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의 집단적 의식을 키워가는 프로젝트"

저항 역사의 복원과 혁명 경로를 구성해가는 기록
제8회 서울국제노동영화제 폐막, '영상활동가의 임무' 토론회 개최

폐막작 '점거하라, 저항하라, 생산하라!'가 상영된 서울아트씨네마 객석은 열기로 가득했다. 오후에 재상영된 개막작 '볼리바리안 혁명 : 베네주엘라 민중의 삶과 투쟁' 등 두 작품은 오늘날 혁명을 고민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흥분과 감동을 던져주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과거의 혁명, 미래의 혁명이 아니라, 현실에서 진행중인 혁명의 모습, 혁명하는 사람들의 표정, 혁명이 벌어지는 사회 변화의 장면을 보여주었다. 어제 밤 아트씨네마에서는 관념과 공상 속의 혁명이 아니라 혁명이라는 상상과 현실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한편 제8회 서울국제노동영화제 마지막 날 행사에는 개막작 재상영과 폐막작 상영 사이에 토론회를 배치해 눈길을 끌었다. '변혁운동에 있어서 영상활동가의 역할과 임무'라는 다소 거친 제목의 이날 토론회는 김명준 영상미디어센터 소장의 사회로 박종필, 마르셀로, 김형균, 김화선, 이정훈, 이지영 등 영상활동가들이 참석 약 2시간 가량 진행하였다.

"정치적 변혁을 목표로 전국을 아우르는 미디어 전략과 정책을"

김명준 소장은 토론회 취지와 관련, "노동조합운동을 중심으로 한 한국과, 볼리바리안 서클로 표현되는 베네주엘라 운동가 간의 토론을 통해서, 사회변혁 운동에서 영상활동가의 임무를 탐구한다"고 밝히고, "정치적 변혁의 과정에서 미디어가 가지는 중요성, 풀뿌리 현장 미디어 운동의 의미와 역할, 정치적 변혁을 목표로 전국을 아우르는 미디어 전략과 정책이 어떤 내용을 지녀야 하는지 등 변혁적 미디어 운동의 전략과 활동가의 임무를 검토하기 위해" 토론회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미리 준비한 질문 요지는 크게 여섯 가지로 △자신의 활동 소개 △전략의 초점 △사회변혁을 진행하고 준비하는 미디어 운동의 전략에서 핵심이 되는 부분 △내용과 스타일 △정치적 변혁과 미디어 운동 △방송 매체와 영상운동 △연대 등이었으며, 발제자 마르셀로와 영상활동가들의 자유로운 발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박종필 감독은 "99년부터 장애인 관련 작품을 4개 정도 만들었다"고 말하고 작품을 만들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99년 평택 에바다학교 문제를 알게 되고 박경석 노들장애인야학 대표의 제의를 받아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박종필 감독은 '버스를 타자'를 통해 장애인 이동권을 영상에 담았다. 박종필 감독은 "이동권 투쟁은 도로, 지하철선로, 국가인권위 점거 등 지속적인 투쟁이었으며, 주류 미디어에서도 많이 다루었지만 여전히 시혜 대상으로 바라보는 한계를 넘지 않았다"고 말했다. "''버스를 타자'는 투쟁보고서인데 왜 장애인이 점거할 수밖에 없는지, 국가는 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버스를 타자' 테이프는 무려 900개 가까이 나갔다고 말했다.


마르셀로 안드라데 영상활동가는 뛰어난 동지들과 만나게 되어 영광이라고 인사말을 한 후 자신의 영상 활동 경험을 이야기했다. "보스턴에 있는 동안 영상, 음악, 연극 활동가들과 만나게 되었는데, 제국주의 위협이 증대되는 시기에 라틴 아메리카의 지역 투쟁을 다른 지역 투쟁과 소통하고 알려내는 일을 고민하게 되었고, 미디어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고민 과정을 말했다. 미디어를 매개로 사람들이 지역적 한계에 갇히는 게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 고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마르셀로 영상활동가는 "국제 수준의 운동이 지역 풀뿌리 운동 없이는 무의미하므로 베네주엘라에 와서 네트워크를 고민했고, 이윽고 대안적 독립미디어 250개 미디어단체를 연결해서 활동 중이다(ANMCLA(암클라) : Asociacin Nacional de Medios Comunitarios, Libres y Alternativos 공동체, 해방, 대안 미디어 전국연합)"라고 소개하고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대해 자세히 말했다. "암클라는 지역적 투쟁과 전 세계 투쟁의 네트워크 조직화를 준비중이고, 라디오 공동체와 TV 활동을 하고 있다. 라디오는 3년 되었고 거리에서 영화 상영제 등을 통해 볼리바리안 투쟁이 전 세계 민중의 투쟁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토론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결과 연대를 넘어 어떻게 반란을 꾀할 것인가"

암클라는 다섯 가지에 초점을 맞추어 대안미디어를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첫째 대안미디어 활동가 양성, 둘째, 인쇄 출판 관련 협동조합, 셋째, 풀뿌리 민주주의 독자적 네트워크와 라디오 관련 협동조합, 넷째, 인터넷 기술 서비스, 다섯째, ANA라는 대안적 뉴스 서비스 등이 그것이다.

