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파견법, 일본의 나쁜 전철 밟지 말아야"

[비정규국제심포지엄] 비정규직 권리보장 위한 법제도 개선방향

비정규 국제심포지엄의 첫번째 행사인 '비정규직 권리보장을 위한 법제도 개선방향' 전체회의에는 이병훈 노무사(노동인권실현을위한노무사모임)의 사회로, 팀 드 메이어(ILO), 조경배(민주주의법학연구회), 와키다 시게루(일본 류코쿠대), 아포 렁(홍콩 아시아노동정보센터)씨 등의 국내외 전문가들이 발표에 나섰다.

팀 드 메이어, "비정규직화는 세계적 추세지만 굉장히 위험하기도"

ILO 동아시아 지역사무소의 팀 드 메이어 씨는 ILO에서 비준된 20가지 협약을 설명하면서 "한국에서는 기본적인 협약에는 비준한 상태이지만, 가장 비정규직과 밀접한 주제를 다루는 협약은 비준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결사의 자유나 단체교섭권 등과 관련된 기본적 협약에는 비준한 만큼, 이것이 플랫폼이 되어 한국에서도 비정규노동자의 근본적인 권리 문제를 다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팀 드 메이어 씨는 "한국이 OECD 회원국인데, OECD 보고서를 보니 전체 노동인구의 3분의 1이 비정규직이고 이것은 비정규직 비중이 가장 높은 5대 국가 중 하나에 속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국의 노동조합이 의미심장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ILO와 국제노동기준을 갖고 올바른 방향 설정으로 난관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팀 드 메이어 씨는 "경쟁의 시대와 세계 경제체제에서 역동적이고 경제 성장의 원천이 되는 것이 모든 이들에게 좋다고 생각한다"면서도 "ILO는 UN이나 기타 국제기구들보다 훨씬 더 이런 과정에서 일어나는 방식에 대해 염려와 우려를 하고 있다"는 말로 노동유연화에 대한 위험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노동유연화를 추구하는 것 자체는 바람직하고 이것이 세계적인 추세"이지만 "비정규노동자, 여성노동자, 실업노동자 등 보다 많은 형태의 노동자들이 모든 혜택을 동등하게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와키다 시게루, "일본의 파견법 전철을 밟지 말라"

와키다 시게루 류코쿠대 교수는 '일본 비정규직관련 법 개정의 동향과 실태'에 대해 발표했다. 와키다 교수는 비정규직 문제의 올바른 방향으로 △노동자 고용은 상시고용이어야 할 것 △노동자를 고용해서 직접적으로 이익을 얻는 사람이 고용 책임을 질 것 △노동자를 고용한 이상 평등하게 대우할 것 △노동자의 권리, 단결권을 보장할 것 등을 제시했다.

와키다 교수는 "세계적으로 가장 빈약한 파견법은 일본의 파견법"이라고 강조하고 "한국도 마찬가지로 기업별 노조에 파견법을 도입한다는 것은 기본적 전제를 무시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일본은 1986년부터 파견법이 시행되어, 처음에는 16개 업종으로 제한하다가 1996년에는 26개로 확대하고 1999년에는 네거티브 리스트로 전환, 파견기간도 1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는 등 한국 정부가 시행하려고 하는 파견법 확대와 비슷한 모델이다.

와키다 교수는 "파견법을 만들어 불법적인 파견을 막고 파견노동자를 보호하겠다는 정부의 말은 완전한 거짓말"이라며 이의 증거로 "오히려 위장 도급이 만연했는데도 이를 단속하지 못하고 방치하고 있으며, 파견할 수 없는 업종인 제조업에까지 불법이 판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계약직노동자의 상황도 한국과 비슷해 일본 노동자 두 사람중 한 사람이 비정규직 노동자이며, 정규직노동자 평균 임금이 33만엔인데 비해 파견직은 20만엔, 파트타임 노동자는 9만엔의 임금을 받고 있다는 사실도 전했다. 단기계약을 반복 갱신한 노동자가 정규사원으로 인정된 대법원 판례를 이용하여 두 번만 계약을 갱신하고 해고해 버리는 사용자의 행태도 한국과 비슷했다.

