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법안 공청회 거쳐 법안소위 회부

기간제 3년이면 정규직 된다던 정부 선전 엉터리로 밝혀져
허무하게 끝난 공청회, 투본회의 결과 무색

7일 오후, 수많은 노동관계 법안이 무심히 다뤄지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회의실에서 '기간제및단시간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안 등에 관한 공청회'가 열렸다. 이 날 공청회의 발제자로는 이석행 민주노총 사무총장, 권오만 한국노총 사무총장, 이동응 한국경총 상무, 정이환 서울산업대 교수, 어수봉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교수와 이상윤 연세대 법대 교수가 참석했다.


통과의례식 공청회, 교수 셋은 전부 정부기조 인정

6시간이든 말든 민주노총의 총파업과 한국노총의 천막투쟁을 포함한 양대노총의 지난 두 달여 간의 싸움의 결과 얻어낸 것이 공청회 말고는 아무 것도 없는 탓인지 이 날 공청회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다.

지난 환노위 일정 때와 마찬가지로 이 날도 건장한 국회경위들이 매서운 눈빛으로 방청객의 신원을 일일이 확인했다. 박대규 전국비정규연대회의(준) 의장과 이상훈 공공연맹 조직국장을 비롯한 몇몇 노동자들이 방청객으로 참가했다.

공청회가 시작되기 전 "이 번 공청회도 요식행사로 그칠 우려가 있는 것 아닌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이석행 민주노총 사무총장은 "그렇게 되면 우리는 또 투쟁으로 맞선다" "공청회를 보이코트 할 순 없으므로 일단 충실히 임할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이 날 공청회 발제자 여섯 명 가운데 양대노총 사무총장과 사용자 단체인 경총 상무를 제외한 나머지 셋은 대학교수였다. 공청회가 시작되기 전 배포된 자료에 의하면 이 중 두 명은 정부법안에 대한 찬성 입장이고 나머지 한 명은 중립적 입장이라고 적시되었으나 발언 내용상으로는 세 명 교수 모두 정부안에 대체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 다른 경우처럼 이번 공청회도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맞아떨어지는 대목이다.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정이환 서울산업대 교수는 '정부가 제출한 법안이 직무배치 및 임금체계 합리화의 계기'가 될 것이며 "현실에서 기간제 근로는 거의 제한없이 사용되고있으므로 3년 기간제한은 노동시장 유연화가 아니라 규제강화 조치"라고 말했다. 단 파견업종의 전면적 확대는 현 시점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두 번째 발제자인 어수봉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교수도 대동소이한 주장을 펼쳤다. '기간제 및 단기간 근로자 보호에 관한 법률'은 당연히 보호 중심의 입법이라고 전제한 어수봉 교수는 "파견근로를 활성화하는 것이 현재 우리 나라에서 비정규근로자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노동계에게 호소하고 싶다"며 '파견근로는 현대판 노예제'라는 파견근로 당사자들과는 정반대의 주장을 내놓았다.

이상윤 연대 법대 교수 역시 정이환 교수와 마찬가지로 파견업종의 전면적 확대에 대해서는 난색을 표하면서도 "정부 법안은 내용 및 체계가 선진국의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되며, 어느 곳에 내놓더라도 손색이 없는 수준인 것으로 판단된다"며 정부 법안을 극찬했다.

경총상무, "이 법안 문제가 내년 임단협으로 연결되선 절대 안돼"

이어 발언에 나선 이동응 경총 상무는 "이번 법안은 사용자 입장에서 볼 때 개악인데 반대편에서 이 법안을 두고 개악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며 발언을 시작했다. 소득 양극화를 우리 사회의 근본적 문제점으로 적시한 이동응 상무는 "선진국처럼 부부가 노동시장에 뛰어들 수 있게 만들어 가계소득을 높여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고용구조가 더 유연화 되어야 할 것"이라며 사용자 측이 바라보는 대안을 내놓았다.

"이 법안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계속됨으로 기업과 근로자들이 피해를 본다"며 "경영계 입장이 법안으로 수렴되도록 노력하겠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문제는 이 법을 폐기시키던 통과시키던 간에 가능한 빨리 결정을 내리는 것"이라고 요구했다. "이 법안을 둘러싼 문제가 절대 내년 임단협 까지 연결 되서는 안 될 것"이라며 논의의 확장을 두려워하는 속내를 드러냈다.

