 후투족 난민 100만 명에서 200만 명이 키부호 바로 서쪽 지역으로 밀려들었다. 민간인 가운데 상당수도 살해에 가담했다. 이들 사이에는 학살을 조직한 자들과 패배한 군대, 가장 많은 살인을 저지른 인터라함웨 민병대가 섞여 있었다. 이들은 무장을 유지하고 조직과 지휘 체계를 고스란히 보존한 채 난민 수용소에 자리 잡았다. 카가메의 부하들은 잔혹하게 찢긴 나라의 실상을 파악하면서 국제사회에 재건 지원을 간청했다. 집단학살을 막기 위해 손가락 하나 까딱하거나 병사 한 명, 단돈 1달러조차 내놓기를 거부했던 국제사회는 마침내 대응했고, 대대적으로 나섰다. 막대한 구호물자와 돈, 식량, 의약품, 거처, 물류 지원이 도착했지만, 모두 학살자들이 머무는 난민 수용소로 향했다.
수용소는 과거 니라공고산 분화로 형성된 광활한 평원에 자리했다. 땅을 팔 수 없어 화장실을 만들 수 없었으므로 위생 시설을 갖추기에 부적합했다. 식수는 거의 즉시 오염됐고, 콜레라가 수용소를 휩쓸었다. 첫 한 달 동안 약 1만 2,000명이 사망했다. 국제 방송은 텔레비전 생중계에서 이 비극들을 한데 묶었다. 집단학살과 내전이 난민 위기와 보건 비상사태를 일으켰으니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수용소를 운영하고 구호물자를 통제하는 이들이 집단학살을 주도했던 바로 그 학살자들이라는 사실은 텔레비전에 나오지 않았다. 수용소는 곧 중앙아프리카에서 물자 공급이 가장 원활한 곳 가운데 하나가 됐다. 패배한 집단학살 군대는 뉘우칠 뜻이 없음을 공공연히 드러내면서 배급품에 세금을 매기고, 전투원들을 훈련하고, 수용소에 머무는 민간인들 가운데 새 대원을 모집했다. 많은 구호 활동가가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구호를 철수해 무고한 사람들이 고통받게 하기보다는 수용소 안의 모든 사람에게 식량과 도움을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르완다는 학살자들이 국경에서 불과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민간인 난민과 서구 구호기관을 인간 방패로 삼아 보호받으며 휴식하고, 회복하고, 전열을 재정비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카가메의 군대는 외부 세계의 도움 없이 자신들의 민족에 대한 집단학살을 막아 냈다. 그러고는 외부 세계가 갑자기 행동에 나서 문 앞에 있는 학살자들에게 거처를 제공하고 보호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키갈리 안에서 살육을 지켜봤던 유엔은 이제 학살자들을 보호했다. 학살자들은 집단학살 선전을 계속 방송하며 돌아가서 학살을 마무리하겠다는 의도를 모두에게 공언했다. ‘집단학살’이라는 말조차 입에 올리기를 거부했던 바로 그 나라들이 이제 르완다를 상대로 난민 수용소의 불가침성과 자제의 필요성을 훈계했다.
중단된 집단학살에 대한 이 미완의 청산이야말로 이후 이 지역을 갈라놓은 인위적 폭력을 이해하는 열쇠다. 르완다 안에서 카가메는 매우 효과적인 가차차 재판 제도를 도입했다. 이는 지역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사법·화해 제도로, 저지른 범죄를 다루고 합당하게 처벌하며 국민적 화해를 이루기 위해 마련했다. 이 제도는 압도적인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르완다 밖에서는 누구도 학살자들에게 책임을 추궁하거나 이들의 무장을 해제하지 않았고, 이들과 화해하지도, 이들을 법의 심판대에 세우지도 않았다. 이후 이 지역에서 벌어진 모든 폭력은 이 현실에서 비롯한다.
