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 한진중공업 정문 앞은 차량 통제를 하는 조합원, 여기저기 매달린 펼침막을 확인하는 조합원들로 부산했다. 꼼꼼이 출입자를 체크하던 정문 경비 노동자들 또한 낯선 손님들을 친절히 안내하고 있었다.
천천히 둘러본 넓디 넓은 조선소는 각 노조에서 보내온 연대와 추모의 걸림막들이 나부끼고 있었고, 차해도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지회장은 김주익 열사가 129일간 지키다가 산화해간 노동해방의 십자가 85호 크레인에 '우리가 단결하면 열사의 뜻은 이루어진다', '노동자가 인간답게 사는 세상'이란 글귀가 새겨진 대형 펼침막을 직접 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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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흘러 구름 한 점 없는 가을 하늘로부터 태양이 작렬하기 시작한 오전 10시, 김주익 열사가 스스로를 노동해방의 깃발로 매단 85호 크레인 앞 투쟁광장을 기름때 찌들은 작업복 천여 개로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 김혜경 민주노동당 대표를 비롯한 경향 각지의 손님들과 김주익 열사 가족, 박창수 열사 부모님을 비롯한 유가족들도 연단 아래 자리 잡고 앉았다. 김석준 민주노동당 부산시당 위원장을 비롯한 민주노동당 당원들과 부산 장기투쟁사업장 노동자들, 그리고 현대미포조선, 대우조선을 포함한 조선업 노동자들도 광장을 함께 메우고 섰다. 그리고 그 시간부터 85호 크레인, 곽재규 열사가 몸을 던진 4호 도크를 비롯한 한진중공업 작업장 전체에서 망치소리는 그쳤고 '김주익, 곽재규 열사 1주기 합동 추모제'가 시작되었다.
열사들의 넋을 달래는 공공연맹 대구시문화예술단 지부 서숙정씨의 추모공연에 이어 정홍형 금속노조 부양지부 사무국장의 사회로 행사는 시작됐고 김주익 열사의 입사 동기이자 박창수 열사 투쟁 때 해직됐다가 김주익 열사의 죽음으로 13년 만에 복직한 박성호 한진중공업지회 열사정신계승사업회 회장의 열사 약력보고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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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호 위원장, '우리 사이의 편견의 장막을 열사의 이름으로 걷어내겠다'
1주기 추모사업추진위원회 위원장이기도 한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까마득한 크레인 위에 비닐봉지로 밥을 매달아 올리던 바로 그 밧줄에 김지회장의 시신이 내려왔을 때 우리는 절망을 엿보았다"며 추모사를 시작했다. 이어 이수호 위원장은 "탐욕스런 자본과 정권은 노동자의 목줄을 죄고 있다. 정규/비정규, 남/녀, 대공장/영세사업장, 내국노동자/이주노동자 사이에 있는 편견의 장막을 열사의 이름으로 걷어내겠다"고 말하며 열사정신을 이어 비정규 투쟁에 적극 나설 것을 다짐했다.
연이어 단상에 오른 김혜경 민주노동당 대표는 "우리들은 그냥 당하고만 있을 수 없다"며 "아픔과 분노를 흘려보내지 않겠다"고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길을 당신들(열사들)이 지켜보고 있기에 우리는 든든하다"고 추모의 발언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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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이어 등 앞뒤로 '비정규직 차별 철폐' '파견 철폐'를 붙인 채 민중가수 박준이 무대에 섰다. '박창수 열사여' '김주익 열사여' '곽재규 열사여' 를 외치는 절절한 노래가 광장을 메우는 동안 박창수 열사의 어머니와 김주익 열사의 누님은 서로 손을 부여 잡은 채 오열을 터뜨려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박창수 열사의 아버님과 김주익 열사의 형이 달래려 했지만 급기야 달래던 사람까지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금속연맹 위원장을 역임했던 문성현 민주노동당 경남도당 대표 또한 "한진은 김주익 열사 뿐 아니라 박창수 열사까지... 그리고 대우조선 조수원 열사도 생각난다"며 "다들 운동에서 만난 형제들인데 이제 내가 나이가 들었는지 자꾸 눈물만 난다"며 안타까워 했다.
이어진 추모사에서 백순환 금속산업연맹 위원장은 "열사를 너무 많이 맞았다"며 "안 죽으면 안 되나 하고 생각해보다가도 85호 크레인을 볼 때 마다 억장이 무너진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이어 백순환 위원장은 "한진중은 열사와 조합원의 힘으로 자본을 막아냈지만 이제 다시 저들은 옥죄어 온다"며 "열사의 뜻을 이어 받아 한 번 막아보자"고 투쟁의지를 고취시켰다.
김주익 열사 누님, '아우는 죽음으로 여러분과의 약속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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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유가족 대표로 무대에 오른 김주익 열사의 작은 누님은 "사람 좋은 아우는 죽음으로 여러분과의 약속을 지켰다"며 "아우가 가장 사랑하던 조합원 여러분 앞에 이렇게 섰다"며 추도의 말을 시작했고 "나눔이 있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달라"며 추도사를 마쳤다. 누님의 추도사가 진행되는 동안 투쟁 광장은 쥐죽은 듯 고요했고 자리를 가득 메우고 있던 조합원들은 일순 숙연해졌다. 여기저기서 울음을 참는 목멘 소리들이 꺽걱 거리기도했다.
