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자가 된 소녀들>은 1950년대 있었던 여성국극과 거기에 함께 했고, 지금도 함께 하는 그녀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여성국극은 1950년대에 유행했던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창극단으로, 무대 위의 역할을 여성들이 창(판소리), 연기, 춤을 다 맡아서 했다. 여성국극의 유행으로 당시 혼합창극단이 거의 사라질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의 오빠부대와 비견할 만한 소녀 팬들이 있을 정도로 엄청난 대중적 호응을 받았다. 특히 남장배우, 로미오나 왕의 역할을 맡았던 여성단원의 인기는 열렬해서 혈서로 사랑을 표현하는 팬들도 있을 정도였단다. 영화는 내가 몰랐던 잊혀 진 역사와 잊혀 진 그녀들의 공동체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어떻게 이렇게 거대한 대중의 흐름, 문화의 흐름이 삭제된 것일까?
[출처: 왕자가 된 소녀 공식 블로그] |
군사국가의 탄생과 지워진 여성국극
삭제는 61년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의 강한 가부장국가로부터 시작되었고, 이는 권력과 연줄이 닿았던 남성들의 커넥션에 의해 완성되었다.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국가는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한 여러 문화적 기획들을 한다. 연희문화에 대한 질타, 건전문화를 양성한다며 대중문화를 검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70년대 국가주의를 뒷받침할 민족문화 양성을 위한 정부정책이 이어진다. 그런데 국가주의가 구획하려는 문화와 민족에서 ‘여성’들은 들어설 곳이 없었다. 갑자기 평단은 어찌 여성들만의 극이 전통이 될 수 있냐고 했고, 연희극인 여성국극은 상업적이고 예술성이 없다고도 했다. 민족문화를 살리겠다는 정부 지원대상에서도 지원을 받을 공적 범주에 들어설 자격이 부족하다며 여성국극은 배제됐다. 통렬한 비판과 공적 지원의 공백 속에서 여성 국극에 함께 했던 극작가, 연출가조차 스스로 자신의 이력에서 뺄 정도로, 여성국극은 ‘금기시’되었다. 그 결과 여성국극의 단원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나중에 모이기는 했지만 겨우 명맥만 유지하게 되었다.
감독과의 대화에서 사회자가 말했듯이 ‘배제는 고사로’ 이어졌다. 물론 여성국극의 쇠퇴는 단지 국가정책만의 문제는 아니다. 서양문화의 대거유입 속에서 살아남을 만한 무언가를 끊임없이 발굴하지 못한 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성국극 쇠퇴의 역사가 보여주는 주요한 질문 중 하나는 ‘누가’ 전통을 정하고, ‘누가’ 전통 만들기의 작업에 어떻게 공모했는지, 가부장국가에게 묻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내가 할 일이 없을까? 뭘 하면 좋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며 충동질 당했다. 영화를 보면서 ‘여성국극 살리기 서명운동이라도 해야 할까’ 같은 답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근현대의 퀴어한 그녀들
[출처: 왕자가 된 소녀 공식 블로그] |
무엇보다 나를 영화로 풍덩 들어가게 만든 것은 여성국극단에 속한 그녀들의 삶이 ‘성정체성, 섹슈얼리티’에 대한 ‘갇힌 생각’에 물꼬를 터주기 때문이었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성별구분이 사실 세상에 ‘무수한 살아있는 성정체성’을 말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글이 아니라 삶으로, 사람으로 직접 보여주었다. 남장배우들은 남성성이 강해서 결혼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단정적 생각과는 거리가 먼 단원들도 있었고, 남자 역할은 외모적으로 남자에 가까운, 즉 체격이 큰 사람이 원하거나 여자 역할은 체격이 작고 예쁘장한 사람들이 하고 싶어 할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정해진 답을 유도하는 질문을 감독이 하지만 질문이 미끄러지는 대답이 나오는 경우도 많다. 미끄러지는 만큼 영화는 재밌다. 그만큼 우리가 얼마나 닫힌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이분법은 아니지만 ‘아마 남성성이 강해서 남장배우를 한 걸 거야’라거나 ‘남장배우는 여자를 사랑하지 않을까’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그녀들의 모습은 우리들의 생각보다 훨씬 다양했고, 훨씬 자유로웠다. 김혜정 감독은 일부러 질문하는 모습을 영상에 담았다고 한다. 의도적 질문이 가진 또 하나의 ‘다른 틀’을 우리가 갖고 재단하는 것은 아닌지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60년 전, 근현대의 퀴어한 모습이 우리를 끌어당긴다.
