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 무역질서가 우리 일상에 미칠 수 있는 가장 적나라한 예를 보여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전북교육청이 제기한 '전북 학교급식 조례에 관한 관련 규정 무효소송'에 대해 "WTO협정에 위배된다"며 원고승소 판결했다. 아이들이 먹는 학교급식에는 국산 농산물을 사용하도록 하는 조례 규정이 세계무역기구(WTO)협정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새로운 판로를 모색했던 한국농업과 한국농업을 보호하기 위해 나선 국민들의 자발적움직임에 대법원이 나서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WTO 위배- 학교급식조례에 관한 첫 법원의 판결
전북교육청은 지난 2004년 1월 전북 학교급식 조례의 관련 규정 무효소송을 제기했다. 전남지역 22개 일선 시. 군도 같은 내용의 학교급식 조례를 재작년부터 잇따라 제정했다. 또한 전북교육청의 무효소송 제기 이후 경남, 경기, 서울, 충북교육청도 해당 지자체 조례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다. 현재 학교 급식 시 국산 농산물을 사용하도록 한 조항을 규정한 곳은 전국 광역시도 16개 중 부산을 제외한 15곳으로, 기초자치단체의 경우는 전체 234곳에서 82곳이 전북도의회와 유사한 조례를 제정했거나 추진중이다.
이 과정에서 9일 대법원 3부는 전북교육청의 소송에 "학교급식에 우리 농산물을 사용토록 한 관련 조례 규정은 세계무역기구(WTO)협정에 위배 된다"며 원고승소 판결했다. 대법원 3부는 판결문에서 "국내 산품의 생산 보호를 위해 수입 산품을 국내 산품보다 불리한 대우를 해서는 안된다는 GATT 제3조 제1항에 위반된다"고 판결의 배경을 밝혔다.
물론 이번 판결로 인해 학교급식에서 국산 농산물을 사용하는 것을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학교 직영이 아닌 민간업체에 급식을 위탁한 학교의 경우는 영리를 앞세운 업체들이 값싼 국적불명의 수입 농산물을 사용해도 막을 근거는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나아가 이번 판결은 학교급식 조례에 관한 최초의 판결이기 때문에 다른 소송들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국회에서도 학교급식 시 국산 농산물을 사용하도록 규정하는 학교급식법 개정안을 논의 중이어서 이번 판결이 법안 논의 과정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학교급식 조례, 대법원 누구의 손을 든 것인가
사실 학교급식 조례는 국산 농산물의 사용을 명문화하면서 학교 급식에 안전한 식재료를 사용하게 하고, 지역 농산물의 안정적 판매망을 구축하면서 지역 농업경제를 되살려야 한다는 고민속에서 지역 시민단체들의 요구에 따라 추진됐다.
이번 판결과 관련해 '학교급식법 개정과 조례 제정을 위한 국민운동본부'는 "우리 농산물 지원, 직영학교 한정 지원, 무상급식 확대가 국민적ㆍ시대적 대세로 굳어지고 있는 데 대해 찬물을 끼얹은 판결"이라며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그간 학교급식 조례운동을 벌여온 민주노동당도 '대단히 유감스럽다는 반응'을 보이며 "값싼 국적불명의 식재료와 식중독으로 고생하는 아이들은 어찌할 것인지, 언제까지 학교급식에 재정지원 확대를 거부할 것인지, 왜 대책도 없이 학교급식에 우리 농산물 사용토록하는 국민들의 노력에 집요하게 찬물을 끼얹고 있는지 과연 우리 아이들의 건강과 생명보다 더 중요한게 무엇인지"를 반문했다. 그리고 민주노동당 또한 "학교급식의 근본적 개선을 위한 노력을 앞으로도 멈추지 않고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GATT 협정문 3조 1항 - 내국민 대우 규정
대법원의 판단 기준으로 작용한 GATT 협정문의 3조는 '내국세 및 국내규제에 관한 내국민대우(national treatment on internal taxation and regulation)'를 명시한 규정으로 특히 1항은 "체약국은 내국세와 기타 국내과징금, 그리고 상품의 국내판매·판매를 위한 제의 ·구매·수송·분배 혹은 사용에 영향을 주는 법률·규칙 및 요건, 그리고 일정한 수량 또는 비율로 상품의 혼합·가공 또는 사용을 요구하는 내국의 수량규제가 국 내생산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수입상품 또는 국내상품에 적용되어서는 안된다 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GATT가 규정하는 내국민대우 원칙은 수입해서 들어오는 모든 서비스, 상품 등에 대해 국산과 수입산을 차별하지 말고 똑 같이 대우해야 한다는 것으로, 모든 법률 규칙 및 기타 요건 등에 대해서도 국산품과 동일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이다. 이 규정에 근거할 때 학교급식 조례의 경우 특혜 규정이 되어 통상 시비가 일수 있다는 것이 대법원 및 외교통상부의 해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