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복하다, 다큐멘터리를 찍어서”

[인터뷰] 다큐멘터리 ‘엄마’로 일반 관객 만나게 된 류미례 감독

아기 업고 메가폰 들었던 최초의 여성감독 박남옥, 역시 포대기로 아기 업고 ‘엄마’ 찍은 류미례

자신의 세 번째 작품인 ‘엄마’로 2004여성영화인 축제에서 ‘올해의 여성영화인’에 뽑히기도 하고 역시 같은 작품으로 이런 저런 상들을 휩쓴데다가 다큐멘터리로서는 정말 쉽지 않은 일반 극장 개봉 기회까지 얻게 된 류미례 감독을 만났다. 다큐멘터리스트, 올해의 여성 영화인이라는 레테르에 대해 일반적으로 갖기 쉬운 클리쉐적인 선입견과 류미례 감독은 참 많이도 다른 사람이다. 류미례 감독이 ‘올해의 여성영화인’으로 뽑힌 2004여성영화인 축제에서 공로상을 받은 한국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 박남옥이 삼십대 초반의 나이로 출산한 직후 아기를 포대기에 업은 채 메가폰을 들고 영화를 찍었듯이 류미례 감독 또한 첫 딸 하은이를 놀이방에 맡겨놓고, 때로는 포대기로 들쳐업고 모녀 3대가 다 나오는 다큐멘터리 ‘엄마’를 찍기 시작했다. 류미례 감독은 말했다. “엄마를 주인공으로 삼은 건 소재 자체가 절실했다기 보다는 아기를 업고 할 수 있는 작업이기 때문이었다”고 그러나 ‘엄마’를 찍으면서 자신이 성숙했고, 치유됐다고 다시 담담히 말한다.

곰 같은 남편 그리고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둔 류미례 감독은 맑게 웃을 줄 아는 사람이고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놓을 줄 알아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도 제 상처를 스스로 핥아 치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다. 가족들과 그야말로 그림도 단란했을 가족사진을 찍은 후 이성애자로, 기혼자로, 딸아들을 고루 둔 엄마로 안착한 자신이 세상의 불합리나 모순에 대해 둔감해지기 쉽다며 “그나마 내가 가난해서 다행이다. 여성이라서 다행이다. 그리고....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이라서 다행이다”라고 혼자 되뇌이는 사람이다.

영화 속에서 하은이는 엄마의 엄마를 대상으로 ‘엄마’라는 다큐멘터리를 찍으러 가는 자신의 엄마와 놀이방 문 앞에서 서럽게 울어댄다. ‘엄마’는 이런 현실에서 자신이 이제 엄마가 되버린 딸이 ‘엄마’를 찍으며 스스로 성찰하고 서로 상처를 돌아보며 고통을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찍은 영화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던 극장에서 터진 수줍은 박수

다큐멘터리 ‘엄마’에 대해 엇갈리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것도 분명하고 “내가 처음도 아니고 끝도 아니다. 인생은 계속 된다”는 극중 나레이션은 엄마로부터 딸들로 숙명적으로 전해지는 모성의 굴레를 묵인하는 뉘앙스를 주기도 한다. 그런데 기자는 지난 일요일 저녁 동숭동 하이퍼텍 나다에서 ‘엄마’를 봤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객석에는 빈자리가 더 많았지만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여기 저기서 훌쩍 거리는 소리, 웃음 소리, ‘아’ 하는 한숨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게다가 영화가 끝날 때는 요즘은 수줍은 박수 마저 몇 군데서 터져나왔다. 극장에서 박수 소리 듣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2차대전에서 용감한 미군들이 잔학한 독일군을 용감히 무찌르는 영화가 상영되던 어떤 극장에서 십년도 훨씬 전에 마지막으로 들었던 듯 싶은, 대한 뉴스 없어지고는 처음이다 싶은 기억에서도 가물가물한 경험이었다.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수줍게 들려온 그 박수를 류미례 감독에게 꼭 전해주고 싶다.

