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를 시작하지 않았으면 저항세력 되어 싸웠을 것"

돌풍의 팀 이라크, 오스트레일리아 꺾고 준결승 진출

미군이 나자프 일대에 공습을 재개하고 시아파의 주요 성지 이맘 알리 사원에까지 폭탄을 퍼부어 77명의 사망자와 최소70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이라크 보건 당국이 며칠전 발표했다.

오버헤드킥으로 4강 진출

이후 외신들이 속속 미군의 공습재개를 전하는 가운데 지난 21일 벌어진 올림픽 축구 8강전에서 이라크가 오스트레일리아를 1:0으로 물리치고 준결승에 올랐다. 경기 시작 64분 경 오른쪽에서 올려진 코너킥에 이은 헤딩크로스를 모하메드 에마드가 멋진 오버헤드킥으로 연결시켜 오스트레일리아의 오른쪽 골망을 흔들었다. 크레타 섬의 판크리토 스타디움에 운집해 열렬히 응원을 펼치던 천여 명의 이라크 인들은 국기를 흔들며 환호를 보냈고 곧 경기는 1:0으로 마무리 되었다. 경기가 끝난 후 판크리토 스타디움 뿐 아니라 바그다드를 비롯한 이라크 전역의 하늘엔 축포가 요란히 울려퍼지고 시민들은 거리로 뛰어나와 기쁨을 나눴다고 전해졌다. 이제 이라크 팀은 60년 로마 올림픽 역도에서 압둘 와히드 아지즈가 딴 동메달에 이어 역사상 두 번째 올림픽 메달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정치적 사건들로 점철된 근대 올림픽

진정한 스포츠는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진부한 격언을 비웃기라도 하듯 지금까지 근대 올림픽은 적지않은 정치적 화제를 낳았다.

아리안족과 파시즘의 우월성을 과시하고자 하는 정치선전의 장으로 펼쳐진 베를린 올림픽에서 '검은 탄환' 제시 오웬스의 4관왕 등극(100m, 200m, 400m계주, 멀리뛰기)은 히틀러의 야심에 찬물을 끼얹었다. 60년 로마 올림픽 복싱 라이트 헤비급 금메달리스트인 캐시어스 클레이는 미국의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의미로 그의 금메달을 허드슨강에 던졌다. 이후 캐시어스 클레이는 무하마드 알리로 개명했고 위대한 스포츠 선수의 반열에 올라섰다.

미국의 인종 차별, 베트남전 반대투쟁, 서유럽의 학생 시위, 프라하의 봄에 대한 소련의 진압등으로 세계가 들끓고 있던 68년 올림픽은 멕시코시티에서 개최됐다. 멕시코시티 올림픽 남자 200m 시상식에서 미국 국가가 연주될 때 금과 은을 나란히 딴 토미 스미스와 존 칼로스는 고개를 푹숙인 채로 검은 장갑을 낀 손을 치켜들었다. 인종차별에 대한 항의를 나타낸 이 장면은 뜨거웠던 68년을 상징하는 아이콘의 하나로 아직도 기억되고 있다. 그 밖에 세계대전으로 인한 올림픽의 중단, 인종 차별을 법제화 한 남아공의 참가자격 박탈, 검은 구월단 난입등 무수한 정치적 사건들로 올림픽은 점철되어 왔다. 그 정치적 사건들 가운데에서 억압을 이겨낸 소수자들의 승리, 선전도구화를 거부했던 선수들은 인상깊은 장면으로 남아있다.

역시 부시 재선 캠프에서 물의 일으켜
작년 유행했던 조지 부시의 패러디 사진

이런 가운데 이번 올림픽을 히틀러와 마찬가지로 자기 선전의 도구로 삼은 사람은 역시나 조지 W 부시였다. 이라크 올림픽 팀이 세계적 강호 포르투갈을 4:2로 침몰시킨 직후 조지 부시는 '이라크 축구팀의 모습이 환상적이다. 이라크 전쟁은 결국 이라크에 자유를 가지고 왔다'는 유세를 한 바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조지 부시 재선 캠프는 이라크 올림픽 선수들을 재선 광고에 등장시키기 까지 했다.

그 정치광고는 이라크와 아프카니스탄의 깃발과 선수들을 등장시키며 '1972년에는 전세계에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40여개 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 그 숫자는 120개로 늘었다. 자유는 태양처럼 세계 전역에 퍼져가고 있고, 이번 올림픽에선 두 개의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늘어난 대신 두 개의 테러국가가 줄었다'라는 나레이션을 깔고 있다. 미국의 유명 스포츠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인터넷 판(이하 SI)은 미국 올림픽위원회의 이의 제기에 대해 부시 재선 캠프 대변인 스캇 스탠젤이 광고를 중단할 계획이 없으며, 그들의 광고는 법적 문제가 없다고 강변했다고 이미 전한 바가 있다.

이에 대해 팔루자 출신의 대표팀 선수 마나지드는 "자신이 축구를 시작하지 않았으면 저항세력이 되어 싸웠을 것"이라며 자신의 사촌이 미군에 희생된 사실을 SI지에 전하기도 했다. 이번 8강전이 끝난 후에도 이라크 축구팀의 아드난 하마드 코치는 SI와의 인터뷰에서 "고통과 어려움에 처해 있는 이라크 민중들에게 기쁨을 주게 되었다"면서 "우리는 계속 그들에게 기쁨을 안겨주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라크 국기를 등장시키며 부시가 이라크에 자유를 주었다고 주장하는 재선 광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계속된 질문에는 "부시는 우리 나라를 파괴했으며 그가 침공한 후 일년 반 이후 우리의 사정은 엉망이 되었다. 우리는 결코 부시가 우리와 함께 한다고 믿지 않는다"며 언짢은 심정을 드러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대표적 파병국
출처 www.aliraqui.org
이라크 한 네티즌이 호주 축구팀의 별칭인 '사커루'를 빗대어 파병을 비꼰 패러디 사진

이라크를 상대로 해 패배한 오스트레일리아는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대외정책의 충실한 동반자로서 현재 800여 명의 특수부대를 이라크에 파병한 상황이다.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에 이어 두 번째로 미국과 FTA를 체결했으며 지난 8월 6일 체결 당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존 하워드 오스트레일리아 총리를 이례적으로 극찬한 바 있다.

조지 부시의 크로포드 목장에 들락거리는 몇 안 되는 국가원수 중의 하나인 존 하워드 총리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요즘 부보안관(Deputy Sheriff)과 리틀 부시라는 두 가지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고 한다. 한편 존 하워드 총리는 사담 후세인의 체포 직후 "사담이 이라크에서 재판받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그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질 경우 전적으로 지지한다"라고 밝혀 지난 85년 이미 사형제도가 폐지된 오스트레일리아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적이 있다.

한국이 파라과이에 승리했더라면 이라크와의 준결승 상대는 공교롭게도 한국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이라크 파병 규모 3위국으로서 이라크와 경기를 벌인다면 어떤 뒷이야기를 낳았을지, 여러 기자들이 이라크 선수들에게 한국의 파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으면 어떤 대답이 나왔을지 생각해보면 아찔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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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 조지 부시 ,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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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목록
  • 학생

    그래도 이겨야 할까?
    스포츠는 스포츠고 정치는 정치라고 하면서?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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