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에 대한 솔로몬의 판결은 무엇

[기고] 김상완 성폭력사건 은폐의혹과 피해생존자 거짓진술 강요에 대해

5일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을 언론을 통해 접한 노동자와 활동가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민주노총 대변인이 버젓이 있건만, 그의 입을 통하지 않고 방송으로 그런 소식을 접한 것에 대한 참담함과 동시에 어이없음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기사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기강해이 내부갈등 중병 앓는 민주노총”, “민노총, 정권과 싸워야 하니 성폭행 사건 덮어두자”, “성폭력 입막음 구석에 몰린 민주노총”.... 소위 조중동과는 결을 달리한다는 언론사들도 이번 사건에 대한 접근방식은 대개 선정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어떤 조직보다 도덕적 우위를 점해야 할 민주노총에서 고위간부의 성폭력이 저질러진데다 사건을 은폐하기 위한 행동들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졌으니 말이다.

누구를 탓하랴? 하지만 이제 심리적 집단 충격과 여론의 호들갑에서 조금 벗어나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보고 차분히 문제해결 방식을 찾아야한다. 안 그러면 저들의 말대로 정말 “추잡스러워진다”.

사태는 우선 피해생존자에게 거짓진술을 강요한 것과 피해생존자가 이를 거절하자 후속 조치로서 성폭력을 저질렀을 가능성 등 두 가지다. 민주노총은 [민주노총 간부 성폭력사건에 대한 피해자 대리인의 기자회견에 대한 민주노총 입장과 해명]에서 피해자 A씨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정말 A씨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가 맞나? B씨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민주노총 성폭력사건에 대한 피해자와 대리인의 입장]을 보면 A씨는 누가 보더라도 혼자 독박 쓰게 되어있다. 민주노총은 피해생존자와 진위공방이라도 벌이며 ‘솔로몬의 판결’을 기다리겠다는 건가? ‘민주노총 주변과 언론에까지 떠돈다’는 민주노총의 진상조사보고서를 우리는 보지 못했다. 그렇지만 [민주노총 성폭력사건에 대한 피해자와 대리인의 입장]에서 피해생존자와 대리인이 주장하는 “이해할 수 없는 반인권적, 성폭력 옹호적 행보”를 절절히 느꼈다. 누구의 말을 믿으라는 건가? 언론을 통해 알려진 내용이든 [민주노총 성폭력사건에 대한 피해자와 대리인의 입장]이든지 간에 민주노총이 저지른 행위가 A씨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는 점은 상식적으로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더구나 그다지도 보호하고 싶었다던 A씨를 결국 성폭력 피해자라는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는 점을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지경에 이르자 온갖 탐정과 소설쓰기가 난무한다. 여기까지 하자. [성폭력사건에 대한 중앙집행회의 권고사항]과는 별도로 사태의 의혹을 철저히 규명할 진상조사를 재실시해야 한다. 민주노총이 해명보도를 내는 것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라고 했다. 하지만 해명보도야 말로 해피투게더의 한 장면 같이 “콩트는 콩트일 뿐 오해하지 마시길!”처럼 들린다. 진실을 밝힌다는데 왜 진실은 느껴지지 않고 콩트처럼 보이는 걸까?

언론이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진단하는 도덕불감증, 조직기강 해이, 정파갈등은 사태의 진짜 원인이 아니다. 외형적으로는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으로 드러났지만, 들여다보면 두 가지 문제가 뒤엉켜있다. 피해생존자에게 거짓진술을 강요한 것과 피해생존자가 이를 거절하자 후속 조치로서 성폭력을 저질렀을 가능성, 그리고 이후 사건의 은폐 축소 왜곡에 이르기까지. 그렇다면 문제의 원인은 가부장제적인 조직문화와 관료주의, 가족주의/유사가족주의에서 비롯된다.