블로그(류미례 감독 블로그 http://blog.jinbo.net/rmlist)를 통해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나지만 얼굴 맞대고는 두 번 째 만나는 자리였음에도 불구하고 류미례 감독과의 만남은 참 편했다. 게다가 공격적으로 준비한 질문들을 다 잊어먹었을 정도로, 인터뷰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정도로 즐거웠다. 두 시간 남짓 웃고 때로는 찡그리며 , 또 맞장구 치며 류미례 감독과 영화 ‘엄마’, 다큐멘터리, 결혼, 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가난해서, 여성이라서 다행이다”며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이라 너무 행복하다”고 담담하면서도 단호하게 말하는 류미례 감독과 지난 3월 3일 오후, 미디어참세상 사무실에서 나눈 이야기들이다.


‘엄마’, 일반관객을 만나다


공교롭게도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두고 호주제가 폐지되었다. ‘엄마’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든 다큐멘터리스트로서,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어떤 느낌이 드는지 궁금하다

-주위에서 하나 둘 양성쓰기를 하는 사람들이 생길 때도 별다른 의식이 없었고 그 의미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몇 년전에 KBS 열린 채널이 처음 생길 때 푸른영상에서 여성민우회와 함께 호주제 폐지 영상을 만들었는데 그걸 보면서 의미에 대해 알게 됐다. 돌이켜보니 내 가까운 친척 가운데서도 호주제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이 보이더라. 글쎄...어떤 사람들은 호주제가 폐지되면 혼란이 온다고도 이야기 하지만, 가부장적 가족관계에서 약간이라도 벗어날 경우 호주제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되지 않을까 한다. 특히 아이들이 자기 뜻과 아무 관련없이 성씨 하나 때문에 가족사가 다 드러나고 고통을 받는 것들이 안타까웠다. 하여튼 호주제가 폐지되서 너무 기쁘다.

‘엄마’가 일반 극장 개봉을 앞두고 있다. ‘엄마’의 경우 그 동안 각종 영화제라던가 이런 저런 행사에서 많이 상영됐고 반응들도 좋았던 것으로 안다. 그런데 영화제나 행사 관객들은 어느 정도 ‘수준 있는’ 관객들인데 그야 말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개봉하게 된 점에 대해 어떤 느낌이 드는지? 긴장의 정도가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극장에 다큐멘터리를 보러 오는 관객을 ‘일반’관객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는냐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얼마전에는 기자 시사회가 있었다. 그런데 그 전 날 영화배우 이은주씨가 자살한 사건이 벌어졌다. 영화 전문 매체나 일반 매체의 영화 담당기자들 관심이 그 쪽으로 집중될 것이 뻔해서 ‘아무도 안 오면 어쩌나’하고 걱정했는데 그래도 꽤 왔더라. 어제 있었던 일반 시사회는 오마이뉴스, 씨네 21등을 통해 초대권이 배포되서 기대보다 많은 분들이 오셨다. 일단 이 영화가 일반 개봉이 가능하리라고 기대도 전혀 안했는데 개봉이 된다는 사실 자체가 기쁘다. 그런데 홍보가 너무 힘들어서 그게 문제다. 영화를 선전하고 말고를 떠나서 이 영화가 하이퍼텍 나다 라는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다는 정보 자체가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아서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조금이라도 홍보하기 위해서 오마이뉴스에 기사라도 써볼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웃음)

영화제 관객과 일반 관객의 차이에 대해서 나도 많이 생각했다. 어제 일반시사회에서 할머니, 엄마, 어린 딸 이렇게 모녀 3대가 온 관객들도 있었는데 내가 원하는 관객의 전형적 모델이다. 아, 그렇다고 여성 관객만 바란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최근에 몇몇 평론가들과 ‘엄마’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오히려 관객들의 반응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기술적 혹은 내러티브의 완성도를 떠나서 관객들이 자신의 삶, 상처들을 돌아 볼 수 있는 영화라서 가까이 다가간다는 이야기들을 들었는데 그런 말을 들으면 영화를 만든 사람으로서 참 고마울 따름이다.