Ⅳ. 물러서지 않는 지도자
폴 카가메는 현재 르완다 대통령이며, 1994년 집단학살이 끝난 이후 여러 직책을 거치며 나라를 이끌어 왔다. 그 이후 르완다가 걸어온 길에 대한 책임이 오로지 그에게 있다고 말하면 지나친 단순화다. 그러나 그가 장악한 나라가 파괴된 상태였고, 국고는 비어 있었으며, 전쟁으로 기반 시설이 무너졌고, 국민은 유례를 찾기 어려운 정신적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 출발점에서 르완다는 국제사회의 지원과 중앙집권적 통제를 활용해 아프리카에서 가장 빛나는 성공 사례 가운데 하나로 도약했다. 부패가 거의 없는 사회, 안전과 안정의 보루를 구축했고, 보편적인 의료와 교육을 제공하며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뤘다. 서구는 충분히 ‘민주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카가메의 르완다를 비판하고 제재까지 가했다. 카가메의 르완다는 민족 구분에 관한 논의도, 정치적 반대도 용납하지 않는다. 정부가 해외의 르완다 반체제 인사들을 추적하고 침묵시키는 정책을 펴지만, 카가메는 재선 때마다 90%대 후반의 득표율을 꾸준히 기록한다.
카가메 대통령이나 르완다 국민 전반은 외부의 비판이나 제재에 영향을 받지 않는 듯하다. 비판의 표적이 된 인물이 집단학살 당시 바로 그 비판자들이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고, 이후에는 가해자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모습을 직접 지켜봤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를 이해할 수도 있다. 집단학살 이후 르완다는 한결같고 결단력 있는 지도자 아래 걸어왔지만, 콩고민주공화국은 같은 30년 동안 쿠데타와 침공, 부패와 불안정이라는 전혀 다른 경험을 했다. 이러한 비대칭은 작은 르완다가 거대한 적대국이자 이웃 나라를 상대로 계속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다.
이는 전쟁을 끝낼 수 없고, 실제로도 끝나지 않는 첫 번째 이유이기도 하다. 르완다와 콩고 사이의 평화를 중재하려는 모든 시도에는 결국 카가메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가 포함된다. 집단학살 가해자들을 사면하고, 르완다 국경에서 불과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영구히 살아갈 권리를 부여하라는 요구다. 카가메는 콩고 정부나 그 밖의 누군가가 후투족 민병대의 무장 해제를 강제할 수 있다는 약속만 믿고 자신의 대리 세력을 무장 해제하고 철수하는 데 동의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신뢰가 없고, 콩고 정부나 유엔이 합의 조건을 강제할 능력도 없는 상황에서 카가메는 일방적으로 무장을 해제하고 철수할 수 없으며, 그렇게 하지도 않을 것이다. 유엔은 역사상 처음이자 지금까지 유일하게 평화유지군을 공세적인 공격 부대로 전환하면서 이러한 역할을 수행할 자격을 잃었다. 유엔이 그 전환을 추진한 방식은 전쟁을 끝낼 수 없는 두 번째 이유를 드러내며, 앞으로도 전쟁이 끝나지 않을 것임을 사실상 보장한다. 이를 통해 지역 문제로 보이는 분쟁이 실제로는 세계 지정학의 핵심 분쟁 지역인 이유를 알 수 있다. 또한 유엔과 세계 강대국들이 현상 유지에 이해관계를 갖는 이유와 누구도 구하러 오지 않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이 지역의 두 번째 놀라운 지질학적 특성에 있으며, 키부 지역 곳곳의 땅속에 묻혀 있다.
Ⅴ. 풍부한 자원
세계에서 가장 탐나는 광물 가운데 일부가 콩고 동부 전역의 지표면 바로 아래에 집중적으로 매장돼 있다. 이곳에는 탄탈럼, 텅스텐, 주석, 금이 있다. 사람들은 이 광물로 세계 곳곳의 휴대전화를 작동시키고 최첨단 무기를 유도하며, 이 귀금속을 각국의 국가 준비자산을 뒷받침하는 기반으로 삼는다. 북키부의 루바야 있는 광산 하나에서만 탄탈럼으로 정제하는 콜탄의 상당 비율을 공급한다. 이 광산을 관리하고 세금을 거두며 운영하는 주체는 정부나 기업이 아니라 반군 조직이다. 이 광산은 세계가 원하는 광물을 계속 쏟아내며, 지금 이 글을 읽는 데 사용하는 기기에도 그 일부가 들어 있다. 별도의 연계 글인 ‘세탁(The Laundering’에서 이 거래의 구조와 작동 방식, 그 이유를 다룰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핵심은 이러한 부가 이 지역과 그 위에서 벌어지는 분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이해하는 데 있다.
