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간병·장기요양문제를 사회적 연대원리에 따라 정부와 사회가 공동으로 해결하는 제도”가 이 제도라는데, 그렇다면 이 제도 도입이 현실화됨에 따라 덩실덩실 춤이라도 춰야 할 것 같은데, 어째 뒤 끝이 개운하지 않다. 이는 내가 노무현 정부가 하는 일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지 못하겠고, 떡 하나 더 준다 해도 삐딱한 시선으로 보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일까? 노무현 대통령이 말하는 것처럼 내가 대안 없이 비판만하는 습성에 길들여져서일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현행 법안대로 제도가 시행된다면,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것과는 달리 제도는 파행적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고, 이는 제도가 시행되지 않느니만 못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래도 그렇게 나쁜 제도는 아닌데 일단 도입하고 시행하면서 고쳐가자고 이야기한다. 언뜻 들으면 맞는 얘기인 것 같다. 이런 분들하고 대화하다 보면 내가 진짜 앞뒤 꽉 막힌 ‘반대를 위한 반대론자’ 같다. 그러나 이것도 그렇지 않다! 무슨 제도든지 제도는 처음 시작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제도의 변화는 이른 바 ‘경로 의존성’이란 게 있기 때문에, 웬만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처음 제도 도입 시 결정된 구조적 틀에 따라 변화의 가능성이 제약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어떤 분들은 ‘웬 구조결정론?’ 하시겠지만 실제가 그렇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예외는 언제나 예외일 뿐, 거의 대다수의 사회 제도들이 제도 도입시 결정된 구조에 따라 변화의 경로를 밟는다.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나면 궁금해지실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지금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이 뭐가 그리 문젠데?”, “어떤 구조적 문제가 있기에 변화 가능성이 적다는 건데?”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간 많은 얘기를 해 왔다. 공공서비스노조, 건강세상네트워크 등으로 구성된 ‘장기요양보장제도 쟁취를 위한 연대회의(장기요양보장연대회의)’에서도 많은 의견이 나왔고, 병원노동자희망터,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등으로 이루어진 ‘간병노동자 노동권 확보와 사회공공성강화를 위한 공동대책위(간병공대위)’에서도 적지 않은 의견이 개진되었다. 보건복지부가 ‘노인수발보장법’이란 형태로 입법예고한 것이 2005년 10월이었으니, 그간 우리는 1년이 넘게 문제점을 지적하고 투쟁해 온 셈이다. 그러니 얼마나 마르고 닳도록 많은 얘기를 해 왔겠는가? 그러나 우리의 목소리는 들은 채 만 채, 제도의 내용은 바꾸지 않고 이름만 바뀌어 제도가 시행되게 생겼다.
처음 보건복지부가 낸 입법예고안은 ‘노인수발보장법’이었는데, 이게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노인수발보험법’으로 바뀌었다가, 국회 보건복지위를 통과할 때는 ‘노인장기요양보험법’으로 바뀌더니, 최종적으로 본회의에서는 ‘노인장기요양법’으로 통과되었다. 하도 이름이 바뀌어서 이젠 사람들한테 “이 법안이 그 법안이에요”하고 설명을 해야 할 판이다. 하지만 그래도 또 얘기 해야겠다. 듣는 사람이 아무리 지겨워해도 또 이야기 해야겠다. 이렇게 하면 저 쪽에선 우리를 ‘파라노이아(편집증)’로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생각하기엔 저 쪽이 ‘난청’ 혹은 ‘단기 기억상실증’에 가깝다고 생각하니 어차피 평행선이다. 그래도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첫째, 이 제도가 시행될 경우,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변화는커녕 사회적으로 필수적인 노인 돌봄 서비스를 시장에 맡기는 방향으로 제도가 확립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노인 요양을 책임질 공적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등이 운영하는 공공 노인 요양시설이 태부족이라는 말이다. 이런 상태에서 제도가 도입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노인 요양업을 새로운 시장으로 판단한 자본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민간 노인 요양시설을 만들 것이다. 