좌:이석행 민주노총사무총장 우:권오만 한국노총사무총장
나란히 발제자로 참석한 양대노총 사무총장은 반대 의사를 명확히 했다. 특히 이석행 민주노총 사무총장은 "정부안을 즉각 백지화 하고 비정규직 보호와 권리보장을 위한 입법방안을 원점에서 재검토 할 것”을 국회에 촉구했다. 이석행 민주노총 사무총장에 이어 권오만 한국노총 사무총장의 발제가 끝나자 이경재 환노위 위원장은 “이 자리야 말로 노사정 대화의 실질적 장”이라는 '덕담'을 덧붙이기도 했다.

여섯 발제자들의 발제가 끝나고 질의응답이 진행되면서 여기저기서 조는 모습들이 눈에 띄였다. 점심 식사 직후 따뜻한 실내 공기 탓인지, 자신들의 문제는 아니라고 여긴 탓인지 모르겠지만 기자들도 졸고 관료들도 졸았다. 또한 오후 네 시가 넘어서자 자리를 지키는 의원은 위원장을 포함해서 너댓 명에 불과했다.

질의 응답은 지루하게 진행됐다. 장복심 열린우리당 의원은 이석행 민주노총 사무총장에게 “비정규직의 자살이 많다는 위협적 발언을 하셨는데 실업자의 자살이 많냐 비정규직의 자살이 많냐”며 “근로자 사용자 모두 인내하면서 국가가 살아야 근로자도 살고 사용자도 산다는 입장에서 접근하자”는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기간제 3년 경과한 노동자의 법적 지위 둘러싼 논란

또한 정부 법안 상에서 3년을 경과한 기간제 노동자의 고용형태를 어떤 식으로 볼 것인가를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 정부가 제출한 기간제 법안 제4조 6항에는 ‘3년을 초과해 기간제 근로자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정당한 이유 없이 근로계약기간의 만료만을 이유로 당해 근로자와의 근로관계를 종료시킬 수 없다’고 적시되 있다. ‘정당한 이유 없이 근로계약기간의 만료만을 이유로 근로관계를 종료시킬 수 없는 노동자’의 지위에 따른 논란이 다시 수면위로 떠오른 것이다.

단병호 의원이 먼저 정병석 노동부 차관에게 질의했다. 단병호 의원은 “기간제 노동자가 3년이 되기 전에는 합리적 차별은 인정한다고 했고 3년이 지나면 정규직과 다를 바가 없다고 했는데 3년이 지나면 차별이 없다는 말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정병석 노동부 차관
정병석 차관은 “3년이 지났다고 해서 계약조건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바꿀 수는 없다”며 즉답을 회피했다. 정이환 서울 산업대 교수가 “현실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기간제 근로가 3년을 넘겼을 때도 차별이 존재하는 것”이라며 “정부법안 대로라면 3년을 넘겨도 신분은 기간제 노동자인데 해석의 여지가 남아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단병호 의원이 “정부안 대로라면 3년이 넘어도 일은 할 수 있지만 차별은 해소되지 않는다는 것 아닌가”고 확인하자. 정병석 차관은 “종전의 근로계약(차별적 근로계약)은 유지되면서 해고로부터는 보호되는 근로자”라는 답을 다시 내놓았다.

노동부 차관, "처음에는 간주규정으로 논의 했으나..."

이번엔 권오만 한국노총 사무총장이 나섰다. 지난 2년 6개월간 노사정 위원회에서 비정규 관련 법안을 논의했다는 권오만 총장은 “노동부에서 기존에 법안 취지를 설명할 때는 분명히 비정규직으로 3년이 지나면 정규직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는데 오늘 이야기는 다르다”며 “명확한 확인을 바란다”고 쐐기를 박았다.

다시 답변에 나선 정병석 차관은 “처음 기간제 법안을 논의할 때는 (3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간주한다는) 간주규정으로 논의가 됐지만 그것이 사적 계약의 자치를 침해한다는 법리적 문제가 제기 됐다”며 “(3년이 지나도) 정식 고용을 안 하면 처벌하면 되고 그와 별개로 불합리한 문제가 생기면 노동위원회를 통해서 해결하면 될 것”이라고 마무리 지었다.

