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이 주체가 되는 '직선제'로 혁신의 출발을"

비정규직철폐현장투쟁단, '민주노총 혁신, 어떻게 할까' 토론회 개최

민주노총 임원선거가 실시되는 2월 10일 대의원대회를 앞두고 '민주노총 혁신 어떻게 할까'라는 주제의 정책토론회가 '비정규직철폐 현장투쟁단' 주최로 열렸다.

1월 10일 오후 7시 민주노총 서울본부 강당에서 열린 이 토론회에는 다양한 사업장과 지역 및 노동사회단체에서 60여 명의 활동가들이 참석했다. 발제는 한석호 전진 조직위원장, 조대환 이윤보다인간을 활동가, 정영섭 사회진보연대 노동국장, 양한웅 공공부문활동가연대(준) 소집권자, 안재원 노동자의힘 노동위원장 등 5명이 맡았고 토론은 전체 플로어 토론으로 진행됐다.

토론회 사회를 맡은 이경수 현장투쟁단 단장은 "2월 10일에 민주노총이 선거를 진행하기로 결정한 만큼 혁신의 문제를 긴급히 토론하여 대의원대회에서 제도적으로 만들 수 있는 부분들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 토론회를 마련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한석호, "우리 모두가 혁신의 주체이자 혁신의 대상"

첫 번째 발제에 나선 한석호 전진 조직위원장은 '민주노조운동 혁신 실천방안'을 주제로 발표했다. 한석호 조직위원장은 방안으로 크게 △이념과 노선의 혁신 △투쟁과 의제의 혁신 △비정규직, 영세노동자 중심의 운동 △계급적 산별 등을 제시했다.

한석호 조직위원장은 "'혁신'을 주제로 토론할 때 기본 전제는 어떤 집단, 어떤 주체이건 스스로가 혁신의 주체인 동시에 혁신의 대상이라는 것을 공통의 인식 기반으로 가져야 한다는 것"이라면서 "나타나는 여러 문제들을 혁신의 대상으로 삼아 악의 화신으로 만들어 버리고 자신은 혁신 대상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다고 생각하는 현상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비정규직 영세노동자 중심의 운동'을 이야기하면서는 "누구나 동의하는 이 과제가 정파 문제와 인력, 재정 문제로 막히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민주노총이 50억 기금 모금 방침을 결정한 이상 정파적 이해로 외면하지 말고 이에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운동을 주요 활동 과제로 삼고 있는 여러 단체나 조직들에 대해서도 "여기는 누가 주도하는 곳, 저기는 누가 주도하는 곳이라는 식의 잣대를 버리고 구심을 형성해서 인력과 재정을 총동원해 투입하자"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조대환, "사회운동과 지역운동을 중심으로 실천"

조대환 이윤보다인간을 활동가는 "'혁신'을 말하면 정치적 의도나 선입견에 의해 진정성을 의심받는 경우가 있는데, 혁신의 근본 방향은 앞으로 무엇을 같이 하고 무엇을 만들어갈 것인가를 점검하고 확인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노동운동이 한 발 더 나아가는 방법으로 △노동해방의 이념을 갖자 △구체적인 내용과 실천으로 운동하자 △노동조합 구조에 집착하지 말자 △기득권을 버리고 스스로 성찰하자고 제안했다.

구체적인 실천 모습에 대해서는 △노동조합 내에서 민주주의가 있는 계급투쟁을 만들어 나가는 것 △여성노동권 확보, 여성노동자 활동 보장, 여성의 결정권을 사회적 의제화 등 여성권의 강화 △반전평화, 인권, 환경운동 등 경제주의를 넘어서는 사회운동 실천 △지역특구나 경제자유구역, 혁신도시 등 신자유주의 지배전략에 대응하는 지역운동의 강화 △사회운동과 지역운동을 중심으로 한 대안사회운동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영섭, "비정규직이 상시적 의사결정기구에 참여해야"

정영섭 사회진보연대 노동국장은 '노동자운동 혁신의 방향'으로 △위기관리의 하위 파트너가 아닌 사회운동 기관차로서의 역할 △노동자운동을 보편적인 해방운동으로 △반전-대안세계화 운동과의 결합 △여성운동에 더 가깝게 △불안정노동 철폐투쟁을 통한 연대성 강화, 계급형성 △지역 중심의 연대운동 △노동자 민주주의 등의 방안을 내놨다.

