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일하면서 내가 비정규직인지도 몰랐다"

95명 무더기 해고 앞둔 명지대 행정조교들

다음달 28일이면 13년 넘게 다니던 대학에서 쫓겨나야 할 명지대학교 대학원 교학팀 Y모 일반조교. Y 조교(41세, 여)는 12일 영하 10도가 넘는 추운 날씨에 피켓을 들고 교문 앞 선전전에 나갔다. 평생 처음 해보는 데모다.

Y씨는 지난 94년 명지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잠시 딴 곳에서 일하다 전임자의 소개로 95년 3월 1일부터 조교 일을 시작했다. 조교라고 하면 대학원에 다니는 학생이 교수연구를 도와주거나 약간의 행정 업무를 하는 교육조교를 떠올리지만 Y씨는 행정 조교다.

  선전전을 진행중인 명지대 조교들/ [사진-전국대학노조 명지대지부]

많은 대학에서 행정과 사무업무 만을 맡는 행정조교는 대학의 행정부서나 학과사무실 등에서 월급을 받는 직원이다. 그것도 해마다 계약을 갱신하는 비정규직이다. Y씨도 지난 13년 동안 해마다 3월 1일에 재계약을 해왔다. 13년을 한 부서에서 일했다. 자기 맡은 일에는 베테랑이다. 자기가 잘릴 것이라곤 생각조차 못했다.

월급은 많지 않았다. 95년 처음 했을 때는 정말 쥐꼬리였고 13년이 됐지만 사학연금과 의료보험을 빼면 평균 120여만 원 정도. 이렇게 오래 할 거라는 생각도 못했다. “잠깐 있다가 다른 직장 찾아보려는 생각했어요. 그런데 조교가 시간이 널널한 자리가 아니에요. 업무량이 굉장히 많아요. 물론 월급도 적고 저희가 무엇을 결정할 수 있는 위치도 아니에요. 하지만 저희 행정 조교들은 거의 같은 부서에 계속 있어서 조교들끼리 사이도 좋고 새로온 정규직 직원과 매우 친하고 관계도 좋아요. 그래서 재미도 있고 내가 졸업한 학교고. 대학이라는 울타리도 괜찮고, 업무량이 많아도 그런데서 오는 만족감이 있었어요”

그렇게 조교라는 직업에 만족감을 갖고 13년이 흘렀다. 방학 때는 노는 것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비슷한 업무를 하는 조교 L씨는 이렇게 하소연했다. “교수님들 성적 입력해 드리고 다시 받아야하고, 학생들 성적 입력, 논문 받고 졸업사정, 자격증 심사. 입시 끝났으니까 등록자 확인, 추가등록자, 입학준비, 졸업준비, 시간표... 방학이라도 끝이 없어요. 특히 전화 상담이 많아요. 학생들 상담. 입학 문의... 학생들이 드나들지 않는다고 쉬고 있는게 아니예요. 순환근무하는 직원들은 몰라서 상담을 못해요”

조교 L씨는 조교라는 직업에 대해 “학교평가 같은 거라도 있으면 방학이나 토.일도 반납하고 평일 밤 12시에도 무보수로 일할 정도로 일이 많습니다. 외부에서 보기에 조교라고 하면 집안형편이 여유로운 사람이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아요. 저희들에겐 이게 생계입니다. 박봉에도 10년 넘게 일을 하신 분들은 정 때문이라도 다른데 가기 어렵습니다. 여기서 십 수 년 쌓은 노하우를 그만두고 딴 데서 하기도 그렇고요”

재계약은 그냥 형식일 뿐이라더니

해마다 재계약하면서 혹시 재계약이 안 될지 모른다는 불안은 없었냐고 물었다. Y씨는 한번도 그런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한다. “학교는 조교연수회 때마다 이렇게 말해왔어요. 우리는 교원으로 분류돼 있고 매년 하는 재계약은 그냥 형식이라고 했어요. ‘모교에서 후배들을 위해 박봉이지만 자긍심을 가지고 일하는 여러분이 자랑스럽다’는 얘기도 많이 하셨어요” 학교는 처음 조교로 입사할 때도 얼마든지 오래 근무할 수 있다는 것을 장점으로 내세웠다고 한다. 계약서 작성조차 형식적이었다. 재계약은 보통 부서장 추천으로, 때가 되면 조교추천서를 내라고 해서 조교가 직접 써서 내면 부서장이 도장만 찍는 식이었다.

그러나 학교 측은 지난해 8월 말에 조교 40명을 재계약하지 않고 해고하기로 결정한다. 학교의 결정에 따라 7월 말에 해당 부서장이 Y씨와 8월에 해고된 조교 A씨를 불러 각각 계약 만료 기간을 알려준다. A씨는 9월 1일 계약자라 8월 말에, Y씨는 3월 1일 계약자라 2월 28일에 계약만료를 앞두고 있다고 알려줬다. 부서장은 자신도 해고를 원하지 않지만, 위쪽의 지시라며 미안하다고 했다.

해고 사유는 학교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납득하지 못했다. “학교가 왜 어려운지 설명도 안 했어요. 말이 계속 바꿨어요. 그런데 학교가 어렵다며 40명을 자르고 그 자리에 똑같은 일을 하는 사람을 급하게 뽑아서 채웠어요. 그리고 기간제법 때문에 2년이 넘으면 정규직화 시켜야 하기 때문에 우리를 잘라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죠”

  행정업무를 보고 있는 Y조교

그녀는 자신이 비정규직인지도 몰랐다고 한다. 대학에서 비정규직은 청소용역업체에 속한 분들만 그런 줄 알았다고 한다. 막상 해고가 50여 일 앞으로 닥치고 보니 그녀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럼에도 여전히 모교라는 틀 안에서 스승을 믿고 있다. “우리학교 재학생들이 졸업하고 나가서 다른데 가서 우리와 똑같은 일을 당하고 교수님을 찾아오면 그 제자에게 나가라면 나가야지라고 말 할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지극히 당연한 얘길 묻는다. 조교 L씨도 “학교가 너무 비민주적입니다. 한때 모두 교수님들 제자였고, 믿고 근무했는데 막상 이렇게 되니 너무 황당해서 말문이 막혀요. 맘 같아서는 다 뒤집어 엎고는 싶은데...”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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