이 자원은 여러 방식으로 상황을 복잡하게 만든다. 첫째, 르완다는 이를 근거로 키부 지역 일부를 비공식적으로 영구히 관리하면서 광물 자원을 대규모로 채굴하고 수출할 명분을 얻는다. 역설적으로 르완다가 안보 딜레마를 완전히 해결하면 수입원의 상당 부분도 동시에 사라진다. 카가메가 이를 감수할 의향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상대가 스스로 이행을 강제할 능력이 없음을 드러낸 약속에 기대어 그러한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둘째, 콩고가 합의 이행을 강제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 자체가 이점이 됐다. 강력하고 제대로 통치하는 콩고라면 키부 지역의 자원을 직접 관리하고, 가격을 정하고, 고객을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통치가 미치지 않는 콩고 동부는 민병대와 군벌이 운영하는 기회의 땅이다. 누구도 광물 거래를 감사하지 않고, 세계 곳곳의 구매 희망자와 공급망 후속 단계의 구매자들은 광물을 할인된 가격에 사들인다. 강대국들이 얻는 이익은 저렴한 가격만이 아니다. 현상 유지는 자원에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보장한다.
이것이 세 번째이자 가장 중대한 복잡한 요인이다. 이 자원들의 중요성은 너무나 커서, 단순히 중앙아프리카의 재무제표나 여러 반군 조직의 내부 장부에 적힌 한 항목이 아니라 지정학적 전략 경쟁의 대상이 된다.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는 이 광물에 대한 접근권을 놓고 경쟁한다. 어느 쪽도 강력한 콩고가 통제권을 장악하고 둘 중 한 나라를 협력 상대로 선택하는 결과를 감수하려 하지 않는다. 르완다는 1994년의 범죄를 청산하려고 콩고 동부에 진입했지만, 강대국들은 그 청산을 끝내 완수하지 못하도록 하려 한다. 완전한 청산은 현상 유지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현상 유지는 지구상에서 가장 전략적으로 중요하고 수요가 높은 광물을 저렴하게 확보할 수 있음을 보장한다.
Ⅵ. 과제
지난 30년 동안 현상 유지가 아무 변화 없이 이어진 것은 아니다. 나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르완다를 여러 차례 방문했고, 거의 매번 키부호에도 들렀지만, 이 나라가 공공연히 전쟁 중인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르완다가 30년 동안 대리 세력을 통해 콩고와 싸웠기 때문이다. 대리 세력은 본질적으로 후원자의 통제를 완전히 따르지 않는다. 첫 번째 대리 세력은 규모가 가장 컸고, 가장 큰 성공을 거뒀다. 르완다는 세계가 고마 외곽에 진을 친 집단학살 세력에 식량과 거처를 제공하고 보호하는 모습을 2년 동안 지켜봤다. 상황이 그대로 굳어질 조짐만 보이자 르완다는 행동에 나섰다. 콩고인 반군 지도자 로랑 카빌라(Laurent Kabila)를 선택해 그의 반란을 지원했다. 반군은 무력으로 수용소를 해체하고 학살자들을 내륙 깊숙한 곳으로 흩어지게 했다. 후원국이 제공한 무기로 무장한 반군은 당시 자이르 전역을 휩쓸었고, 1997년 킨샤사를 무력으로 장악했다. 이들은 모부투 세세 세코(Mobutu Sese Seko)의 32년 독재를 끝내고 그를 망명길로 내몰았다. 카빌라는 국호를 콩고민주공화국으로 바꾸고 스스로 대통령이 됐다.
각 대리 세력은 다음 세력으로 교체됐다. 집단학살 가해자들과 유엔 임무단은 그 내내 자리를 지켰다.