정영섭 노동국장은 특히 노동자운동이 고 전용철, 홍덕표 농민 살해 규탄투쟁에 보다 적극적으로 결합하지 못한 것을 지적하며 "우리 운동이 근본적으로 반성해야 하며, 오히려 노동자 대오가 적극적으로 광범위한 민중 연대투쟁을 제기했어야 옳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조직혁신에 대해서는 "비정규노조 대표자가 민주노총의 상시적인 의사결정기구에 참여하는 열린 구조로 혁신해야 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양한웅, "2월 임원선거의 환상을 버리자"

양한웅 공공부문활동가연대 소집권자는 민주노총의 2월 10일 선거 결정에 대해 "비리 사건 이후에 민주노총이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길 바랬는데 비대위는 비정규 투쟁을 좀 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선거하겠다고 결정해 버렸다"며 아쉬워했다. 2월 10일 선거 결정이 "'혁신'의 기회를 잃어버리는 행동이자 과제를 방기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양한웅 소집권자는 2월 10일 대의원대회 결정의 재고를 주장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의원대회가 확정된다면 최소한의 과제는 '직선제'와 '규율위원회 재구성'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2월 임원선거의 환상을 버리고 혁신 운동에 집중하자, 어떻게 혁신하고 실천할지가 선거 못지않게 소중하고 중요한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안재원, "조직, 이념, 활동의 혁신" "투쟁과 혁신은 분리될 수 없다"

안재원 노동자의힘 노동위원장은 조직형식, 조직일반, 대중을 주체로 하는 조직운동 양식개발 등 조직의 혁신을 비롯해 이념의 혁신, 활동의 혁신, 당면 투쟁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안재원 노동위원장은 "2005년이 되면서 노동운동이 총자본으로부터 권력을 물려받는 형태로까지 나아가게 됐고 그런 점에서 현재 민주노조의 정체성이 변화하기 시작했다"고 진단하고 "2004년의 사회적 교섭을 둘러싼 갈등에서 드러났듯 노동운동 내 대립과 격돌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관련해서 계급성의 위기, 이념의 위기, 정파운동의 위기, 활동의 위기를 든 안재원 노동위원장은 "투쟁과 혁신의 문제는 반드시 결합되어야 하며 2006년 투쟁에 대한 의견을 모아나가자"고 말했다.

안재원 노동위원장이 제시한 구체 방안은 조직 혁신과 관련해서 산별노조, 지역운동, 비정규직 중심, 민주노총 지도부 직선제, 내부 혁신위원회와 규율위원회, 대의원 확대와 직선제, 소환제, 회계감사 등이며, 활동의 혁신과 관련해서는 정치력으로 표현되는 각종 라인 단절, 이면합의 척결, 경영참가에 대한 양날의 칼 인식, 관료화 방지, 현장 통합력, 활동가 훈련과 교육 등이다.


"조합원이 주체로 나설 수 있는 '직선제'로 혁신의 출발을"

발제와 질의응답이 끝난 후에는 참석자 전체가 플로어 토론을 벌였다. 토론에서는 좀더 구체적인 방안과 의견들이 제출됐으며 주되게는 '직선제'와 관련한 주장이 많았다. 토론에 참여한 사람들은 대체로 '직접 민주주의의 중요성과 당위', '현장의 의사가 정확히 반영되지 못하는 간선제의 폐해 사례', '현장 조합원의 직접 참여 유도' 등을 이유로 들어 직선제 도입에 찬성했다.

"민주노총 중집, 중앙위, 대의원대회 모두 대의제도이다. 의사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는 측면도 있지만, 권리를 대리한다는 측면에서 제도적으로도 직접적이지 못하다. 민주노총이 10년간 대의제도를 운영하면서 다른 장점인 직접 민주주의로 나아가려고 하는 노력조차 안되고 있고 운영면에서도 현격하게 현장의 요구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현장 민주주의를 살리는 길은 내 문제를 내가 고민하고 결정하는 것,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는 것이다. 대의원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누가 더 올바른지 고민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대략 현장의 정서는 누가 출마하든지 그놈이 그놈이라며 별로 신뢰하지 않으며, 자기가 한표를 행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책임 또한 지지 않는다. 비전을 가진 지도부가 누구인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어야 한다"