사랑, 관계, 섹슈얼리티! 그 자체로 가슴 뛰는 말이다. 팔팔한 20대의 그녀들에게 얼마나 많은 사건들과 관계가 있었겠는가. 여성국극을 하는 여성공동체에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벌어졌겠는가. 그녀들은 서로 사랑하기도 했고, 질투하기도 했고, 떠나기도 했다. 단원들 중에는 남자와 결혼한 사람도 있고, 여성커플들끼리 외국에서 사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 살 수 없어 외국으로 떠났을 여성커플의 삶이 영화 후반부에 그려지지는 않을까 기대해봤지만 아쉽게도 없다. (2부작이라도 나왔으면... 사랑과 일-국극 중에서 하나를 결단할 수밖에 없는 비극적 운명이라도 그려지지는 않을까 내심 기대해봤다.)
[출처: 왕자가 된 소녀 공식 블로그] |
그녀들의 몸만큼 자유로운 욕망은 왜 살아남지(사회에서 수용되고 환류 되지 못했다는 의미에서의 살아남음) 못했는지, 알면서도 아쉽고 안타깝다. 성정치의 기호계에 진입하지 못한 기표들이, 갈망들이 역사에서, 아니 지금도 현존하기에 우리는 그녀들의 스토리텔링에 더 귀기울여야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 기호계가 한정하고 있는 기표와 기의의 결합을 흔들고 있는 그녀들의 발자취를 우리가 더듬어야 ‘진짜’ 나를, ‘진짜’ 우리를 더 잘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국극에서 그녀들의 모습과 거리를 걸어가는 그녀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어야하는지, 둘을 분리하지 않고 읽을 수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영화를 보며 묻게 되리라.
여성국극도 볼 수 있는 덤
이 영화의 재미 중 하나는 여성국극 장면이 자주 나온다는 사실이다. 감독의 표현으로는 블록버스터급 영화이다. 그녀들의 멋진 연기와 소리! 특히 마지막 장면에 이옥천 선생이 연기하는 남장 연기는 내 가슴을 뛰게 만들 정도였다. (아마도 그녀를 검색한 그녀들이 많으리라!) 그녀들이 다시 모여 여성국극보존회를 만들고, 60대, 70대 고령의 나이에도 아픈 몸을 이끌고 공연을 한다. 예술가는 현장에서 빛을 발하는 법! 공연 전의 모습과 공연 중의 그녀들의 모습은 무척 다르다. 마치 영화 <식스센스>의 마지막 장면처럼, 아픈 적이 없다는 듯 그녀들은 꼿꼿이 서서 우렁찬 목소리로 창을 하고 연기를 한다. 그녀들의 강렬함과 열정에 나는 반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그녀들처럼 살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꿈틀. 이렇게 멋진 언니들을 영화에서 보았으니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다행히도 인디스페이스에서 4월 개봉을 한다고 한다. 세 번의 영화제에서 놓치신 분들은 꼭 보기를 권한다. 어렵게 후원을 모아서 개봉하지만 아직은 돈이 많이 부족하다고 한다. 4월 7일까지 개봉 밀어주기 후원을 모집한다고 하니 이제라도 후원에 참여해 언니들과 함께 하는 즐거움을 즐겨보자! (후원모금 사이트 https://tumblbug.com/ko/girlpri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