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그물을 삶으로 길어 올린 서정

[새책] 시집 <외딴집> (임미란, 갈무리, 2013)

임미란 첫 시집『외딴집』의 서정의 특징은 자연으로 열려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도회지 시인들처럼 가끔 산이나 들로 놀러가서 열리는 관계가 아니라 아예 자연과 더불어 형성된, 자연의 그물 한 코로서 열림이다. 그래서 그의 몸에서 자연물들이 빠져나가면 그의 몸은 없다. 그런 몸이 느끼고 빚어내는 서정이다. “눈이 천지를 뒤덮은 아침/ 아궁이 앞에서/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 듣는다/ 참 고요하다/ 온기가 손끝에서 심장으로 전해진다/ 자꾸 기분이 좋다/ 옆자리에 슬그머니 누렁이가 와서 앉는다/ 동무같이 나란히 불을 쬔다/ 따뜻함까지 나누어서 더 좋은”(<시인의 말>에서)을 실감할 수 있는 서정이다.

그래서 요즘 쏟아져 나오는 자의식 덩어리들 같은 시와는 너무 차이난다. 어떻게 보면 맹탕 같은 느낌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서정을 맹탕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는 까닭이 그간 우리들의 삶이 늘 필요이상의 자극과 감정 소비를 강요받는 반자연적 관계에 노출되어 있어서라면 어쩔 것인가. 우리 몸이 자연을 거슬러 사는 데 너무 익숙한 나머지 자연으로 길러지고 형성된 몸과 마음이 구체적으로 감응하고 나누고 살리는 기분 좋은 느낌들을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면 말이다. 그래서 “제발 배나무 아래선/ 싸우지 말거래이/ 나무들 다 듣고 있으니/ 올 농사 망칠라.”(「단오 무렵」에서)는 삶의 도덕을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서정은 바로 여기 -생명적 그물의 한 코로 존재함-에 뿌리내린다.
그래서 눈에 띠는 첫 번째 특징이 생명의 그물을 제대로 느끼는 미감(美感)이다. 여름 장마 중에 어쩌다 갠 저녁나절, “빈 하늘가에 매 한 마리/ 구름 같이 떠 있고// 우르르 몰려나온 오목눈이 떼/ 뒤뜰이 왁자하다// 터질 듯 탱탱한 신록/ 더 투명해진 오늘// 산허리 훑어오는 저/ 건들바람마저 싱싱한”(「비 갠 저녁나절」에서)에 등장하는 대표 선수들을 보라. 그들이 기다린 갬과 화자가 기다린 갬이 똑같다. 그들이 표현하는 심사와 내 심사가 같다. 그들 옆에 그저 나도 있다. 나는 그들과 더불어 갬을 즐거워할 뿐이다.

두 번째 특징은 생명의 그물로는 생명만 흐르게 하는 의지적 윤리를 가진다. “제초제 한 번 살포에/ 오 년 동안 땅이 죽는다며/ 남편은 매일 힘들게 풀을 베며/ 친환경 농사를 고집하지만/ 남들은 게으르다 손가락질이다// 잡초만 수북하니/ 메뚜기 떼거리로 몰려다니고/ 어둠 속 반딧불이도/ 제 세상인 듯 떠다니는데// 개밥을 주거나/ 잘 여문 밤을 줍거나/ 한참 배를 수확할 때/ 노루며 꿩, 토끼 같은 작자들/ 때때로 마주쳐도/ 웃자란 풀 속으로/ 슬쩍 엎드리면 그만이니// 게으른 사람들이라/ 만사에 눈감아 줬더니/ 풀이며 짐승과/ 하찮은 미물들까지/ 지들이 주인인 줄 안다”(「이화농원」전문). 제초제 한 번 뿌리면 오 년 땅이 죽는데 어떻게 제초제를 뿌릴 수 있겠는가. 보라, 제초제를 뿌리지 않으니 생명 식구들이 몰려와 공통의 세상을 이룬다. 물론 그게 게을러 보일 수 있다. 매일 힘들게 풀을 베면서도 말이다. 하지만 그런 마음 씀이 생명의 그물로 생명만 흘러가게 하고, 자신 또한 생명의 그물에 놓이게 한다. 이응인 시인의 말처럼 ‘친환경 농사’하면 우리들은 ‘안전한 먹거리 농사’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은 생명에 대한 애정과 존중이며, 그것은 곧 “첫째, 힘들다. 다음, 돈이 안 된다”를 견디는 공통의 세상에 대한 사랑이다. 그것을 자신의 윤리로 버텨낸다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거기에서 생산되는 배 못지않은 詩를 생각한다.

