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했지만 붕어빵 사설들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고립 자초하는 민주노총 강경파'(동아), ''민주절차까지 외면한 민주노총'(문화), '폭력에 얼룩진 단상 위의 민노총'(조선), '민노총 존재이유를 고민할 때다'(중앙), '민주노총, 시대흐름 읽어야'(한국), '민주노총, 누구를 위한 조직인가'(서울) '전투적 노조 이제 설 땅 없다'(매경), '근로자 대의 저버린 민주노총 파행'(매경), '난장판 민주노총 정말 이래도 되나'(한경), '위기 인식에 둔감한 민주노총'(경향), '민주노총 폭력 후유증 벗어나야'(한겨레)......
국회도 아니고, 보수정치권도 아닌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폭력'으로 얼룩지자 모든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 오늘 아침 전국에 배포된 종이신문들은 신문사와 신문 제호를 구분할 이유가 없었다. 어느 것을 들춰도 같은 기조와 유사한 내용의 사설이 실려 있기 때문이다.
사설만으로 보면 노동조합운동의 단결을 호소한 한겨레신문이 논조의 차별을 보이고 있지만, 사태의 본질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는 다른 신문과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민중언론을 자처하는 '민중의소리'도 "민주노조운동의 최고 기관이라 할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폭력과 고함이 난무하고 의사결정 자체가 가로막힌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라며 맞장구를 치고 있다. 2일 발표한 '훼손된 단결투쟁의 기풍'이라는 제하의 논평에서 "한두 가지 의견 차이를 내세워 분열을 당연시하는 것은 노동자계급을 배신하는 행동일 뿐이다"라며 '강경파'를 엄하게 꾸짖고 있다. 단결기풍이 망가지게 된 원인에 대해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는 것에서 뭇 보수언론과 차별이 없다.
민주노총 대위원대회를 다룬 오늘 아침 일간지 사설들은 신문에 따라 방점은 조금씩 다르지만 전반적으로 △기아자동차 채용비리로 도덕성이 땅에 떨어졌는데 이제는 폭력까지 난무 △뿌리깊은 노선 대립과 갈등, 강경파의 문제 △표결 무산, 폭력 난무, 민주적 절차도 지키지 못하는 조직 △'사회적 교섭', '노사정위 복귀'와 함께 노동운동 변신 등을 담고 있다. 민주노총이 변화하길, 변신하길 바라며 노노, 노사 갈등 해결의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아량마저 베풀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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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제34차 임시대의원대회가 폭력으로 얼룩졌다는 것은 사실이다. '사회적 교섭' 안건에 반대하는 조합원들의 집단적인 행동이 있었고, 분노한 한 대의원은 시너를 뿌리기도 했고, 소방호스와 소화기가 동원되기도 했다. 시너와 소방호스에 가려져 있긴 하지만, 이수호 집행부가 동원한 것으로 알려진 '용역'의 난동도 있었다. 대회가 열리기 전 이미 폭력을 잉태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오히려 유혈사태로까지 안 간 것이 천만다행이라 해야 할 판이다. 대회장은 그랬다. 참관인 사이에 욕설과 멱살잡이가 곳곳에서 벌어졌다. 성폭력에 버금가는 욕설도 난자했다. 제34차 대의원대회는 분명히 폭력적이었고, 매우 폭력적이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일간지 사설 어디를 들춰봐도 폭력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 지를 이야기하는 문구는 한 줄도 없다. 노선 갈등, 계파간 대립이 문제이고, 민주노조운동의 강경파가 폭력을 주도했다는 이야기가 전부다. 이것은 보수언론과 개혁언론들의 지독히 음해적이고 파렴치한 공작에 불과하다. 현상적으로는 단상을 점거하고, 소방호스로 물을 뿌리고, 표결을 가로막은 조합원, 대의원의 집단적인 행동이 폭력의 당사자이고, 이들과 연관된 세력들 말하자면 현장파니, 중앙파니, 국민파니 하는 현장조직들이 배후라는 지적도 틀린 말이 아닐 수는 있다.
그러나 모든 일어나는 사건의 결말이 있기까지 그것을 촉발시킨 출발이 있고,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 이 원인을 짚지 않고 결과만 부각하는 이상 벌어진 문제의 해결점은 영원히 찾지 못할 것이다. 이제 냉정을 찾고 이번 대의원대회에서 폭력을 부른 원인이 무엇인가를 따지는 데 주목해야 한다. 결국 '사회적 교섭(안)' 문제이다. 자문해보면 답은 간단하게 나온다. 물어보라. '사회적 교섭(안)'이 없었다면 집단 행동이 있었겠는가. 단상 점거가 있었겠는가, 의사 진행을 가로막았겠는가, 그 안이 없었다면 시너를, 소방호스 물을, 소화기를 뿌리고 그랬겠는가.