카빌라는 1년도 지나지 않아 과거의 후원자들에게 등을 돌리고 모든 르완다군에 국외 철수를 명령했다. 르완다는 이에 대응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방식을 확립했다. 한 반군 조직에 대한 통제력을 잃으면 같은 장소에서 같은 임무를 수행할 다른 조직을 장악했다. 완충지대를 유지하고 수입을 계속 확보하는 임무였다. 1998년 르완다는 또 다른 반란을 지원했다. 그러나 첫 번째 반란과 달리 이번에는 콩고 정권을 무너뜨리지 못했고, 오히려 아프리카의 주변 9개국을 끌어들이며 5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프리카 대전쟁으로 번졌다. 카빌라 자신도 희생자가 됐다. 자신의 경호원들에게 암살당했고, 아들 조제프(Joseph)가 뒤를 이어 18년 동안 통치했다.
공식적으로 아프리카 대전쟁은 2003년 평화협정 체결과 함께 끝났다. 르완다의 주요 대리 세력인 콩고민주연합은 콩고군에 편입됐다. 그러나 실제로 이 정치적 합의는 한 반군 조직에, 방금까지 싸워 교착 상태에 이르렀던 상대와 힘을 합치라고 요구하는 것이었다. 많은 이들이 이를 거부했다. 그 가운데 한 명이 콩고의 투치족인 로랑 은쿤다(Laurent Nkunda)였다. 그는 평화협정의 조건을 거부하고 자신의 전투원들을 철수시킨 뒤 새로운 조직인 국민방위회의(CNDP)를 결성했다. 조직의 이름 자체가 임무를 나타냈다. 여전히 활개 치며 무장하고, 때로는 콩고 정부의 지원까지 받는 후투족 민병대로부터 투치족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은쿤다와 국민방위회의의 임무는 명확했고, 키갈리는 줄곧 같은 요구를 했다. 키부 지역을 장악하고 통제하라. 후투족 학살자들을 억누르고, 가능하다면 궤멸하되 국경에서 멀리 떨어져 있게 하라. 광물 자원의 흐름을 유지하라. 주어진 임무를 넘어 콩고를 정복하려 하지 말라. 이는 구체적인 임무 지시였으며, 반군 조직에 일반적으로 부여하는 임무와는 달랐다. 은쿤다와 그 후계자들에게 맡긴 임무는 해방도 정복도 아닌 현상 유지였다.
그는 임무의 범위를 넘어섰다. 유능하고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였던 은쿤다는 콩고군을 패퇴시키며 통제 지역을 넓혔고, 고마의 관문까지 진격했다. 로랑 카빌라처럼 수도와 나라 전체를 장악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그는 국제적으로 알려진 인물이 됐고, 비룽가 화산 지대의 주둔지에서 기자들을 맞았다. 특유의 은 장식을 단 지팡이를 들고 다니며 다소 괴짜 같은 국가원수이자 전사 군주처럼 말하고 행동했다. 키갈리가 필요로 했던 대리 군벌의 모습은 아니었다. 키갈리가 현상을 유지하려면 세력을 세심하게 조절해야 했다. 세계의 감시를 끌어들이거나 아프리카 대전쟁의 재발과 주변국의 개입을 초래할 위험이 없어야 했다. 결국 키갈리는 은쿤다를 제거했다. 2009년 르완다에서 그를 가택 연금했고, 지금까지도 그곳에 머무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기소도 재판도 받지 않았으며, 그의 입장을 들을 수도 없다.
그해 키갈리와 킨샤사는 르완다군이 직접 국경을 넘어 후투족 반군과 교전하기로 합의했다. 후투족 반군은 곧바로 밀림 속으로 흩어졌다. 은쿤다의 조직인 국민방위회의는 마지못해 콩고군에 편입됐지만, 몇 년 뒤 다시 반란을 일으켰다. 이들은 전임 조직들과 같은 임무, 같은 목표, 같은 제약 아래 3월 23일 운동, 즉 M23으로 재결집했다.