세 번째 특징은 생명적 관계에 놓임으로서 살림의 삶을 체화한다. 살림의 핵심은 ‘돌봄-나눔-섬김’이다. “남편이 얻어온/ 꽁지 빠지고 비실한/ 닭 몇 마리// 토실하게 살 올라/ 햇살 차면 제 방식대로/ 이른 잠 깨우네”(「나를 반기는 것들」에서)가 되기 위해 그녀의 관심과 돌봄과 나눔과 섬김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야만 “제 방식대”로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든다. 또 그래야만 생명적 관계들이 다 살아나 “용주암 보살 뒤를 따르다/ 개미집도 들여다보고/ 나비도 좇아가고/ 쫑알쫑알 대다가/ 스르르 잠이 들면// 다블산 소나무 숲/ 구멍 쪼던 딱따구리/ 숨죽여 건너다보고”(「우주야 우주야」에서), 온 우주가 돕는다. 결국 그녀의 살림은 생명적 그물을 건강하게 하는, 제 몫으로 들어와 있는 우주적 살림이다. 부분 속에서 전체를 느끼는 가장 풍요로운 삶이고 서정이다.

그러니 그녀 돌아갈 곳도 차가운 땅 속이나 무(無)가 아니라 생명의 그물이다. “여뀌풀 지천인 강가/ 등짐 같은 바랑 벗어 놓고/ 아이처럼 자갈이나 퉁퉁 던지다/ 푸르딩딩 다슬기나 잡아볼까// 비명 같은 먼 데 산꿩 소리/ 왜가리 날갯짓/ 구름 한 점/ 나붓거리는 억새와 바람 한 가닥/ 개울에 제 몸 비춰보며/ 우우 몰려가고 몰려오니// 이 육신 늙어 생이 다한다면/ 자궁 같이 고요한 저 곳/ 은비늘 번득이는 피라미로/ 힘찬 버들치로 다시 살아 봐야겠네”(「살래천」에서). 생명의 그물의 한 코로 살다가 생명의 그물 속으로 흩어져 다시 생명의 그물 한 코가 되는 이 생명의 흐름! 물론 “배추 한 포기 삼백 원에 사서/ 며칠 뒤 삼천 원에 되판 상인이/ 몇 억을 그저 벌었을”(「김장배추」에서) 눈으로 보면 “미련한 농사꾼이다”(「농사꾼이란」에서). 하지만 그녀는 이미 “가을이 살살 깃드는 소리와/ 겹겹이 옻칠 같은 어둠 속/ 산사 떨리는 종소리와/ 우주의 고귀한 생명들/ 살아 숨 쉬는 소리/ 하나로 듣고”(「이른 시간」에서) 있는 자다.

그렇게 그녀는 오래 전부터 그리고 오랜 후까지 생명의 그물을 주소지로 가진 농사꾼이고 시인이다. 이번 시집에서 그녀는 생명의 그물을 삶으로 길어 올린 서정을 나누고자 한다. 그래서 이 거친 자본의 시대에 그의 서정이 시집 제목처럼 정말 『외딴집』일수도 있다. 하지만 이 거리는 퇴보의 고립이 아니라 생명으로 더욱 뚫고 나아간 거리다. 그 거리만큼이 생명의 꽃밭이고 생명적 삶의 지혜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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