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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호-특집Ⅰ] 새 정부의 제1차 기초생활 종합계획

무엇이 바뀌었나? 2018년 수급비는?

[특집Ⅰ]


기초생활보장제도, 제대로 알아보자!

기초생활보장제도는 가난한 사람이 기댈 수 있는 한국사회 최후안전망, 복지제도이다. 기초생활보장법 제1조는 이 제도의 목적이 “생활이 어려운 사람에게 필요한 급여를 실시하여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것이라 밝히고 있다.

1997년, 국가는 IMF 외환위기를 발생시킨 실질적 범인이었던 금융자본들에게는 몇 백억의 세금을 지원함으로서 그 위기에서 벗어나게 도와주었다. 하지만 아무 잘못 없이 살아왔던 다수의 국민들은 외환위기라는 사회적 위험에 많은 것들을 빼앗겨야만 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일이 실제로 벌어진 것이다. 내 일터에서 일하던 노동자와 자영업자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직장에서, 가게에서, 집에서 쫓겨나며 일상을 빼앗겼다. 가난의 책임을 개인에게 지우고 가난한 이들의 삶을 조명하지 않아 왔던 우리사회의 굳건했던 믿음이 한 순간 무너졌다. 그와 함께 가난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재앙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새롭게 피어났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은 1999년 기초생활보장법을 만들어냈고, 2000년 그 제도가 시행되었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예컨대 실직이나 부도, 질병, 장애 등 다양한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비롯되는 가난의 문제를 국가가 나서서 책임지겠다고 천명하며 도입된 전 국민의 권리이다.

하지만 제도 시행 이후 빈곤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가 되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문과 길은 너무나 비좁고 날카롭다. 자신의 소득과 재산 조사, 뿐만 아니라 신청자 가족의 소득과 재산까지 조사한 이후에야 수급결정 여부를 판단한다. “어중간하게 가난해서는 아무것도 받을 수 없어” 라는 말은 영화나 드라마 대사가 아니다. 실제 가난한 이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다. 그나마 있는 재산마저 처분하고 더 처절하게 가난해져야만 한다. 가족이 있어도 관계가 좋지 않을 경우 수급권을 보장받을 수 있지만 특정한 경우로 제한되며 이러한 정보는 어디에서도, 대부분의 복지담당공무원조차 알려주지 않는다. “가족이 있으면 무조건 안 돼” 라는 말은 떠도는 헛소문이 아니다. 실제 가난한 수급신청자 다수가 겪은 부당한 수모의 경험인 것이다.

나와 내 가족이 얼마나 가난한지에 대한 치욕스러운 조사를 마치고 수급자로 선정이 된다고 할지라도 한 달을 살아야 하는 수급비는 턱없이 부족하다. 기초생활보장법은 이 수급비(최저생계비)를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이라 정의한다. 하지만 실제 그 수준은 ‘최소한’에만 초점을 맞추어 생명을 부지할 수 있는 낮은 정도에 머물러있다. ‘수급빈곤층’ 이라는 말은 수급자가 된다 할지라도 여전히 빈곤한 삶에 처해있는 가난한 수급자들의 현실이 반영된 말이다.
2017년 한국사회 빈곤율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며, ‘최후안전망’이라는 기초생활보장제도는 400만명이라는 광범위한 비수급빈곤층, 곧 사각지대를 안고 있다. ‘자살공화국’, ‘가난이 죽음보다 두려운 시대’ 등의 말이 익숙하다는 것은 경제발전 수준과 가난한 국민들의 삶의 수준이 같지 않음을 뜻하며, 가난은 해결되지 않은 채 어딘가에서 계속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일 테다.


새 정부의 <제1차 기초생활 종합계획>, 무엇이 바뀌었나?

지난 8월10일 정부는 <제1차 기초생활 종합계획>(이하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종합계획은 심화되는 한국사회 빈곤현실을 해결하고 모든 국민이 ‘인간답게 살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밝히고 있다. 또한,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기초생활보장제도 내 “부양의무자기준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에 수급 신청에서 탈락하는 빈곤층은 사각지대 중에서도 가장 취약한 이들이라고 이야기되어 왔다. 제도를 신청하는 본인의 가난한 상황은 선정기준에 부합하지만, 가족의 소득이나 재산 때문에 탈락되는 사각지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부양의무자 기준은 기초생활보장제도 시행 이후 17년이 지난 현재까지 계속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고, 실제 그 기준은 조금씩 완화되어 왔다. 하지만 2003년 정부가 발간한 보고서에서조차 “부양의무자기준은 폐지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는 사각지대 해소 효과를 볼 수 없을 것” 이라고 밝힌바 있다. 현재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에 수급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사각지대는 100만 명에 달한다. 기초생활보장제도 생계급여 수급자 수가 약 120만 명이라는 것과 비교했을 때, 현재 수급자만큼의 빈곤층이 가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수급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사각지대를 해결하겠다고 이야기한 정부는 많았고 매년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법안이 국회에 발의되어 왔다. 하지만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한 정부는 없었다.