마르셀로 영상활동가는 "네트워크 활동을 하면서 미디어 운동이면서도 대륙적 차원에서 전지구적으로 나아가 연결과 연대를 넘어 어떻게 반란을 꾀할 것인가에 대한 협력 체계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덧붙여 "지금 프로젝트 아이디어는 전 대륙적 차원의 시리즈를 기획하고 있는데 지역의 시청각 미디어, 음악, 문서자료를 포함해서 파차메리카 선언문을 만들려고 한다. 지식인이 작성하는 강령이 아니라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저항의 역사를 복원하고 혁명의 경로를 집단적으로 구성해가는 기록을 시청각 매체로 가져가는 것으로 해방의 집단적 의식을 키워가는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베네주엘라 내에서의 투쟁이 대륙적, 전지구적 차원의 연대를 넘어 반란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일을 함께 실천하지 않으면 자기들의 혁명도 실패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계속 꿈꾸면서 꿈을 현실화하기 위한 실천을 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울산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김형균 영상활동가는 '노동자정보통신지원단'으로 시작하여, 울산노동미디어센터까지 만들게 된 경과를 소개하고, "효성 용역 깡패 인터넷 생중계와 올해 2월 현대중공업 박일수 열사 투쟁을 찍으면서 주류 미디어에 접근하기는 어렵지만 타격을 줄 수 있는 조건은 확보했다고 본다"며 현장 영상활동가의 고민을 피력하였다.

부안에서 활동하는 김화선 영상활동가는 새만금과 부안 핵폐기장 등 국책사업 추진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투쟁을 영상에 담으면서 느낀 생각을 발표하였다. 처음에는 활동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는 등 소극적인 활동을 하다가 신문이나 언론에서는 부안 주민을 폭도로 몰고 주민의 투쟁을 사실대로 보도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카메라를 손에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2월 14일 부안 핵폐기장 주민투표 당시 인터넷신문 '참소리'와 함께 다큐를 만들기로 했고, 그때 영상팀장을 맡았다. 김화선 영상활동가는 "지난 8월에는 한범승 감독의 제의를 받고 부안영화제를 개최했으며, 세 명 정도가 열심히 영상 활동을 하고 있다. 지금은 대책위 활동을 찍어 목요일 촛불시위 때마다 상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훈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www.jinbo.net으로 와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 된다"고 홈페이지를 소개하고. "지난 4월 another0415.net 활동과 함께 진보적, 대안적 시각으로 전면적 개편을 이루었고, 아직 부족하지만 인터넷 대안 언론 매체로 자리매김 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훈 활동가는 "부문운동과 연대하는 것에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연대의 폭을 넓혀서 세상을 바꿔보려는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최근에는 주류미디어 개입 전략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혁명의 순간까지 모든 공유할 것을 기록할 생각이다"

이지영 노동자뉴스제작단 활동가는 "올해는 노뉴단이 15주년 되는 해로 돌이켜보면 살아있다는 것 자체로 용하다"고 돌아보고 "노동자계급의 관점에서 미디어를 만들고자 출발한 단체였고 제작 중심의 활동으로 각 시기마다 노동운동의 역사를 담아왔는데, 노동자계급 의식을 키웠는지 성공 여부는 알 수 없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지영 활동가는 "작업과 상관없이 기록을 꼬박꼬박 하고 있다. 혁명의 순간까지 공유할 모든 것을 기록할 생각이다"라며 소신을 밝히고, "제작 집단이기는 하나 노동자 스스로 제작의 주체가 되는 게 중요하므로 제작 교육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영상패들이 늘어나고 뛰어난 영상활동가가 많아져서 위기감을 느낀다고 말하면서도 "적들이 와서 없애지 않으면 노뉴단은 영상으로 노동해방을 표현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고 다짐하기도 했다. 11월 27-29일 아트씨네마에서 한국독립영화협회와 공동 주최로 노뉴단 15주년 기념상영회를 진행한다.

마르셀로 영상활동가는 마지막으로 변혁 활동과 영상 활동에서의 딜레마를 짚기도 했다. 말하자면 시위 현장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어야 하나, 싸움을 해야 하나 같은 고민이 그것이다. 마르셀로 영상활동가는 지난 '선주민 저항의 날'(10월 12일)에 정복과 제국주의 상징인 콜롬부스 동상이 혁명 정부 하에 그냥 서 있는 것을 볼 수 없다며 동상을 무너뜨리는데 나선 당사자이기도 하다. 이 일로 지금도 세 명이 감금된 상태이고, 이 문제를 법정에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던 검사가 자동차 테러를 당하는 등 사태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막상 동상을 무너뜨리는 것을 찍은 영상활동가가 현장에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마르셀로 영상활동가는 이 딜레마에 대한 생각을 다음과 같은 말로 대신했다. "미디어 전략과 팀이 없어도 무엇이든지 할 수 있지만, 그러면 당신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기록되지 않을 테니까"

토론회는 영상활동가들의 경험과 변혁에 대한 소신과 열정이 자연스레 표출되는 자리였다. 현장에서, 지역에서, 세계에서 카메라를 들고 뛰어다니는 영상활동가들의 변혁에 대한 고민이 배어 있었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잔잔하지만 큰 힘을 주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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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화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혁명에 관한 영상은 감동 깊었습니다.
    테잎도 샀답니다. 감독 사인도 받고.

    삶과 죽음이 갈리는 순간들의 기록이란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들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