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치는 한반도, 어디로 가나?”

[한반도토론회](1) - 민교협 주최, 참세상 후원 정세토론회 열려

추석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달 19일 제4차 6자회담의 타결 소식이 전해졌다.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 실현을 위해 모든 핵을 포기하고 NPT에 조속히 복귀하며,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권을 존중하고 적당한 시기에 경수로 제공 문제를 논의한다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6개 항의 공동성명을 두고 전문가들과 언론은 분석을 쏟아내었다.

‘어찌됐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중요한 진전이다’는 평가부터 ‘구체적인 로드맵이 없기 때문에 갈 길이 멀었다’는 식의 한계 지적까지 상이한 평가와 분석이 연일 각종 언론을 장식했다. 통일운동 진영을 중심으로 진보진영에서도 대체로 공동성명의 내용에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과연 이번 6자회담의 타결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에 한 걸음 다가선 것일까?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은 4차 6자회담에 대한 평가와 입장의 홍수 속에서 지난달 30일 “요동치는 한반도, 어디로 가나?”라는 제목의 토론회를 기획했다. 민중언론 참세상 후원으로 열린 이날 토론회는 제목대로 한반도가 요동치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이 요동치는 한반도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명확한 진단과 이에 따른 입장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마련된 자리였다.

주경복, “민교협, 학술적이고 전문적 주제 고민하고 실천해내는 운동할 것”

주경복 민교협 공동의장은 인사말에서 “인간사회 삶은 여러 층위에서 중층적으로 역동하는데, 세계화라는 큰 물결 속에서 신자유주의를 놓고 많은 세력간 갈등이 있고, 유럽은 유럽대로 아시아는 아시아대로 역동 속에 있고 특히 아시아는 최근 6자회담도 성사가 됐다고 하지만 많은 문제 산적해있는, 이런 현실속에 있다”며 토론회를 마련하게 된 정세적 배경에 대해 언급했다.

주경복 의장은 이어 “민교협에서는 우리 사회 계급문제와 민족문제를 중심으로 많이 고민하면서 활동해왔다”며 “민교협이 지식인운동단체로서 전문가인 교수들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느데 그 전문성을 발휘해서 학술적이고 전문적인 주제에 대해서 고민하고 연구하고 토론하고 그것을 실천해내는 운동이 필요한데, 오늘 토론회를 통해서 우리 스스로 동사이사 국제 문제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게 된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고 밝혔다.

  민교협 공동의장 김세균 서울대 교수

민교협 공동의장 김세균 서울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토론회는 송주명 한신대 교수와 강정구 동국대 교수, 배성인 명지대 교수가 각각 동북아 신질서, 한미동맹 문제, 6자회담과 북핵 문제에 대한 발표자로, 김승국 ‘평화만들기’ 발행인, 이해영 한신대 교수, 임필수 사회진보연대 정책편집국장이 각각 발표에 대한 지정토론자로 참석했다.

송주명 교수는 탈냉전기 미국 주도로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는 동아시아 질서 속에서 중국과 일본, 미국은 어떤 전략을 취하고 있으며 그 속에서 한반도는 어떤 위치에 놓여져 있는가를 짚어보고 한국이, 그리고 민중진영이 선택해야 할 입장은 무엇인가하는 문제를 제기했다.

강정구 교수는 한미동맹의 문제를 조목조목 살펴보고 한미동맹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와 주한미군 철수 없이는 어떠한 진보적 진전도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배성인 교수는 최근 타결된 4차 북핵 6자회담을 평가하며 경수로 문제를 둘러싼 쟁점과 합리적 방안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피력했다.

김승국 발행인은 동아시아와 한반도 문제 있어 ‘경제’와 ‘안보평화’ 두 개의 문을 종합한 시각이 필요하다며 정치경제학적 접근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 궁극적으로 신자유주의 노선을 해체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주장했다.

이해영 교수는 강정구 교수의 발표에 대해 “역사적인 접근을 통한 결론이 곧바로 구조적 분석으로 가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하는 한편,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 문제는 대단히 중요하고 신중해야 한다”며 에둘러 강정구 교수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임필수 정책편집국장은 최근의 주한미군 관련한 투쟁들을 언급하면서 “투쟁의 쟁점이 확대되고 투쟁의 기운이 더 높아진 건 사실인데 전국적인 흐름으로 확장못한 채 국지적 투쟁으로 제한돼있다”고 지적했다. 또 4차 6자회담과 관련하여 과연 이번 공동성명이 제네바합의에 비해서 진전되었다고 얘기할 수 있는지, 이번 회담의 결과로 인해 과연 한반도 핵위협은 감소한 것인지에 대해 명확히 판단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회의적인 입장을 밝혔다.