예전에 스크린을 통해 자기 작품을 상영한 다른 다큐멘터리스트하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들었는데 스크린으로 보니까 촬영할 당시나 모니터로 볼 때 못느낀 구멍들이 크게 보여서 힘들었다더라. 류미례 감독께서도 혹시 비슷한 느낌을 받았나

-솔직히 말하면 나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고 영화에 대해서는 아직도 잘 알지 못한다. ‘세발 까마귀’라는 다큐멘터리를 아는지 모르겠지만 난 그 영화가 참 좋았다. 구성의 차원을 넘어 그 영화에 나온 사람들, 상황들에 대해 감정이입이 되는 과정들이 참 좋더라. 나는 영화를 이런 식으로 보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스크린으로 본다고 큰 차이는 없었다. 물론 모니터로 볼 땐 ‘어 저기서 카메라가 흔들렸네’ 싶었던 부분이 스크린으로 볼 땐 ‘아이구 멀미 난다 멀미 나’하고 느껴지는 차이점이 있지... 이런 기술적 허점들을 고쳐 나갈 수 있는데 아마 ‘스크린을 통한 구멍’하고 비슷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푸른영상 내에서 작품이 너무 주관적이라는 이야기를 항상 들어왔다. 내가 나를 봐도 카메라로 피사체를 보는 과정, 구성, 찍는 과정등이 주관적인 경향이 있는 것 같긴 하다. ‘엄마’의 경우 앞선 두 작품과 달리 처음으로 나레이션도 써봤는데, 오히려 이런 주관성이 관객들의 이입을 더 크게 끌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주관성이 공감의 방식으로 다가간 것 같다.


배급, 개봉, 제작비 회수...독립영화의 현실


‘2004년 올해의 여성 영화인'으로도 뽑혔고 ‘엄마’를 통해 많은 상을 받았고 게다가 일반 개봉까지 하게 됐다. 이만하면 독립 영화계, 다큐멘터리계의 블록버스터로 불린 만하다. 돈은 혹시 좀 벌었는지 궁금하다

-블록버스터란 건 제작비가 많이 들어야 블록버스터지만 ‘엄마’의 경우 기금도 많이 받았고 상도 많이 받았고 나름대로 많은 관객들을 만났으니 블록버스터라 해도 되겠다. 돈은 글쎄...우리는 작업 하면서 자기 인건비 들어간 건 계산 안하니까 그렇게 보면 조금 남긴 것 같기도 하다. 요즘은 여기저기서 조금씩 사전제작 지원금 같은게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 영화 자체의 배급을 통한 제작비 회수는 힘들다. 테입 판매등을 통해 제작비를 회수 할 수 있긴 한데 이게 가능한 경우는 거의 없다. ‘엄마’의 경우 극장 개봉을 하지만 금전적 기대를 하긴 힘든 상황이고...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처음에는 푸른영상이 여기저기서 욕도 많이 먹었다. 우리는 저작권 개념이 통 없어서 방송 같은데서 쓰고 싶다고 하면 그냥 쓰라고 주곤 했는데 그게 다른 영상관계자들까지 어렵게 만들줄은 몰랐다. 그런데 다른 영상관계자들이 방송사 같은 곳에 정당한 댓가를 요구할 경우 ‘푸른 영상은 안 그러던데’ 하는 대답을 들었다는게 아닌가? 요즘은 그래서 우리도 그렇게는 안한다.

배급은 어떻게 되고 있나?