마지막 추도사에서 차해도 한진중공업 지회장은 "우리는 열사를 잊을 수가 없다"며 "이제 1300만 노동자들은 자기 목줄 지키기도 힘든 상황에 처했다"고 운을 뗐다. 이어 차해도 지회장은 "99개나 가진 자본가들이 마지막 한개를 뺐기 위해 짐승처럼 덤벼들고 있다"며 "열사들이 염원했던 인간해방, 노동해방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투쟁에 나서자"고 추도사를 마쳤다.
이어 내외빈들, 타 사업장에서 온 노동자들의 헌화를 끝으로 일주기 합동추모제는 끝이 났다.
현장에서 만난 사람, 사람들 | ||||
김주익 열사가 지키던 노동해방의 십자가, 85호 크레인에 대형 펼침막을 걸고 내려와 준비 상황을 꼼꼼이 체크하고 있는 차해도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지회장을 만났다. 차해도 지회장은 김주익 열사가 지회장을 맡고 있던 작년에는 지회 특수선 지부 지부장을 맡고 있었다.
- 오늘 뿐 아니라 85호 크레인 앞을 지날 때면 항상 생각이 난다. 물론 오늘의 감회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김주익 열사가 저 세상으로 간 후 조직을 이어 받았는데 - 김주익 열사가 그렇게 간 후 좌절도 있었고 현장을 지켜야 하나 조합으로 올라가야 하나 고민도 많았다. 김열사가 얻어낸 합의를 지켜내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에 구속 중에 옥중출마 했다. 그 이후 한진중 지회의 현장 상황은 어떤지 - 02년 03년에는 노사관계가 극한까지 갔었다. 두 분 열사로 인해 현장조직이 회복되고 노조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회사에서도 어느정도 노조를 인정하고 대립을 피하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올해 임단협에선 중앙, 지부 교섭 및 지회 보충 교섭에 이르기까지 큰 이견없이 합의를 이뤘다. 한진중의 상황은 지금 좋은 편이지만 진정한 열사정신 계승은 당면 현안, 특히 비정규 관련 투쟁이 아닐까 - 올해 하반기는 반드시 비정규 투쟁으로 간다. 우리도 비정규 비율이 60퍼센트가 넘어 70퍼센트에 이른다. 현재는 비정규 문제에 강한 조합원 교육과 근골격계 질환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현중, STX를 비롯한 조선사업장은 특히 비정규 문제가 심각하다. 그리고 머리로는 느끼지만 가슴에 심각성이 각인되지 못하는 경우들도 많다 - 그런 우려를 잘 알고 있다. 곧 금속연맹 조선분과 상집 수련회가 2박 3일간 개최된다. 타 사업장과 머리를 맞대고 집중적으로 논의해 투쟁을 이끌어낼 계획이다. 그리고 오는 19일 부터 비정규, 파견법안의 문제점을 정확히 알려내는 전조합원 교육이 배치되 있다. 오늘 추모식 준비하느라 고생 많았다. 모쪼록 승리하는 투쟁 만들자. - 고맙다 지난 지자체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켰으나 총선에서 기대에 못미친 결과를 얻은 김석준 민주노동당 부산시당 위원장을 만났다.
- 1년이 너무 빨리 흘렀다. 열사들이 목숨 바쳐 이룬 성과를 못지켜낸것은 아닌가 하는 아픈 마음이 든다. 총선 이후 위원장이나 시당의 상황은 - 부족함이 많지만 다시 시당 위원장을 맡게됐다. 조직화에 힘쓰고 있으며 앞으로 있을 지방선거에서 성과를 거두기 위한 지역사업들을 꾸준히 준비해왔다 금정정화, 각 새마을금고 노조를 비롯한 부산 지역 장기투쟁 사업장도 힘든 상황인데 - 우리 운동의 역량이나 실천이 부족한 측면이 많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어떻든 한진중은 열사의 죽음으로 성과를 얻어냈다. 대형 사업장의 그런 성과를 영세 사업장으로 연결시키는데 민주노동당의 역할이 필요할 것 같다. - 사실 김주익 열사 죽음 이전에는 한진중 조합원들이 당에는 거의 참여 안했다. 그러나 함께 싸우는 과정에서 많은 조합원들이 입당도 하고 지금은 분회 준비모임이 결성되어 있는 상황이다. 앞으로 당 조직을 강화해 사업장들간, 비정규 사업장에 대한 고리와 연대의 틀을 만드는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부산 시당은 비정규 투쟁에 어떻게 나서고 있나 - 오늘 아침에도 각 거점 지역에서 정부가 내놓은 비정규 법안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선전전을 펼치고 왔다. 하반기는 여기에 집중이다. 우리의 책임이 막중함을 느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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