Ⅶ. 늦게 오느니 차라리 오지 않는 편이 낫다
이 모든 과정에서 유엔은 줄곧 현장에 있었다. 르완다에서는 유엔 르완다 지원단(UNAMIR/MINUAR)의 푸른 헬멧을 쓴 대원들이 집단학살을 경고하고, 이후에는 이를 지켜봤다. 그다음에는 난민 수용소를 관리했고, 마침내 키부 지역에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크고 비용이 많이 드는 평화유지 임무단인 MONUC, 이후의 MONUSCO를 배치했다. 거의 20년 동안 유엔은 개입할 능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능력과 힘, 기회가 있었다. 그러다 부족했던 것은 오직 의지뿐이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유엔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하지 않은 일을 단 한 번 실행했다. 중립을 표방하던 부대를 공세적 전쟁을 수행하는 치명적인 무기로 바꾸고 공격에 투입했다.
2012년 11월 M23은 고마를 장악했다. 당시 콩고에 주둔하던 유엔 평화유지군 2만 명 가운데 누구도 이들을 저지하지 않았다. 평화유지군의 임무 지침은 당장 위험에 처한 민간인을 보호할 때만 무력 사용을 허용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키갈리가 전례 없이 정치적으로 취약한 처지에 놓였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키부 지역 분쟁 광물의 불법적이고 규제 없는 채굴을 잘 알고 있었고, 상황을 조사하고 보고할 전문가단을 구성했다. 전문가들은 르완다와 M23 사이의 대리 관계, 콩고의 광물 자원을 일상적으로 채굴하고 수출하는 실태를 밝혀냈으며, 이를 뒷받침하는 설득력 있는 증거를 제시했다. 미국, 영국, 유럽연합, 아프리카개발은행 등은 르완다에 대한 원조 1억 5,000만 달러를 중단했다. 르완다 예산의 약 40%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언론도 카가메에게 등을 돌렸다. 2013년 3월 28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결의 제2098호를 채택해 MONUSCO 안에 전례 없는 개입여단(FIB)을 창설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탄자니아, 말라위 출신 병사 3,000명으로 구성한 이 부대에 무장을 갖추게 하고, 자체 판단에 따라 공세적 작전을 벌여 키부 지역의 무장단체들을 무력화하고 무장 해제하라는 임무를 부여했다. 안전보장이사회는 이러한 선례를 남기는 일이 몹시 불편했던 나머지, 이를 선례로 간주할 수조차 없다고 문서에 명시했다. 2013년 10월과 11월 유엔은 중립을 버렸다. 개입여단은 콩고군과 힘을 합쳐 M23을 공격하고 격파했으며, 불과 6주 만에 콩고에서 몰아냈다.
이렇게 유엔은 이 지역의 반군 조직 하나를 격파하는 데 약 한 달 반과 병사 3,000명, 몇 차례의 서명만 필요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드러냈다. 니라공고 화산 분화나 키부호의 가스 분출 같은 피할 수 없는 비극과 달리, 인간이 만들어 낸 폭력은 실제로 멈출 수 있었다. 그렇다면 유엔은 왜 집단학살을 막거나 그 가해자들을 처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상을 유지하던 유일한 조직을 겨냥하기 위해 중립을 버렸는가? 2013년 가을 키부 지역에는 ‘무장단체’가 하나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하나는 M23이었고, 유엔은 이들을 고마에서 몰아내 르완다로 돌아가게 했다. 또 하나는 르완다해방민주군(FDLR)이었다. 이 민병대는 1994년 집단학살을 저지른 후투 파워 정권의 군대와 인터라함웨 민병대에서 이어져 변모한 조직이었다. M23이 억제하라는 임무를 받은 바로 그 조직이었다. 개입여단은 무장단체를 격파할 능력을 보여 줬지만 M23만 겨냥했고, 르완다해방민주군에는 단 한 번도 같은 무력을 투입하지 않았다. 이 역사의 전 과정을 지켜보면서도 유감스럽게 폭력에 맞설 힘이 없다고 주장했던 유일한 조직이 임무를 바꾸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마침내 군사행동에 나섰지만, 그 대상은 여전히 집단학살 가해자들과 싸우고 있던 유일한 세력이었다. 이는 키부의 광물 자원에 대한 강대국들의 관심이 커지는 가운데 내린 정치적 결정이었다. 르완다가 키부 지역을 공공연하게 통제하면 콩고가 통제할 때와 같은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었다. 땅속의 탄탈럼, 주석, 텅스텐, 금에 대한 접근이 제한되고 비용이 늘어날 가능성이었다.