송주명, “진보진영, 민중적 관점에서 바람직한 국제질서 설계할 능력 필요하다”

  송주명 한신대 교수

송주명 한신대 교수는 “동아시아 신질서의 형성과 한반도의 장래”라는 제목으로 발표하면서 현재 동아시아 질서가 어떠한 전환기에 있으며 미.중.일이 각각 어떤 전략과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이에 따라 한반도는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나아가 진보진영에서는 어떤 입장에서 어떤 실천적 움직임을 만들어야 하는지의 문제까지 짚었다.

송주명 교수는 탈냉전의 조건 속에서 미국이 패권전략의 변화를 취하면서 동아시아 질서의 전환을 이끌어가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 속에서 일본은 민족주의적 국가전략을 강화하고 중국은 고성장 구도의 질서 있는 관리와 성장의 유지를 목표로 미국과의 긴장을 가져가고 있다고 말했다.

송주명 교수는 “생존의 길을 위해서 결국 동아시아 갈등구조가 아니라 동아시아 협력구조로 나아갈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지적하면서 최악의 시나리오와 최선의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송주명 교수가 말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각국의 복잡한 대립요소를 포함하는 ‘복합적 힘균형 체제’로서 상황에 따라서는 대립을 넘어 파국적인 상황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는 불안정한 체제로 나가는 것. 이에 반해 최선은 ‘동아시아의 진보적 국제질서’이나 송주명 교수는 실질적으로 택할 수 있는 것은 ‘다자간협력체계에 민중 ・시민적 관여와 압력’이 더해진 국제 질서라고 전했다.

송주명 교수는 “민중적 입장에서 봤을 때 민중적 생존문제가 걸려있음에도 불구하고, 진보운동 세력은 여태까지 국제질서나 동아시아 문제는 한 발 물러서서 봤던 부분 있다”고 지적하고 “가장 바람직한 국제질서는 무엇인지, 여기에 대해 설계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다.

강정구, “통일전쟁과 침략전쟁은 배타적 관계 아니다” “자신에 대한 공격, 논리 없다” 일축

  강정구 동국대 교수

최근 한 인터넷 매체에 ‘6.25는 통일내전’이라는 주장을 담은 칼럼을 게재, 보수언론의 색깔공세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소환된 강정구 교수도 이날 발표자로 나섰다. 강정구 교수에 대한 여론이 뜨거움을 반영하듯 이날 토론회에는 방송사와 일간지 등 7군데 언론사 기자들이 모여 강정구 교수의 인터뷰를 따로 하는 등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재미없는 토론회에 왜 이렇게 언론이 관심을 보일까 궁금했더니 강정구 교수가 나오셔서 그런가 보다”며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강정구 교수는 “한미동맹문제”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하며 논란이 되고 있는 ‘6.25 통일내전’ 주장을 다시금 반복했다. 강정구 교수는 자신의 주장에 대해 맹비난을 퍼붓고 있는 보수세력에 대해 "전쟁 주체자의 전쟁목적에 따른 목적규정인 통일전쟁과 침략전쟁은 병립적, 양립적 관계이지 배타적 관계가 아니다”라고 강조하고 “'침략전쟁인데 왜 통일전쟁'이냐는 반박 자체가 엉터리 중 상 엉터리다"라며 자신에 대한 공격이 논리적 근거를 결여했음을 지적했다.

강정구 교수는 1946년 미 군정청이 시민 8,453명에 대해 실시했던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하면서 “당시 사람들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압도적으로 선호했다”고 전하고 “현재의 기준에서 과거 역사를 정당화시키는 것은 몰역사적 결과론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유엔안보리결의안은 6.25를 별개의 주권국가 간의 전면적 군사행위인 침략전쟁으로 규정하지 않고 평화파괴로 규정"했다고 설명하면서 “물론 국제적 기원을 가진 전쟁이지만 유엔의 승인이라는 국제적 기준에 의하면 이는 내전이지 침략전쟁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미국에 대한 자발적 노예주의에서 벗어나야”