이를 하나씩 짚어보자. 먼저 가부장적제인 조직문화에 대해서다. 운동사회 반성폭력운동이 본격화된 지 10년에 이르고 있는 시점에서 이번 사건은 노조운동이 여전히 가부장제적 관행과 잔재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보여주었다. 노동운동의 건강한 실천은 언제나 소수자와 함께하는 운동에서였다. 여성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사회구조와 이데올로기에 맞서 이를 넘어서려는 요구들을 만들어내고, 여성의 권리를 인정하고, 성적 차이에 입각한 공동체의 운영원리를 보편화시켜왔던 것이다.

제프 일리는 1000쪽이 넘는 분량의 <더 레프트>라는 책에서 서유럽 좌파 100여년의 역사적 교훈을 말하기 위해 남성의 보편성으로만 드러나는 몰성적 합리성이 어떻게 노동운동과 사회주의운동을 질곡으로 빠지게 했는가를 보여주는데 할애했다. 지금 다른 무엇보다 타자에 대한 기본적인 성찰과 윤리의 필요성이 강조되어야할 이유다. “조직적 규율과 교육을 강화”한다고 해서 성폭력이 근절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여성과 남성의 차이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상호존중의 윤리, 남녀관계의 새로운 문화 창출을 위한 진지한 실천적 노력이 뒷받침될 때 양성간의 관계를 변혁할 수 있다.

두 번째 관료주의, 가족주의/유사가족주의 문제다. 민주노총의 제도화 이래 활동양식은 점점 더 퇴행해왔다. 조직 규모가 커지고 산별노조체계와 관료제적인 방식을 추구하게 되었고, 이것이 효율적이라고 여기게 됐다. 전문가주의가 공고해지면서 지식과 정보가 독점화된다. 가부장제적 노동자 조직화와 운영방식, 이에 따른 부정부패로의 연루, 패거리주의, 위임과 대리주의의 만연, 정파조직 내외를 불문한 이전투구와 담합구조, 활동가들의 이권 추구 경향들도 고착화되었다. 특히 민주노총은 2005년 이후 지속적으로 사회적 감시대상으로 전락하였는데, 이번 사태로 말미암아 대중적 신뢰를 회복하기 힘든 상태에 처했다. 노동운동의 진보성은 공장에 갇혔다.

87년 노동체제의 시효 만료 이후 신자유주의적 통치양식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노동자 정치양식들을 찾아내는 노력을 게을리 한 덕분에 그 한계를 남김없이 드러낸 듯하다. 운동이 관리되고 통치되니 체제내화되고 있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총사퇴하고 항간에 도는 소문처럼 좌파가 접수한다면 상황이 달라질까? 일시적인 변화가 있을지언정 곧 제자리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조직을 쇄신하자거나 관료주의를 극복하자는 주장으로서 관료화를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운동이 만들어가는 궁극적인 상이 무엇인가? 노동자 대중을 대표한 이들이 노동자 세상과 노동자문화에 대해 무엇을 보여주었나? 새로운 운동의 근거는 다른 어디에도 없다. 역동적인 노동자 대중의 일상적 삶 속에서 찾아야한다. 위임이나 대리정치가 아닌 아래로부터 스스로 만들어가는 운동, 자본주의 착취와 억압을 변혁시키는 노동자 되기의 지속적 과정, 여성,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등 다양한 차이들을 아우르는 진정한 노동자의 형상을 제시하고 그에 기초한 진정한 노동자 정치를 전개해야한다.
덧붙이는 말

이황연아 님은 노동조합기업경영연구소 연구자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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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 성폭력 , 김상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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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가다

    지난 십수년간 들었던 말 재탕 또 반복

    머리부터 골수까지 다 썩어 문드러져서 그렇지

    무슨 미사여구가 이리 많아!