어떤 분들은 그렇게 말한다. ‘공공이건 민간이건 어떠냐고, 요양시설만 많아지면 되는 것 아니냐’고. 그러나 그것은 결코 그렇지 않다. 엄청난 시설 부족분을 민간 요양시설이 차지하고 나면, 그들은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요양 시설의 노동자들을 쥐어짜고, 요양 노인에게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기상천외한 방법을 고안해 낼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다양한 형태의 비급여 서비스를 개발하여 요양 노인의 가족을 등쳐먹을 것이다. 이러한 민간 요양 시설이 대다수이게 되면, 정부가 이를 단속하기도 힘들다. 서비스 제공의 대부분을 그들이 담당하게 될 것이므로 강력한 규제를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하면, 정부 쪽 사람들은 우리가 ‘소설적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인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이것 역시 절대 그렇지 않다. 우리보다 먼저 ‘공적개호보험’라는 비슷한 제도를 도입했던 일본의 예를 보면, 이러한 우리의 우려가 SF 소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제도 도입 후 이제 겨우 7년 정도가 지났을 뿐인데, 일본은 현재 민간 요양시설이 주도하는 비급여 비용의 증가와, 요양시설에 근무하는 노동자 착취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제도 도입 초기에는 유망한 직종으로 인식되어 많은 사람들이 지원했던 ‘개호보조사’의 경우, 이제는 그 임금 수준이 낮아지고 노동 조건이 나빠져 내국인들은 아무도 하지 않으려고 하여 이주 노동자로 채워지고 있는 현실이라고 한다. 이제 이는 10년 후 우리의 모습이 될 것이다.
둘째, 이 제도가 시행될 경우,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변화는커녕 노인장기요양에 필요한 사회보험 재정에 정부가 기여하는 비율이 점차 줄어들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서비스 이용 대상자는 더욱 적어지게 되고, 본인 부담은 더욱 높아지게 된다. 정부는 재정 핑계를 대면서, 제도의 적용 대상도 노인 중 1,2급 중증질환자로 한정했고, 이용자의 본인부담 비율도 시설의 경우에는 20%, 재가인 경우에는 15%로 정했다. 이렇게 되면 전체 노인 인구의 1.7%에 불과한 8만5천 명만이 서비스를 받게 되고, 이들은 한 달에 50-60만 원씩을 내야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이번 제도는 적용 대상은 적고, 요양 노인 본인이 내야 하는 돈은 많은 형태로 시작되게 되었다. 이는 말로는 노인 요양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해 놓고 정부가 정작 중요한 돈은 내길 꺼려한 까닭이다. 국가 재정은 생색만 낼 수준으로 투여하기로 해놓고, 재정이 부족하니 극희 적은 노인들만이 그것도 적지 않은 본인 부담금을 내면서 서비스를 이용하라고 하는 것이다.
정부가 이렇게 제도 도입 초기부터 국고 지원 비율이 낮은 사회보험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재정 투여 규모를 늘리기는 매우 힘들다. 지금도 건강보험에 들어가는 정부 재정을 어떻게든 줄여보려고 노심초사하는 정부가 노인장기요양 제도에 돈을 더 쓸 리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의 경우에도 정부는 개호보험에 들어가는 정부 지출을 줄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고 한다. 처음부터 적게 쓰겠다고 배짱을 내미는 정부를 무슨 수로 설득해서 돈을 더 내게 만들겠는가? 이렇게 되면 더 많은 노인이 더 적은 이용료를 내고 서비스를 이용하게 하려는 꿈은 물 건너가게 되는 것이다.
그간 이렇게 저렇게 많은 이야기를 해왔기 때문에 글을 짧게 쓰려 했는데 그래도 글이 길어졌다. 우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법안은 국회 본회를 통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또 이렇게 글을 써서 이번 법안에 대해 반대 의견을 밝히는 것은 투쟁의 자리를 다지기 위함이다. 정부와 국회가 엉터리로 만든 법안을 밟고 우리는 또 운동을 만들어갈 것이다. 그래, 너희들이 만든 그 법안의 실패로 나타날 부작용들을 거름 삼아 우리들의 운동은 더욱 무럭무럭 자라갈 것이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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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윤 님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 '간병노동자노동권확보와사회공공성강화를위한공대위' 간병정책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