-처음에는 배급이고 뭐고 마인드가 없었지만 미로비젼도 생기고 최근에는 인디디비넷, 인디씨네넷 등 독립영화 배급사들이 하나 둘 생기고 있다. 게다가 요즘은 제작을 넘어서 배급, 기획에 대한 전망을 갖고 뛰어드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다. 우리 푸른영상 같은 경우에는 배급과 제작에 전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어 큰 도움이 된다. ‘엄마’의 경우 내가 제작 지원을 받았던 옥랑문화재단과 동숭아트센터가 같은 재단이기 때문에 ‘봄이 오면’과 묶여 개봉이 가능했던 것 같다.
동숭아트센터 쪽에서 관객 점유율이 20%만 넘으며 이런 기획들을 계속 할 수 있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어서 표를 팔러 나서야 하는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엄마’는 꼭 성공해야 된다는 생각이 든다. 류미례 감독이나 ‘엄마’의 성공만이 아니고 독립영화의 배급망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길을 뚫고 가면 뒷 사람들이 좀 더 편하지 않겠나

-맞다. 그래서 표를 팔 생각을 하는 것이다(웃음) 우리도 김동원 선배나 김태일 선배 같은 푸른영상 선배들이 겪은 경험에서 큰 도움을 받는다.


다큐멘터리 해서 돈은 못벌어도 하여튼 다음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조건은 마련되야 할텐데
-뭐 우리가 전반적으로 영화를 통해 돈을 번다는 생각은 없는데다가 재생산을 한다는 개념도 부족했던게 사실이다. 푸른영상의 경우 돌아가면서 돈을 벌고 작업을 하곤 했다. 그런 방식이 좋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지만 배급을 통한 제작비 회수와 재생산은 여전히 요원한 것 같다. 나중에 다시 이야기 하겠지만 내게는 무엇보다도 다큐멘터리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식이다.


"내가 치유될 수 있었던 과정“


영화 내용에 대해 좀 이야기 해보도록 하자. 엄마 내부의 여성성에 대한 이야기, 처음에는 당황스럽기도 했을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엄마는 다른 엄마들하고 달라. 우리 엄마는 특별한 엄마야’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엄마 내부의 여성성이나 끼 같은 부분에 대해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이 힘들지는 않았는지

-우리 엄마도 특별하다. 술도 많이 드신 적이 있고 끼도 잘 발산하고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무뚝뚝하고, 다른 엄마들하고 좀 다르다(웃음) 특히 다른 엄마들은 애들도 키워 주고 그러는데 우리 엄마는 장구 배운다, 노래 배운다며 별로 안 도와준다는 생각이 들어 섭섭하거나 때론 짜증이 나기도 했는데 영화 만들면서 그게 아니다는 생각이 들더라. 근데 엄마의 평생 소원이 장구, 노래 배우는 것이었는데 막상 그거 해보니까 재미가 없으셨나 보더라 그러다가 연애를 하면서 자신을 찾아간 것 같은데 노년의 로맨스가 힘들기도 했고...

엄마가 잘 안도와주신다고 말했지만 기자는 류미례 감독이 엄마한테서 김치도 거의 다 갖다 먹고 엄마가 반찬도 많이 해주시는 걸로 아는데

- 어...물론 그렇다.(웃음) 지금도 우리 집이랑 아주 가까이 살고 계신다. 6남매 중에 나만 아직 엄마 도움 받고 있는 셈이다.

엄마 뿐 아니라 언니들도 영화에서 큰 비중을 가지는데

-셋째 언니가 사는 러시아에 가서 만났던 의외의 사건들을 통해 엄마와 언니 내가 가지고 있었던 공통의 생각들의 가닥이 잡혔고 엄마가 가지고 있었던 아픔이나 그것을 함께 이해하지 못했던 나 자신의 문제들이 풀리는 순간이 생겼다. 게다가 내가 엄마가 되면서 우리 엄마를 새롭게 볼 수 있는 과정, 영화를 찍고 보는 과정이 바로 내가 치유될 수 있었던 과정이다. 또 엄마도 엄마지만 언니한테 더 많은 공감을 할 수 있었다. 우리 집은 큰 오빠가 있지만 아버지가 아들 형제를 바랬기 때문에 가운데 딸 셋이 생겼는데 그래서 출생부터 힘들기도 했고...