    잘난 노동관계사이트랍시는 곳 클릭한 내가 시간허비인거다 ㅉㅉ

  • 학생

    마지막 문단의 주장이 정말 궁금합니다.
    '역동적인 노동자 대중의 일상적 삶'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아니'역동적인 노동자 대중의 일상적 삶'이 존재하는지 궁금합니다.
    과연 노동자 대중을 대표한 자들이 문제인지 대표할 수 있는게 있는지... 활동가들이 말하는 노동자 대중은 존재하는지, 아니 노동자 대중이 어떤 형상으로 존재하고 활동하고 살아가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마지막 문단을 보면 현실적 존재처럼 노동자 대중을 말하다가 당위처럼 말하는 것이.... 존재인지 당위인지 뭐가 뭔지 궁금합니다.

  • 나도

    결론이 관념의 뜬구름.

  • 이황현아

    학생님의 지적에 하나씩 답해보죠.
    저는 노동자들의 일상적 삶 속에 있을 건 다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것과 사고하는 것에서 운동의 새로운 근거를 찾을 수 있죠. 노동자, 민중의 삶 속에 불의와 억압과 맞서는 저항이 있듯 이요.
    공장과 가족과 지역이 모두 현장이고, 이러한 다차원적인 시공간에서 민주노조라는 정치양식이 고유한 역사성을 갖는 노동자 지성으로 분출할 것으로 봅니다. 무슨 거창한 철학이 필요한 게 아니죠. 노동자들이 사고할 수 있다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노동자들이 사고하는 것을 사고해야 합니다.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말하고 글 쓰면서 분명한 견해로 자신을 표현하면 관료들의 통치가 자의적인 힘을 쓰지 못하게 할 것이라 생각해볼 수 있는데요. 이런 미약한(?) 방법에 대해 관료주의를 너무 만만하게 보는 거 아니냐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요. 이제까지 노동자들이 고유하게 만들어온 역사적 지성이 있는 거죠. 노동조합을 만들고, 직권조인하면 날려버리고, 역동적인 파업의 정치를 발명하고요. 바로 민주노조 정치죠.
    하지만 노동조합 초기의 열정과 이념이 사라진 지금은 어떤가요? 노동자를 대표한다는 이들은 조합원 대중을 통치할 존재로 대상화시키고 있습니다. 가부장제적 조직원리나 관료제적 방식이 아니면 조직화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대중 추수적이고 실용적인 방법들을 내놓죠.
    위계적이고 차별적인 가치와 관행에 근거한 대중동원과 조직운영이 조합활동의 중심이 되고요. 이것이 여성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대화와 연대를 근원적으로 불가능하게 하죠. 부정부패에 연루되고 노동자의 주체성은 억압됩니다.
    이런 방식이라면 노조조직이 정부나 기업 조직과 다를 게 없어지죠. 적들과 싸운다고 하면서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들을 모방하게 되는 겁니다. 노조조직이 항상 새로운 조직적 실천을 모색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상황은 반복되겠죠.
    끝으로, 노동자의 형상에 대해 궁금하다고 하셨는데요. 노동자 형상은 자본주의 생산관계로 규정되는 노동자계급과는 다릅니다. 개별성인 노동자 형상은 노동자 개개인이 걸어온 역사 속에서 겪었던 무수한 체험들이 누적되어 성립된 것으로 노동자 정치의 조건을 만듭니다. 노동자 형상을 사고하는 것은 노동자들이 일상적 사건들에 대해 어떠한 해석을 하고 의미부여를 하는지, 사회문화적 관계들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어떤 내용으로 채워나가는지를 사고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노동자 형상을 제시하기 위해 노동자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소통과 연대의 길을 찾기 위한 도정에 나서야 되죠. 공장, 가족, 지역을 노동자의 장소로 만들어나가려는 현장 중심의 노동자정치가 전혀 새로운 가능성을 현실화시킬 수 있습니다.

  • 일리히

    옳으신 말씀^^
    결론이 어떻거나, 말거나, 결국 현재의 민주노총 지도부를 구성하고 있는, 혹은 핵심활동가들의 정치의식과 양식은 더 이상 노동운동을 말할 수 없는 수준이하라는 사실이다.

