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동대문운동장?, 우리는 '안녕'할 수 없다

노점상인 등 동대문운동장 주변 펜스 절단기로 뜯어내는 등 분노표출

서울시가 18일 본격적인 동대문운동장 철거에 착수하겠다고 발표하자 동대문운동장 철거에 반대하는 노점상단체와 문화체육단체의 분노가 폭발했다. 이들은 해머와 절단기를 이용해 서울시가 동대문운동장 철거를 위해 쳐놓은 펜스 약 1~2m 가량을 뜯어내고 공사현장에 진입해 철거 즉각 중단을 촉구했다.

  1926년에 준공된 동대문운동장이 2007년 12월18일, 흙더미 속으로 긴세월을 묻기 시작했다./ 이정원 기자

뚫린 펜스 사이로 절단기, 굴삭기 등 중장비의 진출입을 위해 한 쪽 벽이 허물어진 동대문운동장의 모습이 드러났다. 동대문운동장 내부는 벌써 일부 관중석 의자가 분리돼 쌓여있었고, 이날 동대문운동장 철거에 투입되었다는 용역직원들이 나머지 관중석 의자를 분리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균형발전추진본부 한 관계자는 "등받침이 있는 의자 6천8백여 개는 목동야구장에서, 전광판은 대체야구장인 구의야구장에서 재활용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철거는 중장비 진출입 통로로부터 왼편쪽에서 오른쪽으로, 즉 관중석 E에서부터 F,D,B,A 등 역방향으로 진행될 예정"이라고 이 관계자는 밝혔다.

한편 동대문운동장 철거에 반대하는 노점상단체와 문화체육단체들의 대응도 녹록치만은 않아 보인다. 당장 내일(19일) 대선을 앞둔 시점인데다가 동대문운동장 철거 공사가 바깥에서부터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내부 공사가 우선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여러모로 여론의 관심을 끌기 어려운 상황이다.

최인기 전국빈민연합 사무처장은 "내일 대선을 앞두고 서울시가 급하게 보도자료를 배포해, 관심이 대선으로 쏠려 있는 것을 틈타 동대문운동장 철거를 진행하고 있다"며 "동대문운동장이 들어서기 전부터 지금까지 이 곳에서 삶의 터전을 일궈온 노점상인들의 생존권은 반드시 지켜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인기 사무처장은 또 "서울시가 기만적으로 동대문운동장 철수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당장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면서 안에서부터 철거작업을 진행해 밖에서는 철거를 하는지조차 보이지도 않도록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 13일부터 17일까지 진행된 사전철거작업 과정 당시 문화연대도 "서울시는 현재 동대문야구장 주변에 펜스를 치고, 시민들의 출입을 통제하면서, 비밀리에 관중석의자 및 관중석 주변 시설물들에 대한 철거를 강행하고 있다"며 "도대체 언제까지 서울시와 오세훈 시장은 거짓말로 일관하며, 서울시민들을 기만할 것인지 참으로 개탄스럽다"고 주장했다.

"공무집행 방해가 아니다. 우린 생존권 문제다"

서울시는 "18일부터 본격적인 구조물 철거를 시작하겠다"고 17일 발표했다. 서울시는 "2008년 2월초 까지 야구장 철거를 완료할 계획이고 축구장은 옛 숭인여중교 부지로 풍물시장 이전후인 2월말경 부터 철거를 시작해 4월말까지는 모든 지상물 철거를 완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울시는 야구장 철거를 위한 사전준비 작업의 일환으로 공사차량과 압쇄장비 등 진출입 통로(폭 10m의)확보와 잔디제거, 관중석의자 해체작업을 지난 13일부터 17일까지 진행한 바 있다.

현재 동대문야구장은 고교야구 등 아마추어 야구경기장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축구장은 청계천변 노점상들이 이동한 풍물시장으로, 또 후면부는 쓰레기 청소 차고지로 사용되고 있다.

서울시는 "역사성과 장소성을 감안하여 축구장의 조명탑 2기는 현지 보존하고 성화대는 디자인파크 내 일정한 장소로 이전 보존하며, 육상, 축구, 야구 등 유명체육인들의 핸드프린팅 제작설치 및 운동장의 축소 모형을 만들어 설치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동대문운동장 주변 노점상인들의 생계대책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근현대문화를 보존하자는 시민사회단체의 목소리는 개발이라는 명분을 뒤집어쓰고, 자본시장의 거대한 입속으로 사라졌다./ 이정원 기자

서울시는 "동대문운동장을 허문 자리에 각종 디자인 전시, 연구, 교육 기능을 갖춘‘동대문 디자인플라자 & 파크’(가칭)를 2010년 3월까지 완공, 디자인산업의 메카로 육성할 것"이라며 "우리나라 디자인산업 경쟁력이 선진국의 80%수준에서 90%이상으로 높아지고, 국내 디자인산업 매출액은 7조원에서 15조원으로, 패션산업의 매출액은 20조원에서 30조원으로 커지며, 서울은 세계5대 패션도시로 성장하게 될 것"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이날 노점상단체와 문화체육단체 등은 오전 7시부터 동대문운동장 동직문 앞에 모여 기자회견을 갖고 "동대문운동장 철거 즉각 중단"을 촉구하고 "일방적이고 독단적으로 철거를 강행하고 있는 서울시를 규탄"했다.

이병수 서울노점상연합 의장은 "정부의 일을 방해하려고 나온 것이 아니라 노점상인들의 생존권, 즉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이 자리에 나왔다"며 "동대문운동장 주변을 생활터전으로 잡은 노점상인들은 생존권을 위해 동대문운동장을 끝까지 지켜낼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강찬석 문화유산연대회의 대표는 "건국 이후 국가적 행사가 모두 이곳에서 치러지는 등 동대문운동장은 우리의 현대사의 질곡을 담고 있다"며 "얼마 전 천영세 국회의원이 동대문운동장의 근대문화재 등록을 신청했다. 우리는 노점상인의 생존권과 함께 문화유산을 지켜내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수정 민주노동당 서울시의원은 "1년 반을 넘긴 오세훈 서울시장은 매번 일방적이고 독단적이며 비민주적으로 서울시 행정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며 "동대문운동장 철거를 진행하면서 최소한의 절차인 이해당사자간 협의도 제대로 진행하지 않고 있다"며 서울시를 규탄했다.

이병수 체육시민연대 사무처장은 "풍물시장이 옛 숭인여중 부지로 이전하는데 이도 오 시장 임기 말로 계약이 만료되면 이후 상황을 장담할 수 없다"며 "서울시는 체육인을 상대로도 수 차례 거짓말을 일삼아왔고 제대로 지켜진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