개입여단은 그 전투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M23은 키부 지역으로 돌아왔고, 오늘날에는 고마 자체를 통제한다. 유엔은 그 승리를 얻는 대가로 소중한 것을 잃었다. 평화유지군이 비전투원으로서 보호받는 지위는 분쟁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조건에 달려 있다. 개입여단은 MONUSCO와 유엔을 이 분쟁의 당사자로 만들었다. M23은 2025년 1월 다시 고마로 진격했을 때 유엔을 중립적 중재자가 아닌 교전 당사자로 간주해 협상에서 어떤 역할도 맡지 못하게 했다. 유명한 푸른 헬멧의 유엔 평화유지군은 현장에 와서 한 차례의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 중립을 맞바꿨다. 전쟁을 끝내거나 집단학살을 막거나 뒤늦게라도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학살자들은 건드리지 않은 채 집단학살 가해자들을 억제하던 유일한 세력을 파괴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정치적 선택이었다. 강대국들은 불안정한 상황이 보장하는, 약탈한 광물 자원에 대한 저렴하고 감사 없는 접근을 선호했다. 강력한 르완다나 콩고는 그러한 접근을 위협했다. 키부 주민들에게는 이들이 애초에 오지 않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다.
Ⅷ. 전염
전염되는 것은 폭력만이 아니며, 키부 지역의 비옥한 땅에서 나오는 것도 자원만이 아니다. 동굴과 갱도에는 마르부르크 바이러스(Marburg virus)를 옮기는 과일박쥐가 서식한다. 에볼라의 변종인 이 바이러스는 감염자 대다수를 빠르고 끔찍하게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감염자들은 콩고 동부의 비공식 광산에서 지하 작업을 강요받는 남성인 경우가 많다. 1998년 콩고 북동부의 고룸브와 금광에서 광석과 함께 마르부르크 바이러스가 흘러나왔다. 감염된 광부 154명 가운데 128명이 사망했고, 감염자의 94%는 노천광산이 아닌 지하 광산에서 일했다. 폭력이 계속되면서 외부에서는 6개월 동안 조사에 나서지 못했다. 광산이 침수되고 환자들이 사망하면서 유행도 끝났다. 26년 뒤에는 르완다에서도 마르부르크 바이러스 감염이 발생했다. 감염 경로를 추적한 결과, 광산 동굴에서 박쥐에 노출된 한 청년에게서 시작됐으며, 악순환은 이어졌다.
2018년의 대규모 감염병 유행은 키부 지역과 그 주변의 더 넓은 지역을 휩쓸었다. 콩고 정부는 이를 이용해 선거를 취소하고 주민을 통제하며 이동의 자유를 제한했다. 인간과 자연이 가하는 상시적인 폭력의 위협에 익숙한 주민들에게도 정부의 과도한 개입은 참을 수 있는 선을 넘었다. 주민들은 이에 반발해 치료 시설과 보건 인력을 공격했다. 외국 언론은 경악했다. 주민들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훨씬 더 큰 위험이 말라리아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 채 비난과 혼란, 적대적인 반응을 보였다.
올해 초 몇 달 사이 금광 도시 몽브왈루(Mongbwalu)에서 에볼라가 다시 검출됐다. 감염은 확산해 지금까지 기록한 에볼라 유행 가운데 두 번째로 큰 규모가 됐다. 이번 바이러스 유형에는 아직 치료법이 없다. 언론에서는 강대국들이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인도주의적 이유 자체보다는 사망자와 죽어 가는 사람들, 감염 위험에 처한 사람들 아래 묻힌 광물 자원에 우선적으로 접근할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는 주장이었다. 이 글을 쓰는 시점까지 사망자 2,500명 이상을 보고했다. 사망자는 주로 이투리주(Ituri)에 집중됐으며, 콩고 동부 6개 주에서 감염 사례가 발생했다. 우간다 정부에 따르면 우간다에서는 7월 말까지 유행을 억제했다. 유엔은 예방과 피해 완화가 충분하지 못한 이유로 여전히 이 지역의 불안정한 치안 상황을 들고 있다.