터놓고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카메라를 통해 가능했다는 말인가? 카메라를 통한 일종의 소격효과가 작용했다는 말인지

-글쎄,,, 소격효과랑은 좀 다른 것 같다. 다들 처음에는 카메라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는데 그 거부감이 사라지는 순간,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은 것을 넘어 오히려 카메라 앞이니까 더 많은 이야기들이 나온곤 했다. 나는 사실 6남매 중에 다섯째 거의 막내니까(류미례 감독은 큰 오빠, 언니 셋, 감독 자신, 남동생 이렇게 구성된 6남매 가운데 다섯째다) 가족간의 갈등관계에서 조금 자유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카메라를 통해 나 자신도 이 갈등 속에서 함께 이야기 할 수 있었다. 다큐멘터리의 좋은 점 중의 하나가 기획에서 어긋나기도 하고 기획을 넘어서기도 한다는 점인데 내겐 ‘엄마’가 그랬다. 내가 가졌던 애초 기획을 넘어서면서 내가 성숙해가는 과정이 됐고 영화가 오히려 나를 끌고 갔다. 이게 내게는 개인적으로 큰 의미다.

그런데 ‘엄마’를 만들 때 가족들 반응은 어땠나? 처음에는 어려움을 많이 겪었을 것 같기도 한데...류미례 감독의 경우 ‘가족이고 뭐고 없이 카메라 하나 들고 사회의 이면에 뛰어드는 고독한 예술혼’ 하는 식의 도식적인 스테레오 타입 다큐멘터리스트 하고는 스타일이 다르지만

-다큐멘터리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물론 주변에서 걱정이 많았다. 특히 금전적인 문제 때문에...그런데 내가 다큐멘터리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우리 가족을 가지고 소품을 하나 만든적이 있었다. 흑백 가족 사진 삽입되고 배경음악 깔리는 식의 그야 말로 소품인데 아버지 제삿날 가족들 앞에서 처음 ‘상영회’를 가졌는데 반응이 정말 좋았다. 동생 같은 경우에는 ‘누나, 최고의 작품이었어’하며 감탄하기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식구들은 나를 그냥 운동권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 때부터 좀 다르게 본 것 같기도 하다.


결혼생활 그리고 딸 하은이


감독도 현재 두 아이의 엄마다. 여성, 결혼, 엄마 되기...감독의 삶과 영화 ‘엄마’에 대해 좀 더 이야기 해 보자

-돌이켜 보면 난 여자라는걸 별로 생각 못하고 쭉 살아왔던 것 같다. 막내딸이라 언니들이 겪었던 경험하고도 좀 차이가 있고...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내가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는데 불평등한 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여성이라는 점을 처음 느꼈는데 이 영화를 찍고 더 많이 느꼈다. 아주 단순히 말하자면 ‘결국, 포기하지 말로 힘내서 잘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영화로 하고 싶었던 것이다. 결혼은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의 선택을 통해 무엇인가를 포기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남성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을 포기하지 않으려 하고 그것을 유지해 주기 위해 여성은 또 다른, 더 많은 희생을 해야 했다. 그것을 깨나가기 위해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단순하게 내가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딸을 위해, 모든 엄마들을 위해 싸우는 것이다.

‘엄마’를 만들면서 엄마를 보면서 감독 자신이 ‘나도 엄마’라는 것을 깊이 인식했다는 뜻인가

-나는 한 사람의 인간이고, 내 딸을 들여다 보고 나를 보면서 인간으로서 우리 엄마를 보게되고...우리 자매들이 엄마를 보고 자랐고 그 영향을 받았듯이 내 지금 모습에서 내 딸이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갈텐데...남자들은 결혼하기 전까지 살아온 삶이 있기 때문에 평등하게 산다는 것은 무엇을 잃어가는 과정이고 여성들은 평등하게 살기 위해서는 싸워서 무엇인가를 빼앗아야만 한다. 이런 과정을 넘어서기 위한 싸움이 필요하다. 물론 요즘 여성들도 뭐 나도 그렇지만 결혼 전까지는 엄마로부터 다 받고 살아온 경우가 많지만...비슷하게 성장한 두 사람이 만나 가정을 꾸리는 것인데도 출발점이 엄연히 다르다. 특히 딸을 키우는 엄마라 더 절박하게 느끼는 것 같다. 나는 이 싸움을 겪어 나가는 전사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내가 살아가는 방식을 엄마가 싫어했을때도 나는 내 삶에 대해 자신감이 있었다. 내 딸도 앞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게 되고 그 삶의 방식에 자신의 근거가 있을텐데, 내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게 될까봐 두렵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 딱딱해지고 점점 보수적이 돼서 이해하지 못하게 될까봐 두려운게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나 세상이 변화하는 모습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고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내가 점점 보수적으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끊임없이 깨어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계속 변화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과 함께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게는 이런 과정에서 진보넷 블로그(http://blog.jinbo.net) 가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블로그를 통해 쉽게 접하기 힘든 소식들, 다른 사람들이 사는 삶을 접할 수 있어 눈이 조금 더 넓어 지는 느낌이다.


