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풍동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마을버스 정류장까지는 제대로 온 것 같은데, 아무리 둘러봐도 좌우로 보이는 건 아파트 뿐. 풍동 철거민들의 골리앗이 있을 만한 곳은 눈에 띄지 않는다. 황망해진 나는 옆에 서 있던 젊은 아주머니에게 길을 물었다.

"철거민들 살고 있는 골리앗이 어디 있는지 아세요?"

'골리앗'이라는 단어를 과연 알까? 내심 궁금했다.

"빵집 골목으로 들어가면 얼기설기 지어진 집이 있긴 해요."

'얼기설기 지어진 집', 그녀는 그녀의 솔직한 언어로 골리앗의 위치를 설명해 주었고, 나는 빵집 옆길로 꺾어 들어갔다. 그 곳에는 바깥에서는 전혀 눈에 띄지 않는 너른 공터가 펼쳐져 있었다. 군데군데 깨진 벽돌과 쓰레기가 쌓여 있는 공터를 가로지르다 보면, 제법 동네 티가 남아있는 묘한 공간에 다다른다. 양옆으로는 철거되다 만 폐가가 있고, 건물벽에는 빈활 다녀간 학생들이 붙였을 자보가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풍동철대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빨간 스프레이로 쓰여진 벽에다가 먼저 눈인사를 찍어 붙이고 초인종을 누르니, 저 위에서 누군가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 끝에 묵직한 대문이 삐그덕 소리를 내며 열린다. 약간의 긴장과 설레임. 문을 열어준 아주머니를 따라 어둑한 계단을 몇 번 오르니 풍동 철대위 사무실이다.

"문은 잠궜어?"

공동생활 6개월 째.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보안인 듯 했다. 경찰이나 철거용역, 빚쟁이까지 골리앗의 문이 열리기를, 혹은 그들이 백기들고 나오기를 기다리는 자들은 한둘이 아니니 말이다.
투표는 물론 하지 못 했다. 노무현 정권에 대해서는 믿었던 놈이 더하더란 말이 흘러나온다.
그간 그들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주택공사는 풍동 인근지역에 26만여 평 7700여 세대를 조성할 예정으로, 2002년 5월 개발계획 승인 이후 주민들을 이주시키기 시작했다. 그 때만 해도 골리앗의 철거민들은 남들처럼 이사갈 생각에 방을 알아보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개발사업으로 인해 인근의 땅값은 어마어마하게 오른 상태였다. 과거에는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20만원이면 살 수 있었던 곳이, 새로 이사가려니 1000에 40은 달라고 하더란다. 그렇다고 현재 수준에 맞추어 집을 알아보면 교통이 매우 불편한 외곽지역으로 떠날 수밖에 없는 사정. 그마저도 언제 재개발될지 모르는 낙후한 곳일 경우가 허다했다.



우리가 왜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삶의 터전으로부터 쫓겨나야 하는가? 골리앗 사람들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주택공사는 당연히 원주민의 주거권을 고려한 대책을 내놓고 무슨 개발을 해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물론 그들이 내놓은 대책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마저도 주택공사가 원주민들에게 미리 고지한 것이 아니라, 이미 40%에 이르는 원주민들이 이주한 후에 골리앗 사람들이 직접 알아낸 사실이라고 한다.)
영세가옥주들은 인근에 이주할 경우 전세값에도 못 미치는 소액을 받는다. 세입자들에게는 4인 가족 기준 7백여 만원의 이주비 수령이나 공공임대주택, 두 가지의 선택지가 주어진다. 이마저도 개발고시 3개월을 기준으로 그 전부터 살고 있던 세입자에게만 해당하며, 말이 좋아 공공임대주택이지, 25평형 기준으로 보증금 3000만원에 관리비 포함 월에 40만원 정도가 드는데, 월수입 100만원 선인 이들에게 그 월세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높다. 게다가 5년 후에 분양 받지 못 하면 그 길로 떠나야 하는 사정까지 겹치니, '날강도 같은 정책'이란 말이 안 나올 수가 없다. 주택공사에서는 '서민을 위한 주택'을 목놓아 떠들지만, 실상 그 어디에도 현실의 '서민'들이 들어설 공간은 없는 것이다.

주민들은 요구했다. 우리 실정에 알맞은 임대아파트를 보장해라, 그리고 인근 땅값이 대책없이 오르지 않도록 순화식 개발에 입각한 가수용 단지를 조성해라. 그러나 주택공사 측은 이것이 '선례'가 되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만 재차 내세웠으며, 현재의 풍동 골리앗을 가수용 단지 대용으로 쓰겠다는 제안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한다. 대안이 있음에도 나몰라라 하며, 오로지 주민들을 협박하고 이간질시키는 데만 골몰하는 주택공사에 대해, 주민들은 진정으로 분노하고 있었다.

2002년 10월의 강제철거를 온몸으로 맞서는 과정에서 2명이 구속되고 5명이 불구속되는 결과를 가져오자, 주민들은 더더욱 주택공사의 횡포를 절감하며 안으로 똘똘 뭉치게 된다. 그로부터 1년 후, 주택공사는 경찰병력과 철거용역 700여명을 동원하여 풍동 철거민들이 거주하던 소망빌라의 강제철거를 자행하기에 이른다. 이 날의 고통을 이야기하는 주민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걸 보며, '주택공사가 무릎 꿇고 사죄할 때까지' 결사투쟁 하겠다는 이들의 말이 결코 빈 말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풍동 철대위 채남병 위원장은, 철거민 투쟁을 통해 자신들의 문제가 고립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라는 점을 체득해 나가면서, 다른 운동과의 연대도 모색하게 되었다며, 수줍지만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보여주었다.

'끝까지 투쟁해서 주거권 쟁취하자'
'죽을 생각으로 싸우면 이길 것이요 살 생각으로 싸우면 죽을 것이다'

올라올 땐 미처 보지 못 했던 계단 옆 벽면의 구호들이 더욱 더 비장하게 느껴진다. 넉넉지 못 한 공동살림에도 끼니를 놓친 기자에게 점심상 푸지게 차려주는 따뜻한 이들이, 살아 남기 위해 투쟁의 붉은 띠를 둘러매야만 하는 현실이 못내 안타깝기도 했다.

돌아가는 길에는 철거되다 만 집들 사이를 오가며 놀이에 열중인 꼬마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뭐가 그리 신나는지 끊일 줄 모르는 천진한 웃음소리가 쓸쓸한 철거촌의 늦은 오후를 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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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 빈곤 , 주거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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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동

    이번 풍동에서는 세입자에게도 '영구'임대주택을 제공합니다. 5년 후 분양받아야하는 공공임대주택이나 영구임대주택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골리앗 투쟁하시는 분들의 핵심 주장이 영구임대주택이 아닌 '가수용단지 제공' 아니었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