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유대인 학살이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시는 분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 유대인 학살은 왜 벌어졌으며, 어떻게 진행된 일일까요?
가톨릭교회는 유대인에 대한 개종 작업에서 다양한 적대적인 조치를 취했다... 특징적인 것은, 4세기에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자마자 유대인이 지녔던 시민으로서의 평등권이 폐기되었다는 사실이다. “그후 교회와 기독교 국가, 교회법과 제국의 법은 두 손을 맞잡고 유대인을 박해했다.” 그러한 법적 조치들은 나치에 전례가 되었다. - 1권 45쪽
나치와 히틀러가 어느 날 갑자기 ‘짜잔’하고 나타나서 유대인들을 죽여야 한다고 했을까요? 저자의 시각은 유럽에서 오랜 기간 계속되어온 반유대주의가 나치에 이르러 끝맺음을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죽인 자들’이라는 생각이 현실의 억압으로 하나 둘 나타났듯이, 종합적인 계획을 가지고 시작된 일은 아니었으나 반유대주의가 잘 짜여진 관료제를 통과하면서 구체적인 학살로 조금 더, 조금 더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유대인을 죽이려고 하니 먼저 유대인이 누구인지를 정의했고, 국가와 기업은 유대인의 기업과 집과 재산을 빼앗았고, 철도회사는 잘 짜여진 철도망을 따라 오차를 허용하지 않으려는 듯 정확하게 기차를 움직였고, 어떻게 하면 쉽게 많이 죽일 수 있을지 연구된 결과에 따라 가스를 투입합니다.
이 과정에서 회계사는 유대인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고, 의사는 유대인 살인과 불임에 대해서 연구하고, 노동자들은 부지런히 열차를 움직여 유대인을 실어 나르고, 기자는 유대인에 대한 편견을 부추기는 글을 씁니다. 모두들 각자 하나씩 맡은 역할을 열심히 수행함으로써 학살 기계가 멈추지 않고 잘 작동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독일인들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유대인 학살을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특정한 시기에, 독일이라는 특정한 국가가, 그것도 독일 전체가 아니라 나치라고 하는 특정한 조직이 일으킨 사건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건 명백하니깐요. 반대로, 바로 그 특정한 시기의 특정한 인간들이 벌인 일이라고 함으로써 학살에 참여했던 대부분의 유럽 국가(노르웨이, 벨기에, 프랑스 등)들은 슬그머니 책임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미국과 영국은 2차 세계대전 관련 영화에서 끊임없이 해방군으로 등장하지만 그들 또한 죽어가는 유대인들의 운명에 대해서는 별 관심 없었습니다.
기계처럼 움직이며 죽이려는 자들과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학살을 지원했던 수많은 이들, 그리고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을 뿐 학살에 대해서는 별 관심 없던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500만 명이 죽어갔던 것입니다. 마치 유대인 학살이라는 연극 속에서 자신들이 맡은 배역을 무심히 수행하듯이 말입니다. 심지어는 유대인 스스로도 죽음이 자신의 배역인 것처럼 행동하는 동안...
왜 그랬을까
컨베이어벨트에서 물건을 찍어내듯 독일이 유대인들의 주검을 만들어 냈다는 것 자체도 놀랍지만 또 하나 놀라운 것은 죽음과 학살을 대하는 유대인들의 태도입니다.