기자도 류미례 감독 블로그에 자주 들어가 보는 편인데 세상의 모순이나 불합리에 둔감해져갈 까봐 우려하며 ‘그나마 내가 가난해서 다행이다. 여성이라서 다행이다. 그리고....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이라서 다행이다’ 라고 토로한 구절이 기억난다. 최소한 아직은 별로 그런 걱정을 안해도 될 듯 싶다

감독의 결혼식 1시간 전에 ‘엄마’의 첫 상영이 같은 장소에서 이뤄진 걸로 안다. 흥행은 성공했겠다

-하하. 기자가 결혼을 안 해봐서 잘 모르겠지만 결혼식 1시간 전이면 얼마나 바쁜지 모른다. 성공회 성당에서 결혼했고 부속 건물에서 상영이 있었는데 얼마 안되는 사람만 거기 들어가서 봤다.

결혼 생활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예전에 잠깐 만난 적이 있지만 신부님(류미례 감독의 남편은 성공회 사제다)도 참 좋아보이더라

-주위에서 ‘복받은 년’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남편도 ‘이 정도면 괜찮은 편’아니냐고 자주 말했는데 내가 봐도 일반적인 수준 보다는 나은것 같기는 하지만 모두들 ‘자신은 보통 한국남자보다는 낫다’고들 말한다. 도대체 보통 한국남자라는 가상의 평균이 있을까?

원래 기득권층은 그런 법이다. 민중들이 ‘희망이 안 보인다’고 고통을 토로하면 그들은 점잖은 목소리로 ‘어허 사람이 그래도 위를 보고 살아야지 위를 보고 노력을 하고 살아야 미래가 있는 법’이라고 말하고 ‘도저히 이대로는 못살겠다’고 나서면 그 때는 ‘어허 사람이 어떻게 위만 보고 사나?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도 많은데 아래를 보고 살아야지 아래를 보고’라고 말한다. 기득권층은 원래 입맛대로 ‘위를 보라’ ‘아래를 보라’를 적절히 써먹으며 대응한다

-정말 그렇다. 그런데 어떻게 그리 잘 아나? 목소리도 비슷한 것이 많이 해본 솜씨가 아닌가 의심스럽다.

그냥 흉내일 뿐이다. 의심하지 마라. 하여튼 남편도 감독 덕에 많이 고민하고 스스로를 성찰하게 될 것 같다

-우리 관게 속에서 계속 이야기 하면서 많이 고민하는 과정을 만들어 나간다. 일전에 남편이 설교를 하면서 예수께서 광야로 나간 사실을 언급하며 ‘모두들 자신의 광야로 나가야 한다’고 말하더라. 그래서 내가 ‘당신의 광야는 나야’라고 답해줬다.

‘대한민국 평균 남성’보다 분명히 나은 남편을 뒀지만 종교, 게다가 신부는 굉장히 보수적인 직업 중의 하나고 또 ‘사모’에 대해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역할모델들이 있지 않나? 교회도 그렇지만 ‘사모’는 항상 입을 다물고 있어야 되고, 내조를 잘 해야 되고, 남편을 하늘같이 모셔야 되고, 공동체 내에 분란을 일으키면 안되고...