"작은 단위사업장은 조합원은 물론 지부장조차 총연맹, 연맹, 지역본부 선거에 참여하지 못하고 관심도 없다. (직선제를 실시하면)사회적 교섭과 같은 문제로 다른 의견이 있는 후보 중 하나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조합원들은 스스로 논쟁하고 관심을 갖는 등 훌륭한 교육의 기회가 될 것이다"

"선거제도의 변화만으로 혁신이나 노동자 민주주의가 담보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현장 중심성이 깨지는 곳이라면 직선제를 실시해도 얼마든지 어용들이 장기집권할 수 있다. 그러나 조직을 혁신해야 하는 시기에 과연 어떤 제도를 도입해야 하는가. 직선제는 조합원이 직접 집행권력을 창출하자는 의미에서 유력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직선제 도입 주장이 현실 문제를 도외시한 원칙적 주장일 뿐이라는 측면에서 반대 입장도 있었다.

"직선제는 지금 시기에 맞지 않으며 혁신을 이야기할 때 배치되는 부분이 많다. 주요 대공장 노조 조합원들은 이미 노사협조주의를 선택하고 있으며 투쟁하자는 집행부는 절대 당선이 못된다. 직선제냐 간선제냐를 떠나서 대의제 문제, 노동자 민주주의의 본질에 관련된 문제기 때문에 현장 민주주의가 파괴되고 있다는 점을 우선적으로 봐야 한다. 관련한 노력이 제대로 진행 안된 상태에서의 직선제는 더 큰 운동의 후퇴와 관료주의를 낳게 될 것이다"

다양한 혁신 방안 제출, 현장 토론과 구체화가 과제

그외에도 참가자들은 비리 척결의 문제, 규율위원회 문제, 국고보조금 지원 문제 등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다.

"위원장이 앞에서는 노동부 장관 퇴진을 외치고 뒤에서 사무총장은 노동부에게 돈 달라고 사정하는 것이 한국노총의 모습이다. 한나라당조차 천막당사를 치고 쇼를 했는데 우리는 국고보조금(임대료)을 반납하고 없으면 없는대로 나가자"

"노사정위원회는 아예 폐기를 요구해야 한다. 들어와라 마라할 기구가 없으면 사회적 교섭 논란 자체가 없어진다. 우리의 입장을 분명히 밝힐 수 있는 것은 대의원대회 결의로 노사정위 폐지 요구를 선포해버리는 것이다"

"KT노조의 어용적 행위를 대의원대회에서 폭로하고 제명을 요구해야 한다"

"회계감사 제도를 감사위원회 수준으로 확대하여 권한을 높이고 일상적으로 감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규율위원회도 혁신의 대상인 소수 몇 사람이 구성되는 구조가 아니라 대의원대회에서 상당한 권력과 힘을 갖는 규율위원회로 조직돼야 한다"


참가자들은 '민주노총 혁신'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고민하면서 주로 2월 10일 대의원대회에서 제도적으로 규정될 수 있을 법한 수준으로 의견을 좁혀 토론했다. 다만 이 문제들을 대의원대회 현장에서 제기하는 것은 늦으므로, 폭넓은 공유와 토론을 위해 그 전에 현장투쟁단 참여 조직이나 개인별로 논의 결과물들을 모아 구체화시키고 종합적인 내용을 마련해 제시하자는 주장이 있었다.

이경수 단장은 토론회를 마치며 "혁신을 이루기 위해 토론하는 게 아니라 혁신을 준비하기 위해 토론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고 "혁신은 혁신을 준비하는 단위들이 기회를 잡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기도 하며, 제도를 통해 바꿔가는 것이 성과는 있을 수 있지만 완전한 의미에서의 혁신은 결단하여 급격히 진행하는 것이니만큼 함께 기회를 엿보자"는 말로 마무리했다.

비정규직철폐 현장투쟁단은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회에 여러 통로로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며 대의원대회 이전에 보다 광범위한 규모로 토론을 벌여갈 계획을 갖고 있다. 줄곧 민주노총 혁신을 이야기해온 좌파 활동가들이 직선제를 비롯한 여러가지 방안을 제시했고, 민주노총도 2월 10일 대의원대회에서 조직혁신과 관련한 안을 다루는 만큼 향후 혁신과제를 둘러싼 민주노총 안팎의 논의와 대응들이 주목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