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오늘이 며칠인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시 내리쬐기 시작한 햇볕은 머리를 어찔하게 한다. 서로 몸은 지치고, 말을 할 기운마저 사라진다.
“오늘이 며칠이고?”
“모르겠다.”
“이길 수 있을까?”
“이긴다? 뭐가 이기는 거고? 복직?”
‘맞아. 이기는 것은 뭘까? 복직이 되면 이기는 것일까? 다시 공장에 돌아가면 신이 나게 일을 할 수 있을까? 정리해고가 철회된다고 내 가슴에 핀 피멍울이 사라질 수 있을까? 동료들과 예전처럼 웃으며 일을 할 수 있을까? 아내와 자식에게 준 고통을 쓰다듬어 줄 수 있을까? 이 분노를 없었던 것처럼 지울 수는?’
무엇이 이기는 걸까
무엇을 쟁취하고 이기기 위해 올라온 것은 아니다. 선택은 내 스스로 했지만, 올라올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나 아닌 다른 힘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 발로 올라왔지만, 다른 무엇이 나를 40미터 고공으로 끌어당겼는지 모른다. 나를 올라오게 한 것은 누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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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참세상자료사진] |
‘유난히 겁이 많았어. 고향에 자그마한 교회가 있었지. 교회에는 철탑이 있고, 그 위에 종이 달려있어. 그 날도 지금처럼 햇볕이 따가운 말이었던 것 같아. 친구들이 철탑에 오르자는 거야. 하나 둘 친구들은 철탑 꼭대기에 올랐어. 이제 나만 남았어. 빨리 오르라고 친구들이 채근하다 겁에 질러 고개만 숙이고 있는 나를 보고 놀리기 시작했어.’
어찌 올랐는지 모른다. 눈을 질끈 감고 ‘땅을 보면 안 돼’하며 오르기 시작했다. 친구들의 함성이 들렸다. 눈앞에 종이 보인다. 그 순간 아래를 보고 말았다. 아찔하고 정신을 잃었다.
“경찰이다.”
타워크레인 밑에 경찰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공사장을 정돈하며 매트리스를 깔기 시작한다. 이제 진압이 되는 구나.
“우짤래?”
“뭘 우짜노? 싸워야져.”
“우째 싸울낀데?”
“콱, 뛰어내릴끼다.”
콱, 뛰어내릴끼다
경찰들이 모여들자 흥분하기 시작했다. 다시 꽹과리를 들었다. 더 이상 소리를 지를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깨갱깨갱 깨개갱 깨깽깨깽 깨개갱. 장단도 없이 두들겨 됐다. 늘 넉넉한 웃음을 웃던 송진만 부위원장의 눈이 붉어진다. 뚝 눈물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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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죽으려고 싸우는 거 아니다. 영웅이 되려고 올라온 거 아니다. 죽어서 해결될 일이라면 몇 번이라도 죽었다. 아니 정리해고된 뒤 400일 내내 죽을 꿈만 꾸고 살았다. 최일배 위원장이 구속되지 않았어도, 내가 부위원장만 아니었어도 벌써, 벌써…. 크레인에 올라온 뒤 가장 힘든 게 뭔지 아나?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참는 거, 눈 질끈 감고 뛰어내리고 싶은 ….”
“미안타. 미안타.”
여기서 끝내는 것은 너무 억울해서라도 살아서 싸워야 한다. 3명 모두 죽지도 다치지도 말고 내려가야 한다. 서로의 자리를 정했다. 끌려 내려가는 게 아니다. 코오롱 정리해고자는 일터에 돌아가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세상에 알렸다. 이제 감옥에서 알리고, 공장 앞에 돌아가 알려야 한다.
‘욱하는 성질이 있어. 마음으로야 끝까지 버티며 싸우리라 다짐하지만 욱하는 성질이 발동하면 어쩌지. 왜 조용하지. 바닥엔 매트리스가 깔렸는데. 어두워진다. 이 어둠이 거치면 진압이 시작되겠지. 소주 한 잔 마셨으면. 쓴 가슴에 톡 한 잔 털어 넣고 싶어.’
살아서 싸우자
멀리 차 소리만 울리고 동지도 노동가도 들리지 않는다. 결심을 한 뒤로 전화기 전원을 껐다. 차마 아내에게 오는 전화를 받을 용기가 없었다. 별이 뜬다.