결국 단일 사업장에서 3년간 기간제 근로를 거치면 정규직이 된다는 식의 선전은 엉터리라는 것이다. 파견제, 기간제도 아닌 일정 부분 해고의 제한을 받는 제3의 비정규직이 정부 법안으로 인해 신설되는 셈이다.

박대규 비정규연대회의(준) 의장
잠깐의 정회 시간동안 박대규 비정규연대회의 의장과 이석행 민주노총 사무총장을 비롯한 노동계 관계자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박대규 의장은 “이제 3년이 지나도 비정규직이라고 노동부 차관이 말하고 있다”며 “노동부 자신들의 입장만 쭉 밝히는 이런 공청회가 무슨 소용인지 모르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계속된 질의 응답 시간 동안 이동응 경총 상무는 예의 사용자 측의 입장을 강하게 내세웠다.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면 1년보다 2년, 2년 보다 제한 없는 기간제 노동을 원하는 노동자들도 많은 편이라고 주장한 이동응 상무는 “일본은 파견 제한 업종을 다 풀었다”며 “일본이 다 풀어놓은 것은 청년실업 문제 때문” 이라며 “노동시장 밖에 있는, 노동시장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유연성을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애물단지 신세된 공청회

공청회가 계속되면서 의원들은 좀을 쑤셔했다. 배일도, 단병호 의원의 발언이 길어지자 다른 의원들로부터 노골적인 비아냥과 함께 법안소위에서 다루면 될 것이라는 공세들이 연달았다. 물론 아예 자리를 비운 의원들이 절반을 넘긴 것에 비하면 그 정도는 양호한 편이었다.

저녁 7시가 가까워지며 공청회의 지속을 귀찮아하는 분위기는 노골적으로 심해졌고 결국 “노도 살고 사도 살고 말없는 실업자들의 형편도 생각하자”는 이경재 위원장의 황희 정승식 발언으로 공청회는 끝을 맺었다. 산회를 선포하는 의사봉을 두드리며 이경재 위원장은 “이로서 기간제및 단시간근로자보호등에관한 법률안 등 8개 법안이 법안 심사소위로 회부됐다”고 선언했다.

몇 달간 양대노총의 투쟁으로 얻어낸 유일한 성과물인 비정규 법안 공청회는 이렇게 허무하게 끝났다. 30일 유보를 성과적으로 평가한 민주노총 투본회의가 무색하게 비정규법안은 7일 만에 환노위 법안소위에 올라갔다.

이석행, "조직적 논의 거쳐야 할 것"

공청회를 마치고 의원들과 관료, 교수들은 홀가분한 표정으로 저녁 약속들을 잡느라 바빴지만 노동계의 표정은 어두웠다. "이번 회기에서 처리될 가능성은 아주 작다. 하지만 지난 29일, 법안 강행시 재차 총파업 돌입을 선언했고 그간의 입장을 보자면 법안소위 회부를 곧 강행으로 볼 수 있는데” 라는 기자의 질문에 이석행 민주노총 사무총장은 침울한 표정으로 “사무총장의 입장에서... 조직적 논의를 거쳐야 할 것”이라는 짧은 대답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회의장 가운데서 이런 저런 말들의 향연을 한 자 빠짐없이 받아쓰는 속기사의 가슴에 노동3권 쟁취라는 전국공무원노조 국회본부의 버튼이 달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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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 공청회 , 법안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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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다

    상임위 상정 - 법안소위 회부 - 상임위 의결 - 본회의 상정 - 의결의 절차대로 진행되네요. 한나라당이 임시국회 소집요구를 거부하고 있는데..이를 지지해야 되는 상황이 되어버렸네요. 뭐 이것도 버티는 척하다가 소집에 응하고...그러겠죠.

    그리고 '자본' 다운 말 '부부가 노동시장에 뛰어들면 가계소득이 늘어난다. 그러기 위해서 고용구조를 유연화해야 한다' --> 이것의 결론은 '노동시장의 양극화'라는 걸 뻔히 아는 넘이 오히려 '소득 양극화'가 이 사회의 큰 문제라고 한다. 허~~ 고양이가 쥐생각 해주는 꼴이라니..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