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년간 총체적 신자유주의 정책, 격렬한 저항

[기고] 학생운동이 정부를 수세에 몰아넣다

지난 4년간 프랑스의 우익 정부는 총체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행했다. 2003년 연금 체계 개혁의 사례처럼 종종 격렬한 저항이 일어났다. 그러나 정부는 전반적으로 ‘신자유주의적 정책 개혁’을 강제했고, 이는 대체로 전통적인 노동자 조직이 전면적으로 신자유주의적 정책 개혁에 반대할 태세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도미니크 드 빌팽 총리는 힘겨운 일을 계획하고 있는지 모른다.

정부가 제안한 ‘최초고용계약법(CPE)’은 26세 이하 청년들을 ‘신규고용자일 경우’ 최초 2년 내에 정당한 사유 없이 해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법안은 고용안정을 과거지사로 돌리고 고용주에게 해고의 자유를 부여하기 위해 현존하는 모든 노동법을 무력화하려는 정부의 목표의 일환이다.

동시에 이는 특히 노동시장으로 진입하는 청년 노동자들을 겨냥한 조치다. 처음에는 완만했지만 점점 반대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 분수령은 지난 10여 년간 최대 규모로 조직된 학생 운동이다.

주요 노조와 대학, 고등학생 조직이 2월 7일 최초의 대규모 집회를 개최했다. 이는 프랑스식 표현으로 ‘조용한 성공’이었는데, 40만을 상회하는 시위대가 프랑스 전역의 도심에 운집했다.

2월 한 달이 일부 고등학교와 대학이 문을 닫는 프랑스의 방학기였음에도 불구하고, 3월 내내 학생운동은 더욱 깊고 넓게 확산되고 있다. 학생들이 이 사안을 파악하기 시작하면서 운동은 [단순] 시위와 항의를 넘어 [학교] 점거로 확대, 이동하고 있다.

현재 프랑스 전국 84개 대학 중 50여 개 이상의 대학이 학생들에 의해 전면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점거됐다. 3번째로 큰 규모의 낭테르 대학은 “안전상의 이유”로 휴교에 돌입했다.

100만의 인파가 160개 도심에 운집한 가운데 열린 3월 7일 2차 대규모 행동의 날은 1차 행동의 날보다 훨씬 큰 규모로 진행됐다. 시위대들은 노조원들과 다수의 청년, 학생과 노동자로 구성됐다. 시위대의 목소리는 매우 급진적이었다. 많은 청년들은 정부가 시끄럽고 호전적인 프랑스 경제인연합(MEDEF)과 공모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집권여당인 대중운동연합(UMP)처럼 경제인연합의 지방 사무소는 종종 학생 시위대의 표적이 되었다.

모든 좌파 정당 - 공산당과 극좌파는 물론 사회당까지 - 들이 학생운동을 지지하며 CPE의 철회를 주장하고 있다. 선거 기간 이외에 매우 특이하게도 CPE 철회를 요구하고 시위를 지지하는 사회당 포스터들을 벽에서 볼 수 있다. 이는 운동이 강력하다는 징후다.

정부는 물러서지 않으려 하고 있고 학생들에 대해 주저 없이 전투경찰을 동원했다. 3월 10일과 11일 밤에 그들은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소르본 대학을 급습했고 점거하고 있는 학생들을 몰아냈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 일부가 부상당했다. 이 사건은 소르본이 상징했던 1968년 5월의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이번 주에는 더욱 많은 학생들이 조직화를 하고 있고 3월 14일에는 대학생과 고등학생들이 소르본에서 행진을 했다.

정부와의 힘겨루기는 현재 잘 되고 있고 사태의 흐름은 급격히 빨라지고 있다. 대학과 고등학교 학생 조직들은 3월 16일 행동의 날을 호소했고 노동자들에게 지지 파업을 요청하고 있다. 토요일인 3월 18일은 노조들이 호소한 행동의 날이다. 여기에는 노조연맹 가운데 가장 우파인 프랑스노동자민주동맹(CFDT)이 포함되어 있는데, CFDT는 더 이상의 파업행동을 거부하려 한다.

프랑스 최대 노총인 노동총동맹(CGT)은 3월 30일에 파업과 시위를 더 진행하기로 발표했는데, 이는 학생들에게는 너무 멀리 있다. 3월 11일 푸아티에에서 열린 CGT 전국조직위 회의에서는 3월 23일 일일 파업을 조직하고 파리에서 전국 집회를 개최할 것을 소속 노조들에게 요구했다.

정부는 이제 심각한 우려를 하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1986년과 1994년 두 번에 걸쳐 학생들은 정부로 하여금 법안을 포기하도록 몰아세웠다. 1994년의 관련 법안은 CPE와 매우 유사한 조치였다. 의견 분열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라크 정권의 전직 외무부장관이었던 에르브 드 샤레트와 같은 소수의 우파 정치인들만 CPE가 철회되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더 많은 이들이 정부 입장을 지지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7개 대학총장들은 현재 CPE 철회를 요구한 상태다.

향후 2-3주가 결정적인 시기가 될 것이다. 노동계가 23일 파업에 대한 학생들의 호소에 화답한다면 운동의 역동성은 다시금 강화될 것이다. 많은 것이 CGT에 달려 있다. 2003년에 총파업 호소를 CGT가 거부함으로써 정부가 위기에서 벗어난 적이 있기 때문이다.

LCR과 그 청년학생조직인 JCR은 이 운동에 깊숙이 관계하고 있고 전국적 파업과 시위 호소를 지지하고 있다. LCR도 CPE 철회를 위해 모든 좌파세력이 단결해서 회합을 갖자고 제안한 상태다.

[번역] - 편집국
덧붙이는 말

머레이 스미스는 스코틀랜드 사회주의당 前 국제조직자로,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LCR) 당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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