주요 광물 산지와 필로바이러스(filovirus) 감염 발생 지역, 1998~2026년: 자원과 질병은 같은 땅에서 나온다.
같은 잔혹한 질병의 변종들이 같은 지역에서 30년에 걸쳐 되풀이해 발생한다. 그 지역에서는 같은 반군 조직에서 갈라져 나온 세력들이 각축을 벌인다. 변함없는 화산의 위협과 호수 수면 아래 도사린 수십억 톤의 메탄·이산화탄소도 함께 같은 사람들을 겨냥한다. 주민들은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 낸 폭력의 악순환에 갇혀 있다. 뜨거운 지질 활동뿐 아니라 지정학적 체스판의 냉혹한 계산도 이 악순환이 계속되도록 보장한다. 끝없이 폭력을 재생산하는 기계다.
Ⅸ. 세 가지 해결책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 방법은 세 가지다. 그 가운데 두 가지는 적극적이고 의도적인 저항에 부딪혀 왔다. 세 번째는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어쩌면 가장 좋은 해결책은 실현 가능성이 가장 낮은 방안일 것이다. 강력하고 통치가 제대로 이뤄지며 조직력을 갖춘 콩고 국가가 자국 영토 전체를 평화롭게 통제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이 시나리오는 표면적으로 아프리카 대전쟁이 공식적으로 끝난 이후 검토한 모든 평화 계획의 토대이며, 점잖은 자리에서 논의하는 유일한 방안이다. 강력한 콩고는 어떤 반군 세력도 용납하지 않고, 르완다의 완충지대도 허용하지 않으며, 자국의 모든 천연자원을 관리한다. 사람들은 이를 목표이면서 동시에 비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를 막을 수 있는 당사자들에게는 그렇게 할 구체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실현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지역 차원부터 세계 차원까지 현상 유지의 수혜자들을 살펴보게 된다. 키갈리는 자국 영토에서 생산하는 양보다 훨씬 많은 금과 콜탄을 상시 수출한다. 킨샤사는 동부의 불안정한 치안을 온갖 문제의 편리한 희생양으로 삼고, 이 상황을 활용해 상당한 규모의 해외 원조를 끌어낸다. 더 좁은 지역 차원에서는 콩고군 장교들이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탄약과 보급품을 M23에 판매한 사실이 기록으로 확인됐다. 반군은 관리 임무를 맡은 광산에서 거두는 세금으로 조직을 유지한다. 바깥 단계에는 두바이, 태국과 동방 곳곳의 사업가, 구매자, 거래상, 제련업자, 정제업자, 중개인들이 있다. 이들은 모두 귀중한 원자재를 할인된 가격에 확보한다. 바로 그 원자재가 도둑질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자원을 세탁한 뒤 현대 세계에 필수적인 광물을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구매자, 즉 강대국에 판매한다. 강대국들은 강력하고 제대로 기능하는 콩고라면 자원의 유통 경로를 추적·관리하는 체계를 도입하고, 가격을 정하며, 우대 구매자나 독점 구매자를 선택할 수도 있고 실제로 그렇게 할 것임을 안다. 광물의 중요성 때문에 어느 강대국도 접근권을 잃을 가능성을 감수하려 하지 않는다. 저렴하고 손쉽게 자원을 확보하려면 강력한 콩고가 없어야 한다. 문서에서는 강력한 콩고를 제안하는 바로 그 강대국들이 실제로는 이를 훼손하고 있다.