-그런면에서 성공회가 다행히 조금은 자유스럽다. 교회에 대한 책임도 많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제들을 평가하는 부분에 있어 사모의 점수도 포함된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교회에 일주일에 한 번 가는 것도 결혼 초반에는 참 힘들었다. 내가 밥을 먹는 동안 하은이를 남편이 안고 있었는데 그걸 가지고도 뒷 말이 나오길래, 한동안은 교회가면 그냥 굶었더랬다. 요즘은 장애인센터 교회로 옮겨서 그런 부분이 훨씬 자유스럽지만 가끔 본당 교회 가면 ‘나는 없다’고 생각하고 지낸다. 물론 이런 나의 모습이 약간 비겁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긴 하다(웃음) 내 원래 모습과 교회가서 얌전 떨고 있는 모습 둘 다를 아는 사람들은 ‘너를 한 번 주인공으로 다큐멘터리 찍으면 재밌겠다’하고 말하기도 한다.


다큐멘터리,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수단


‘엄마’ 이후로는 어떤 작업을 계획하고 있나

- 사실 ‘엄마’를 만들면서 ‘아 앞으로는 나는 다시 다큐멘터리를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왜 그런 걱정을 했나?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준다면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하는데도 내가 기획했던 것을 넘어서는, 내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데 내가 잘 모르는 것을 어떻게 카메라에 담을 수 있겠냐는 걱정이 든 거다. 지금은 다큐멘터리를 다시는 못 만들겠다는 걱정은 많이 사라졌지만 앞으로도 내 생활에 밀착한, 내가 잘 아는 작품을 찍고 싶다.

그리고 ‘엄마’ 에 대해 다른 면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식이 됐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했었고 이 영화를 보고 관객들이 ‘나도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반응을 보인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관객들이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계기를 만들어 줄 수 있는, 문화의 향유자로 그치지 않고 생산자로 스스로의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힘들긴 하지만 기술적인 면에서 볼 때 문화 생산자로 나서기가 이 전에 비해 훨씬 쉬워진 것도 사실이다. 기술적인 부분 외에 ‘엄마’를 통해 사람들이 ‘나도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자극했으면 한 다는 말인가

-그렇다. 내가 영화를 만들면서 성장하고 치유되는 과정을 함께 경험하고 싶고 이 경험을 사람들과 교류하고 싶다. 이전에는 교육이라는 것이 일방적으로 영상활동가들을 키워내는 방식에 가까웠다면 나는 이제 좀 다른 교육을 하고 싶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 하고 싶고, 그들이 주체로 설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 각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카메라로 풀어내는 것, 이런 것이 많아질수록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카메라는, 다큐멘터리는 각자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수단이다. 나는 내가 다큐멘터리를 찍을 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하다. 모두 다 행복해 질 수 있다.

스스로 자신이 카메라를 늦게 잡았다고 말한 바 있는데, 그 전에도 뭐랄까 ‘비주류’로서의 삶을 쭉 살아 온 것으로 안다. 어떻게 이 길에 들어서게 됐나

-89학번인데, 94년에 졸업했으니 대학생 생활을 꽤 오래했다. 학생운동을 했었고 학생운동에서 노동운동으로 이전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졸업했는데 여의치 못한 지점들이 있었다. 그래서 한 2년 그냥 방황하며 살았다. 그러다가 ‘나 자신, 나를 한 번 생각해보자’, ‘과연 내가 어떤 사람일까’라는 생각을 하다가 문화비평, 영상 강좌를 듣게 됐고 다큐멘터리를 알았다.

그 와중에 나, 나의 삶을 인정하는 과정이 참 힘들었다.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내 영화의 특징으로 항상 내가 나온다는 점을 꼽을 수 있는데, 나는 항상 평범한 인간이라서 설명하고 가르치는 사람의 위치가 아니라 관객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영화를 통해 공감하고자 하고 있다.