다시 당일 대의원대회를 보자. 이수호 위원장이 안건 상정을 알리고, 김태현 정책실장이 안건 설명이 끝나자, 무수한 질문이 쏟아졌다. 그런데 질문의 대부분은 '왜 사회적 교섭(안)을 강행하는가'였다. 십 수 명의 대의원들이 저마다 근거를 들어 질문한 것은 "왜 작년 9월 이후 정세가 바뀐 게 없는데도 사회적 교섭(안)에 집착하는가'였다. 비정규법안을 저지하기 위해 총파업 투쟁 준비에 올인 해도 여의치 않은 판에, '사회적 교섭(안)에 목숨을 거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이었다.
이수호 집행부는 '사회적 교섭(안)' 강행에 목숨을 걸었고, 이 점이 민주노총 폭력 사태의 시발이다. 공약 사항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작년 6월 노사정대표자회의에 참가하면서, 8월 중앙위원회와 9월 32차 대의원대회 의사를 진행하면서, 그리고 이번에 연이어 개최된 33차, 34차 대의원대회에서 이수호 집행부는 '사회적 교섭(안)'의 강행을 멈추지 않았다. '왜 그러느냐'는 대의원들의 질문에는 '모두 대답했다', '안건지를 참조하라'고 말할 뿐 제대로 속 시원한 대답을 내놓은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사회적 교섭(안)을 반대하는 조합원이나 대의원, 현장조직들에 있어 '사회적 교섭(안)'은 '거대한 폭력' 그 자체였다. 반대하는 대의원들은 많은 찬반 토론과 성명서와 유인물을 통해 그것이 제2의 정리해고제이자, 지옥구렁텅이 같은 노사정위 참가이자, 노동운동을 자본과 정권에 팔아 넘기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려하고, 경계하고, 반대하고, 분노했다. 그러나 이수호 집행부는 이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강행했다. 결국 폭력 사태를 유발시킨 1차적 원인은 '사회적 교섭(안)'이며, 1차적 주체는 명백히 이수호 집행부가 아니던가.
보수언론들은 민주노총 내 계파 갈등을 이야기하면서 이수호 집행부는 온건파, 사회적 교섭(안)에 반대하는 세력은 강경파로 분류한다. 어떤 기준으로 그렇게 이야기하는 지 일일이 따져 물을 이유는 없다. 다만 폭력을 행사한 세력이 강경파라고 한다면 이 경우 폭력을 부른 세력은 어떻게 불러야 하나. 민주노총의 유구한 투쟁의 역사에서 이수호 집행부만큼 분열과 대립을 조장하면서까지 특정 안건을 강경하게 강행한 세력이 있었던가. 이수호 집행부만큼 민주노조운동의 단결기풍을 망가뜨리면서까지 강경한 실천을 벌인 세력이 있었던가. 그렇다면 지금 강경파벌의 딱지는 진정 누구에게 붙여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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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은 오늘 오전 11시 기자회견을 열고 "두 차례 무산된 '사회적 교섭(안)'을 오는 21일 임시대의원대회를 다시 열어 논의하되 이수호 위원장의 재신임도 함께 묻는다"고 밝혔다. 또 "대대 폭행 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와 재발 방지책을 수립하여 대의원들의 의무와 권리를 보장할 것이다"라고 발표했다.
이수호 위원장은 "공약사항인 사회적 대화기구 추진 건에 대해 표결조차 못하는 상황이 계속된 것에 무한 책임을 느낀다. 최종 거취는 21일 대의원대회에서 재신임 여부를 물어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또 "2월 1일 일부 참관자들의 대회장 점거난입 사건은 민주노총의 정통을 스스로 부정하고 대중조직 활동의 기본질서를 훼손하는 심각한 반조직 행위"라고 규정했다.
이수호 집행부의 강경 의지가 천명된 기자회견이다. 사퇴의 배수진을 치고 사회적 교섭(안)'을 추진하는 이수호 집행부, 이쯤 되면 이수호 집행부에 있어 '사회적 교섭(안)'은 주기도문이자 사도신경인 듯 하다. 통탄스럽다. 노동조합운동의 오늘 이 사태, 어디서부터 발원 되었나, 무엇이 이토록 집요한 골수 강경파를 부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