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리 인권지킴이집 옥상에 지난 여름나기 캠프 때,
그동안 서울대책회의를 후원해 주신 분들의 도움으로 300만 원을 들여 평화전망대를 지었습니다.
오늘 낮 기자회견 때부터 서늘한 바람이 부는 폭풍전야 지금까지,
평화전망대를 지키고 있는 인권활동가들이 심경을 담은 짧은 글을 보내왔습니다.
변연식 (천주교인권위원회 위원장)
몹시 두렵다...
그러나 햇볕 좋은 마당에 빨래를 널고 참깨를 너는
어머니, 아버님의 일상을 끝까지 지켜드리고 싶다.
정아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여기는 대추리 황새울이 한 눈에 보이는 평화전망대입니다.
노을이 미치도록 아름다운 이곳에서 우리는 지난 몇 년간 전쟁 같은 일을 치루고 있습니다.
또다시 대규모 병력이 황새울 들판을 새까맣게 메우고 아무런 무기도,
든든한 동지들도 없는 우리들은 전쟁포로처럼 끌려갈 것입니다.
이렇게 수십 번이라도 잡혀가서 ‘평화’를 이룰 수 있다면,
이런 저항으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인권이 보장된다면
우리 인권활동가들은 그 길을 마다않고 가야할 것입니다.
전쟁의 참상은 미사일이 터지는 전쟁터에서만 벌어지지 않습니다.
지금 평화를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전쟁음모가 우리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오고 있습니다.
그걸 막기 위해 저는 지금 평화전망대에 제 몸을 묶습니다.
배여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상임활동가)
지난 3월, 포크레인 밑에서 울부짖던 한 할머니를 잊을 수 없습니다.
만약에 누군가가 나에게 어떻게 평화전망대에 올라서게 됐냐고 묻는다면,
그 할머니의 눈물을 잊을 수 없어서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답할 것입니다.
철거가 들어오기까지 불과 몇 시간 전입니다. 많이 긴장이 되고 떨립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다치지는 않을 런지 걱정도 됩니다.
하지만 2주 사이에 훌쩍 커버린 배추의 모종들을 보면서,
그리고 논에 약을 치고, 밭에 물을 주고 있는 대추리·도두리 주민들을 보면서,
그 평화로운 일상들을 꼭 지켜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외치는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하루 종일 모기소리처럼 왱왱 거리는 저 헬리콥터가
더 이상 이 위를 날지 않는 그 날을 위해서 잘 버티겠습니다^-^
김명수 (인권운동사랑방 돋움활동가)
나는 오늘 대추리의 집 지붕에 올라갈 것이다.
거기서 경찰을 앞세우고 집을 부수는 중장비에 맞설 것이다.
나는 평화와 인권을 옹호한다.
집은 평화롭고 인권적인 삶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이런 나의 신념 하에서 집을 부수는 공권력에 맞설 수밖에 없다.
공권력은 아마 나를 법의 이름으로 연행할 것이다.
인권과 정의에 어긋나는 법이 있다면 그 법을 지킬 수는 없다.
그 법을 바꾸어야 한다.
우리의 행동으로 인권과 평화가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올 수 있기를...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요즘처럼 평화라는 말을 많이 해본 적이 없네요.
그런데 이렇게 마음이 평화롭지 않은 적도 없어요.
대추리·도두리 할머니들 눈물을 보면서,
평택미군기지 확장이 가져올 재앙을 알면서 일상이 평화로울 수는 없으니까요.
오늘 저는 어느 가족이 따뜻한 저녁을 해 먹으며 도란 거렸을 집의 지붕위로 올라갑니다.
그 곳에서 마을을 부수러 오는 국가폭력을 만나게 되겠죠.
그들에게 이곳을 지키는 것이 평화임을 알리겠습니다.
미안하고, 답답합니다.
곁으로 가고 싶어도 이제 너무 늦었습니다.
그러나 미안해하고, 답답해하는 것은 지금 할 일이 아닙니다.
대추리, 도두리에 들어가 있는 모든 지킴이 친구들에게는
나중에 경찰서 유치장에 면회가서 미안했다고, 멋있다고 말하기로 합시다.
지금은 우리가 우리들의 위치에서 최대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
청와대와 국방부 게시판에 항의 글을 남기고,
다음과 싸이월드 등 포털 싸이트의 토론방을 찾아 추천과 댓글을 달고
직접 글을 올려 토론에 동참합시다.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같은 인터넷 매체들에 가서 글을 남깁시다.
거기에 있는 기사들을 추천하고 댓글을 답시다.
오후 2시부터 밤까지 계속 될, 국방부 앞 규탄집회에 함께 합시다.
2만 명의 경찰과 400여명의 용역깡패들, 그리고 수백 톤의 중장비들....
그 앞에 우리들은 너무나도 힘없는 존재들일지 모릅니다.
저들이 마음만 먹으면 우리들을 닭장차까지 들고 가는데 십분도 안 걸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린 보여줄 것입니다.
노무현과 이 나라 정부, 부시와 미국에 보여 줄 것입니다.
민중은 그리 쉬운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저들이 대추리, 도두리를 빼앗아가면,
우리는 한반도 남쪽 절반 땅을 모두 대추리 ? 도두리로 만들 것입니다.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것인지,
우린 똑똑히 보여 줄 것입니다.
종일 기사들을 읽으며, 메일을 쓰고,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받습니다.
순간순간 목이 탁 막혀버리고, 뜨겁다 못해 따가운 눈물이 흐르더군요.
우리는 왜 이렇게 처철하게 살아야하나 생각이 듭니다.
눈감고, 귀 막고 대추리, 도두리를 잊고 살아가기에는,
우리들 모두는 이미 너무나 깊은 대추리, 도두리 병 환자들입니다.
이 불치병을 우리는 행복하게 앓고 있습니다.
대추리, 도두리에서는 차가운 바람에 맞서며, 밤을 밝히며 일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원정삼거리 주변에는 대추리로 들어가지 못한 지킴이들이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전국에서 모인 그들의 숫자는 300명을 넘는다고 합니다.
전국행진을 떠난 행진단은 열린우리당 광주시당 당사에서 점거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단 한시간만이라도 편히 단잠을 잘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제, 오늘 참 많은 글을 쓰고, 메일을 보냅니다.
달리 말하면, 저는 어제 오늘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이제 몇 시간 후, 올 한해 우리 입에서 떠나지 않았던 이름....
대추리, 도두리가 무참히 짓밟힐 터인데,
저는 컴퓨터 앞에 앉아, 메일을 쓰고, 싸이트에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역할분담”이라는 핑계가 전혀 위안이 되지 않는 밤입니다.
많은 분들이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답답하고, 무엇인가 해야겠는데 몸은 뺄 수가 없는 상황...
그러나 우리들의 마음이 대추리, 도두리에도 분명 전해 졌을 것입니다.
용역깡패들은 폭력을 휘두르겠지만, 우린 평화란 방패로 막을 겁니다.
경찰들은 인권을 짓밟겠지만, 우린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저들은 집을 부수겠지만, 우린 집을 지을 겁니다.
우린 내일 패배하겠지만, 우린 결국 승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