여러분은 ‘쉰들러 리스트’ ‘인생은 아름다워’와 같은 영화 속에서 유대인들이 저항하고 투쟁하고 총을 든 모습을 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항을 택했던 유대인의 수는 더욱 적었다. 1942년의 범죄 통계는 “국가권력에 대한 저항” 항목에 단 한 명의 유대인을 기록해놓았다. 베를린의 한 수사관은, 유대인들은 “매우 침착하게” 처신했으며 “예외 없이 순순히 따라왔다”고 회고했다. 자살을 생각하던 사람도 적지 않았다. 따라서 베를린 유대인들이 서로에게 던졌던 “영원한 질문”은,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인가, 아니면 이송될 것인가”였다. - 1권 639쪽
유대인들의 저항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였습니다. 또 저항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유대인들의 재산을 정리해서 독일에게 넘기고, 수용소로 보낼 유대인들의 명단을 작성하고, 소수의 독일군이 수용소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행정 업무를 돕고, 시체를 처리한 뒤 스스로 그 주검 더미 위로 걸어 간 것도 유대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 학살에 대해 생각을 하다보면 밀려오는 것이 인간에 대한 허무함입니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끔찍한 짓을...’이라는 허무함과 동시에 ‘아니 어떻게 이렇게 끔직한 일이 마치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라는 허무함이 찾아옵니다.
희생자에 대한 도움을 막은 것은 무엇보다도 자아 몰두였다...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청년들은 학위를 땄다. 파리의 지식인들은 습관적으로 카페에 갔다. 그곳에서 파블로 피카소는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고, 장 폴 사르트르는 극본을 썼다. 그들처럼 고상한 야망이 없는 사람들은 영화와 스포츠와 술로 향했다. 어느 곳에서나 매일같이 일상적인 삶이 유지되었고, 붕괴되면 재구성되었다. 모두가 무언가를 추구해야 했고, 실제로 매일매일 추구 되었다. - 2권 1457쪽
어제까지 그저 내 이웃일 뿐이었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유대인으로 정의되고, 옷과 가구를 빼앗기고, 수용소에 갇히고 죽어가는 동안 ‘난 아무 짓도 안 했어’라며 스스로를 위한 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여기서 인간에 대한 질문이 시작됩니다. 아무 것도 안 했으니 아무 잘못도 없다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아무 것도 안 했으니 그게 잘못이라고 해야 할까요.
책을 읽는 동안 깊은 허무함 함께 다가오는 것은 인간에 대한 믿음과 기대입니다. ‘세상 일이 그렇게 돌아가는 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어’라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살 명령을 거부한 독일군이 있었고 이들에게 큰 피해가 돌아갔던 것도 아닙니다. ‘명령을 거부했다가는 내가 죽을지 몰라’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죽지 않았던 거죠.
독일에 비하면 아무런 힘도 없지만 유대인들을 구하기 위해 헌신했던 덴마크의 택시 운전사, 가정주부, 교사, 학생이 있었습니다. 다른 이들이 하려 하지 않고,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위기에 처한 인간을 구하기 위해 나선 인간들이 있더라는 겁니다. 그 사람들이 특별해 보이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 너무나도 당연한, 흔히 말해 인간적인 행동을 했기 때문이겠지요.
무기력했다고, 방관했다고 그들이 가해자는 아닙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 무기력과 방관이 살 수 있었고, 살릴 수 있었던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제가 이 책을 읽는 것을 보고 어떤 분이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을 하는 사람이 왜 유대인 학살 문제에 관심을 가져요?’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유대인 학살이 이스라엘을 정당화 하는 근거로 이용되고 있기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유대인 학살 관련된 글을 읽어 보면 시오니스트들의 주장과는 달리 학살의 결과로 이스라엘이 생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시오니스트들이 낙하산 부대 몇 명을 보낸 것으로 면피하면서 학살을 국가 건설에 필요한 유대인 인구 불리기의 기회로 이용했다는 것에서 분노를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전 유대인 학살에 대해서 알게 되면 이스라엘을 무턱대도 동정할 수 없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영화 [더 리더]에서 판사와 세상 사람들은 나치 전범 한나 슈미트에게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어떻게 그렇게 아무 생각이 없을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제가 정말 두려운 것은 유대인 학살에 대해 알게 됨으로써 이스라엘을 동정할지도 모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이것도 저것도 알려 하지 않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생각하려 하지 않는 영혼을 버린 사람들입니다.