나는 학교 다닐 때부터 준비론자적 성향이 강해가지고(웃음) 다큐멘터리를 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뒤로는 학원 강사하면서 모은 돈 털어서 이런 저런 강좌들을 너무 많을 정도로 듣고 또 연출 바로 하기도 겁나서 조연출도을 많이 했는데 요즘 생각하면 너무 준비를 많이 할 필요도 없다 싶다. 그리고 아직도 나는 과거를 이야기 하는 것이 많이 두렵기도 한데, 지금 삶을 제대로 살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 때문에 예전에 운동했던 이야기는 잘 하지 못했고 못하고 있다.

좀 다른 이야기겠지만 선배들은 자기 과거 운동을 양극단적으로 평가하는 것 같다. 술 안주감, 무용담으로 ‘그 때는 나도 날렸지’하면서 쉽게 말하는 사람들은 지금의 현실 문제에 대해서 자기는 돈 잘 벌고 잘 살면서도 ‘요즘 운동판은 뭐 이래 저래서 안 돌아가는데 싹 갈아 엎어야 되’ 하면서 쉽게 말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후배들이 보기에 저만 하면 충분히 훌륭한 삶을 산다 싶은 선배들은 자괴감이 큰 탓인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만남도 꺼려하고 말도 잘 안하려 한다. 전자에 대해선 뭐 별로 해주고 싶은 말이 없지만 후자의 경우엔 삶을 공유하며 더 배우고 싶은데 안타깝다

-여전히 내가 잘 살고 있는가 싶긴 하지만 지적한 그런 부분은 내 자신에게 있어도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많은 사람들을 떠난 듯 하다. 나한테는 스물 다섯이 경계였던것 같다. 그 이전에는 뭐든 가능하다 싶었지만 그 이후에는 너무 힘들었고 그러다가 다큐멘터리를 만났다. .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들려주고, 각자가 처해있는 자리에서 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주체로 세우는 영상교육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물론 그 부분이 중요하겠지만 여전히 전업 다큐멘터리스트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내 경험으로 미뤄보건데, 자신이 정말로 이것(다큐멘터리)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인지 고민하는 것이 먼저 중요한 것 같다. 정말, 생각보다는 지루한 작업이다. 기술적인 부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교육도 받아야 하겠지만 요즘 여기저기서 프로그램들이 많은데 그런 교육은 한 번만 받으면 되지 않을까 싶다.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일단 한 번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어떤 특이한 것, 남들이 눈이 안 미치는 곳을 찍어보겠다는, 일종의 소재주의는 지금은 한계에 부딪혔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보다 소재를 넘어 시선으로 승부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나의 시선은, 내가 이 세상에서 단 하나 뿐이기 때무에 독특할 수 밖에 없고, 시선과 생각을 일치해 나가는게 중요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자신의 시선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기본적인 공부나 사회에 대한 생각이 당연하게 갖춰줘야 할테고...앞에 앉은 기자는 펜으로 사실을 전하고, 자신을 표현하지만 카메라를 통해서 삶의 경험을 넓혀가고 또 그 과정에서 더욱 성숙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많이 추천하고 싶다.

'엄마' 극장 상영 정보

서울, 강북
상영일시: 2005년 3월 4일(금) ~ 3월 10일(목)
상영관: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1층 하이퍼텍 나다(문의: 769-3390)
상영시간 :11:20 /12:50 / 2:20 / 3:50 / 5:20 / 6:50

서울, 강남
상영일시: 2005년 3월 12일(토) ~ 3월 27일(일) 중 토, 일요일
상영관: 강남 씨어터 2.0 (12일부터 문의: 3444-6640)
상영시간 : 토요일 오후 3시 / 일요일 3시 20분 , 7시

대구
상영일시: 2005년 3월 4(금) ~3월 10일(목)
상영관: 대구 동성아트홀 (문의: 053-425-2845)
상영시간 : 5시 / 6시 30분/ 8시
태그

여성 , 다큐멘터리 , 엄마 , 류미례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윤태곤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 지나며

    오늘 받아본 동숭아트센터 매거진을 보니,
    3/11~3/17에도 11:00 / 12:30 이렇게 상영을 한다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