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 행동홈리스 뉴스

[55호-진단] 홈리스 외면하는 국토부의 주거복지 로드맵

[진단]은 홈리스 대중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된 정책, 제도들의 현황과 문제들을 살펴보는 꼭지


찜질방과 PC방을 오가며 잠자리를 해결하는 A씨의 일기

2017년 9월 1일 날씨는 맑으나 내 마음은 구름 많음

국토교통부 장관님이 집 걱정, 전‧월세 걱정, 이사 걱정 없는 주거복지 로드맵을 만드는 데 국민의 의견을 듣고, 반영한다는 기사를 봤다. 이벤트여서 제안자 몇몇에게는 문화상품권도 준다고 한다. 상품권까지는 못 받더라도, 국민의 이야기를 들어주신다고 하니, 답답한 내 현실에 한마디라도 남겨보려고 주거복지 로드맵 사이트에 들어갔다.

‘공적 임대주택 확대, 주거복지 사각지대 해소, 임대시장 안정화’로 나뉘어져 있군. 나는 집 없이 찜질방, PC방에서 잠을 자니까 ‘주거복지 사각지대 해소’에 의견을 남겨야겠다.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에 동의하고, 이름 쓰고, 연령, 지역, 성별 체크하고, 연락처를 남기고 보니.. ‘사회초년생, 신혼부부, 학생, 기타’ 중 고르란다. 미혼에, 일용직에, 학생도 아닌 나는 어디에 체크해야 되지? 아! 날 위해 마지막에 ‘기타’가 존재하는 구나. 국토교통부 장관님은 참 배려심이 깊으시다.

근데 막상 ‘기타’에 체크하고 보니 의견 쓸 기분이 아니다. 국민을 위한 주거복지 로드맵이라고 해놓고, 너무 노골적으로 사회초년생, 신혼부부, 학생을 위한 정책을 만들겠다는 거 아니야!? 들러리서듯 의견을 적기도 싫어졌고, 일용직을 전전하며 결혼도 못하고, 나이만 먹은 내 인생이 서글퍼졌다.



‘국민과 함께 만드는 주거복지 로드맵’의 수상한 국민 분류법

‘국민과 함께 만드는 주거복지 로드맵’ 제안 접수 홈페이지 그 어디에도 주거로 인해 극단적인 고통을 받고 있는 홈리스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제목만 보면 모든 국민에게 제공하는 보편적 복지를 지향하는 것 같지만, 막상 의견을 남기는 곳에는 ‘사회초년생, 신혼부부, 학생, 기타’라는 이상한 국민 분류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분류법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홈리스가 제외된 것은 차치하더라도, 청년실업률은 현재 IMF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으며, 혼인율과 출산율은 매년 낮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국토교통부가 말하는 ‘주거복지’는 사회초년생, 신혼부부와 같이 척박한 한국사회에서 일정정도를 성취한 이들을 대상으로 인센티브를 주는 것인가? 제안 접수 홈페이지만 보면 국토교통부는 주거복지가 필요한 대상을 외면하고, 주거복지를 해주고 싶은 대상을 찾고 있는 모양새이다.


토크콘서트를 가장한 정책 설명회

국토교통부는 8월 28일부터 9월 7일까지 접수 된 국민 제안 총 1,408건 중 우수제안을 선정해서 9월 10일에 토크콘서트를 진행했다. 국민 제안 최종 접수는 24일까지인데 토크콘서트는 10일에 하고, 최종 로드맵 발표는 9월 말이라고 하니, 정말 ‘쇼’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토크콘서트 영상은 국토교통부 홈페이지에 게시되어 있는데, 이를 보면 의견 접수 시 국민을 왜 그런 식으로 분류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토크콘서트는 ‘국민’ 우수제안 5가지에 관해 장관을 비롯하여, 부처 관계자, 전문연구원, 교수 등이 답변하는 형식이었다. 그러나 선정된 주제들은 국토교통부가 지향하는 정책

에 맞춰진 것들이었고, 대상은 대부분 사회초년생, 신혼부부를 위한 것이었다. 이 외에 장애인 ‧ 고령자, 주거급여에 관한 이야기가 일부 있었지만 홈리스는 여전히 빠져 있었다. 토크콘서트에서 다양한 국민의 의견을 받아들이겠다는 의지는 보이지 않았고, 추후에 발표하게 될 주거복지 로드맵 예고편을 보는 것 같았다. 1시간이 넘는 예고편에는 사회초년생 등 청년과 신혼부부를 중심에 둔 공공임대주택 공급 및 주택구입 지원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루었다.


A씨가 ‘기타’로 분류될 수 없는 이유

굳이 외국사례나 전문가들의 연구결과를 제시하지 않더라도 상식적으로 주거복지 대상에서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은, 경제적인 이유로 집이 아닌 곳에서 거주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우리나라 공공임대주택 보급률은 5.5%로, OECD 평균 11.5%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더욱이 영구임대주택과 같은 안정적이고 부담가능 한 공공임대주택에는 최저 소득계층도 입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공공임대주택의 절대적 물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집이 아닌 곳에 살면서 주거로 고통 받는 사람들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주택 이외의 기타 거처’, 즉 거리, 찜질방, 쪽방, 여관, 여인숙, 고시원, 비닐하우스, 판잣집 등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2010년 12만 8,675가구에서, 2015년 39만 1,245가구로 3배 이상 증가했다. 그런데 국토교통부의 주거복지 구상에 이들 집단에 대한 언급은 일체 없다. 여기에 집의 형태는 갖추었지만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가구, (반)지하나 옥탑에 사는 가구까지 고려한다면, 주거상태를 고려하지 않는 현재 국토부의 주거복지 로드맵 구상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 든다. 국토교통부는 저소득 주거취약계층을 지원하고, 정책 사각지대를 해소해야 하는 기본적인 본분을 망각한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