“일어나.”
긴장감에 잠을 들지 못하다 깜박 졸았다. 고가사다리가 긴 목을 빼며 달려든다. 서로 약속한 자리에 갔다. 왼쪽, 오른쪽, 조정실. 구호 소리가 들린다. 새벽을 깨는 애절한 구호 소리가 들린다. 나도 외친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조정실이다. 무자비하게 쏘아대는 물대포에 구호를 외칠 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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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참세상자료사진] |
‘끌려내려 가는 게 아니야. 내 몸을 가둔다고 내 절절한 바람마저 가두지는 못할 거야. 누가 코오롱 정리해고자들의 일하고 싶다는,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소망을 가둘 수 있으리.’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어찌 내려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당당하게, 떳떳하게 만을 생각했다. 경찰차에 실리는 순간까지 우리의 요구가 정당하였듯이 당당하게 걷자 만을 생각했다. 기자들의 카메라가 보인다. 웃자. 맘껏 웃었다. 세상을 향해 떳떳하게 웃었다.
가둘 수 없는 희망
경찰 봉고차에 실렸다. 창문을 열고 담배를 한 개비 꺼냈다. 불을 붙인다.
‘미안해. 동지들. 아무런 성과도 없이. 어떻게 동지들의 얼굴을 보지. 여기서도 끝나지 않았는데, 밖의 동지들은 어떠한 투쟁을 할까? 이제 정말 목숨 밖에 남지 않았는데. 실마리를 풀지 못하고 내려왔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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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 두 명 구속이 되고, 도저히 굶는 식구들을 볼 수 없어 떠나겠다는 동지가 생겼다. 참담하다. 정신적 압박으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동지도 있다. 희망이 되고 싶었다. 꿈이 되어주고 싶었다.
“내가 준비한 일이고, 나 하나 책임지면 됩니다. 동지들은 빨리 나가서 싸워야죠.”
“함께 목숨 걸고 싸워는데, 왜 부위원장만 책임집니꺼. 왜 혼자만 짐을 지려고 합니꺼. 그리는 못하겠슴니더.”
“구속되어 싸울 일보다는 밖에서 싸울 일이 더 많찮습니꺼. 최소한으로 구속되어야 합니더.”
“구속되고 안 되고가 어디 우리 마음대로 되나. 감옥에 있든 나가든 이길 때까지 어디서든 싸우는 기지.”
밖에서 싸울 일이 많다
이미 구속을 각오하고 시작한 싸움이라 유치장에서는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오히려 바깥 동지들의 마음의 상처가 더 걱정이 됐다. 구속영장이 떨어지고,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왔다. 오랜만에 몸을 씻었다.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줄기가 땀 배인 내 몸을 싹 씻어준다.
유치장의 마루바닥도 어느새 정이 든다. 창살너머로 송 부위원장이 보인다. 바닥에 누워 자고 있다.
‘이름을 부르는 거야. 면회를 왔구나. 유치장에서 면회도 마지막이구나. 이제 수의를 입고 동지들의 얼굴을 보겠구나.’
“면회 왔는데, 왜 우리 둘만 부르는데?”
경찰이 말이 없다. 둘만 나오란다. 순간 건너편에 있는 송 부위원장 얼굴을 봤다. 활짝 웃는다.
“두 분은 집에 가셔야죠.”
둘 만 석방이다. 갑자기 발이 바닥에 굳었다. 입도 굳었다. 창살 안의 송 부위원장에게 무슨 말을 해야 했다. 하지만 어떤 말도 할 수 없다. 창살 앞에 다가섰다. 부위원장도 철창 가까이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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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참세상자료사진] |
“부위원장?”
“보내줄 때 퍼뜩 가야지.”
“부위원장?”
“미안하오. 나만 편히 쉬게 생겼으니. 밖에 가서 내 몫 싸움까지 부탁해야하니 미안합니더.”
“…”
동지는 감옥에 남고
너털웃음을 웃는다. 저 웃음 때문에 미치겠다. 사랑할 수밖에 없다. 저 웃음에 지칠 때 힘을 얻었고, 저 웃음에 용역깡패에 두들겨 맞으면서도 싸울 수 있었다. 저 웃음에 400일의 정리해고 싸움이, 열흘의 고공농성이 지치지 않았다. 저 웃음 때문에.