와키다 교수는 "ILO에서 한국을 우려하고 있다"는 팀 드 메이어씨의 발언과 관련, "일본이야말로 ILO에서 우려해야 한다"면서 "노동시장이 안정되어 있어 거의 파업이 없는 스웨덴의 파업 수의 절반만을 일본에서 하고 있다"는 말로 일본 노동운동을 비판하기도 했다.

아포 랑, "심각한 이주노동자 차별 문제 해소해야"

홍콩 아시아노동정보센터의 아포 랑 씨는 "중국에서 넘어온 트럭운전사들로 인해 홍콩 노동자들도 특수고용형태가 되고, 중국과 홍콩 두 나라에서 노동법 적용을 못받고 있다"는 말로 '아시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과거와 미래'라는 주제의 발표를 시작했다.


아포 랑 씨에 따르면, 홍콩에서는 4주 이상, 1주에 18시간 이상 노동하면 노동법의 보호를 받게 돼 있으므로 많은 기업들이 4주 동안 매주 17시간만을 고용한다. 이런 노동자들은 영원히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포 랑 씨는 "한국에서는 이런 일이 일상적이라고 하고, 한 작업장에서 두 세개의 다른 고용형태의 노동자를 발견할 수 있는 굉장히 특수한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포 랑 씨는 홍콩의 이주노동자가 하루동안 5명을 살해한 사건을 언급하며, "이 노동자의 요구는 체불임금 지급과 차별하지 말 것이었다"는 말로 심각한 차별 실태를 전하기도 했다. 아포 랑 씨는 "이주노동자는 닭보다 먼저 일어나고 고양이보다 늦게 자며, 일의 부담은 말보다도 많지만 그의 작업장과 식당은 돼지우리보다 더럽다"고 비유하고 "전통적 조직 방식에서 탈피해 비정규직을 조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포 랑 씨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노노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이주노동자들에 대해 '일자리를 뺏는다'며 노동자들이 해고에 동의해 주기도 하지만, 노동운동은 이들을 배제해선 안된다"고 지적하고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법의 적용은 매우 중요하므로, 아시아에서 매우 적은 수의 국가들만이 비정규노동자 보호 협약에 비준한 것을 폭로하고 각국의 정부들이 비정규노동자의 기본권을 보장하도록 강제하자"고 말했다.

"각국의 사례가 말해주는 것은 '노동자들의 단결'이 필요하다는 것"

발표를 마친 후에 가진 토론 시간에서 팀 드 메이어 씨는 비준된 협약을 실행하고 있는 좋은 사례로, 필리핀 노동조합에서 홍콩 이주노동자를 대신해 중국의 침해 사례를 진정한 것 등을 들었다. 팀 드 메이어 씨는 "지난 몇 년 동안 각국 정부가 노동기준에 주목하기 시작했으며 인식이 개선되고 있다"고 전하고 "노조 활동이 우수한 국가 중 하나인 한국에서도 민주노총의 역량으로 모델을 제시해 주고, 이를 다른 국가에도 전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했다.

와키다 교수는 비정규노동자의 보호를 위한 구체적인 활동의 예시로 기업별로 조직된 정규직 노동조합에 비정규직을 직접 가입시키는 방안, 비정규노동자들을 지역 범위로 개인 가입시켜 조직화하는 방안, 지역일반노조 건설 방안 등을 제시했다. 특히 와키다 교수는 "일 년에 3천 시간 이상 노동하는 사람이 일본 정부 통계로만 7백만 명이 있다"면서 "이것이 파견법이 도입된 시기와 상관관계가 있는 만큼, 결코 파견의 확대를 허용하지 말고 일본의 나쁜 사례를 밟지 말라"고 부탁했다.

이 날 전체회의에서는 상대적으로 ILO의 팀 드 메이어 씨와 나머지 참가자들간의 인식 차이가 있었으나 비정규직 노동자 확대에 대한 우려와 노동권 보장의 필요성 등에 있어서 견해를 같이 했다. 사회를 맡은 이병훈 노무사는 "각국의 사례들이 제시하고 있는 것들에서,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권리를 쟁취해야 한다는 것이 동일한 의견"이라는 말로 전체회의를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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