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제 몸에 시너 붓고 불 댕긴 ‘사장님’의 사연

'사업장'인 화물차 운전석에는 컵라면이, '사장사모님'은 할인마트 비정규노동자

2003년 김주익 그리고 2005년 김동윤


지난 2003년 10월 17일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에서 김주익 한진중공업 지회장이 129일 동안 홀로 버티던 85호 크레인 난간에 제 몸을 달아맸다. 그리고 만 2년이 채 지나지 않은 2005년 9월 10일 화물연대 부산해운대 지회 김동윤 조합원은 부산신선대 부두에서 제 몸에 18L들이 시너 한 통을 다 들이 붓고는 불을 당겼다.

김주익 열사는 일찌감치 20대 초반부터 노동조합 밥을 먹기 시작했고 김동윤 열사도 1999년 민주노동당 창당발기인으로 참여했고 2002년 화물연대 창립시부터 열성조합원으로 참가한지라 어쩌면 생전에 두 사람은 이런 저런 집회에서 스쳐 지나갔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야말로 당당한 덩치와 생김생김, 어딘가 가녀린 듯한 모습 그리고 대기업 노조 지회장, 노동자성도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고용직이라는 차이처럼 두 사람은 차이점도 많지만 두 사람을 죽음으로 내 몬 것은 한 가지다. 바로 ‘압류’. 채권자 등의 신청을 받은 국기가관이 강제로 다른 사람의 재산처분이나 권리행사등을 못하게 하는 바로 그것.

한진중공업에서는 회사가 조합활동과 파업을 막기위해 조합원들의 급여, 조합비에 무더기 가압류 신청을 냈고 법원은 회사의 가압류 신청을 척척 들어져 김주익 열사를 내몰았다. 그리고 수영세무서는 김동윤 열사가 추석 명절을 앞두고 정말 오랜만에 손에 쥔 몇백만원을 잽싸게 압류했다.

네식구와 2칸 월세방에서 지낸 ‘사장님’이 세금을 체납한 사연


아내, 중학교와 고등학교 다니는 두 딸과 네식구가 2칸짜리 월세방에서 살았던 김동윤 열사는 허울이 좋아 ‘사업자 등록증’을 교부받은 ‘사장님’이었다. 물론 사장님도 급수가 있는 것인지라 어떤 사장님은 회장님인 매형 심부름으로 정치자금, 떡값 수백억씩 배달을 다니고 그 와중에 삼십억을 쓱삭해도 별 문제가 없지만 ‘월세방에 사는 김동윤 사장님’은 명색이 자기 사업장인 화물트럭 운전석에 구질구질하게 육개장 컵라면을 싣고 다니면서 허기를 때우며 지냈다.

손에 실제로 쥐는 돈이야 십원이든 백원이든 상관없이 ‘김동윤 사장님’ 명의로 세금계산서 떼주면 붙는 것이 부가세라는데, 어쩌다보니 무려 1천2백만원이나 밀려버렸다. 있는 것 없는 것 다 압류해버리겠다고 닥달하는 세무서에 달려가 매달 50만원씩 꼬박꼬박 갚아나가겠다고 각서까지 써서 바치고 왠일인지 '그러라‘는 대답을 들어 밥은 못먹어도 세금 50만 원은 세 달 동안 꼬박꼬박 부어나갔건만 부산 수영세무서는 추석명절 1주일 앞두고 6개월만에 나온 유가보조금 420만 원을 냉큼 압류했다.

이번 추석에는 찾아뵙겠노라고 전화했던 부모님, ‘사장 사모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할인마트에서 비정규직으로 다리가 퉁퉁 붇도록 일해야 했던 아내. 재잘거리는 두 딸 다 남겨두고 ‘김동윤 사장님’은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 “못살겠다”는 말을 남기고 먼저 갔다.

결의대회가 열린 14일, 단상에 오른 김동윤 열사의 동생 김동순씨는 “오빠 너무 착한 우리 오빠 화물차 없는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세요”라고 말을 시작하더니 “6년전 화물차 시작하면서 그렇게 꿈에 부풀어 있던 우리 오빠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 “우리 오빠 살려내라”고 절규하다 혼절했다.

정문이 굳게 닫힌 부산시청 앞 광장에 모여있던 얼굴 시커멓게 글린 화물차 사장님 3천여명은 그들 하나 하나가 바로 김동윤인지라 김동순씨의 절규를 듣고 눈시울을 적셨다. 같은 시간 운이 좋으면 물량을 가득싣고 운이 나쁘면 빈 차로 경부 고속도로, 중부고속도로를 운행하고 있는 조합원들은 TRS단말기를 통해 그 절규를 들었다. 목이 메이고 눈이 흐려져 운전하는 전방 시야를 방해받는건 아닌가 하는 괜한 걱정이 순간 들었다.


이 많은 ‘사장님’들을 누가 다 만들었나


외환 위기 이후 구조조정 한답시고 물류 회사들은 차량을 기사들에게 떠넘기기 시작했다. 정부와 은행은 창업 지원이라면서, 당신도 이제 기사가 아니라 어엿한 사장님이 되는 것이라며 빚을 수천만원씩 밀어주며 회사와 한 목소리로 화물차를 떠안겼다. 심지어 다른 직업 가지고 있는 사람한테도 ‘화물차 한대면 몸은 좀 고생되지만 일주일에 손에 떨어지는게 얼마’라며 불러들였다. 어디 화물차 뿐이던가 덤프, 레미콘 여기저기서 팔자에 없는 사장님들이 양산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사장님이 되고 나니 이야기는 백팔십도 달랐다. 달랑 책상 하나 전화기 한대놓고 사무실 차린 운송회사 출신 브로커들한테 밉보이면 물량 배정은 어림도 없고 근로조건을 따질라 치면 화물회사는 ‘당신은 우리 직원이 아니고 계약관계인데 무슨 소리냐’, 노동부는 ‘당신은 노동자가 아닌데’ 라고 박대하기 시작했다. 어찌어찌 물량을 배정받아도 날이 갈수록 운임은 떨어지고 ‘싫으면 말라’는 답이 돌아왔다. 뿐인가 기름값은 10년전보다 4배로 훌쩍 뛰었다.

40피트 컨테이너 몰고 부산에서 서울까지 쏘면 33만원 받는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내려올때는 운이 좋으면 컨테이너 채워 오고 어쩌면 반나마 채울수도 있고 재수가 없으면 빈차로도 내려온다. 그러니까 운이 아주 좋아야 왕복에 66만원 손에 쥔다는 계산이다. 그런데 왕복 기름값은 35만원이 조금 넘는다. 여기에 톨게이트비, 밥 값, 보험료, 자동차세, 매출에 무조건 10% 붙는 부가세, 차량 감가상각비 빼면 얼마가 남을지...게다가 만일 사고라도 한 번 나면....생각도 하기 싫다는 게다.

대한상의, 경총, 전경련은 사장님을 몇분이나 회원으로 거느리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수천명의 사장님을 ‘조합원’으로 거느린 화물통준위의 김종인 위원장은 14일 집회에서 외쳤다. “정부가 제2, 제3의 김동윤을 바란다면 그래 그렇게 해봐라”


이 광경을 부산시청 청사 이마에 매달린 ‘APEC 성공개최로 세계속의 부산으로’라는 현판이 물끄러미 내려다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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