    일반인의 상식에도 못미치는 자들이 노동운동의 지도부라는 사실에 치가 떨릴 뿐이다. ***들!

  • 김규식박사

    떳떳하게 죄를 시인하고 사죄와 양해를 구했고 지도부도 함께 반성하여야 하는 일을 왜은폐한단 말인가? 피해자에게 사죄를 구하기는 커녕 숨기려고 한 것은 피해자를 두번 죽이는 일과 무엇이 다른고. 역사와 후세에 진실로 진실로 부끄러운 일이다.

  • 고민의 시작은 의미있는것 같은데..사건을 좀더 자세히 보시고 글을 쓰면 더 좋았을듯 한데요.
    "피해생존자에게 거짓진술을 강요한 것과 피해생존자가 이를 거절하자 후속 조치로서 성폭력을 저질렀을 가능성" 이 부분은 기존 언론이나 피해자측, 민주노총측 등의 발표와 다른데 어찌 연결되는건가요?

  • 아이고

    기고. 좋은데. 무슨 무개념 입니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랬다고
    아예 쳐 죽일놈을 만드시는군요.

    실명 공개야 아름아름 다 아는 사람이니 그렇다고 쳐도
    태그에 이름석자를 딱 하니 박아놓는 센스는 도대체 뭡니까.

    '검색' 잘 되어서 평생 잊지 말자 이런건가요?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합니다. 죄를 지었으면 대가를 치르고 반성을 하는게 당연한 것이고요.

    포털에 검색 잘 되게 해 주셨네요. 여기저기 퍼 날라서 아마 평생 쫓아 다니겠죠.

    가족은 무슨 죄입니까. 관계자들은 어떻고요.

    설마 지은 죄 때문에 악마로 보이십니까?

    거르지 않는 편집부나. 기고랍시고 실명까고 씨부리는 사람이나.

    수준을 알만 합니다. 신나셨쎄요?

  • 이황현아

    음님, 고민의 시작이 의미 있는 것 같다고 공감해주시니 고맙습니다. 다만, 지적하신 부분과 관련하여 제가 그 가능성을 추론해 볼 수 있었던 유일한 단서는 [민주노총 성폭력사건에 대한 피해자와 대리인의 입장]이었음을 밝힙니다. 민주노총의 입장과 해명 또는 언론의 대서특필과 같은 내용들에 터해 있는 게 아니었다는 거죠. 피해자의 판단을 존중하면서 그 가능성에 대해 살펴본 것으로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아이고님, 지적하신 부분에 대한 제 생각을 밝힙니다. 여성활동가들은 반성폭력운동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크게 두 가지 방법론을 구사해왔습니다. 하나는 가해자 실명공개/사건의 명명과 공개사과, 다른 하나는 피해자중심주의에 입각한 사건의 해결입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성폭력사건은 86년 권인숙성고문사건이나 93년 서울대우조교사건처럼 성폭력사건 피해생존자의 이름으로 명명되어져 왔습니다. 이렇게 잘못 불리어진 사건들이 정정되는 데 6년이라는 법정투쟁, 아니 15년이라는 지난한 시간이 걸렸던 셈이죠.
    이번 사건을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으로 명명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가해자가 엄연히 있으되 조직 또한 가해에서 자유롭지 못하므로? 언론에서 처음부터 그렇게 호명했으니까? 여하튼 그래서,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으로 명명된 이 사건의 명칭은 아직까지도 정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죠.
    그런데 실명공개 자체를 인권침해라고 보시고 어떠한 경우에도 실명공개는 안 된다고 하신다면, 이는 논쟁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운동사회 반성폭력운동 10여년의 과정 속에서 지금까지의 문제해결을 위한 원칙 또는 방법론을 재고하기 위한 평가와 토론이 시급히 필요한 것처럼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