강정구 교수는 한미동맹이 근본적으로 반민족성, 예속성, 반평화성, 맹목성 등을 가지고 있으며 한미동맹 옹호론이 얼마나 허구적인지 목소리를 높여 비판했다. 강정구 교수는 ‘미국전쟁위협론’이 역사적 진실임에도 ‘북한전쟁위협론’이 근거 없이 이데올로기적으로 제기되어 왔으며, 남한군열세론은 “일종의 사기행위”에 지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강정구 교수는 특히 “미국이 우리의 생명론을 구해줬다는 은인론과 보은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며 “미국을 은인으로 치장하는 우리야말로 숭미 자발적 노예이고, 노예 짓을 하도 오래해서 자신이 노예라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닌지 반문해 봐야 한다”며 ‘자발적 노예주의’에 대해 비판했다.

강정구 교수는 미군의 전략적 재편을 중심으로 하는 최근의 한미동맹의 근본적 변환이 “보다 역사 퇴행적”이라고 비판하고 주한 미군 철수와 함께 “예속적인 한·미 군사동맹 대신 한·중,한·일 관계처럼 일반적인 우호친선협력관계로 한·미 관계도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강정구 교수의 발언은 또 다시 보수 언론에 의해 총공격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배성인, “현재 한반도 비핵화 논의는 신자유주의 시장질서 공격 동반한다는 점 유의해야”

  배성인 명지대 교수

배성인 명지대 교수는 4차 6자회담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배성인 교수는 “한계점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것 같은데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은 오히려 미국의 네오콘, 북한의 강경 세력, 한국의 보수수구세력이 6자회담 성과에 불만을 나타내고 이를 되돌리려는 부분 아니냐”며 ‘모호성’으로 인해 제기되는 한계론 등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배성인 교수는 미국의 협상태도 변화와 관련해서 “북한을 ‘폭정의 전초기지’에서 중국을 겨냥한 ‘민주화의 전초기지’로 전략적 활용이 가능하다는 계산도 깔려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북한이 국제사회와의 관계 개선을 통해 안전을 보장받고 경제를 살리겠다는 의도로 “일정 정도 북한이 양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배성인 교수는 경수로 문제를 중심으로 발표를 이어갔다. 북한의 경수로 집착 이유를 짚은 그는 6자회담이 다자적 신뢰보장의 틀이므로 북한이 ‘선 경수로 제공’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하면서 북한이 요구한 경수로 지원방안으로는 “신포경수로 공사를 재개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며 경수로 제공은 5개 국각가 분담, 대북전력은 한국, 중유는 미국이 제공하는 것”을 합리적 방안으로 제시했다.

배성인 교수는 끝으로 북핵 문제 해결을 통한 한반도의 비핵화가 신자유주의 시장질서의 공격을 동반한다는 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배성인 교수는 “항상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북핵문제와 연관되는 미국에 의한 신자유주의 공격”이라고 말하고 “한반도의 비핵화, 나아가 동아시아 비핵과, 전세계화 비핵화를 위해 한반도의 민중 세력 뿐만 아니라 동북아의 민중, 세계의 민중 연대해서 반전, 반핵, 반세계화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쟁점 부각시키지 못해 아쉬움 남기기도

이어진 토론 시간에는 지정 토론자들이 각각의 발표에 대한 동의 지점과 발표자와 다른 의견을 제시했지만 그 과정에서 첨예한 쟁점이나 논의사안을 부각시키지는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특히 마지막에 토론회에 참석한 김수행 서울대 교수가 “민족주의 이야기를 많이 하셨는데, 각국 정부나 국가가 국민전체의 이익인 양 해서 자본가들과 지배계급의 이익을 관철하려고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민족주의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 게 좋지 않겠냐”며 뼈있는 질문을 던져 참석자들 간 민족주의에 대해 의견이 오갔지만 시간 상의 이유 등으로 심도 있는 논의는 오가지 못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전체적인 동아시아의 국제질서에 대해 민중운동진영이 진보적 상을 확보해야 한다는 이야기 속에서 실천적인 과제들이 추상 수준에서나마 던져졌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발언이 나왔지만 참석자들의 공감 외에 구체적인 논의나 향후 고민해야 할 지점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없어 아쉬움을 남겼다.

또 참석자들 모두가 현재 주한미군과 한미동맹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지만, 북핵 문제와 한반도 비핵화 논의가 신자유주의 시장 공세와 맥락을 같이 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떠한 운동과 실천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문제의식도 함께 던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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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세균

    토론회 내용을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많이 애를 썼군요.
    노고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