‘석방되었다고 생각되지 않아. 아직 내 몸은 저 유치장 안에 있는 거야. 함께 싸웠지만 홀로 두고 나왔잖아. 이제 두 몫을 해야 해.’
석방이 되니 다시 현실이 나를 괴롭힌다. 아내에게 말도하지 않고 크레인에 올랐다. 집에 농성과 관련해 손해배상청구 우편물이 도착해 아내가 알았다. 늙으신 어머니와 함께 사시는데 이걸 아시면 쓰러지실 일이다. 다행히 아내 혼자 속앓이를 했다.
정리해고가 된 뒤로 집은 한마디로 엉망이 되었다. 코오롱은 단순이 나를 일터에서 쫓은 게 아니라 가정을 무너뜨린 거다. 옳게 자식들 학비도 주지 못했다. 간식 하나 사 줄 형편이 되지 못했다.
내가 해고된 뒤로 아이들은 내게 용돈을 달라는 소리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일을 할 때는 내가 출근할 때 현관에 나와 인사를 하고, 손을 슬며시 내밀었는데.
나는 그래도 형편이 나은 편이다. 밥 먹기조차 힘들고 가정마저 깨진 조합원도 있다.
6월8일 구미 집에 갔다. 아내의 얼굴이 반쪽이다.
“여보, 얼굴이 와 그러노.” 내 물음에 아내는 와락 내 가슴에 안겨 울기 시작한다. 아내가 울자 아이도 따라 운다.
“아버지가 크레인에 올라간 것 안 다음에 엄마 밥도 안 먹었어.”
“여보, ….”
“…”
엄마도 굶었어
“와, 굶고 그러노. 굶고 일은 우째 다녔노.”
“당신이 그러고 있는데 내 우찌 밥을 먹노. 내 맘이 우째는지 알기나 하노. 전화라도 하면 안 되나. 내가 남인가? 내게 알리지도 않고, 뭐하는 짓이고.”
‘아내는 학교 급식실에 나가. 새벽에 나가지만 퇴근 시간이 세시라 집안 일도 할 수 있어 고되지만 그 일을 해. 그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지. 아내가 내가 올라간 걸 알고 8일 동안 밥도 안 먹고 있었던 거야. 밥도 굶고 그 고된 급식 일을 한 거야. 난, 나라는 인간은….’
하룻밤을 자고 다시 서울로 왔다. 더 열심히 싸워야 하는데, 나를 가로막는 게 너무 많다.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검사는 열을 받아 어떻게든 엮어 다시 유치장에 넣으려고 한다. 8일은 이웅렬 회장 집 앞에서 집회가 있었다. 그 날 나는 집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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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참세상자료사진] |
하지만 경찰은 다시 나를 불러 8일 집회에 참석했다고, 구속을 시켜야 했다고, 나오자마자 또 시작이라고 으름장을 논다. 구미에 갔다고 해도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내 휴대폰에 대한 위치정보와 발신자를 조사한다. 집회장에 없었다는 것을 증명해야한다고 한다.
정리해고자는 국민이 아니다
‘석방된 나를 계속 괴롭히고 있어. 내가 흉악범인가. 내 사생활마저 뒤져 나를 다시 구속시키려고 해. 정리해고자에게는 인권도 없단 말인가. 하지만 참자. 더 큰 싸움을 위해 참아야지. 다짐하건만 무전유죄가 떠오르고, 참을 수없는 분노가 끓어. 국민이지만 보호받을 자격마저 빼앗긴 국민, 정리해고자.’
이제 이야기를 마무리할 때다. 아니 새로 써야할 때다. 싸우는 것보다 구속되는 것보다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힘든 것은 잊혀져가는 것이다. 코오롱 정리해고자들의 시계는 멈춰있다. 400일의 시간이 멈춰있고, 한 명씩 구속되며 잊혀져가고 있다.
송 부위원장의 면회를 갔다. 두툼한 아크릴 칸막이 너머에 듬직한 몸짓의 송 부위원장은 특유의 너털웃음으로 반갑게 맞는다. 타워크레인의 밤, 잊지 않는다. 절망의 순간에 피어낸 동지의 사랑 결코 잊을 수 없다.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