두 번째 해결책은 르완다의 키부 지역 통제를 법적으로 확정하는 것, 즉 공식적으로 병합하는 것이다. 이는 현상 유지를 이어 가면서 강대국들이 누리는 이익을 없애는 방안이다. 강력한 콩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미 효율적인 국가인 르완다가 키부 지역의 지하 광물을 공식적으로 통제하면 비공식 공급망은 자동으로 끝난다. 르완다는 누구에게 접근권을 부여하고 누구의 접근을 제한할지 선택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 해결책도 조용히 배척한다. 현재의 국경은 분명 자의적이며, 부족이나 민족의 역사와 연속성에 관심이 없던 유럽인들이 만든 경계다. 그렇지만 실제 국경임은 분명하다. 키부 주민들은 자신이 어느 부족에 속한다고 여기든 동시에 콩고인이다. 현대의 국경도 바뀐다. 남수단과 에리트레아의 탄생처럼 협상을 통해 바뀌기도 하고, 영토가 꾸준히 줄어드는 우크라이나처럼 무력으로 바뀌기도 한다. 르완다의 법적 통제는 사실상의 지배와 다르다. 주민들의 동의가 없다면 르완다는 영토뿐 아니라 점령이라는 상황까지 떠안게 된다. 점령은 다른 형태의 전쟁이다. 해결책은 아니지만, 이를 허용하기만 한다면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의 종결이 될 것이다.
그렇게 현상 유지가 지배한다. 콩고 동부는 경계와 성격이 불분명한 회색지대에 머문다. 이곳은 화산 아래, 호숫가, 광산 주변에서 실제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제외한 모든 당사자에게 이익을 준다. 르완다는 키부 지역을 공식적으로 차지할 수 없고, 콩고는 그곳을 통제할 수 없다. 그 결과로 생기는 불안정은 강대국들이 세계에서 가장 귀중한 자원에 대한 접근권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 바로 그 지정학적 결과다.
세 번째이자 어쩌면 최종적인 해결책은 대자연의 몫이다. 이는 우리를 이 이야기의 출발점으로 되돌려 놓는다. 기포가 솟는 호수에서 헤엄치며, 연기를 내뿜는 화산까지 이어지는 용암 지대를 바라보던 곳이다. 지금이든 다른 세기이든 어느 순간 니라공고가 키부호의 가스 분출을 촉발하는 방식으로 분화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물속에 갇힌 수십억 톤의 치명적인 가스가 풀려나 그 경로에 있는 모든 생명을 앗아가고, 다른 모든 이의 책략도 끝낼 수 있다. 인류 역사에서 그 정도 규모의 비극은 알려진 바가 없으며, 그런 비극이 벌어져도 땅속의 광물은 그대로 남는다. 냉혹한 세계는 틀림없이 즉시 공급망 복구를 위한 계산을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새로운 조건과 문제, 해결책을 지닌 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것이다.
화산과 호수의 위험을 완화할 전략은 없다. 그러나 유엔이 이끄는 강대국들이 어쩌면 이번 한 번만이라도 대호수 지역 주민들의 생명이 지닌 가치를 고려할 수는 있다. 광물 자원의 확보뿐 아니라 오랫동안 외면하고 미뤄 온 정의의 실현을 위해 투명한 해결책을 마련하고, 끝없이 폭력을 재생산하는 기계를 완전히 멈출 수도 있다. 그때까지 무고한 민간인들은 늘 그래 왔듯 살아갈 것이다. 자신들이 만들지도 않았고, 끝낼 힘도 없는 악순환에 갇힌 채 살아갈 것이다.
* 글을 간명하게 쓰기 위해 벨기에령 콩고, 자이르, 콩고민주공화국을 모두 단순히 ‘콩고’라고 지칭했다. 별개의 나라인 콩고공화국을 폄하하거나 무시하려는 뜻은 아니다. 나는 몇 년 전 운 좋게도 그 나라의 수도 브라자빌을 방문했으며, 당시의 환대를 지금도 잘 기억하고 감사하게 여긴다. 콩고공화국은 위 글에서 다루는 사안에 관여하지 않는다.
[출처] Africa’s Great Lakes: The Perpetual Violence Machine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
조지프 버스비(Joseph Busby)는 독립 지정학 분석 기관인 리얼리티 베이스드 애널리시스 그룹(Reality-Based Analysis Group, RBAG)의 설립자이자 대표다. 이 기관은 2017년 빈에서 설립했으며, 국제개발·안정 증진협회(Association for the Promotion of International Development and Stability, APIDS, apids.at)와 제휴하고 있다. 이 글은 리얼리티 베이스드 애널리시스 그룹 웹사이트에 처음 게재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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