문재인정부는 대선 전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선언했고 공약집에 그 내용을 담은 바 있다. 그리고 정부출범 100일을 조금 앞둔 시점에서 구체적인 내용이 담긴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이 모든 과정은 문재인정부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 아니다. 광화문 지하도에서 5년 동안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외치며 농성해온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계속된 투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종합계획이 발표되고 언론에는 ‘부양의무자기준 단계적폐지’ 기사가 쇄도했다. 당장이라도 부양의무자기준이 폐지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구체적 내용은 실제 단계적 폐지가 아닌 기존정부와 다를 것 없는 ‘완화’ 계획에 불과했다(관련 내용은 아래의 표 참조).

2022년, 문재인정부의 임기 말이다. 정부는 임기 내 주거급여에 대해서만 폐지 계획을 담았을 뿐, 빈곤층에게 실질적으로 가장 필요한 생계급여와 의료급여에서는 완화 계획을 발표했다. 일부의 사각지대가 해소될 것이라고는 하지만 부양의무자기준으로 인한 사각지대는 계속 방치 될 것이다. 누군가는 10년 넘게 연락하지 않은 가족의 소득과 재산 때문에 생계급여를 받지 못해 당장 한 끼 식사를 걱정하며 생사의 전쟁을 치루는 매일을 보낼 것이다. 또 누군가는 가족에게 연락이 가는 게 싫어 수급신청을 하지 않아 아픈 곳을 치료조차 받지 못한 채 버텨야 할 것이다.

또한 사각지대 해소 방안이라고 했지만 부양의무자기준 외 나머지 까다로운 선정기준들은 계획에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수급자에게 허락되는 기본재산액, 대도시 기준 5400만원과 기본재산액을 초과하는 금액을 소득으로 환산, 가짜소득으로 둔갑시키는 터무니없는 소득환산율(가령, 기본재산액을 초과한 100만원의 재산을 월 41,700원의 소득으로 환산) 등의 개선은 계획조차 없었다. 이번 종합계획으로 억울하게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던 일부의 빈곤층이 수급권을 보장받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양의무자기준의 완전한 폐지, 비현실적인 기본재산액, 과도한 소득환산율 등의 선정기준을 현실화하지 않는다면 해소 가능한 사각지대는 400만 사각지대 중 극히 일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다.


2018년 수급비는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이하: 중생보위)라는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회의에서 논의되고 결정된다. 중생보위가 발표한 2018년 생계급여 최대금액은 1인 가구를 기준으로 501,632원, 2017년 495,879원보다 5,753원, 1.16%가 올랐다.

생계급여는 말 그대로 생활에 필수적인 식료품비를 포함한 의복비와 통신비, 전기‧수도‧가스비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 금액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초생활보장법은 최저생계비, 수급비를 ‘건강하고 문화적인 삶을 위한 최소한의 금액’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약 50만 원의 생계비로 건강하고 문화적인 삶을 살 수 있는가? 문화적인 삶은 고사하고 더운 여름 시원한 음료수 하나 사먹기도 고민되는 삶, 겨울철 난방비 부담으로 보일러, 정기장판 한 번 틀지 못하는 삶, 한 달 식사조차 해결하기 힘든 삶을 겨우 살아내는 수준의 낮은 금액이다.

2018년 최저임금은 16.4% 인상됐다. 이것은 현재와 같은 낮은 임금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는 사회적 합의 속에서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생계급여 인상률은 1.16%로 기초생활보장제도 도입 이래 가장 낮은 인상률을 기록했다. 종합계획에서는 모든 국민이 ‘인간답게 살 권리’를 이야기했지만, 2018년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들은 여전히 살아내기 위해 안간힘 써야하는 하루, 매일을 살아가야 할 것이 예정되었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시혜도 동정도 아닌 권리이며, 권리로서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영위 할 수 있는 수준의 수급비가 책정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